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칼 바르트와 모차르트와의 만남전농교회에서 드려진 "음악이 있는 은총의 숲 예배"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5년 07월 12일 (일) 21:51:15
최종편집 : 2015년 07월 17일 (금) 06:15:49 [조회수 : 949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로마서주해>와 <교회교의학>으로 저명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가 모차르트를 추앙했다는 사실은 꽤나 알려져 있다. 바르트는 매일 아침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다음 교의학 연구에 들어갔다고 한다. 자신이 천국에 간다면 어거스틴이나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나 칼빈, 슐라이에르 마허보다 우선적으로 모차르트를 만나 안부를 묻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다니까 그가 얼마나 모차르트를 좋아했는지 알만하다.

음악신동이라 불리던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3살 때 이미 누나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배우지도 않은 피아노를 치고 5살 때 작곡을 했다. 9살에 오케스트라 교향곡을 작곡하고 11살에 오라토리로를, 12살에는 종합예술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길지 않은 일생을 살면서 600곡 이상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주일인 12일 오전 11시, 서울의 전농교회에서 칼바르트와 모차르트가 다시 만났다. <음악이 있는 은총의 숲 예배 “칼바르트와 모차르트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주일 낮 예배의 기본적인 형식을 유지하면서 설교시간을 이야기 나눔과 연주로 구성하여 예배 참석자들이 음악과 메시지 속에서 은혜와 감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실험적인 예배가 드려진 것.

이 예배에 초대된 이는 이찬석 교수(협성대 조직신학), 양재훈 교수(협성대 신약학), 이활 교수(협성대 관현악과, 바이올린), 이지영 교수(협성대 관현악과, 플르트)로서 이들은 협성대학교 신문수(신학과 문화의 수다) 구성원들이다. ‘신문수’는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의 목회와 예술센터가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으로서 신학과 다른 학문과의 융합, 혹은 복합을 시도하고 있다. 송영과 성경봉독이 있은 후 이들 초대자를 이광섭 담임목사(전농교회)가 소개했다.

 

칼 바르트와 모차르트와의 만남

   
 

칼 바르트는 유명한 신학자이고, 모차르트는 음악가인데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먼저 이활 교수가 강단에 올라 논제를 던지듯이 모차르트의 미뉴엣을 바이올린으로 독주했다. 이어 이찬석 교수가 칼바르트(Karl Barth, 1886-1968)를 소개했다.

이찬석 교수는 바르트의 신학용어중 핵심이 “계시”라면서 바르트에 근거한다면,“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 즉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계시란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인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처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칼바르트는 음악회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는 그의 동료에게 “내가 모차르트를 만났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이활 교수도 “아까 계시를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신 것처럼 모차르트도 지금도 우리안에 음악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라면서 청중들이 자신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모차르트를 만나고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칼 바르트는 1956년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에 즈음해 한 신문사에 기고한 <모차르트에 보내는 감사편지>에서 “1956년이 되면 나는 70살이 됩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200세 할아버지로서 우리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음악이 유익한 것은 점점 어두워지는 세상에서 바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내가 모차르트를 들을 때에 나에게도 만족을 주며 용기와 위로를 준다”고 고백하는 바르트에게 있어서 모차르트는 마치 하나님의 계시와도 같았던 것 같다. 바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자유를 느꼈고 모차르트가 누렸던 그 자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보았다.

 


땀 흘리는 중에 만나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는 멀리 있는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땀흘려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찬석 교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바하처럼 메시지적 성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음악가로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그리고 자유분방하게 살았을 뿐인데 위대한 음악을 탄생 시켰다”고 했고 이지영 교수는 “바르트가 보기에 모차르트의 음악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라고 느꼈다”고 소개했다.

   
▲ 주사위 작곡법은 모차르트가 미뉴에트 작곡이 가능한 176개의 마디를 미리 만들어 16마디를 임의로 연결해 곡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모차르트는 가로 12줄 세로 16줄로 이루어진 표를 만들어 놓고 주사위 2개를 동시에 던져서 나오는 숫자의 합으로 한마디씩 골라 작곡했다고 한다

이지영 교수는 심지어 모차르트가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나오는 숫자를 이용해 작곡을 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던 바 있던 이 ‘주사위 작곡법’으로 작곡한 곡들이 말해 주는 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보다 그의 자유분방함을 드러낸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적인 음악가로 등장한 살리에르가 강박과 시기에서 자유롭지 못해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빛나지 못했지만 매우 방종한 모습으로 그려질 정도로 모차르트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안에서 자유를 누림으로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는 역설이다.

