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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木耳) 버섯과 반유태주의(Anti-Semitism)
최종수  |  asburych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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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8월 18일 (화) 06:30:38
최종편집 : 2015년 08월 18일 (화) 07:42:15 [조회수 : 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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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木耳) 버섯과 반유태주의(Anti-Semitism)

 

   
▲ 목이(木耳) Auricularia auricula(Hook) Underw.(영어속명 Wood Ear, Tree Ear, Jelly Ear. 독일어속명 Judasohr, 프랑스어속명 Oreille de Judas.)
     
 

우리가 사랑하는 버섯이 반유태주의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면 놀랍기도 하거니와 의아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버섯 두려움증(mycophobia)이 인종적 편견과 결합하여 역사 내내 그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종적 편견을 버섯과 연결하여 우리 인간이라는 종족은 악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버섯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을 꾸준히 지속해 오면서 동료 인간들에게 악행을 저질러 오고 있다는 사실은 버섯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보기에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젤리형 버섯인 목이(Auricularia auricula)에 대한 이름붙이기 역사와 나치 정치선전(propaganda)을 돌이켜보면 버섯이 나치즘의 선전 도구가 되어 유태인들은 도둑놈들이요 살인자들이기 때문에 멸종시켜 마땅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악용해 온 역사가 오래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버섯이 나치 선전문건에라도 등장한다는 말인가? 놀랍게도 사실이다. 그것도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아주 고약한 형태로 버섯을 악용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일이 어제의 일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38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나치 선전책자가 영어로 번역되어 최근 2004년 10월에 뉴욕, 뉴저지 주 일원에서 이른바 네오나치주의자들에 의하여 배포되었다. 비이성적 버섯공포증이 어린이들에게 인종차별주의를 선전하는 파괴적이고 왜곡된 정치적 만화로 둔갑하였다는 것은 더욱 고약한 일이다.

물론 버섯 자체는 악하지 않다. 오직 인간들만이 악하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버섯은 인간들처럼 악행을 의도하지도 않는다. 자연의 속성상 어떤 버섯은 인간에게 암을 유발한다든지 치명적 독성을 지닌 것이 있어서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해롭다"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내린 판단이지 버섯의 것은 아니다. 버섯 두려움증은 독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곰팡이류로 말미암는 부패에 대한 혐오 때문에 인간의 심성 가운데 깊이 뿌리박고 있고, 그 두려움이 상징적으로 또는 은유적(metaphoric)으로 버섯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공포 또는 비난을 낳게 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인간들이 버섯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기괴하다, 정떨어진다, 성적 자극을 준다, 위험하다, 마술을 지녔다, 초자연적이다.....그 끝이 없다. "악한 버섯"이라는 관념이 문화적 금기와 관련하여 인종차별주의적 선전에 악용될 경우 영어속명으로 "유태인의 귀"(Jew's Ear)라는 이름을 가진 목이(木耳)에 이르게 되면 지나쳐 버릴 수 없이 더욱 특별한 경우라 아니할 수 없다.

 

   

▲ 목이는 약용으로도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으나, 피 가운데 혈소판 점착 방해작용 즉 항응혈 또는 혈액 응고억제 성분이 있어서 혈액을 묽게 하기 때문에 심장병 예방에 마치 아스피린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또 반대로 목이를 많이 넣은 음식을 먹은 뒤 피멍이 잘 들고 코피가 멈추지 않거나 면도할 때 베인 곳에서 피가 계속 나온다든지 여성들 생리 때 다른 때 보다 양이 많이 나온다든지 하는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목이는 세계 어디에서나 돋는다. 중국요리에는 물론 우리 한국에서도 표고버섯과 함께 잡채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재료다. 동서양을 통하여 "목이"(木耳)는 나무에 돋는 귀같이 생긴 버섯이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그래서 영어속명도 "Tree Ear," "Wood Ear," 또는 "Jelly Ear"라고 부르며, 거기다가 어느 버섯전문가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반 고흐의 자화상 가운데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하여 모든 이름에 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왜 목이를 영어속명으로 "유다의 귀"(Juda's Ear) 또는 "유태인의 귀"(Jew's Ear)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그 경위는 온갖 전설의 숲에 가리어 희미한 그림자만 보여줄 뿐이다. 허지만 그 희미한 그림자를 계속 따라가 보면 저 멀리 기독교인들의 경전인 신약성서 복음서까지 추적해 볼 수 있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목이의 학명이 19세기에 이르게 되면 "Hirneola auricula-judae(L.) Berk." 라고 하였는데 1874년 Elias Magnus Fries가 이 이름을 확정하였다고 한다. 동시에 일반속명도 "유다의 귀" "유태인의 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은 라틴어 학명 가운데 "auricula-judae"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유다의 귀"라는 뜻이다. 그리고 목이가 양딱총나무(elder, Sambucus)에서 돋는 관계로 특히 "유다의 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목이는 여러 다른 활엽수와 침엽수에도 돋는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달려 죽은 십자가는 양딱총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 것과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가 예수를 대제사장과 장로들(elders)에게 은 삼십 량을 받고 팔아넘긴 뒤 자책감에서 목매달아 죽었는데 그가 목을 매단 나무가 바로 양딱총나무였다는 것이다.

