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보기>

<2편>

14. 박흥규 목사와 문학적 세계

  한국문학사에는 목사 또는 성직자가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규정지을 수 없는 전형적인 직업인에서 시작하여 어떤 스토리를 구성하느냐 하는데 따라 천차만별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성직자를 대하는 작가의 의도는 희비쌍곡선 처럼 다양하고 격차가 컸다. 김영현 소설 속의 박흥규 목사라는 인물은 사상과 철학 신념과 헌신에서 꾸준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단한 문학적 구성력을 지니지는 않았다지만 곰 같은 우직함과 계산하지 않는 깊음 속에 숨어 있는 지혜로움을 봐야 한다. 이것이 겉으로 화려한 속물들과 구별되는 박 목사만이 지니고 있는 미덕이었다.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한 탐욕을 품은 것들에 비하여서 그는 훨씬 간결하고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그는 오로지 직면한 현실의 과제를 치열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진지함이 넘치는 인물이 변혁을 꿈꾸지 않을소냐. 시대를 맞서는 용기있는 예언자는 현실의 두려움을 거침없이 대한다. 그런 용기있는 인물은 흔치 않는 법이다. 명민함도 아니고 부족한 실력도 아니다. 다만 시대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는 불같은 성질의 인물이 필요한 법이다. 그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했다. 대굴령으로 간 것을 그는 바로 운명처럼 맞아들였다. 이것을 정민은 귀신이 씐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박 목사 같은 극적인 존재가 견디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 컸다. 그는 평소에도 그런 말을 했다. ‘농촌선교는 신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삶을 즉 실천의 문제다’ 라고 요즘 말로 바꾸자면 그것은 삶의 깊이의 차원이자 영성의 문제인 것이다. 그는 그곳에 땀과 눈물과 고독을 바쳤다.

“나는 내 인생을 농촌 목회자로 살아왔다. 갈대와 엉겅퀴로 뒤덮힌 땅을 원시적인 방법으로 밭을 일구고 거기에 들깨 도라지 당귀를 가꾸고 있다. 밭에 잡초를 매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을 통해서 얻는 것은 다시 땅을 경작하는데 힘을 준다. 농사와 노동의 실천이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해주고 있다”

실제로 박 목사의 산생활은 노동의 고된 만큼 질병의 아픔이 깊고 컸다. 땅을 일구고 때 맞추어 농사를 짓고 하는 모든 일들이 철저한 자기희생위에 이루어졌다. 상상이상으로 그것을 구현하려고 분투하는 박 목사는 여전히 젊다. 김영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박흥규 목사는 아직도 40대다. 어흘리 산 위쪽으로 도로가 뚫린다는 이야기에 흥분하고 주막터를 지나가는 통행로 뚫린다면 하고 간절히 바랠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이곳 대관령마을에다가 유치원도 만들고 작은 교회도 짓겠다고 다짐했다. 아마도 이런 집념이 대관령을 만들었지 싶다. 큰 아들 작은 아들을 데리고 나무를 심었고 세월이 가면서 밤나무와 잣나무 군락은 이 일대를 덮어버렸다.

이것을 한 개인이 온전히 적은 투자로 일구었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만약에 그가 여늬 현실주의자처럼 무사안일하게 교회나 바꿔가면서 교인들과 아웅 다웅하면서 한 세상을 살았다면 가당키나 한소리인가 말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던 그 땅을 40년이 되도록 매달려서 은퇴 후에는 아예 가서 살면서 수풀을 가꾸고 농사를 짓고 엎드려 기도했었다. 가족들과 갈 곳 없는 교우들의 묘지를 조성하였다.  처절한 고독과 산촌의 원시적인 무서움을 가득 안고서 해냈다. 낙엽송 잣나무 밤나무와 각종 유실수가 있고 독초도 약초도 함께 어울리는 농사 판을 만든 것이다.

15. 2007년 ‘현장의 삶만이 살 길이다’ 라는 일기가 있다.

  “농촌목회란 농민의 삶의 현장에 참여하여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나는 노동을 통하여 내 의지를 실천해 왔다. 지난 8년 동안 산 생활을 통하여 땅을 일구고 경작을 하면서 나무를 심는 노동을 계속하고 있다. 농촌선교란 교회가 농민현실에서 창조적인 노동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비록 작은 수이지만 농촌선교를 실천하는 분들에게 미래를 본다”

은퇴한 자연인으로 돌아가 숲에서 살면서 어느날 노익장 목사님은 비장해 진 소회를 다음과 같이 또박 또박 술회한다.

“요즈음 나는 언제 올지 모를 내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준비된 죽음을 위하여 살고 있다. 죽음이란 내겐 어두움이며 밤이다. 농막생활에서 밤이란 칠흑같이 밤을 경험하는 일이다. 밤의 어두움이 가져오는 절망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시간이 가지는 무한함을 깨닫는 것이며 나의 삶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태어났고 현재 진행되는 삶 그리고 죽어 돌아가는 곳이 끝없는 공간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떄 내가 겪은 밤의 절망은 가능성이며 희망이 된다. 나의 삶은 무한한 시간과 무변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죽음이란 자연의 질서 속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조상님들에 대한 경외와 후손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