바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방향과 특성을 부여했는데 “모차르트의 교회음악은 그의 처지는 그러고도 남을 형편이었지만 결코 한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언제나 듣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상쾌하고 멋진 전환을 이루어 냈다. 감히 말하거니와 바로 이것이 모차르트의 자유의 비밀이요 우리가 처음에 물었던 그의 특별함의 본질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바르트는 “나는 예술적인 소질을 타고난 적도 연마한 적도 없다. 나는 결코 구속의 역사와 예술의 역사를 혼동하거나 동일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차르트 음악의 황금같은 멜로디는 복음 자체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에 비유들로 일찍이 들려왔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을 만날 때 누리는 진정한 자유

바르트에게 있어서 자유란 구속된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무엇무엇 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무엇무엇 안에서 자유', '무엇무엇과 더불어 누리는 자유'를 말한다. 오히려 구속되는 자유인데 그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와 더불어 함께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주사위 작곡법>이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수학적으로 매우 정교하고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곡이 나올 수 있는 작곡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모차르트가 매우 자유분방했던 것 같지만 정교하고 안전한 틀안에서 자유를 만끽했던 사람이었음을 나타낸다. 물론 이 작곡법을 완성하기 까지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그의 모든 곡이 모두 이 틀에서 이뤄진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바르트도 그러한 모차르트의 삶을 간파하고 “모차르트는 규범안에서 살기를 스스로 원했다. 그것이 그의 위대성이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니까 모차르트의 위대함은 그의 정교한 작곡법 안에서 발휘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안에서 그 자유를 맘껏 누릴때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이광섭 목사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청중들도 누릴 것을 권면했다. 모차르트가 누렸던 자유를 계시안에서 누릴 수 있다면 위대한 천재 음악가인 모차르트를 넘어서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축복과 함께.

 

   
▲ 이활/이지영 듀엣 : Symphonia Concertante 3Mov. Presto.


하나님 체험이 이루어진 곳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삶

양재훈 교수는 이러한 모차르트의 자유분방함을 바울의 말을 인용해 “율법안에서 얽매여 사는게 아니라 예수안에서 자유한 삶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중을 향해 “여러분은 하나님 만나셨는가? 만나셨다면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하고 물었다.

이활 교수가 이 질문에 칼바르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디트리히 본훼퍼가 말한 ‘용서’의 삶을 참 자유를 누리는 자의 표본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용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요. 용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이웃과의 모든 부자유스러운 관계를 자유롭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용서함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용서함으로 자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되며 오직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길 수 있습니다 (본훼퍼)”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진정한 자유인이 됐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구원받은자, 혹은 하나님과 화해한 자로서 계시를 체험하고 참 자유를 누리는 사람,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서는 용서와 화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인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돈 지오반니>, <후궁으로부터의 도피> 등에서도 용서와 화해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고 한다. 바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모차르트가 누렸던 자유의 근원을 보았고 피조된 이 세상의 어두움에 창조의 환희가 어떻게 빛날 수 있는지에 관한 탁월한 예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차르트에 대해 “그는 가장 영적이고 심오한 음악가”라고 칭송한 칼 바르트는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에 즈음해 쓴 <모차르트에게 보내는 감사편지>에서, “나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존전에서 시중들 때에 바흐만을 연주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확신하는 바는 천사들이 저희들끼리 있을 때는 모차르트를 연주한다는 것이고, 사랑의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기꺼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결단과 파송

전농교회에서 시도된 ‘칼 바르트와 모차르트와의 만남’은 결국 바르트의 계시와 예수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 세상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 안에서 그 법을 따라 사는 것이 참 자유이므로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삶에는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나타나듯 용서와 화해의 삶이 뒤따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날 예배는 음악과 신학의 조화를 통하여 예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면서 색다른 은혜를 경험하게 했다.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가 자신의 신학세계를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음악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을 기반으로 하여, 바르트와 모차르트에 대하여 설교 형식의 이야기 나눔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하늘의 소리와 음성을 경험하게 하고 회중의 신앙적 결단을 이끌어 내려는게 이날 드려진 음악예배의 목적이었다.