가롯 유다가 자기의 목을 매단 나무가 양딱총나무였다는 기독교 전설은 14세기 문헌들(1362, 1366년)에서 볼 수 있고, 심지어 섹스피어의 "Love's Labor's Lost"(1595)에 보면 "유다는 양딱총나무에 목매달았다"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적어도 목이는 엘리자베스 시대 때부터 특이한 버섯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1581년에 이르면 그림으로 그린 가장 초기의 버섯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목이가 양딱총나무에서 돋는 버섯이라고 알려지자 신비스럽게도 가롯 유다가 목을 매단 나무도 양딱총나무였다는 전설과 연관되면서 그 나무에 돋은 귀처럼 생긴 버섯은 바로 가롯 유다의 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다의 귀"가 어떻게 "유태인의 귀"로 둔갑하게 된 것일까?

옥스퍼드 영어사전이나 그 밖의 사전에 보면 목이의 학명 가운데 "auricula-judae" 즉 "유다의 귀"(Juda's Ear)가 잘못 번역되어 "유태인의 귀"(Jew's Ear)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단순한 오역일까? 그건 아니다! 옥스퍼드 사전에도 16세기 영국에서 "유태인의 귀"라는 말이 보편화하였다는 것처럼, "유다의 귀"가 "유태인의 귀"로 둔갑한 것은 훨씬 오래 전 일이다. 본래 유다(Judas)는 Judah의 그리스어 철자법이다. 그리고 이 유다(Judah)는 유태민족의 선조 가운데 한 족장의 이름이었다. 예수탄생 전 10세기부터 이 민족은 처음에 유다라고 불렀고, 뒤에 유대아(Judea)라고 불렀다. 그래서 유태인을 뜻하는 "Jew"라는 말도 본래 유다민족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였다. 서력기원 후 복음서가 편찬될 즈음 예수 배반자 유다에게 그 민족의 이름 유다를 붙여 줌으로써 말하자면 유다는 유태인의 한 원형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중세 가톨릭교회 교리로 말미암아 고조된 유태인에 대한 신경질적 반유태주의가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보편적으로 대중화한 유태인에 대한 편견을 살펴보면 유태인들은 동물처럼 불결하고 사탄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를 배반하고 죽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를 죽인 직접적 책임이 가롯 유다에게 있지 않고 "유태인들"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두렵고 보기 싫은 것을 대표하는 유태인, 예수를 죽인 자,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곰팡이(버섯)가 서로 연관되면서 "유다의 귀"나 "유태인의 귀"라는 목이의 이름이 굉장한 유동성을 가지고 함께 사용되었을 것이다.

 

   

▲ 12월 초겨울 땅에 떨어진 활엽수 가지위에 많이 돋은 목이. 건조한 날씨에는 까맣게 말라 있다가 비가 다시 내리면 생생하게 더시 살아난다.

