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성경을 중요하게 여기고, 신앙과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참 귀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경과 함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역사 가운데 성경을 중심으로 하여 그 가르침을 형성해온 전통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 전통을 뛰어 넘어 성경으로 직접 들어가려는 성향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성경적’이라는 표현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교회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옳고 그름에 대한 토론에서 갑자기 자기 이야기가 성경적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아마 자신의 이야기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옳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자주 독선적으로 보인다. 마치 자신이 성경의 진리를 독점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같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신의 이야기가 성경적, 즉 성경에 합한 이야기라고 주장한다면 결국 그 상대방은 성경에 합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이나 교회의 논의 가운데 성경적이라고 이야기하거나 갑자기 성경구절을 들이대는 것을 제재한다. 그러한 태도는 대부분 합리적인 토론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성경은 해석되어지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 진리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 삶의 자리로 그 구절들을 옮겨 올 때는 이런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그것이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게 될 때는 더욱 그러한다. 예를 들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나 인터넷의 중독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성경이 쓰인 당시에는 그러한 일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기본적인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고, 우리는 그 진리에 따라 삶의 지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통은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이어온 성경의 해석과 적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교부들의 가르침이나 종교개혁가들의 가르침은 우리 신앙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익히 숙지하고 있는 사도신경과 같은 것이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들을 아주 정수로 뽑아서 정리한 우리의 신앙고백이다. 그것은 거의 2천년의 역사 가운데 기독교의 변함없는 진리를 가르쳐준 교회의 귀한 전통이다. 또는 종교개혁시기에 나온 다양한 신조들, 예를 들어서 웨스터민스터신조, 도르트신조, 하이델베르크신조 등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귀중한 지침이 된다. 지금도 목사가 되고자 하면 이러한 신조에 따를 것을 맹세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눈을 감는다. 2천년의 교회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 것들에 대해서 외면하고, 이를 뛰어 넘어 성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더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인간의 오류가 섞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려 든다면 결국 성경은 왜곡되어지기 쉬운 것이다. 전통은 바로 이러한 오류를 잡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2천년 동안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치열하게 논쟁하고 토론하여 이루어낸 전통은 결코 과거의 고리타분한, 또는 성경에 대한 오류가 아니다. 오히려 그 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물인 것이다.

한국사회는 전통에 약하다. 과거 우리가 전통에 집착하던 것에 대한 반발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여러 종교들이 모두 종교의 원형에 집착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한국인의 종교성이나 심성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것이 결합되어 한국교회에서도 전통을 무너뜨리고 성경으로 곧바로 가버리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단지 성경뿐만 아니라 그 성경을 가지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전통도 있음을 한국교회가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