16. 박흥규 목사와 감리교 운동의 미래

1-15. 그는 이처럼 대관령에 머물러 살면서 자연과 벗하고 투쟁하면서 수목신앙의 큰 테두리 안에서 산신들과 거니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선장교회도 망월교회도 쇄암교회에서도 가는 곳 마다 나무를 심고 심방하고 농촌 목회자들을 모았다. 그는 변함없이 푸른 언덕을 꿈꾸는 목회자였다. ‘포도나무집 풍경’ 속에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문수산성 교회가 있다. 80년대 박흥규 목사는 감신대 운동권 출신이었던 송병구 목사를 만났다. 박 목사는 문수산성 교회를 개척하게 하였다. 격려하고 돌보면서 개척목회의 어려움을 견뎌내도록 하였다. 당시는 활동가들이 교회를 떠나 현장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그러나 송병구 목사는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감리교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사무총장 진광수 목사)하는 운동단체가 조직되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감리교 민주운동 세력들은 고난모임을 통하여 근거지를 삼았다. 그들이 시작한 일은 비전향 장기수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분단조국의 일차적인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돌보거나 대화하지 않은 비전향 장기수들을 도왔다. 그러다가 이인모 어른이 북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고난모임은 정책과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운동을 발전시켰다. 감리교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뿌리내리고 자체적 역량을 키웠다. 송 목사는 그동안 독일로 가서 목회활동도 하였다. 십자가를 수집하여 공개된 전시회도 열면서 커졌다. 십자 전시회나 관련 행사들은 대중적으로 활성화되었다. 박흥규 목사와 더불어 함께 사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천안 단비교회는 더욱 특이한 경우이다. 교회도 없는 자연부락에 전도사 한명이 들어갔다. 전도보다는 동네일을 하면서 2년을 지냈다. 노령에 노동력도 모자란 자연부락에서 밥만 먹여주면 일해 주는 젊은 전도사는 귀중한 대접을 받았고 금세 주민들과 친교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주민들의 신뢰를 받았다. 그렇게 살던 어느날 그는 밭을 매는 관리기를 하나 장만하여 일손을 도왔다. 동네 두레노동을 감당하면서 친화력있는 사람이 되었다. 노령에 노동력이 한계상황에 도달한 농촌사회에서 그가 한 일은 전도에 앞서서 노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주민들에게 인정받는 첫걸음이 되었다. 그는 세 번에 걸쳐서 집을 지었다. 사택도 농사도 짓는다. 한옥교회도 지었다. 생전에 박 목사님은 필자에게 천안을 가보자고 권했었다. 그러다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정훈영 목사는 박 목사를 만났던 경험을 솔직하게 토로한 적이 있다. ‘대관령 숲속에서 맞는 새벽’ 에서 ‘영원으로 가는 길을 놓은 사람’ 이라는 글을 통하여 그는 박 목사를 만났던 이야기를 꺼낸다. 정훈영 목사는 그때 어려웠던 그에게 박 목사가 전해 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정신이었다.

당당뉴스 이필완 목사도 박흥규 목사를 그림자 처럼 만나러 다닌 이 이다. 공상은퇴 후 소백산에 들어가 살던 시절부터 그는 아무 때나 대관령 산막을 찾았다. 주막터 농막에서 농사짓던 박 목사를 끝까지 동행하였던 것이다.

봉평의 백성현 목사네 가정도 그렇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지내는 감리교 농촌목사들은 박 목사의 몇 안 되는 친구이자 동료들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홍천에서 농사짓고 있는 인애교회 강승욱 목사도 그렇다. 이들을 후배보다는 친우로서 대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돌보기를 거듭하였다. 오늘의 농촌 현장을 지키는 이들을 외롭게 만들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쓴 것이다. 도회적이고 약삭빠른 목회 바닥에서 그는 세태를 비웃듯이 살았다. 그는 어떤 이론적인 것보다도 인간적이고 충실한 삶의 현장을 보듬고 지켜내는 자세로 이들과 시종 함께한 것이다.

감리교 목회 현실은 이런 바닥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복음이 약한 이웃들의 벗이고 동료임을 증언하는 공동체성을 찾아갔다. 누구 말도 듣지 않는 세태에서 믿을만한 어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른노릇을 할 요량으로 산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진지하고 성실하게 농촌목회를 위해서 노동하고 공동체를 꿈꾸면서 후배들과 어울렸을 것이다. 각자 도생하기도 힘든 형편에 꿈같은 일이 아닌가.

▲ 1986년 여름, 송병구 목사(맨 좌측)의 문수산성교회 개척 당시 박흥규 목사님(맨 우측)

▲ 박흥규 목사님의 고희 문집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신앙과지성사) 출판기념회 (2008.4.15~김포 푸른언덕교회)

