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의 무더위지만, 그곳은 서늘하였다. 동네 어귀에 있는 알프스 스키장 입간판이든, 마산봉 설경 안내판이든 모두 여름 속에서 겨울을 알리고 있었다. 해발 520미터에 위치한 교회는 옛 펜션을 구입해 개조한 까닭에 그 운치 역시 사뭇 겨울풍경이었다. 진부령 정상에 위치한 선돌교회이야기다. 고성의 입구인 진부령 정상에서 한 달음으로 내려가면 마침내 해금강이 보이는 통일전망대에 다다르게 된다.

  서울에서 부목사로 4년 동안 일하던 정 목사 가족이 이곳 시골교회로 이주한 것은 겨우 세달 전일이다. 부목사 이전에는 안산 도시 변두리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용을 썼다. 그렇게 10년 새 형성된 목회자 기질이 과연 산골에서도 적응이 가능할까, 궁금하였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부목사의 일상보다 더 꽉 짜인 것은 오늘 목회지의 정체현상이다. 휴가철 고속도로 요금소 입구에 부챗살처럼 펼쳐진 병목현상보다 더 움쭉달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변방의 농촌목회지로 하방 하는 일은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일이다.

  선돌교회는 전쟁 후 예수운동으로 유명한 이호운 목사가 처음 시작한 교회였다. 흘리마을이 수복되고, 이곳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키면서 교회도 문을 열었다. 당시 교회가 구호물자를 분배했기에, 지금도 추억의 밀가루 교인들을 기억해내는 마을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전전임자는 마을 입구에 10년 째 방치된 펜션용 주택을 구입하여 아담한 예배당으로 개조하였다. 또 전임자는 잠시 ‘홀로’ 머물다 도시교회 부목사로 떠났지만, 그래도 선교헌금을 차곡차곡 모아 새 스타렉스를 장만할 만큼 애를 썼다.

  하늘아래 첫 동네인 흘리는 진부령 길 정상에 위치한 교회를 입구로 하여 흘리분교를 거쳐 100미터를 더 올라간다. 한때 200여 가구였다가, 지금은 50가구에도 못 미치지만 ‘정보화마을’이란 자부심이 느껴진다. 단지 토박이만이 아닌 읍내로 출근하는 사람들, 귀촌한 노인들도 들어와 살만큼 친환경적 분위기 때문이다.

  정 목사 내외는 선돌교회에 오자마자 두 자녀 덕분에 교회와 지역사회 환경에 대해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1학년 큰 딸이 전학한 곳은 광산초등학교 흘리분교인데 전교생이 모두 6명이다. 6명 미만이면 학교 문을 닫아야 하는 긴급한 현실적 위기를 막아준 전학생을 두 선생님과 전교생은 물론 마을전체가 환대하였다. 겨우 두어 달, 서울에서 보낸 1학년 생활은 날마다 서너 가지 숙제와 받아쓰기, 수학시험의 반복이었는데, 이젠 매일매일 체육과 미술을 놀듯이 공부하고 고추심고, 물고기 잡고, 연극을 한다. 날마다 손꼽는 행복한 초등학생이 된 것이다.

  둘째 아들은 고성군 경계를 넘어 인제군 북면 용대리의 어린이집을 다닌다. 어린이 집에 다녀 온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지?” 엄마가 깜짝 놀라 “아니야. 나는 대구 사람이야”라고 대답했더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이집 5-6세 반에 모두 10명이 있는데 그중 9명이 베트남 엄마였다. 아이는 자기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 아니어서 몹시 실망스런 눈치였다고 한다. 앞으로 강원도 심심산골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은 동네 부녀회와 선돌교회 젊은 여선교회의 주류를 이룰 것이다.
 
  산 속마다 자리 잡은 군부대도 목회자의 관심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교회 건너편 군부대에서 울려 퍼지는 대포소리와 총소리는 비록 훈련 상황이지만, 이곳이 최전방 고지임을 새삼 실감나게 한다. 그들은 주일이면 동네 예배당을 찾아 머리를 조아리는, 동네에서 보기 드믄 젊은 신자들이기도 하다. 시골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오후 예배를 맡아하는 그들이 참 고마운 존재임을 점점 실감하고 있다.

  그곳만의 특수한 환경일까? 지금 예전의 시골마을은 그 전통성을 조금씩 해체하는 중이었다. 새내기 시골교회 목사의 눈에는 옛 농촌의 모습과 함께 도시형 체질이 몸에 밴 귀촌인의 삶의 자리, 베트남 엄마들과 농촌의 이주노동자들, 최전방의 군인형제들에 이르기까지 짜임이 훨씬 복잡하게 보인다. 앞으로 그들 부부가 쓸 진부령 편지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갑자기 토막 난 생활비는 한껏 허리띠를 조르겠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꼬리를 피한다. 그나마 자신의 몫인 선교비마저 교회 재정으로 포함시킨다는 말에는 결기가 느껴진다. 이제 갓 시골에 내려온 정 목사 내외와 두 자녀가 누리는 뜻밖의 삶에 대해 조금씩 기대를 가져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자유와 섬김이 널리 전염되고, 한껏 평화롭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