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4일 쿠바와 미국은 마침내 국교를 재수교하면서, 양국 주재 대사관의 문을 열었다. 1961년 단교 이후 무려 54년 만에 이전의 관계로 정상화한 것이다. 아바나의 분위기는 환영일색이나, 당장 미국의 경제금수(禁輸)조치가 해결되지 않아 완전한 정상화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 다만 미국과 관계개선을 통한 ‘먹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쿠바혁명이후 두 나라 사이는 큰 고비를 맞았다. 미국식 지배구조는 모두 뒤집어졌고, 혁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조국을 등졌다. 그들은 쿠바의 닭울음소리가 들릴 듯 가까운 플로리다 반도에 살았고, 오매불망 아바나의 문이 열리기를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쿠바 경제를 떠받치는 힘이 그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달러에 달렸다니, 혁명의 아이러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던져버리고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쿠바는 1990년 젖줄과 같던 소비에트마저 무너져 내려, 여전히 배가 고프다.
 
  혁명쿠바의 대표적 아이콘은 체 게바라이다. 그는 여전히 혁명에 대한 환상과 혁신적 삶을 꿈꾸는 세계인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체 게바라 덕분에 사람들은 그동안 상상해온 혁명에 대한 묵은 편견을 지우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지금 쿠바가 누리는 자유로운 일상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보면서 그동안 빨간색으로만 보던 위험한 색안경을 벗을 수 있었다.

  쿠바국제우호협회여행사(Amistur) 가이드로 우리 일행과 내내 함께 한 이반 까밀리오 바스티유는 본래 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그가 천직과 같은 교사를 포기하고 가이드를 선택한 까닭은 교사라는 직업이 보람은 있었지만 저녁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월급만 괜찮아진다면 다시 교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의사도, 쿠바도 골고루 가난한 나라가 쿠바이다.
 
  그런데 쿠바혁명은 생각 밖의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백인과 흑인 간, 그리고 그 중간쯤 되는 피부색 사이에서 차별이 없다고 한다. 흑백 혼혈 물라토가 인구의 절반쯤 되지만 그 비율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구센서스에서 피부색에 대한 조사항목이 없기 때문이다. 차별을 제도적으로, 또 사회적 차원에서 예방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아바나 시내 비에하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원두를 구입하던 중에 진열장에 놓인 쿠바 스러운 등잔이 눈에 뜨였다. 그걸 구입하고 싶다고 했더니, 점원은 그것은 장식용이어서 자신은 판매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그렇담 주인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자마자, 대뜸 “이 가게는 피델 꺼야”라고 대답한다. 그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주인이름 ‘피델 카스트로’는 국가통치자가 아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주인아저씨처럼 들렸다.

  쿠바를 방문하면서 카리브 해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올해 10년을 맞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타리나가 대표적이다. 2005년 여름, 무려 1,836명이 사망하고, 705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1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해마다 8월이 되면 쿠바 역시 허리케인으로 진통을 겪는다. 게다가 길목에 위치한 까닭에 국토의 절반이 그 피해를 입지만, 얼마나 사전예방이 철저한지 사망자는 거의 없다고 하였다.
 
  사실 자연재난이 닥치면 선진국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의 피해가 큰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쿠바의 경우 가장 최빈국에 속하지만 UN이 선정한 ‘재해예방 모델국가’가 되었다. 쿠바가 질병과 재난에 강한 이유는 사람과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안전과 예방에 대한 정부의 노력과 국민적 연대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상식을 뒤집은 쿠바의 역설은 쿠바식 혁명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가 유재현은 쿠바 기행집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에서 쿠바의 시선으로 쿠바를 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회주의적 영감이 사라진 자본주의만큼 참혹한 체제는 없는 법이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사회적 차별을 방치하며, 자연친화적 삶을 잃어버린 사회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하더라도 결코 잘 산다(well-being)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쿠바는 우리에게 가난한 혁명사회의 부요함을 들려주고 있다.

  사실 이 세상 어딘들 이상적인 지상낙원이 있을 수 있을까? 어느 곳이든 빛과 그림자가 있고, 기쁨과 아픔이 골고루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만 창조적 혁신을 계속 하는가, 외면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은 희망과 절망 사이의 경계에서 나뉠 것이 분명하다.
 
  어느새 하나님의 달력은 창조절이다. 창조주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창 1:26)을 따라 지으셨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창조의 신비와 은총을 기억하며,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운’ 일상의 혁명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