17. 시대의 아픔과 김영현의 고뇌

  이 대지에 뿌리내리려는 온갖 형태의 몸부림과 자기희생의 근저에는 이와 같이 처절한 한계상황을 뚫고 일어나는 부활의 생명력이 춤추고 있다. 김영현 문학은 특이하지도 별나지도 않은 소명의식에서 불을 지핀다. 그는 회고하기를 “나는 원래 니체철학을 전공하려 했다. 막상 공부를 하고보니 강단철학이 잘 안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10여년의 세월을 감옥과 군대와 길거리에서 이른바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며 살았다. 하지만 내게는 기본적으로 투사적인 성격도 정치적인 성격도 별로 없다. 그보다는 작가적인 한편 철학도로서 일관성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지독하고 고통스러은 현실을 많이 다룬다. 어둡고 캄캄함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는 자기라는 존재가 너무 거추장스럽게만 여겨졌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늘 고민하는 인간을 볼 수 있다.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꿈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확 달라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싸우고 살아 왔는데 그 끝은 대체무엇인가 하는 것을 묻게 되었다. 눈 내리는 공장 담벼락 아래를 걸어가며 가슴속에 품었던 꿈이 있었다. 더불어 행복해지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을 끈질기게 놓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지금 현실을 보니 세상이 희망이라는 게 없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새 세상을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가 싶은 마음이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일이고 참혹한 기분마져도 든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검토하지 않고 어쩌면 사회변혁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마져도 든다. 다시 말해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의 참여문학이 가지는 시대적인 한계상황은 아주 우연히 그러나 정확하게 찾아온다. 민주화외 인권시대가 가고 황금만능의 시대 각자 도생이라는 틀에서 이기적인 생존만이 허용되는 글로벌 시대가 찾아온다. 이 나라는 다시 생존경쟁의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옛날에는 훨씬 어려웠지만 모두가 함께했고 희망이 보였지만 지금은 혼자 싸워야 하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곳은 지역 갈등에서 이념 갈등으로 비화한 것이 세대갈등과 계층갈등으로 글로벌해졌다. 같은 시대를 산다고 해서 같은 의식과 가치를 가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각자도생이라는 생존경쟁은 너무나 가혹하고 고독한 투쟁방식이 아닌가.

18. 김영현 문학의 다음 단계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그의 최근 소설에서도 여지없이 반영되어 나타났다. 그의 200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 이라든지 ‘라일락 향기’ (2008년)는 그러한 암울한 시대상을 유감스럽게 느끼는 작가의 진혼곡이나 다름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이전의 그가 용약 분투하던 중에 얻었던 1990년 제 23회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에 빛나던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세대의 변천이었다. 한국일보 문학상에 빛났던 이 작품이지만 그가 후일담 문학이라는 비판의 소릴 듣는다. 그가 참여문학의 한 축을 들고 일어선 작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는 작품이 나온 1990년부터 시작하여 작가 내면에는 싸움꾼도 구도자도 못되는 자기동일성의 위기에 빠졌다고 술회하고 있다. 허무의 늪에 빠져 변화의 물결에 냉소하면서 살았다고 자아비판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시기 민족문학작가회의 훗 날 작가회의로 개명된 문학운동에서 활동하였고 2000년대 초반부터는 실천문학사 대표직도 수행하면서 나름 문학운동의 한 축을 지켜낸 인물이었다. 그는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변화하여 나갔다. 문단은 문단 대로 격변의 연속이었고 후일담 문학의 멍에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작가는 이 시기 뒷 산 솔숲에서 묵상을 하기도 하고 칼 구스타프 융과 같이 ‘어두운 밤 바다 위로 여행’을 시도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동일성이란 성안에 갇혀있는 자기라는 존재를 찾아 과감하게 돌진하였으며 그 속에서 자기존재의 실체를 바라다 보았다. 그 존재란 과거의 그림자로 가득하였다. 현재 속에 있는 과거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바로 그러한 인식의 구조를 파악하였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과거청산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999년 출간후기에서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정리하였다.

[이 작품은 시대적 요청에 충실했던 작품으로서 그 맡은 역할은 이미 다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그림자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글로벌 시대에 황금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맞아 문학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일찍이 예견했던 대로 쇠퇴기를 만났다. 몇몇의 명망가의 작품만이 팔릴 뿐 대다수 신인들의 작품은 외면당하고 있다. 더군다나 신인등용의 기회마져도 박탈당하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문학행위는 이제 생존에 급급하고 있으며 경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하였다. 이미 한국문학은 엽기적인 성 배금주의 문학으로 돌아서 버린지 오래되었고 실제로 그랬다.

김영현은 이러한 와중에서 ‘폭설’이라는 장편소설을 썼다. ‘폭설’은 운동권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글로벌 상황에 허덕이는 한국사회의 오늘의 모순을 유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인 형섭에게 린치를 가하고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조폭같기도 하고 신흥 교주같기도 한 인물 성유다가 나온다. 시대풍자의 한 방법으로 채용된 성유다는 운동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던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개인의 욕망으로 회칠하고 사교집단의 광기를 그대로 빼닮은 시대정신의 위기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순진하고 정직했던 과거의 운동권 인사들이 소리없이 무너져 내린다. 폭설이란 소설은 김영현의 문제의식 속에 폭력집단의 가혹한 현실적 압박을 가득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19. 김영현 소설의 대반전

  T. S 엘리엇을 좋아 하였던 김영현은 지적 탐구의 끝이라고 할 만한 새 작품 '라일락 향기'라는 소설집을 냈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도 썼다. 소설은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음탕하고 돈 많은 수전노 늙은이가 자기 집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하다. 그에게는 후처와 배다른 아들들과 아들인지 손자인지 구별이 안되는 핏줄까지 포함한 추악하고 원한 서린 가족관계가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범인임에는 틀림없지만 다들 아버지에게 강한 살의를 품고 있었기에 아무도 이 살인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악령의 화신 같은 인간에게도 선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고 평생 순명을 다 바쳐 성직자의 길을 가던 아들은 그 길에서 구원을 찾지 못하고 고뇌한다.

