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대법원은 동성애결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했다. 이를 계기로 아마도 여러 동성 커플들이 마침내 혼인신고를 했을 터였다. 그런데 며칠 전 켄터키에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한 여성공무원이 공직 이행 명령을 거부하고 신앙 상의 이유로 동성 부부에게 결혼증명서를 발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5일간 구속되었다가 다른 동료 공무원들의 결혼증명서 발급을 방해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동성애에 대한 복잡한 기독교 내의 찬반논쟁이 뜨겁고, 공무원 신분인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 여러 가지 찬반의견이 있을 터이지만, 어쨌든 여기까지는 옳든 그르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피해를 감수한, 따라서 그 점에 한해서라면 존중받을 만한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녀의 석방 이벤트에서 쏟아져 나왔다.

구치소 앞에 무대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차기 대권을 노리는 공화당의 한 대권후보자가 구치소 밖으로 나오는 그녀를 소개하여 무대 위로 올렸다. 그녀의 용감한 행동이 이 땅의 정치인과 목사, 일반인들을 깨울 것이라고 믿는다며, 함께 킴 데이비스를 맞아달라고 요청하는 대권후보자의 멘트와 함께 마침내 그녀가 무대로 올라오는 동안 영화 록키의 주제가였던 ‘Eye of the tiger’가 흘러나왔다. 천여 명의 지지자들이 그녀를 환영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계의 지도자들과 단체들에게 킴 데이비스는 마치 교리수호의 아이콘이 된 듯 했다.

문제는 먼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Eye of the tiger’의 작곡자가 분노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은 결코 노래 사용을 허락한 적 없고 그런 의견에 동조하지도 않는다며 이를 문제 삼겠다고 했다. 물론 이것도 문제는 문제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좀 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한 인간의 천진함에서 일어났을 법한 사건이 이제는 여러 힘들에 의해 이용되고 다른 힘을 억누르는 또 다른 힘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국가권력의 억압에 의한 희생자도 아니다. 그녀는 록키처럼 승리자가 되었다.

지금의 교회의 모습에서 가장 통탄할 것은 교회가 세상의 힘을 지니고 그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세의 교회가 힘으로 타락하고 무너져가는 것을 보아 놓고도 교회는 그것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긴 올더스 헉슬리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역사가 가르쳐주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람들이 역사가 주는 교훈으로부터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순교자의 피로 자라나 피어난 꽃이었다. 칼에 베여 일어난 신앙이었건만, 이제는 칼로 베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

물론 십자가의 승리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십자가의 승리라는 말은 신비의 말이다. 왜냐하면 이 승리는 전혀 승리처럼 보이지 않는 승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실패처럼 보이는 승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외치신 주님은 그 말을 마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시다. 주의하자. 신앙의 역설을 놓쳐버린 자리에서는 언제나 천박함이 자란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마 2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