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나는 유대교 목사인가, 기독교 목사인가’ 하고 말이다. 유대교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율법이다. 세세한 조목까지 지정하여 다듬어진 율법을 제대로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 유대교인이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이천년 전 예수는 사람 잡는 율법의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율법이 아닌 사랑과 생명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셨다. 예수의 삶을 놓고 성서 기록자들은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 주면서 사랑한 삶’으로 규정하면서 기독교라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만약 내가 법을 좋아하고 법을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면서 법에 따라 사람들을 정죄하기 좋아한다면 나는 유대교인 혹은 유대교적 기독교인일 것이다. 그러나 법에 따른 정죄와 심판, 편 가르기보다 용서와 화해, 대화와 포용을 더 중요하게 여겨 다투기보다는 만나서 대화하고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면 나는 기독교인이 분명할 것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가신 길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오늘 당당뉴스에서 감리교신학대학교 총학생회장인 유승리 군이 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왔습니다’라는 글을 보면서 몇 가지 이유로 참담함을 느낀다.

우선 감리교회의 미래가 암담하여 참담하다. 감리교회의 미래는 지금의 원로들이 교리와 장정을 규정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전적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달려있다. 젊은 사람들이 미래이고 미래의 감리교회이다. 그런데 과연 감리교회는 젊은이들을 미래의 주인공이자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계의 원로들은 젊은이들을 잘라내고 두들겨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모양으로 만들어야지만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지극히 순종적인 소수를 제외한, 잘리고 두들겨 맞고 틀에 억지로 끼워넣어지는 것이 싫은 이들은 감리교회를 등지고 떠날 것이다. 앞으로 20년 후 그들이 떠난 감리교회에 남아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그 감리교회가 2035년에 맞는 미래적 감리교회일 수 있을까? 역사는 순종보다는 저항(protestant)과 도전으로 진보하였고 개신교회, 감리교회도 그렇게 탄생하였다. 그런데 그런 개신교회, 그런 감리교회가 도전을 거부한다면 분명 이율배반이다. 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을 지경까지 갈 것이다.

신학생을 경찰에 고발하는 전 이사장, 전 감독회장직무대행 때문에 참담하다. 세속의 일반대학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다. 세속이고 보통사람들이니까! 그런데 성직자를 길러내는 성별된 신학대학교 신학생들과 존경 받는 교계 지도자이자 감독회장 직무대행까지 역임한 목사 사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이건 큰 문제이다. 교계의 어른을 자처하는 분이라면 공권력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먼저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꾸짖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가야 했다. 그게 어른이다. 그것이 감리교인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다. 과연 몇 번이나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수차례 만나서 설득했음에도 학생들을 진정시키지 못했다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어 마땅하겠지만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무능을 떠나서 애초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사장 자격만이 아니라 목사의 자격도 없는 것이다. 학생들이 사회에서 할 만한 주장을 펴다가 경찰서에 잡혀가면 이사장이 달려가서 신원보증을 서고 석방을 요구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학생들을 경찰서에 출두시켜 조사를 받게 한다니, 이런 교단을 과연 어느 누가 신뢰할 것이며 어느 누가 칭찬할 것이며 어느 누가 감리교회에 다니고 싶어 하겠는가!

유군이 피고소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어버이 날이라고 한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그동안 목사들은 교회에서 자신들을 영적인 아버지라고 자처・자부해왔다. 그런데 그 어버이 날에 아들 된 유군은 아버지 된 목사에게 고소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고소사태는 스스로 교우들의 아버지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으니 또한 참담하다.

가장 참담하고 충격적인 것은 자식 혹은 손자뻘인 학생, 그것도 학생들의 대표자인 총학생회장에게 ‘병신새끼’라고 욕을 했다는 어떤 이사의 존재이다. 나도 욕을 참 맛깔지게 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병신’이라는 욕은 안하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50년도 채 살지 못한 사람이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최소한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어떤 특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비하하는 욕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한다. 그런데 그런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동년배도 아니고 자식이나 손자뻘 되는 젊은 사람에게 내뱉고 지나치는 그 사람은 도대체 어느 교단 사람이고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인가? 불행하게도 감리교회에 속한 사람이고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사 지위를 누릴 만큼의 지도자급 인사이다. 이게 감리교회의 현실이라니 참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감신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쩌면 장래 한국 감리교회가 맞이하게 될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예지몽이나 데자뷰 일지 모르겠다. 교회의 고위급 지도자가 사랑과 자비가 아니라 법에 의지하여 교단 신학대의 손주뻘 되는 총학생회 임원들을 고소하는 사태는 분명 무수한 이들의 비웃음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단순하게 지금 여기만의 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이 깊은 상처를 가슴에 받은 이들이 20년 후이면 40대 중반이 되어 가장 열성적으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을 시기이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이런 감리교회라는 토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들을 보고 실망한 이들이 여전히 참고 감리교회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전횡과 폭력에 길들여지면서 자란 남아있는 미래의 목회자들이 과연 민주적이고 평화적이며 또한 미래적인 감리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런 복잡한 말은 다 집어 치우고 ‘과연 감리교회에 미래가 있을까?’

한창 감신대 사태가 커지기 시작할 무렵 유승리 총학생회장을 만나 상황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때 유군은 상황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문이 막히다가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너무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겨우 내뱉었다. 처음엔 피식 웃고 말았는데 점점 그의 진심이 내 마음에 느껴졌다. ‘아, 정말 감신을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사랑하는구나!’ 처음 본 그는 소위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키 크고 잘생겨서 학교나 교회에서 따르는 여학생도 많을 것 같은 모범생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가 지금 이렇게 경찰서까지 들락거리는 처지가 되었다. 지금은 모범생을 모범생으로 남아있도록 허락하지 않는 험악한 시대가 분명하다.

나는 다시금 나 자신과 신학생들을 고소한 지도자급 선배 목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유대교 목사인가, 기독교 목사인가?’ ‘율법에 의지하고 있는가, 사랑에 의지하고 있는가?’ ‘나는 정죄하고 있는가, 이해하고 있는가, 최소한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가?’

감리교회의 미래가 망가지고 있다. 보다 대승적인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나도 20년 이상 더 목회해야 하는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