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며칠 전, 대통령의 동생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에 대한 항의 또한 내정간섭이라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사용하는 ‘친일’에 대한 개념도 혼동한 채 친일이 뭐가 나쁘냐는 식으로까지 말했다. 이 모든 언동은 238명 중 이제는 채 50명 남짓 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깊은 상처에 다시금 굵고 거친 소금을 문지른 것과 다름없었다.

마침 시중에는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가족의 유물이었던 클림트의 유명한 초상화를 돌려받으려고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싸웠던 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 유명한 그림을 차지하려는 노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치 치하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미국으로 도망쳐온 할머니는 당시 나치에 강탈당했던 가족의 유물인 이 그림, 사랑하는 숙모와의 추억을 담은 이 그림을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돌려받고자 한다. 영화 초반, 일처리를 위해 함께 오스트리아로 가자는 친구 아들 변호사에게 그곳에서 겪은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은 결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할머니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젊은 변호사는 묻는다. “50년이나 지났잖아요.”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한다. “50년이 길다고 생각하니?”

상처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50년이 흐르든, 100년이 흐르든,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언제고 되살아나 처음과 똑같은 강도로 영혼을 아프게 한다. 더 나아가 이 상처라는 것은 시간만 흐른다고 해서 없었던 듯 연기처럼 사라지는 법도 없다. 모든 상처는 마땅한 위로와 적절하고도 정당한 처치가 있어야만 아물 수 있기 때문이다. 70년이 넘게 지났어도 여전히 ‘위안부’라는 단어조차 버겁고 고통스러울 여인들에게, 유통기한이 없는 상처를 안고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사과를 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여인들에게 대통령의 동생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타인의 상처에 대한 무심한 발언은 놀랍도록 흔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쉽게 타인의 상처를 건드리고 있는지. 이쯤이면 꽤 나았으리라 지레짐작하면서 무심히도 상처를 들쑤시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어쭙잖게 치유한답시고 이리저리 상처를 헤집어 놓는 일 또한 얼마나 잦은지. 상처를 대면할 때, 우리는 혀의 말이 아니라 먼저 몸의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 치 혀를 놀리기보다 묵묵히 침묵 가운데 곁에 머무르는 것이 상처에는 오히려 적절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방식 또한 과연 이런 식이 아니던가.

“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지옥 불에 타버립니다.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약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