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구약에 기록된 대로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는다. 구약에서는 메시아인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했고 신약에는 오신 메시아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구약의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이고 말하고, 예수님을 제2 아담이고 말하기도 한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구약을 인용하셨고 서신서에서도 기록자들이 구약을 인용했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은 모형과 실체, 예언과 성취라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전체는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 구약은 율법의 세계이고 신약은 은혜의 세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한복음에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17)고 기록되어 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아버지 같이 엄격한 하나님이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신약의 하나님은 어머니 같이 자애로운 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구약의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님을 고발할 기회를 찾았고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경전으로 받아들였던 구약과 예수님의 복음이 기록된 신약은 다르다는 말이다.

구약과 신약이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구약과 신약은 별로 다르지 않거나 같은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다. 실상 여호와가 다스리시는 구약의 세계와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시는 신약의 세계는 아주 다르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하나님이 지닌 속성의 차이로 인해서 결정된다. 기독교인은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하나님이 어느 정도 다른지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여호와와 인류의 하나님

구약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의 자손을 창대케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부족 신이다. 이 하나님은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허락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들이 한때 애굽의 바로 밑에서 노예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내세워서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그들을 인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정착하게 해주셨다. 이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에게 선택받지 못한 이민족을 멸시하며 적대시했다.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이민족까지를 사랑하시는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를 지으신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면서 부족의 신으로 축소되었다가 신약에 와서 인류의 신으로 복원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도 사마리아인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하기도 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유대지역뿐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하셨다. 이 말씀을 따라서 바울은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었다.

구약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족 신이었기 때문에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사용하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신약은 당시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상업적으로 널리 통용되던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신구약의 하나님은 한 부족을 사랑한 하나님과 온 인류를 사랑한 하나님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그분들의 말씀을 기록한 언어에도 차이가 있다. 이것은 두 하나님이 사용하신 언어가 달랐다는 이야기이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의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에 구약의 하나님이 헤브라이즘을 만들어낸 히브리인들의 신본주의적 언어로 말씀하셨고, 신약의 하나님이 헬레니즘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사용한 인본주의적 언어를 사용하셨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은 헤브라이즘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대인이었지만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헬레니즘의 문화권에서 사셨기 때문에 두 언어로 표현되는 사상을 종합할 수 있었다.

언어의 차이로 인해서 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Jehovah 혹은 Elohim이라고 불렀고 신약에서는 Theos라고 불렀다. 우리말로는 구약의 신을 주로 여호와라고 부르고 신약의 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성경에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야곱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신약에 오면 시몬이 베드로가 되고 사울은 바울이 된다. Theos는 Jehovah나 Elohim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지만,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은 이름이 다를 뿐 아니라 그들의 속성 또한 다르다. 두 하나님이 부족신이냐 인류의 신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의 이름의 차이에 따른 여호와와 하나님의 속성의 차이이다.

여호와와 하나님의 속성

구약의 여호와는 편애하는 신이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그의 자손을 창대케 하셨고 그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여호와는 그의 선민만을 사랑했고 다른 족속은 외면하셨다. 이스라엘을 편애한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나아가는 길에 방해가 되거나 그들을 위협하는 어느 족속도 싸워서 이겨야 할 적으로 취급하셨다. 그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을 미워하셨다. 이민족과 대결할 때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도움을 요청했고 그때마다 여호와는 그들을 도우셨다.

신약의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만민을 사랑하신 신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기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자 독생자를 주셨으니”(3:16)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세상은 세상 사람들을 의미한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영생을 허락하셨지만, 모든 민족에게 기회를 주셨다는 면에서 선민과 이방인을 구분하여 선민만을 사랑하신 여호와와는 사랑의 대상의 폭이 다르다.

그리고 여호와는 사랑을 요구하는 신이다. 십계명에서 당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당신은 질투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택한 것은 그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의 선민이 다른 신을 섬기거나 그분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여호와는 화를 내면서 그들을 저주하셨다. 여호와는 사랑에 목말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민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한 여호와는 백성의 찬양을 요구하셨다. 이사야서에서 여호와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21)고 말씀하신다. 여호와는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퍽 이기적인 신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을 베푸는 신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를 희생하는 아가페적 사랑, 즉 이타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는 경쟁의 상대자가 없었고 따라서 질투도 없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희생양을 삼으셨다. 요한일서 기록자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4:10)고 기록했다. 이 기록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분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행위이다.