예배의 후반에 이르러 설교자라 할 수 있는 5명의 화자들과 교우들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를 찬송하며 예물을 드렸다. 이어 이광섭 담임목사의 축도로 <음악이 있는 은총의 숲 예배 “칼바르트와 모차르트와의 만남”> 예배를 마쳤다.

이 '색다른' 예배를 드린 전농교회 젊은 교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강준, 최주안 부부는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통로가 여럿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음악과 신앙이 이렇게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너무나 감사했다"고 했다.

 


* 신문수 결성 배경 - 신문수(신학과 문화의 수다)는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의 목회와 예술센터가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으로서, 신학과 다른 학문과의 융/복합을 시도한다. 이 시대는 융/복합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성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신문수는 다른 학문들과 신학의 통섭을 지향하면서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려고 한다. 신문수는 현재 2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신"(오선지 위의 신학)은 협성대 관현악과와 신학과 교수들이 음악과 신학의 융/복합을 시도하고, "한량"(한량 신문수의 교회 방랑기)은 건축학과, 디자인학과, 신학과 교수들이 교회 건축을 중심으로 융/복합을 시도하고 있다.

 

 

 

   
▲ 도입 솔로: 모차르트 미뉴엣 (이활 교수)
   
▲ 양재훈 교수(협성대 신약학)
   
▲ 이찬석 교수(협성대 조직신학)
   

▲ 이활 교수(협성대 관현악과, 바이올린)

   
 
   
▲ 이활/이지영 듀엣 : Symphonia Concertante 3Mov. Presto.
   
 
   
▲ 이지영 교수(협성대 관현악과, 플르트)
   
▲ 플릇 독주 : 모차르트 Fl Sonata K.285b 1Mov.
   
 
   
 
   

▲ 이광섭 목사(전농교회)

   
 
   
   
 
   
 

 

 

심자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43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포이멘 (183.109.99.69)
2015-07-14 05:56:50
Wow!

멋진 하나님 (?)

멋진 교회, 멋진 예배, 멋진 설교자들, 멋진 청중들,

멋진 칼 바르트, 멋진 모차르트, 멋진 신학과 멋진 음악이 들리는 듯 합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는 눌 자리가 없네요.
리플달기
23 11
사랑충만 (223.54.41.96)
2015-07-16 10:43:03
아름답고 좋습니다....그리고
아름다운 음악과 신학이 만난 멋진 예배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도가 예배와 교회 문화를 풍요롭게 한다는 데 한표 던집니다.
다만, 교회안에만 머물지 말고 세상을 향해 사랑의 삶을 힘껏 펼쳐 나간다면 더 멋지고 아름답겠지요.
꼭 그리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리플달기
14 11
꼬람데오 (112.218.155.237)
2015-07-16 10:13:17
계시의 일상성
교회 문턱이 낮아진 것 같아서 좋습니다.^^
앞으로 교회와 문화가 만나는 시도가 더 많았으면 합니다.
어려운 신학적 개념이 음악으로 쉽게 설명 된 듯 하여 더욱 좋네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누림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인 화해
그리고 이웃사랑...이러한 것들이 일상적 계시라면
이를 누리는 모든이가 예언자요 왕같은 제사장임을 깨닫게 됩니다.
리플달기
13 12
징검다리 (183.96.41.84)
2015-07-16 08:36:53
시도가 멋지군요!
멋진 시도입니다. 은혜의 통로는 다양하지요.
그런데 궁금한 것은 예배 전체의 흐름은 어땠을까, 시시엠을 통한 간증집회 같지는 않았겠지요? 음악과 토크를 통해 복음을 잘 전했다면 이보다 복된 예배는 없었겠네요~~^^
리플달기
13 12
공감 (72.196.233.169)
2015-07-15 22:34:00
아름다운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함,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
리플달기
13 12
짝짝작 (118.46.206.193)
2015-07-15 17:25:51
참 좋은 시도입니다.
남의 설교 베끼고,
윽박찌르고,
한 야그 또 하고,
강요에, 자랑질까지...
이런 수준에 비하면 이는 매우 좋은 시도임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왜 이미 다양화된 세상에 살면서, 그리고 다양한 기계문명에 노예되다시피 살아가면서 새로운 뭐만 하면 반대하는게 안돼 보입니다.
모든 학문이 성경과 만나고, 피조세계와 만나서 서로 융합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고 창의적으로 발전되는게 신학의 길이죠.
그리고 그 일을 현장에 바르게 심는게 하늘 나라 농부(일꾼)인 목사들인게죠?
용기도 없고, 실력도 없는 사람들이 탓하며 게으름을 피지요.
다양한 시도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분들 협성의 멋쟁이 교수들입니다.
리플달기
12 15
삼청교육대 (211.253.60.34)
2015-07-14 11:32:20
이 기사를 보니 왜 사람들이 교회에 침을 뱉는지 그이유를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목사가 기본적으로 뭐하는 인간입니까 평생 하나님을 존경하며 검소한 삶을 보이므로써 예수가 이땅에 다시 와서 보여준 삶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는 사람들
아닌가요

