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메르스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헤겔은 철학과 현실은 일치해야 한다고 하면서 현실의 개념을 규명하였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것’. ‘의미 없는 것’, ‘우연한 것’, ‘덧 없는 것’, ‘위축된 것’에 불과한 것은 현실과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우연적 현상과 현실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가 온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피할 수없는 현실인가? 아마 후자일 것이다. 지금 박근혜 탓을 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허무한 일이고 그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어찌 할 수없는 한국의 현실인 것이다.

메르스가 보여준 것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즉 우리가 얼마나 엉성한 사회에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삼성일가처럼 사회가 촘촘하게 짜여지지 않고 엉성해야 이익을 보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메르스 감염 여부가 결정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정부는 메르스 의심 환자, 환자를 접촉한 사람을 열심히 추적 중이다. 바야흐로 단군 이래 최대의 술래잡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만나 어떻게 감염될지를 예측할 수 없는 절대 우발성의 문제이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메르시 감염처럼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전혀 아니고 우발적으로 생성해 가는 것이다.

사실 현대는 온라인의 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디를 가는지 돈을 어디에 쓰는지 모든 것을 알 수가 있는 시대이다. 더욱이 나같이 온라인에 노출이 많은 사람은 바늘 하나 숨길 곳이 없다. 아마 신과의 차이라면 내 섹스 생활을 알 수 없다는 것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가 길거리에 침을 뱉기만 해도, 아니 자기 의도와 전혀 관계없이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뜨린다 해도 하려고만 한다면 그가 누군지를 식별해 낼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IQ 검사가 19세기 사회의 대표적 부산물이라면 21세기에는 유전자 검사가 있다. 이미 바이오 벤처 사업에서는 유전자를 샘플링 해서 용기에 넣어서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주민등록식으로 기호를 부여 받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전과자 12만 명의 유전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코디스(CODIS·Combind DNA Index System)를 세웠고, 마침내 아이슬란드는 전 국민의 유전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이제 생명, 신체는 기술에 의해 조작되고, 자본주의에 의해 판매·유통되고, 국가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일찍이 미셸 푸코는 이런 상황을 ‘생체권력’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바 있다. 지배 주체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의학적 지식들, 좀 더 넓게는 생명과학과 연계되는 각종 지식들을 동원하는 방식을 푸코는 ‘생체정치’라 부른다.

작금에 진행되는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미쉘 푸코가 말하던 '생체권력'이란 말이 생각났다. 현대 사회는 권력에 의해서 인간의 육체를 관리하고 통제하고 지배당하는 시대이다. 푸코는 현대 산업사회는 이익을 위해서는 생체권력을 작동한다고 했다.

푸코는 생체권력이란 말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했지만 나는 지금 지금 긍정적인 의미에서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지금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국가가 자신을 관리해주기를 바라는 비정상적인 사태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제발 우리를 잘 관리해 달라고! 그런데 국가가 그럴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여서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기 전염병이 창궐 했을 때 사람들은 신의 진노라고 생각해서 교회에 모여들어 기도를 했다. 그래서 병균이 더 빨리 퍼져서 희생자가 더 많이 나왔다.심지어는 성직자들도 많이 희생되어서 역병이 사라지고 난 다음 자격 없는 사람들이 성직자로서 채워져서 교회의 타락이 더 심해졌다.

현대는 전염병이 번지면 교회로 모이는 짓을 하지 않고 오히려 모이기를 피할 만큼 약아졌다. 그러나 모이기를 피하는 교회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호켄타이크가 말했던 ‘흩어지는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메르스 탓에 사람들이 죽음이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느끼며 두려워한다. 그러나 나는 죽음 보다는 삶이 더 두렵다. 왜냐하면 죽음의 모습은 하나이지만 삶의 모습은 여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가 두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