한 핏줄을 나눈 개개인의 이런 극심한 자기분열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방불케 한다. 어두운 정치투쟁의 피해자들의 아픔을 말하는데 치중해 왔던 관성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그러한 과거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인간 존재의 마성에 주목하고 구원의 궁극적 과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는데 큰 의미를 둔다고 할 것이다. 하여 ‘낯선 사람들’ 이란 작품은 숨막히는 스토리 전개방식을 채택하여 소설읽기의 새 모델을 제시한다.

부친 최문술을 살해했다고 자백하여 사건을 일단락 지어 버린 장남 동연을 신학교를 다니던 신부후보생 둘째 성연이 찾아온다. 사건은 싱겁게 끝나는가 싶더니 최종적인 범인추적이 시작된다. 최성연은 이 사건의 배경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고 범인주변을 추적한다. 배다른 여동생과 후처의 존재 그리고 식모로 살았던 강연옥과 그의 아들 양수길 이 등장하면서 소설속의 주인공은 숨막힐듯 부친 최문술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양수길을 붙잡는다.

김영현은 이소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연상시키는 수법으로 엮어 나간다. 감성의 인물 드미트리와 지적이고 철학적인 인물 이반 그리고 신앙의 세계를 향해서 나가는 지고 지순한 알료샤 이들 3형제가 벌이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여기에 얽혀 들어오는 조시마 장로와 미챠와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가 충돌하는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이 소설 ‘낯선 사람들’에서도 감성적 충동인물인 최동연이라는 큰아들과 여기에 대조적인 성격의 주인공 신학교를 다니는 둘째 아들 성연이 나온다. 그리고 사생아 양수길이 숨겨져 있는 가족사의 뒤안길을 찾아나선 성연은 최문술이 가지고 있는 비밀의 안마당으로 돌진한다. 최문술은 탐욕적인 인물이다. 거기다가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지 않고 살았다. 그에게 상처입고 피해입은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축이다. 마치도 한편의 추리소설을 읽듯 사건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사건의 심층을 파헤치는 심리학의 대가가 김영현 문학에 등장한 것이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은 성연은 살인범이라 주장하는 동연을 경찰서에 만난다. 부친이 살해당한 그날 밤 과연 진범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동연은 자기가 살해범이라고 시인한다. 그러나 형의 미심쩍은 태도를 보면서 성연은 믿을 수 가 없다. 사건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형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본다. 진정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살해동기를 가진 범인은 누구인가. 성연은 형사들과 경찰서를 오가면서 사건 관련자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마침내 최문술에게 버림받아 멀리 떠나간 강연옥을 찾는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양수길의 존재를 알게된다. 이 아이가 바로 부친과 강연옥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다. 신학적 자기의식이 명료한 성연과 속되고 절망적이기만한 동연 형을 벗어난 화살 시위는 양수길로 모아진다. 그리고 버림받은 가정부 강연옥의 핏줄이자 부친의 숨겨진 아들이었던 양수길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소설 ‘낯선 사람들’은 김영현 문학이 시종 박진감 넘친 이야기로 사건을 종결짓는 것을 보여준다. 김영현 문학을 후일담 문학이라 비아냥 대던 주변을 무색케 하는 이 소설은 읽는 재미도 만만찮다. 무거운 주제로 삶의 어두운 현실을 말하려는 전작의 경향에 비해서 낯선 사람들은 김영현이 이야기꾼으로서 소설쓰기의 다이나믹스를 터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신명나게 쓴 작품이라는 소릴 듣는다. 인간 삶의 심연에 자리잡은 돈과 욕망과 위선의 굴레를 파헤치면서 궁극적으로 타락한 인간도 구원받아 한다는 절박한 외침을 김영현은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20. 작가 김영현과 만남

▲ 김영현(소설가) 1955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창작과 비평》에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멀고 먼 해후》,《달맞이꽃》, 《엄마의 발톱》,《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폭설》 등이 있다. 실천문학사 대표를 역임하였다. 억압받는 현실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고통스런 삶의 현실을 그려내는 작가이다.

1-19. 2008년 가을 쯤인가. 박흥규 목사는 김영현을 만나보자고 했다. 실천문학사 건물인 것 같은 마포구청 앞의 어느 사무실에서 김영현을 만났다. 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작가 김영현과 박흥규 목사의 친교를 목격하고 점심을 함께 했다는 것이 소중하였다. 헤어질 즈음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 이라는 책을 주었다. 소설은 말할 것도 없이 시집도 있고 기행문도 있지만 그의 산문집은 김영현 문학의 내피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아니되는 중요한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의 문학 순례기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초기 웅진출판사 편집장을 하면서 알게 된 당대의 알아주던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과 강아지 똥의 권정생 선생을 추억한다. 그리고는 시인 고정희 작가 남정현 등과의 교류를 언급한다. 또한 시대정신을 살기위하여 온몸을 던졌던 민주투사 김병곤과 민청련의 김볌영, 그리고 남녘의 해방시인 김남주를 추모한다. 그 가운데 박 흥규 목사를 만났던 기억 ‘그해 겨울 톱밥난로’가 있다.

김영현은 근 3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간성교회 박흥규 목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박흥규 목사와의 만남을 다시금 되씹고 있는가. 19세기 일본 근대문학의 비조로 알려졌고 일본돈 천 엔에도 초상화가 있는 나쓰메 소세키를 회상하면서 그의 문학적 순례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이들을 회상하는 산문집에 그는 박흥규 목사와의 인연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다. 소설문학의 고단함과 더불어 인간적 교제와 시대정신의 갈등을 뚫고 일어서던 시절의 김영현 문학이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제 문단의 중진이다. 철학과 출신답게 짙고 푸른 세상을 성찰하면서 해방운동과 시대경륜을 결합시킨 자기성찰의 골짜기를 벗어나온 중년의 남자가 거기 있었다.

