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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냄은 반역행위다(약1:19-21)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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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7월 11일 (토) 19:21:02 [조회수 : 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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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9-21절

성냄은 반역행위다

 

가. 성냄은 하나님 나라의 반역행위다.

20절,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 본문은 성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성냄은 개인의 인격을 손상시킨다. 성냄은 인간관계를 파괴한다. 성냄은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막대한 지장을 준다.

* 요즈음 우리 사회는 분노지수가 상당히 높은 병리현상을 보이고 있다.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이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한껏 부풀은 풍선처럼 곧 터질 것 같이 위태위태하다. 분노의 잔이 가득히 차서 조금만 더하면 폭발할 지경으로 임계점에 이른 것 같다.

* 성냄(오르게)은 오레고마이(뻗히다, 열망하다)에서 유래하였다. 성냄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숨은 욕망이 표출되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오물이다.

* 그런데 성냄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이는 결국 하나님 나라의 반역행위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나라의 표상이요 최고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추악한 성냄과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우기 위한 거룩한 분노는 구별해야 한다.

 

나. 너무 급한 것이 문제다.

19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 이 말씀은 사람이 속히 할 것은 더디 하고, 더디 할 것은 속히 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사람들이 여유 없이 급하게 말하고 급하게 성내는 현실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 여기서 ‘듣기는 속히 하라’는 말씀은 사람마다 듣기를 더디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왜 사람들이 듣기를 더디 하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를 재면서 듣기 때문이다. 사람이 들을 때는 많은 생각을 하고 듣는다. 이처럼 말을 하거나 성날 때에는 생각을 많이 하여 더디 하라는 권면이다.

* 한국 사람은 성격이 급해서 행복지수가 낮다고 한다. 사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00위권 아래로 밀려나 있다. 화를 잘 내고, 고집이 세고, 남의 아픈 곳을 아무렇게나 말하고,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만족할 줄 모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충고 듣기는 싫어하고 충고하기는 좋아한다. 이런 인격으로는 돈이 많고 벼슬이 높고 학식이 많고 얼굴이 잘나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다. 더러운 것과 악한 것을 내어 버려야 한다.

21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 사람의 마음속에는 더러운 것들이 많이 쌓여 있다. 마음속의 더러운 것들이 사람들을 성나게 만든다. 성을 잘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타고난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환경의 문제도 아니다. 분노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제거해야 한다.

* 마음속의 상처 즉 쓴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으면 유사한 사건에 대하여 쉽게 분노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히12:15).

* 왜곡된 자존심을 제거해야 한다. 자존감은 중요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자존심은 자신과 충돌하는 환경에서 쉽게 분노를 터뜨리게 한다. 지나친 열등감 콤플렉스도 제거해야 한다. 열등감은 자존감을 잃게 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분노를 드러내게 한다. 예수님의 말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는 말씀을 참조하라(마15:18-20).

 

라. 하나님은 온유함을 기뻐하신다.

21절,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 사람이 분노를 조절하는 데는 말씀의 역할이 크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성도들은 분노가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말씀을 붙들고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하기를 더디 하고 성내기를 더디 할 수 있다.

* 그런데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온유함이라는 그릇에 담겨야 효력이 크다. 여기서 온유함(프라우테스)은 ‘겸손’의 뜻을 갖고 있다. 그리고 ‘받아들이다’(중디)는 말은 자신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이를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사람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겸손할 수 있고, 겸손해야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을 수 있고,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아야 성내기를 더디 할 수 있다.

*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들을 기뻐하신다. 온유하여 성내기를 더디 하는 사람들은 많은 손해를 볼 것 같은 유혹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예수님은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을 참조하라(마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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