 

어쨌든 목이를 “유태인의 귀”라고 하는 것이 16세기 영국에서 일반적이었다는 것을 여러 다른 문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목이가 여러 미신의 표적이 된다면 그 목이가 돋는 나무도 미신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지방에서는 양딱총나무를 절대로 불태우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그 나무를 태우면 사탄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목이에 대한 학명이 Auricularia auricula-judae(Fr.) J. Schroet라는 이름을 거쳐 1902년 Lucien Underwood가 목이 학명에서 “유다”(-judae)라는 이름을 빼고 “Auricularia auricula”라는 학명으로 부르기 까지 가롯 유다의 영향은 계속되었고, 특히 목이에 대한 영어속명인 “Juda's Ear”(유다의 귀)와 “Jew's Ear”(유태인의 귀)라는 이름도 그 반유태주의적 색채 때문에 아주 서서히 퇴조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다행히 우리 한국에서는 목이를 “유다 또는 유태인의 귀”라고 부르는 법은 없지만, 아직도 그 학명에는 “-judae”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지열, 원색한국버섯도감(1988)에는 “Auricularia auricula-judae”(Bull.ex st. Am) Berk 라고 하였고, 이태수 한국기록종 버섯총목록(1990)에는 Auricualria auricula(Hook.) Underw. =A. auricula-judae(Fr.) Schroet 라고 되어있으며, 박완희, 한국약용버섯도감(1999)에는 Auricularia auricula(Hook.) Underw.와 A. auricula-judae(Bull.:Fr) Quel 둘 다 사용하고 있고, 김양섭 선생님도 A. auricula-judae(Fr.) Quel이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이태수, 한국 기록종버섯 재정리목록(2011)에는 Auricularia auricula-judae (Bull.) Quel. =Auricualria auricula(Hook.) Underw. =Hirneola auricula-judae(L.) H. Karst.라고 적고 있다. 이렇게 대체로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Auricularia auricula라는 학명을 사용하고 있고 A. auricula-judae라는 학명은 참고하기 위한 것으로 병기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앞으로는 아예 반유태주의적(인종차별주의적) 의미를 없애기 위하여 참고용으로라도 “-judae"는 아예 빼버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도 “유태인의 귀”라는 목이 이름이 끼친 영향은 좀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 1938년 독일 출판사 사장이자 제3제국의 가장 악독한 나치 선전자였던 Julius Streicher라는 사람이 “독버섯”(Der Giftpilz)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 형식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유태인 말살정책을 전폭 지지하는 유태인에 대한 무서운 기소장이 된 책이다. 버섯을 주요 주제로 삼아 상상력과 이야기를 동원하여 유태인들이 독일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악마적 괴물이라고 묘사함으로써 어린이들에게 반유태인적 사상을 주입하려고 고안된 책이다. “유다의 귀”라고 부르면서 많은 부정적 연상을 지닌 저급 유기체라고 하는 목이와 극심한 박해의 대상이었던 유태인을 하나로 보아 오던 역사를 고려한다 하여도 이 책은 그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허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순진하게도 독일이나 동유럽 가정의 문화전통에 따라 숲에서 한 가정이 버섯을 채취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세상에는 좋은 버섯이 있는가 하면 독버섯이 있는 것과 똑같이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로운 인간도 있다고 하면서 결론짓기를 가장 지독한 독성을 가진 독버섯은 바로 유태인들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 가정이 숲에 가서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가려내는 전형적인 이야기이지만, 버섯 이야기는 단지 나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아이들은....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독버섯이 유태인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독버섯이 어디에나 돋는 것과 똑같이 유태인도 세상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다. 흔히 독버섯이 가장 무서운 참화에 이르게 하는 것과 똑같이 유태인도 불행과 고통과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다.”

이 책의 겉표지를 보면 두터운 입술에 퉁방울눈을 가진 창백한 얼굴의 스테레오타입 유태인 초상화인데 그 생김새가 광대버섯 모자를 쓴 것 같다. 이 유태인의 붉은 턱수염은 광대버섯의 턱받이(ring)처럼 그렸고 다윗의 별이 그려있는 똥똥한 배는 광대버섯의 대주머니 같다. 이처럼 유태인에 대한 비이성적 비방 중상과 의인화한 버섯두려움증이 소름끼칠 정도로 짝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그 상상력 또한 아주 혼란스럽다. 반유태주의와 버섯을 동일시하여 “순진한” 독일인들을 죽음과 파괴로 몰아넣는 독성으로 강조하고 있다. 일찍이 출판된 그 어떤 어린이 책도 이처럼 극단의 증오를 가르치는 책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William Shirer라는 분은 이 책을 낸 Julius Streicher를 가학성변태자(sadist), 도색서적출판자(pornographer)라고 불렀는데, 이차대전 뒤 전범자 재판에서 인류에게 저지른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뉴렘베르그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회초리를 들고 다니던 그는 이미 죽기 이전부터 악의 포자를 수없이 뿌리고 난 뒤였다.