21. 깊은 강과 푸른 언덕의 조화

  그의 처녀작이자 문단의 등단작품이었던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에 대하여서도 한마디 하려고 한다. 원래 강이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이다. 상류가 있어야 하류가 있듯이 현재의 분단고통의 원인은 상류에 있다는 것이다. 곧 역사적 흐름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이란 역사의 큰 흐름과 분단의 상처를 깊이 파인 상처와 고통이 멀리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이 깊은 강의 핵심 내용이다.

그는 최근작 2014년 ‘누가 개를 쏘았나’ 후기에서 밝힌 것도 흥미롭다. ‘그에게 있어 청춘은 아무리 얼음왕국같은 조건에서도 변혁에의 열정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색감으로는 푸른 빛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소설 ‘해남 가는 길’은 고정희 선생이 여름산행으로 찾았던 지리산 뱀사골에서 급류에 휘말려 돌아간 사건전후를 다루는 작품이다. 젊은 날 그해 여름 김영현은 고정희 시인의 우울한 죽음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내 추억의 푸른 길’이라는 제목으로 쓰려고 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푸른 색과 깊은강을 상징어로 삼아 문학적 씨줄과 날줄로 삼았던 것이다. 그의 원초적 색깔은 푸른 색이다.

이 대목에 이르게되면 번듯 떠오르는게 있다. 바로 박흥규 목사의 푸른 언덕이 이미지이다. 이것이 막연하나마 구체적으로 합치되는 지점이 있다. 현실은 어둡고 컴컴하다면 미래를적시는 한줄기 빛은 푸른 색 도는 새 세상이다. 그는 대안적 세계를 상징하는 색으로 푸른 색을 택했다. 그리고 박 목사는 그것을 푸른언덕으로 보고 있다. 김영현이 최근 양평으로 집거하면서 쓰게 된 장편소설의 제목도 ‘우리 청춘의 푸른 옷’ 이라 했단다. 이 지점도 묘한 뉴앙스를 풍긴다. 김영현의 취향은 푸른 세계이다. 김영현의 색조에 대한 집착은 현실이 어두울수록 세상이 답답할 수록 깊어지는 저편 너머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듯 싶다. 그것을 푸른색이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시대를 거슬러 가는 삶을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어떤 색조가 상징할 때가 있다. 가령 붉은 색이 이념을 강조하고 녹색이 생태 환경을 대변한다면 김영현과 박흥규 목사의 푸른색은 대안적 저편의 그 어떤 것은 아니었을까. 박흥규 목사에게 푸른 것이 희망이라면 김영현 작가에게도 깊고 푸른 것은 희망이다.

단언컨대 30년대 일제강점기를 보내면서 농민운동 과정에서 탄생한 심훈의 상록수도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절박한 일제강점기의 농촌현실에서 계몽의 사명을 띠고 분투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심훈이 고향 당진으로 낙향하면서 다가온다. 고향에서 직접 농민운동을 벌리고 있던 집안의 조카 심재영을 모델로 삼아 만든 상록수는 농촌계몽운동의 현장보고서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이 상록수라고 대중화 된 것은 동아일보 덕분이지만 소설이 흥미를 더 한 것은 소설의 주인공 동혁과 상대 역으로 나오는 여자 활동가 채용신의 사랑이 더 흥미를 끌었다.

내용의 핵심은 30년대의 농촌 계몽운동은 브나로드 운동을 대신하는듯 대중화되었지만 내용은 일제가 사주하던 관제 농민운동에 대항하는 민족 양심에 입각한 자주적인 계몽운동 활동가들이 전재하는 농촌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1935년 동아일보에 상록수를 연재하면서 농촌계몽 운동을 통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 소설의 주인공은 협성여자신학교를 나온 최용신이 경기도 안산 천곡감리교회로 내려가서 YWCA가 지원하는 농촌사업을 전개한다. 야학을 운영하고 학교건물을 새로 짓고 활동하던 주인공이 바로 충정로에 있던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 출신 최용신이었다.

필자는 박흥규 목사가 상록수와 결부되는 것은 신통치 않다. 다만 그가 농촌목회을 실행하면서 좋아 했던 색깔이 푸른색이었다는 것과 같은 교회를 가지고 있던 우연한 요소가 이런 흥미로운 상상을 유발하고 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상상력의 한계 안에 갇혀있는 어떤 것을 말해보는 것이다. 상록수가 농촌운동을 대변하는 듯한 색조요 이미지라는 것이다.

박흥규 목사는 저 들녘을 가득 채우는 푸른 세상을 희구하였다. 저절로 봄이 오듯 다가오는 새봄에 녹색의 평원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박목사는 농촌목회가 노동의 소중함과 생산물의 물적 토대를 간과하는 목회현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물을 소중히 생각하고 발전시키려는 발상으로 새로운 농촌목회의 기반을 구축하자는 생각으로 꽉차 있다. 교인들만 가지고서는 농촌목회는 역부족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농촌운동의 영역을 넓혀 주민들과 함께하는 '푸른 언덕'을 희구한 것 같다. 그것이 발전하여 푸른 언덕이 되는 환상을 품고 있었지 싶다.

