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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바시공화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남태평양 한 복판에 있는 작은 섬나라이다. 국토는 33개의 산호초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구도 10만 명에 불과하다. 1892년 영국의 보호령이었다가, 1979년 독립하였으니 규모로 보나 역사로 보다 약소국임에 틀림없다. 그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격전지였다고 한다.
이 나라는 날짜변경선의 가장 동쪽에 있어, 일출(日出)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 무엇보다 이 나라를 세계 속 핫이슈로 만든 것은 지금 물에 잠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토의 평균 고도가 겨우 해발 2m인데, 기후온난화에 따라 해마다 해수면이 0.3센티에서 1.2센티미터 씩 상승하는 까닭에, 30년이 넘으면 거주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견된다.
예전에 인도양의 유명한 신혼여행지 몰디브가 점점 바다에 잠기고 있다고 들었다. 남태평양의 투발루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후변화가 시시각각 진행 중에 있으니, 그 위기는 도둑처럼 덤벼들 것이다. 오죽하면 키리바시 국민들은 보름달이 뜰 때마다 긴장한다고 한다. 보름달의 작용으로 해수면이 올라가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키리바시를 방문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잠자리 머리맡에 ‘구명조끼’가 있는 것을 보고, 이 나라가 직면한 심각한 위험을 느꼈다고 전한다.
지금 키리바시는 ‘존엄한 이주’ 프로그램을 전개 중이다. 국토가 전부 물에 잠길 것에 대비해 미리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들은 난민이란 말 대신 피난길조차 ‘존엄’이란 의미를 부여하였다. 미래세대의 이주지는 88억 원에 구입한 2,000킬로미터 떨어진 이웃나라 피지 북섬 바누아레부이다. 아직은 집단 이주 전이지만, 그 땅에서 이미 농사를 시작하였다.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 가스는 지구를 뜨겁게 만들어 기후변화를 가져왔다. 기후과학자 97-98퍼센트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라는데 의견을 모았다(미 국립과학학술원, 2010).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특단의 대책 없이 이대로 가다간 2100년에 지구온도가 최소 3.7-4.8도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해마다 겪는 폭염과 한파, 유례없는 기상이변은 삶을 불안하게 한다. 게다가 해수면 상승이나 북극의 해빙은 전 지구적 위협이다.
지난 주 목요일, 서울 시민청 다목적실에서 열린 ‘기후가 우리의 미래다’란 강연회의 초청 연사는 바로 키리바시공화국의 아노테 통(Anote Tong) 대통령이었다. 아노테 통 대통령은 2003년 처음 당선된 후 내리 3선을 한 지도자이다. 그가 신뢰를 받게 된 까닭은 시대의 징조를 미리 살펴보고, 자기 국민의 터전과 지구를 온난화로부터 수호하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당선 첫 해부터 기후변화를 예방하는 전도사로서 UN과 세계를 향해 세일즈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선진국이 싼 코끼리 똥을 개발도상국의 참새가 어떻게 치울 것인가’의 문제였다. 부자 나라가 탐욕스레 소비한 후 남겨놓은 온실가스가 바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통 대통령은 자기 나라의 위기에 대한 호소를 넘어 세상의 징조를 알리는 선지자와 같이 행동하였다. 안일한 선진국들이 귀를 닫자, 비상수단으로 키리바시공화국이 먼저 희생하고 나섰다. 키리바시 수역 40만 평방킬로미터의 바다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올해부터 상업적 어업행위를 스스로 중단한 것이다. 이 넓이는 이 나라 어업경제구역의 11퍼센트에 해당한다. 주요 수입원인 입어료를 포기한 결과였다.
이제 기후변화는 하나의 섬나라 문제가 아니다. 세계 평균보다 무려 15배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 7위로, 배출량 증가 속도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르다. 지금 기후변화의 위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덜 시원하고 더 춥게 살라, 육식을 덜 먹고 채식을 늘이라, 자동차 배기량을 낮추고 자주 걸어라’. 지금 당장 욕망을 줄이라는 하늘의 신호를 보고, 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느새 가을의 문턱이다. 9월이면 교회력으로 창조절이 시작된다. 지구의 체온을 지키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물론, 내 삶과 가족 그리고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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