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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를 읽고
박창진  |  5016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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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8월 13일 (목) 18:38:44
최종편집 : 2015년 08월 13일 (목) 21:35:13 [조회수 : 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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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교수님(고려신학대학원의 교의학)의 설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 http://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LFyr/54 -의 내용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집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성화장과 성도의 견인장의 내용을 잘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화장에서는 거룩한 행실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견인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또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될 리 없으며, 그들은 마지막 날까지 그 상태에 꾸준히 인내하여 머물러 있게 되며, 영원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글은 둘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웨신의 성화장과 성도의 견인장의 내용이 전적으로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느냐는 것입니다.

성화장의 내용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1)는 말씀이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는 말씀 그리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글에서와 같이 이 정도도 이야기되지 않는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구원론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값싼 은혜, 값싼 구원, 값싼 복음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박영돈 교수님의 신랄한 비판에 대해서는 절대 공감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견인장의 내용도 성경적인가?

먼저 논리적인 면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성화장과 성도의 견인장이 동시에 성립하려면 중간에 필연적인 연결고리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에 의해 주를 보게 되는 거룩한 행실이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효력 있게 부르신 신자는 모두 예외 없이 하나님에 의해 거룩한 행실이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신자라도 죄를 범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회개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시거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반드시 회개하게 만드신다는 것이 사실일 때에 성화장과 성도의 견인장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시는가요? 성경에는 죄를 범한 경우에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많습니다. 회개를 촉구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개하도록 만드실까요? 그렇다면 굳이 회개를 촉구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편에서 책임지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 편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하시고 내면적으로 회개로 이끌고자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바르게 반응하는 것은 전적으로 신자의 몫입니다. 회개 촉구와 내면적인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바르게 받으면 회개하게 됩니다. 반면에 그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회개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회개에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일이 신자에게 없다면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회개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고 우리의 삶에서 확인되는 바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성경의 진술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대표적인 한 구절만 언급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권면하면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착한- 개역성경에는 없지만 원어에는 있음-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서 파선한 사람이 있음을 증거하였습니다(딤전 1:19).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파선한 믿음과 디모데가 가져야 할 믿음은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그들이 저버린 착한 양심과 디모데가 가져야 할 착한 양심은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이는 언어의 문법에 대해 조금만 알면 그 답이 명백합니다. 정관사를 사용하고 있기에 다를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버린 착한 양심이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었다면 디모데가 가져야 한다고 한 착한 양심이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 됩니다. 파선한 믿음이 원래부터 참되지 않은 것이었다면 디모데가 가져야 할 믿음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바울 사도가 참되지도 않은 믿음을 디모데에게 가지라고 명령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 아니라면 착한 양심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웨신의 성도의 견인장에 의하면 착한 양심을 저버리는 것이나 믿음에서 파선하는 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생활에서 어떤 잘못을 범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착한 양심을 저버리고 믿음에서 파선하였는데, 나중에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까요? 그렇다면 사단에게 내어주었다(딤전 1:20)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단의 소속이 되었는데도 영원한 구원은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성경은 영감되었기에 한 구절에 대한 정확한 해석 결과는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결코 모순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위의 한 구절만으로도 웨신의 성도의 견인장의 진술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본문과 교리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입니다. 본문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교리를 선택하느냐는 결국 하나님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조상들 곧 사람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본문을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교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조상들을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곧 조상들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관한 사안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조상의 주장이 같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조상을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되심, 주되심의 거부입니다. 다른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영역에서는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냐 아니면 조상의 유전이냐 사이에서 선택하여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효력 있게 부르신 이들을 반드시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신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 신은 우상일 뿐입니다.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은 있지만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하심이 결실을 맺어 영원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 것입니다(갈 6:8). 반면에 그 일하심이 결실을 맺지 못하여 영원한 멸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갈 6:8).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바르게 받아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새 언약에 담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까지. 혹시라도 그러지 못한 때에는 돌이킴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지식에서 돌이키지 않는 것이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사는 삶에서 돌이키지 않는 것이나 오십보 백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신, 저는 몸글에서 영화장의 내용이 성화장과 관련하여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성경의 진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이 글에 대해 반박하려면 논리적인 면과 본문 해석에 있어서 제가 어떻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적으면 됩니다. 그렇게 적은 글이 옳다면 저는 제 생각을 바꿀 것입니다. 몸글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냥 평소의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논의를 통한 발전이 있을 것이고요. 몸글의 내용 자체에 대해 반박할 수 없다면 몸글과 다른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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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10.46.124.235)
2015-08-14 11:51:51
혹시나 했는데...
위 글을 그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바라기는 그 내용이 박영돈 교수님께 전해지고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밝혀가는 한 과정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음 날 들어가 보니 글이 삭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쓰기 권한은 없애버렸습니다. 이것이 이 땅의 소위 개혁주의자들의 현실입니다. 개혁주의라는 말을 너무나도 부끄럽게 만드는 현실이지요.

성경적인 개혁주의는 성경을 신앙생활에 대한 절대 표준으로 삼고 그 가르침에 입각하여 교리나 관습 그리고 삶의 현장을 바르게 평가하고 부합되는 것은 더 온전하게 하고자 하며 부합되지 않는 것은 즉각적으로 수정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소위 개혁주의를 말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개혁주의란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역사적으로 개혁주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야기되는 바를 절대화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말로는 오직 성경이라고 하는데, 실제는 전혀 아닙니다. 오직 전통입니다. 그 사실을 알려주어도 요지부동입니다. 예수님 당대의 바리새인들이나 유대 지도자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가장 성경적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안타까움을 넘어서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자신들이 받아들이는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 그렇게도 자신이 있으면 제 글에 대해 성경적으로 반박하고 잘못된 것을 밝히면 됩니다. 그 내용이 정당하면 제 생각을 바꿀 것이고요. 반박이 안 되면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요. 그리스도께 생각을 복종(고후 10:5)시키는 일환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정당한 토론조차 회피하는 ~주의자들이 한국 교회의 교권을 잡고서 오직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고고만 외치니 교회가 어찌 이 모양 이 꼴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하늘의 하나님께서 실소만 짓고 계시리라는 생각에 제 마음도 미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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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예수버섯 (211.172.139.6)
2015-08-15 02:17:47
전에 말했던 금 공동구입 수익이 궁금합니다.
.

지난 번 글에서 링크한 곳으로 유투브 화면에서 잘 보았습니다.

금 공동구매를 하면 한 달에 적어도 600만 원은 수익이 된다고 해서

안 할 이유가 없다며 같이 해 보자고 동영상으로 올렸던데 그 때가

약 4~5개월 전이니까 적어도 지금쯤 2,400만 원은 수익을 올리셨겠군요.

저도 먹고 살 길이 시원치 않아서 그러니 금 공동구매로 얼마 정도 버셨는지

그리고 해 보니 이런 점은 어렵더라 이런 것은 조심해야겠다라 등의

정보를 알려주시거나 댓글로 알려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덧붙임 : 꼭 답변해 주십시오.

전에 글 남겼는데 답변이 없으셔서 다시 정중히 문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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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박창진 (113.130.235.221)
2015-08-16 12:35:20
적어도는 아니고요
그때 이야기한 방식대로 되었으면 그만큼 돈을 벌었을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두 사람을 추천하였고
그 두 사람이 각각 두 사람을 추천하여 280만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사람이 계속 두 사람을 추천하여 진행되었다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을텐데
중단된 상태입니다.

제 수입도 중단된 상태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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