푸른언덕 잡지를 발행하고 영역도 넓히면서 도농간 직거래로 발전하였다. 서울 신반포감리교회와 직거래도 하였다. 도농간 밥상공동체 운동은 박흥규 목사의 꿈이었다. '푸른 언덕' 잡지가 자라나고 여기에 색깔을 입힌 것이 푸른색이었다. 푸른색 그것은 옛날 80년에 강릉에서 청년들을 위한 새 교회의 이름도 푸른교회였다. 박흥규목사의 푸른 언덕은 동해안을 떠나 서해안으로 와서 활짝 피어났다. 푸른 언덕은 박흥규 목사에게는 원형의 전설 같은 존재다. 어두운 시대를 밝히고 일어나는 들판을 재생시키는 힘을 그는 꿈꾸고 있었다.

22.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가 김영현은 먼저 싸움꾼으로서 현실인식이 치열한 작품들을 내놓는다. 그러면서도 숨기지 않고 내면을 가득 채우려는 구도의 열정도 넘치는 사람이다. 비교적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소설은 그러한 작가의 내밀한 동기가 가장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제목은 비록 독일작가 하인리히 뵐을 작품에서 원용하였지만 그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내면화, 바로 그런 자기를 찾아 나가는 성찰의 시간으로 여행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말하려는 내면의 여행기를 창작한 것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이 서울을 떠나 강원도 태백 하사미동에 있는 대천덕 신부의 예수원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청량리 역의 한산함을 뒤로 하고 기차는 어느덧 제천역에 도착한다. 해질무렵이 되되어 도착한 황지에서 마지막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주인공은 번잡한 서울을 벗어났다는 안도감보다는 낯선 강원도 산골의 어스륵한 산천에 눌린다. 자신감을 상실한듯 싶은 허전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주인공이 도착한 곳은 버스를 내리고서 한참이나 걸어 당도한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의 벽에 그림을 그려보자고 달려온 주인공은 예수원 생활의 진목면을 보자는 것으로 귀착된다.

실제로 강원도의 예수원은 1965년에 성공회 신부 아처 토레이(대천덕)가 창립한 수도원이다. 성공회대학의 항동교회에서 목회를 했던 대천덕은 얼마되지 않는 항동교회의 교우들을 데리고 수도원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예수원이 창립 50년을 맞이하고 있다. 창립자 신부님도 가시고 귀하신 사모님도 떠나셨다. 그러나 예수원은 여전하다. 농장도 잘 운영하고 있고 생명강이라고 부르는 대안학교도 잘 운영되고 있다. 노동하고 기도하는 수련장에는 매해 9천명이 넘는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75년에 설립한 삼수령농장은 이제 70두가 넘는 소가 크고 있으며 18명의 전담 목부가 일하고 있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예수원 생활을 체험한다. 새벽, 낮, 저녁시간으로 기도회를 갖고 대도를 바친다. 아침은 밥과 김치, 점심은 국수와 수제비, 저녁은 약간의 반찬을 더한 밥을 먹었다. 주인공은 여기에서 자신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

23. 소설가 김영현의 변화

  동해안 사건을 겪고 부대로 복귀한 김영현은 군종병이 된다. 남들 앞에 나와서 기도회를 인도할 만한 사람이 아닌듯 싶은 그이지만 부대 내의 모든 크고 작은 신앙집회를 인도하고 뒤치닥꺼리를 하면서 남은 군생활을 해냈다. 그는 어렸을 때 부터 교회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도 새길교회를 출석하는 것만 봐도 그의 기독교 정체성은 충분하다 할 것이다. 시대의 불침번같은 투쟁성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구원의 가치를 찾아가려는 구도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예배를 사회보고 찬송도 선창하면서 그는 적극적으로 맡겨진 일들을 감당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잊지않고 자신이 추구하려는 궁극적 목적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적 세계에 대한 그의 원초적 경험은 그가 철학적 신학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 에 나오는 몇편의 철학적신학적 논문들이 그것을 반영해주고 있다. 가톨릭 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프랑스 신부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신학사상을 논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충분하다 할 것이다. 또한 같은 책에서 그는 기독교 신학의 최고봉 부활신앙에 대한 개똥신학적인 시론을 제기한다. 그는 부활의 신화를 신학적 자기성찰의 핵심과제로 인식하여 진지한 논의를 제안한다. 비록 ‘개똥철학’과 ‘개똥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한국문학의 앙가쥬망을 실천하고 민족문학을 제대로 된 반석위에 올려놓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임을 분명히 한다. 부활에 대한 성서신학적 성찰에 이어 생물학적 자기인식을 넓히려는 자세는 단순히 인생의 생명이 장수를 누린다고 하여도 궁극적으로는 죽음 저편의 생명세계를 향하여 고개를 드는 신학적 세계는 자못 진지하고 알차다는 것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인생을 성찰하는 버릇을 지니고 있었다. 고향 창녕에서 그는 염감으로 통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대응해 나가는 천성을 타고 났다. 그는 인생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것의 의미를 역사라는 현장에서 현실 대비 투쟁과 현실대비 성찰의 삶을살아 왔다. 그에게 있어서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간해방과 인간구원의 문제는 필수불가결한 과제였다. 그는 고통받고 있는 인간의 삶의 굴레를 고발하고 불평등의 사슬에 얽매인 안간 존재의 사회적 속성과 이념 체제 강제규범에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살아 왔다. 그는 이제 이러한 모든 것을 가슴 한가득 안고 삶의 무게와 덮쳐오는 삶의 현장의 도전을 신학적 성찰로서 문학적 실천으로서 대응해 온 것을 새삼 깨워준다.
 