앞에서 잠시 말했지만 이 “독버섯”이라는 책은 제3제국의 역사적 유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최근 인터넷으로부터 다운로드 받은 영어판 “독버섯”이 뉴욕, 뉴저지 주 일원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 손으로 다시 유포됨으로써 버섯으로 말미암는 상상력과 은유의 힘을 빌려 인종차별주의를 전파하게 된 것이다. 이 네오 나치주의자들을 반대하기 위하여 그들을 가리켜 맹독버섯인 “알광대버섯”이라고 보도한 1998년 스위스 뉴스만화도 공포와 증오의 대상을 버섯과 동일시하였는데 그 저변에 버섯두려움증이 흐르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그 뒤에도 버섯두려움증과 반유태주의는 계속하여 소설에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Guenter Grass조차 그의 소설 “The Flounder”(1977)에서 요인 암살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버섯을 “정치적 버섯”(political mushroom)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가 염두에 둔 독버섯은 노란다발버섯, 마귀광대버섯, 알광대버섯, 독우산광대버섯 등 네 가지다. 이와 같이 정치적 버섯의 예들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많은데 가장 악독한 최근의 정치적 버섯은 원자폭탄이 폭발했을 때 솟아오르는 “버섯구름”(mushroom cloud)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분명히 로마인들의 처형방식이지 유태인들의 처형방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예수를 죽인 것은 로마인들이었다. 유태교에서 분화하여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인의 박해를 모면하기 위하여 그들의 호의와 환심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를 죽인 책임을 로마인들의 손에서 벗겨내어 유태인들에게 떠넘기기 위해 히브리성서(구약성서) 여기저기에서 이야기 거리들을 끌어 모아 만들어 낸 이야기가 바로 복음서에 나오는 배반자 이야기이고, 그 배반자에게 유태민족의 이름인 유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이다. 그 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죽인 책임을 유태인의 원형인 유다뿐만 아니라 전체 유태인들의 등에 짊어지웠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라는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대제사장들의 말은 지난 2000년 동안 유태인들에게 내린 사형선고였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온갖 전설이 덧붙어 자라가면서 결국 반유태인적 감정의 발로에 악용되어 가롯 유다가 목매어 죽었다는 나무에 돋는 버섯의 이름으로 명명되고, 버섯 두려움증을 배경으로 유태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인종차별주의를 부추기는 상징과 은유적 방편이 된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도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혹시 우리 안에 인종적 편견이나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이 자리 잡고 있지나 아니한지 살펴보게 된다. 특히 독선적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이들이 복음서에 나오는 꾸며낸 이야기를 문자적으로 읽은 결과가 어떻게 인류 역사에 무서운 결과를 낳았는지도 기억하면서, 버섯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목이를 "유다의 귀"(auricula-judae)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

참고문헌: 이 글은 미국의 버섯잡지 Fungi, Vol. 1, No. 1: Spring 2008, pp.12-17에 실려 있는 David W. Rose, "Notes from Underground: Auricularia auricula, Anti-Semitism, and Political Mushrooms"를 대본으로 삼아 초역하면서 유다에 대한 설명에 다소 부족하다고 느낀 성서신학적인 부분을 첨가하여 쓴 글이다. 복음서의 가롯 유다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알기 원하시는 분들은 존 스퐁 지음 최종수 옮김, 예수를 해방시켜라,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pp.327-350, "가롯 유다: 기독교인들이 꾸며낸 사람?"을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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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버섯 (211.172.139.6)
2015-08-23 04:18:33
댓글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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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잘 아시겠지만 기독교인들의 평균적인 지력이 평균 이하입니다. 극소수의 뛰어난 사람과 절대 다수의 멍청이들로 이루어져 있지요. 기독교인들이 왜 멍청할 수밖에 없는지는 뭐 굳이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사실 이런 좋은 글은 조회 수가 얼마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제 생각보다는 조회 수가 좀 되네요. 다양한 신학적 환경과 창조적인 학설이 용인되지 않는 곳이 기독교의 문화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보니 이런 좋은 글도 생경하게 여길 수밖에 없겠지요.

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만, 기독교인들이 논쟁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필연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존재를 밝힐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서로 옳다고 하다 보니 100% 아전인수 격의 해석과 주장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글쓴이의 이런 글은 논쟁의 여지가 별로 없다보니 그 만큼 조회 수가 적고 관심이 적은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이 가진 버섯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고 뭔가 논쟁할 거리가 없다보니(먹이 감이 아니니까) 그런 겁니다.

