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삶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갈수록 이 말이 지닌 무게도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다. 그의 이기심은 어찌 그리 한 치도 변함이 없단 말인가? 변한 것 같던 그의 나쁜 성품은 어찌 그리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가? 악한 인간이 선한 인간으로 변할 리 없다는 절망감은 나 자신 역시 피해가지 않는다. 극복되었다고 믿었던 내 속에 있는 나약함, 두려움, 비겁함, 악함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 나를 괴롭히기 일쑤다. 진정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왜 나는 이리도 변하지 않는 것일까? 결국,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해답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정말로 해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 속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악인과 선인으로 나누는 구별의 방식이 뭔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 <부활>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미신 중 하나는 인간이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과 열정적인 사람과 무딘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악하기 보다는 선할 때 가 더 많고 멍청할 때 보다는 똑똑할 때가 더 많고 무딘 때보다 열정적인 때가 더 많다고 말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선하고 똑똑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악하고 멍청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분류한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은 어디에 있든 언제나 같은 물이다. 다만 강은 어떤 곳은 좁고 물살이 빠르고 어떤 곳은 넓고 물살이 느리며 어떤 곳은 맑고 어떤 곳은 흐리며 어떤 곳은 차갑고 또 어떤 곳은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모두 인간의 특성을 맹아처럼 품고 있어서 어떤 때는 이런 특성이 어떤 때는 저런 특성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라도 본디 모습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고 몇몇 사람들은 이런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말을 따르자면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에 대해 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는 단지 악할 때가 더 많은, 혹은 지금은 악한 상태에 처한 인간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인간의 변화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치 갑자기 흑이 백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식이 아닐 것이다. 백일 때가 더 많아진다던가, 좀 더 하얀 빛이 짙어진다던가, 아마도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말할 때야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변화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절망하지는 말자. 그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그와 나는 여전히 비겁하게 흔들리며 갈팡질팡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맹아를 자신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는 인간이니 말이다.

“여러분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빌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