김영현도 한국문단에서 활동한 시간은 32년이 넘었다. 과거와 같이 민주화나 인권을 주장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로 인하여 격차가 엄청난 글로벌 경제시대에 몸담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고 부자들을 위한 경제만 추구하고 있다. 노년층의 48%가 빈곤선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복지는 포퓰리즘의 희생양으로서 정책의 한계 안에 갇혀있다. 엎친데 덮친 모양으로 저출산 고령화는 이미 한국사회를 위협하고 있으며 비정규직노동자가 알바노동과 함께 1,000만을 넘보고 있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양극적인 빈곤 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날로 떨어지는 경제경쟁력은 무상복지 반납으로 옮겨 붙어버렸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정점을 달리는 요즈음 한반도는 미일 중국 북한간의 군사 외교 정치적 위협지수는 날로 증폭되고 있다. 미일동맹의 강고함이 극동의 안보상황을 좌우하고 한반도는 미중의 패권 다툼으로 극단적인 위기로 몰고 있다. 이처럼. 오늘의 동양 정치는  중국 미국 간의 대결 속에서 일본의 가세와 러시아 각축으로 채워져 있다. 한반도의 자주외교와 국방도 언제나 수동적이었다. 한반도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민족통일과 자력갱생의 활로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지난 120년의 격동의 세월을 지내면서 패망의 구중국은 신 중국으로 거듭났고 미국과 우열을 다투는 G2 국가로 승격하였으며 여기에 압록강 건너편에 있는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하는 핵무기와 미사일을 장착하고 강성대국으로 변하여 버렸다.

멀고 먼 태평양의 끝에서 쳐들어온 미합중국은 이 지역을 재균형 지역으로 삼고서 중국의 대국굴기를 저지하고 있으며 한반도 주민들은 남과 북 할 것 없이 가난하고 무기력하고 고달프고 위험한 삶을 영위하기에 급급하다. 여기에 저출산 고령화로 인하여 불기 시작한 경제위기는 오늘이 한국사회의 은퇴자들에게 기막힌 가난을 강요하고 있다. 독거노인들의 고통스런 외로움과 복지소외는 극심하고 운칠기삼의 오묘한 인생 운명을 외면한 불운이 넘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있으며 그곳에는 녹우당 박 목사도 있었다.

24. 노동의 고통과 희열

  대관령에서 맞는 새벽 산막일기에서 피력하고 증언하는 박 목사의 절절한 사연과 노동의 소중함을 읽으면서 속 깊은 야속함을 더욱 깊고 아프게 느낀다. 이제는 고뇌에 가득찬 이 세상을 뒤로하고 영원의 안식으로 들어간 박 목사를 기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한국문학에서는 몇몇의 명망가들 중심으로 책이 팔리고 신인들의 등용은 꽉 막혀 있는 현실을 아파하고 있다.

전업작가 군에 오른 김영현은 평생 집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면서 지냈다. 실제로 경기도 일영에서 백석리로, 이후에는 여주를 다녔는데 그것도 종착역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지금의 양평이다. 그는 요즘 양평 흑천을 걸으면서 칩거의 한 때를 보낸다고 했다. 격동치는 시대정신의 도전 앞에서 두려움 없이 내달렸던 그는 이제 세상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본유의 철학적 성찰과 신학적 자기세계를 맞추어 나가려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듯 하다. 그는 전반기 문학 활동에서 문학적 세계관의 현실에 일치에 분망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제에 천착하고 후일담을 소집하느라고 다 바쳤다면 이제부터는 허공에 떠버린 문학적 단편들을 집적하고 집약하는데 부심할 시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심정을 억누르고 자신을 돌아보는 칩거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시대의 아픔을 가지고 Praxis로 단련된 세계관의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제 제3의 길을 모색하면서 그리고 생을 관조하고 명상하는 구도의 길이 절실해진 나이에 들었을 것이다. 길 위의 철학과 길 위의 문학세계를 찾아 '깊고 푸른 내면'의 세계로 줄달음쳤던 과거사를 뒤로하고 글로벌한 시대의 가난과 아픔으로 얼룩진 생명들을 향한 소리없는 아우성을 듣고 새기고 되살리는 문학적 변전이 그로 하여금 마침내 편하게 안식시킬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 대굴령 산막

25. 수목신앙과 박흥규 목사

    에필로그

  이제 박흥규 목사에 관한 이야기는 끝맺으려 한다. 2007년 12월 26일 분의 일기에는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잠시 인용해 본다.

[중국의 고전에는 어느 공인이 나무로 새를 만들어서 하늘에 날렸는데 3일이 되어도 지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비범한 솜씨인가. 그러나 그 솜씨보다 늘 수레바퀴를 만드는 평범한 목수가 더 훌륭하다고 그 고전은 말한다. 수레바퀴는 생활에 보탬을 주기 때문이다. 목회자로 살아온 내 삶은 하늘을 나는 새를 만드는 일에 갇혀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평범한 삶을 위하여 갈대와 엉겅퀴로 뒤엉킨 땅을 괭이와 삽을 가지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밭을 개간했고 거기에 들깨 도라지 더덕을 가꾸어 왔다. 한여름 밭의 잡초를 매기 위하여 힘든 시간을 가진다. 허리나 다리에 통증을 견디어 내어야 한다. 실패한 농사를 통해서 농사의 세계를 입문하고 있다. 노동의 실천은 지금까지 나의 정체성을 유지해 주고 있다.]

