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사람 룻츠 드레셔가 30년 가까운 한국 과업을 마무리하고 내년 2월에 은퇴한다는 말을 들었다. 예순 초반의 나이도 나이지만, 기우뚱해진 몸 상태도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가 해마다 오곤 하던 한국 출장도 올해 가을 한국 자매교회들(PCK, PROK)의 9월 총회방문을 끝으로 마감한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마음도 약간 기운 듯 하다.

그는 1987년 2월, 독일 EMS 선교사로 한국에 첫 발을 디뎠다. EMS(서남선교회)는 독일 남부 개신교 주(州)교회들이 연합한 해외선교기관이다. 지금은 동아시아 담당 총무로 일하지만, 룻츠의 첫 임무는 한국으로 파송 받은 디아콘(사회봉사 일꾼)이었다. 그는 철거 전 서울 하계동 양돈단지에 있는 영은교회에서 6년 동안 가난한 이들 틈에서 사역하였다. 한국에 와서 도여수(道如水)란 한국이름도 얻었다.

룻츠 선교사는 처음 소명을 이렇게 회고한다. “하나님께서 전화로 부르셨어요. 고향인 오펜부르크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자리를 찾을까, 공부를 계속할까 생각하던 중 EMS에서 전화가 왔어요.”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87학번으로 한국생활을 시작한 그는 3년에 걸친 선교훈련과정에 성실히 참여했는데, 제국주의 앞잡이처럼 나쁜 선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결과 유창한 한국말을 하게 되었다.

이번 마지막 출장은 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30대 초반에 한국과 마음이 통했으니 그만큼 정이 듬뿍 들었다. 그는 한국교회를 가리켜 ‘인적교회’라고 표현한다. 첫 경험부터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훈훈한 인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20년 전에 한국생활을 정리하면서 쓴 ‘희망의 나그네’란 책에는 그런 정감과 함께, 합리적인 시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식 교회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1995년 봄, 그는 8년 3개월의 한국선교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였다. 낯선 한국으로 떠날 때에도 힘든 결심이었지만, 낯설 독일로 돌아올 때도 어려운 결단이었다. 이미 반쯤 한국인이 된 그가 독일에서 맡은 일은 만하임 지역교회의 교육담당과 김나지움에서 종교교사를 병행하는 것이었다. 그때 막 귀향한 룻츠 드레셔를 인터뷰 한 일이 있다. 재독한인교회협의회 회보에 독일인 한국선교사의 귀환소식을 전하려는 마음이었다.

당시 몹시 우울해 하던 그가 떠오른다. 땅콩을 넣은 된장찌개와 오징어튀김을 준비할 만큼 한국사랑이 남달랐던 룻츠는 다시 한국에 가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억센 독일식 한국사투리로 자신이 일하던 엠마우스교회 이름을 풀어내던 기억이 났다. “예수님이 함께 걸어갔지만 몰랐던 것처럼, 독일교인들도 예수님 계시지만 몰라요. 부활소식 들었지만 그러나 기쁨 없어요. 언제든 알게 될 거요.” 그는 자신을 그렇게 위로하였다.

일 년 반 후, 룻츠는 EMS에서 동아시아 담당 데스크로 복귀한다. 그리고 한국, 중국, 일본, 인도로 그 선교 파트너십을 점점 확장해 나갔다. 최근 일본 방문 중에 한국행 마지막 출장을 명령받은 그는 여러 가지 일 중 ‘한-인도 선교협의회’에서 기조 발제를 맡았다고 했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궁리하던 중에 6개월 간 인도여행을 떠난 이래 십 여 차례 들락거렸던 그가 결국 인도관련 일로 마무리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섭리이다. 한국만큼 인도교회 역시 사랑했다.

룻츠는 이번에도 자신이 밥값을 냈다. 밥은 형이 사는 것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룻츠가 배운 한국어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형’이다. “나는 기도하면서 자주 예수를 형이라고 불렀어요. 한국에서 형은 ‘사랑’과 같은 이름이지요.” 그는 한국에 와서 형에 담긴 다감한 의미를 배운 후에 비로소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롬 8:29, 공동번역)란 말씀에 더욱 실감했노라고 웃었다.

인생의 황금기간 동안 한국선교사요, 선교동역자로 일했던 룻츠 드레셔는 늘 한국을 꿈꾸며 그리워한다고 했다. 몸을 풀어주는 대중목욕탕이 절실하고, 한 달에 세 번쯤 오르던 동네 가까운 산이 좋다고 하였다. 그는 1987년 민주화투쟁을 경험한 세대여서 한국의 갈등상황에 익숙하지만, 누구보다도 남과 북의 평화에도 깊은 소망을 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지한론(知韓論)은 참 특별하다.

무거운 짐을 훌훌 벗으면 내년에 색동교회를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십자가를 꼭 들고 오겠다고 약속하였다. 의무감으로 가득 채운 마지막 출장은 곧 자유로운 첫 방문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 룻츠에게 느끼는 형제의 정이 든든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