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괴물이란 영화가 개봉되어 1000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한강에 미군부대에서 내버린 독극물이 방류되고 그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괴물이 한강에 출몰하여 사람들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입니다. 괴물에게 딸을 납치당한 주인공이 괴물을 찾아 괴물로부터 딸을 찾아오는 것이 영화의 기본 얼개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봉준호감독은 괴물이란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현실감이었다고 말합니다. 매일 출퇴근 하면서 만나는 한강이라는 공간에 등장하는 괴물은 한강처럼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봉감독의 착안은 매우 예리합니다. 괴물은 우리 앞에, 매일, 마주 서있는 존재라는 발상 아닙니까. 괴물이 친근한 한강에 숨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괴물 또한 그 모습을 감추고 드러내지를 않습니다. 영화 괴물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친근감, 혹은 현실성일 것입니다. 잡혀간 딸을 구해내는 아버지의 모습 역시 현실의 친근한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적당히 게으르고 무능한, 전혀 낯설지 않은 아버지입니다. 대신 엄청난 무력과 힘을 가진 경찰이나 공권력은 허둥대기만 합니다. 현실을 돌아보면 영화 속 괴물 퇴치 솔루션은 영화 속 상상으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괴물의 사전적 정의는 ‘괴상하게 생긴 물체’입니다. 형태적으로 보면 그 모습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괴물은 더 이상 생김새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괴물의 의미는 사회적, 관계적인 측면에서만 포착됩니다. 괴물은 인간 사회의 규범과 인격적 관계를 파괴하고 심지어 인간의 삶을 파멸에 빠뜨리는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서 괴물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에는 이미 손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난 달 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 임마누엘 흑인감리교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선량한 9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범인은 21살 된 백인 우월주의자 딜런 루프입니다. 딜런 루프가 검거 된 후에 그가 운영했던 ‘마지막 로디지아(Rhodesia)인’이란 사이트가 공개되었습니다. 사이트 이름에서 보듯 딜런 루프는 로디지아 공화국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했던 로디지아 공화국은 1965년 11월 11일 3%밖에 안 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도상에서 로디지아 공화국은 사라졌지만 로디지아 공화국의 영토는 인간의 편견과 증오를 자양분 삼아 그 영역을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딜런 루프는 백인우월주의 선언문에서 “아이큐가 낮고 충동억제를 못하는 니그로, 그들은 유대인, 히스패닉과 함께 적”이라고 으르렁거립니다. 이와 같은 증오심은 평소에 딜런 루프의 마음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자라났을 것입니다. 딜런 루프는 모두에게 친숙한 일상의 얼굴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괴물로 그 모습이 돌변했습니다.

딜런 루프의 증오범죄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절규는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죽었습니다. 내 몸의 살점 하나하나가 아픕니다.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들의 고백은 편견과 증오를 이길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친근한 사랑임을 일깨워줍니다. 딜런 루프가 경찰에서 했던 말은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교회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내게 친절함을 베풀어서 계획한 범행을 실행하지 못할 뻔했다.” 증오보다 조금 더 큰 사랑만이 사람을 괴물로부터 지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