근데 기독교와 모짜르트와 무슨 관계있습니까
이것은 이단들이 자기네들 교리와 하나님 예수를 교리를 교묘하게 연관시키는것보다 더한 개소리네요

목사가 골프를 칠수도 있고 클래식을 좋아할수도 있고 걸그룹도 좋아할수
있습니다

근데 조건이 지돈으로 골프치고 지돈으로 클래식모임하고 지돈으로 걸그룹
콘서트 가는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근데 모짜르트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다 말도 안되는 개소리논리를 집어넣어서
기독교와 접목시켜서 한나님을 찬양한다 이것은 문선명이나 박태선 이만희도
하지 못한 참 대단한 짓입니다

목사의 개인적인 취미를 공적인 교회에서 아무런 역사적근거없이 공예배에
끌어들여서 개소리하는것은 비난받아 마땅한데 이것을 메인에

제발 정신좀 차리십시오

내가 알기로는 모짜르트는 무신론자이고 역사적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프리메이슨의 일원이라는 뜬금없는 말도 있지만 그것 제껴두고

정말 무식하고 기독교와는 별 관계없는 모짜르트를 데리고 와서 하나님찬양을 공예배에 하지 않냐 참 한심합니다

저런 쓰레기행사보다 차라리 중고생들 보기 좋게 기독교인 걸그룹데리고와서
노래부르는게 백매 천매 만배 더 좋을것입니다

한국기독교의 무식함을 스스로 인증하는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리플달기
19 32
펠리페 (211.214.139.72)
2015-07-15 11:10:26
뭐 이런 기사를 그리 꼼꼼히 읽고 트집잡고그러세요?
대충 보고 넘어가면 될 것을...오지랖도 넓으셔..

그리고, 교회에서 클레식 좀 들을 수도 있지...저질 CCM 박수치면서 부르는 것보다 훨 보기 좋구만...
리플달기
5 14
삼청교육대 (211.253.60.34)
2015-07-15 13:21:56
펠레페님 죄송합니다
근데 최소한 교수직위에 있는 분들이 그냥 공짜로 와달라고 해서 주님의 일이라면 무료로 와야죠 감사합니다 해서 왔을까요 그리고 저 행사준비하는데
들어간 자잘한 일을 노가다용역회사에 일당줘가면면서 잡부들 불렀을까요 목사의 개인적인 취미를 위해서 젊은청년들의 땀과 성도들의 피와같은 돈이 들어간것을 보니 나라도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트집좀 잡아보았습니다

사실 교회가 지 양들은 짜게 굴면서 사회에서 이름깨나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퍼주는 경향이 있어서 교회행사에 초빙되면 서로 갈려고 합니다
리플달기
10 18
펠리페 (211.214.139.72)
2015-07-15 20:53:06
교육대님은 내막을 좀 더 잘 아는 분이셨군요.
그렇다면 그럴 수 있겠네요...
리플달기
3 1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