반면에 십일조, 구원관, 목사나 교회의 비리 등은 언제나 논쟁거리로 넘쳐납니다. 어차피 누구도 밝힐(논증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내가 옳으니 너는 그르니 하면서 핏대를 올리고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개인의 분노와 성격적 결함을 이런 장소를 통해, 신학적 논쟁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지요.

물론 신학(사본학, 고등비평, 종교심리학 등)을 제대로 공부하면 남이 이해 못하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상대는 성경 몇 구절이나 거지같은 수준의 신학서 나부랭이 몇 개 읽고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터라 이길 방법, 아니지 설득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는(당당뉴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계 전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대표적인 곳입니다.
원래 인간은 합리적이기 보다 비합리적인 면모가 몇 배나 강한 존재이기에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사실은 자신은 합리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조차도 비합리적인 사고의 패턴이 삶의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그게 인간이니까.

당당뉴스건 어디 다른 기독교 사이트 건 이런 곳을 보면 항상 탈레스의 에피소드나, 법화경의 <독화살의 비유> 이야기나 조선 중후기 성리학의 폐해가 떠오릅니다. 아무 쓸모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가지고 내가 옳으니 너는 그르니 하면서 핏대를 세우고 손가락질 하고 감정싸움을 하는 멍청이들이 생각납니다.

여기 당당뉴스에 글 쓰는 사람들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척박한데도(평생 쓸데없는 신학적인 글을 쓰느라 처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어떤 구원이 진짜 구원인지, 상대의 주장이 성경의 원리와 맞는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눈으로 본 것인지에 대해(정말 어리석게도 어떤 것도 객관적인 증명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바른 신학을 하고 있고 이해하고 있으며 타인의 주장이나 입장 혹은 교리는 엉터리라는 것을 강변하는 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이들은 게다가 서로 글을 주고받으면서 쉽게 감정이 상해서 비꼬는 듯한 말투를 걸핏하면 쓰고 게다가 기분이 더 나쁘면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이 뭔지 믿음이 뭔지 구원이 뭔지 열변을 토하면서 토론하려고 하지요.

이런 멍청이들만 보다가 버섯에 대한 좋은 글을 보니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논쟁과 다툼을 좋아하는 소인배들 멍청이들에게는 너무나 심심한 글이라 그다지 인기는 없어요. 그냥 편하게 수필 쓴다고 생각하고 글 쓰시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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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
겨울나무 (24.153.121.222)
2015-08-24 06:34:20
격려의 말씀 잘 새겨 듣겠습니다. 아직 이야기거리들이 많으니 찬찬히 하나씩 풀어가렵니다. 최근 한국에서 순전히 아마츄어 야생버섯 관찰하시는 분이 버섯대도감 한권을 출판하였는데 총 886종을 설명하여 실어서 한국 최대 최다수 버섯도감이 되었습니다. 그 분 평생 목표가 한국기록종 미기록종 합하여 1000종을 관찰하려 하는데 목표달성이 코 앞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버섯을 전공한 분도 아닌데 그 분을 통하여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고 부끄러웠습니다. 지난 4월말 조국 방문 때 그 분과 함께 충북으로 버섯 관찰을 나갔는데 오직 한 종 산뽕나무 열매인 오디에서 돋는 오디균핵버섯을 보러 간 것입니다. 허긴 이 사람도 오직 한 종을 찾기 위하여 이틀에 걸쳐 2시간 15분 운전길을 달려 갔고 한국의 대관령 같은 높은 산을 4개나 넘어 간 적이 있습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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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0
정일남 (68.83.213.121)
2015-08-19 23:51:16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얘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다니.. 그것도 신앙과 연관해서 말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목회의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산으로 가서 버섯을 보고 신심을 다지고 와야겠습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호텔에 머물기 좋아하는 목사들이 많은 세상에 버섯 얘기는 참 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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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0
겨울나무 (24.153.121.222)
2015-08-21 22:07:33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 종류의 버섯 이야기를 섞어 올려서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버섯관찰 시작은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버섯 관찰의 햇수가 늘어감에 따라 점점 더 이런 세계도 세상에 있구나 싶기만 합니다. 전혀 관심 밖이던 세계, 전혀 눈에 띄지도 않던 세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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