이것은 간명하지만 박흥규 목사가 살았던 삶의 일단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와 작별하였고 또한 지독한 노동에서도 벗어나 조상들을 경외하고 후손들을 신뢰하는 자리로 가 있는 박흥규 목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수목신앙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수목신앙에 대한 눈을 띠워 주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고향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왔다. 특히 창세기 13장 18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무레 상수리 나무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살아있는 여호와를 나무 아래에서 만나려고 제단을 세웠다.

엘리아데의 우주목이란 이런 거 였다. 우주목은 신적 존재가 지상으로 하강하는 교통로가 되기 때문에 신성성을 지키는 것으로 여기고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다 했다. 누미노제로 우주목에서 두려움, 성스러움, 신비, 활력, 생동성을 가진다고 봤다. 나무가 수직으로 성장하여 잎이 다시 나는 일에서 무한한 재생을 보며 거기서 제의나 성소를 본다고도 했다. 생명나무는 성경의 나무 중에서도 중심나무이다. 고대 오리엔트에서는 포도나무를 생명나무로 보았고 복음서에서는 선한 목자인 예수를 생명나무로 보았다. 생명나무는 죽은 자를 부활시키고 병자를 고치고 젊음을 회복시켜주는 등 모든 기적의 힘을 지닌 초목의 원형이다.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어 인간의 접근을 금지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생명나무는 화염검으로 지켰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태도를 거목신앙을 매개로 하는 헌신을 드린 인물로 증언하고 있다. 여호와를 만나는 과정은 고대 근동지방의 문화적 유산위에 인격신의 현신을 가능케 하였다는 증거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성경은 이 대목에서 수목신앙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창세기 12장 6절에도 보자면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거쳐 므레의 상수리 나무가 있는 세겜 성소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했고 이어서 창세기 35장 18절에는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그 나무 밑에 묻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창세기 18장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그때 마무레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날 그곳에 나타나셨다. 2절에 보면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1-15절로 이어지는 성경본문의 내용은 석녀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수태하게 된다는 고지를 받는데 이것을 믿지 못한 여인 사라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리고서 낳은 아들이 이삭, 곧 웃음의 아들이었다. 석녀를 수태시키는 기적의 사건은 창세기 수목신앙에서 비롯된다.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석녀들의 수태는 신약성경 누가복음에서도 나타난다. 세례 요한의 모친 엘리자벳은 사가랴 제사장의 아내요 석녀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기적같은 잉태가 이루어지고 새 역사를 맞는다고 주님을 찬양한다. 구약 창세기를 조금 더 보자. 천국의 중심부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서 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 나무를 따먹는 것을 금하셨다 (창2:9) 대신 이 동산에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빼놓고는 다 먹을 수 있다는 주인의 허락이 떨어진다. 그런데 사악한 뱀이 등장하여 여자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어도 괜찮다는 유혹을 한다. 그 과일을 먹으면 죽기는커녕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아는데 신들 처럼 된다고 하였다. 이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 라는 두 개의 나무가 공존하고 있는 것은 에덴 곧 비옥함을 상징하는 동산으로 신과 최초의 인간, 식물과 동물이 동거하는 평화의 동산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지 말하는 명령을 거역하고 손을 댄다. 이것은 원죄의 근원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를 죄악이 개입하였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면서 전능하신 존재이신 하나님의 뜻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수목신앙의 핵심은 거목 곧 우주목의 존재에 있다. 우주목은 누미노제를 경험하도록 이끈다.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와 각종 나무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이 나무들은 하나의 상징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 예수는 자기를 포도나무에 비유하였고(요 15:1), 느부갓네살 왕은 땅의 중앙에 있는 거목으로 비유했다(단 4:10-17). 다윗은 악인의 큰 세력을 본토에 선 큰 나무에 비유했으며(시 37: 35), 이사야는 구속받은 자들을 의의 나무로 비유했고((사 61:1-3), 요한계시록에는 끝 날의 사명자로 감람나무로 비유했다(계 11:4).

 우리는 예수를 생명나무라고 부른다. 예수는 생명 그 자체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죄에 속한 인간을 모두 구원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종교이다. 마지막 때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는 성경 속의 생명도시(계22:2)에는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케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무 심는 사람 박흥규 목사는 이처럼 대굴령에 나무를 심었고 월곳교회에서 충청남도 선장교회와 강화도 망월교회와 김포 쇄암교회에서도 꾸준히 나무를 심었다. 이 수목신앙은 예수 구원의 신비로 채운다. 십자가는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는 나무가 바로 생명나무이기 때문이다.

<끝>

▲ 박흥규 목사 고희문집 출판기념회에서 필자

참고자료

1. 김영현,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1990년 서울 실천문학사
2. 김영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95년 서울 창작과 비평사
2. 김영현, 폭설 2002년 서울 창작과 비평사
4. 김영현, 낯선 사람들 2007년 서울 실천문학사
5. 김영현, 라일락 향기 2008년 서울 실천문학사
6. 김영현, 나스메 소세키를 읽는 밤 2007년 작가
7. 박흥규, 대관령 숲에서 맞는 새벽 2008년 서울 신앙과 지성사
8. 황석영, 어둠의 자식들 1980년 서울 현암사
9. 이동철, 먹물들아 들어라 1985년 서울 동광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