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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받들어 섬겨라(눅6:46-49)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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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8월 29일 (토) 19:26:08 [조회수 : 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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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장 46-49절

주님을 받들어 섬겨라

 

가. 신앙의 집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47절,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본문은 예수님이 신앙생활을 집짓기에 비유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신앙의 집을 짓는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하셨다. 한 사람은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았다. 또 한 사람은 주추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었다. 외형상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땅을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주추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신앙의 집을 짓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어떤 집을 세웠는지가 아주 중요한 문제다.

* 신앙의 집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잘못 지은 집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고전3:12-13).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신앙의 집을 짓는데 날림공사가 된다. 이는 아주 위험한 일이므로 경계하여야 한다.

 

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49절,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 신앙의 집을 제대로 짓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을 듣고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사실 두 사람은 모두 주님을 영접하고 그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두 사람의 신앙생활에는 매우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주신다.

* 반석 위에 집을 짓는(현재분사형) 사람은 말씀을 듣고(현재분사형) 행하는(현재분사형) 사람이다. 그러나 흙 위에 집을 지은(과거분사형) 사람은 말씀을 듣고(과거분사형) 행하지(과거분사형) 않는 사람이다. 즉 말씀을 계속적으로 듣고 즐겨 실천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 이 말씀은 불신자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그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이다. 한국 교회가 기복신앙이나 신비주의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를 깊이 반성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 주님을 주인으로 받들어 섬겨야 한다.

46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 말씀을 듣고 행하는 성도가 되려면 주님을 주인으로 받들어 섬겨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주님을 우리의 주인 또는 왕으로 받들어 섬기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나를 위한 주님’이라는 신앙관에서 ‘주님을 위한 나’라는 신앙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아주 이기적인 신앙관을 갖고 있다.

* 여기서 주여(퀴리에)는 주인, 주군, 또는 왕이라는 뜻이 있다. 즉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 하면서도 그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를 주인(왕)으로 받들어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주님(주인, 왕)과 성도(종, 노예)와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 성도는 예수님을 믿을뿐더러 예수님의 믿음을 따라야 한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라고 하였다(갈2:16).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라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에게 평강이 있다.

48절,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 이러한 결과는 당장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미래형 단어를 사용하여 말씀하셨다(47절).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신앙의 집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결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당장에 차이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 유혹일 수 있으므로 경계하여야 한다.

* 가인의 예배(미완료형)와 아벨의 예배(완료형)는 “세월이 지난 후에”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나타났다(창4:3). 또한 예수님의 비유에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이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보이거늘’은 가라지가 결실할 때가 되어서야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뜻이다(마13:26).

* 말씀을 듣고 행하느냐, 행치 않느냐는 개인의 문제다. 이는 자유의지에 속한 문제다. 그러나 그 결과에는 상당히 큰 차이를 가져온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가운데서 견고하게 설 수 있는 평강이 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행치 않은 사람은 어려운 중에 무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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