여호와의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다. 여호와는 모세를 통해서 계명을 주고 그 계명을 철저히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 그 계명에 순종할 때는 복을 주지만 순종하지 않을 때는 엄하게 벌하셨다. 십계명에서부터 그 사실을 명시해 놓으셨다. 신명기에서는 특히 28장에서 30장까지 반복적으로 순종하지 않을 때 징계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을 신명기 사관이고 부른다. 이 신명기 사관은 구약을 관통하고 있다. 예언자들도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여호와에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돌이켜서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탈무드에서 613개의 계명을 언급하면서 계명을 잘 지킬 것을 강조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지 않을 때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희생양 삼아서 인간의 죄를 사해주신 것은 인간에게 그럴만한 장점이나 아름다움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악하고 추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고 하나님의 사랑이 값없이 주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 혹은 선물이고 말한다. 요한복음에서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17)고 말하는 것은 이 사실을 가리킨다.

여호와는 다스리는 신이다. 여호와는 왕이 백성을 다스리듯이 이스라엘에게 계명을 주고 그들을 다스리셨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가리켜 흔히 백성이고 부르는 데서 전제군주 시대의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연상하게 된다. 신명기에서는 군주를 섬기듯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10:12)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사야서에서는 이스라엘을 “종”이라고 부른다(41:9;44:21). 그리고 여호와는 그의 선민을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사 43:7)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여호와의 선민들은 백성으로서 그리고 종으로서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며 그분을 섬겨야 했다.

이와 달리 신약의 하나님은 섬기는 신이다. 신약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하늘 보좌로부터 세상에 보내서 그 아들을 통해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광을 받기보다는 자신을 희생해서 인간을 구원하신 분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줌으로써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고, 빌립보서 기자의 말대로 “종의 형체를”(2:7) 취해서 종과 같이 자기 몸을 던져 인간을 위해 희생하셨다.

구약의 여호와는 징계하는 신이다. 여호와는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지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징계하셨다. 이러한 순종과 징계에 대해서는 십계명에서 시작해서 신명기에 누누이 언급되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할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했다. 이때에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여호와의 계명을 어긴, 당신을 배반한 사람들 3천 명을 몰살시켰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것도 당신의 계명을 어기고 당신을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순종하면 복을 주고 불순종하면 징계하는 여호와의 원칙을 신명기 사관이라고 하는데, 이 신명기 사관이 구약을 관통하고 있다.

그런데 신약의 하나님은 용서하는 신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용서를 강조하셨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주기도문에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에서 용서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이웃을 용서하지 않고는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 이러한 신학적인 접근 외에,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리고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배반자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그의 사랑을 확인하시면서 그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주셨다. 여호와라면 이러한 배반자를 징계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셨다. 이러한 예수님을 통해서 신약의 하나님의 용서를 본다.

여호와는 전쟁의 신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주변의 이민족과 싸울 때에는 언제나 여호와가 진두지휘하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호와에게 조언을 구했고 세부적인 작전에 대해서까지 지시를 받았다. 모세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끈 여호수아나 성군으로 칭송을 받은 다윗까지도 전장에 나가 싸운 여호와의 용사들이다. 여호와는 힘을 앞세운 신이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24:8)라고 노래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무력으로 해방시킬 강력한 힘을 가진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그들이 이러한 메시아를 기대한 것은 그들이 믿는 여호와가 힘을 바탕으로 하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은 화평의 신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5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행한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이야 말로 무력으로 그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킬 메시아라고 보고 그분을 왕으로 모시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때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시고 이튿날 당신은 무력 대신 생명의 떡을 가지고 왔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말고의 귀를 떨어뜨렸을 때 예수님은 그 제자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 구하면 열두 군단 넘는 천사라도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힘에 대해서 힘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간디와 킹 목사가 이러한 예수님에게서 무저항주의를 배웠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잔혹한, 무자비한 신이다. 인간을 지은 여호와는 그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인간을 지은 것을 한탄하고 그들을 몰살시켰다. 노아 시대에는 물로 대부분의 인간을 죽였다. 그리고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불로 사람들을 죽였다. 죽고 죽이는 전장의 현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비로울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이 성을 정복할 때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서 먼저 전리품을 빼앗고 성을 불태우고 그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을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칼로 쳐서 몰살했다.

선민이라도 여호와에게 등을 돌릴 때에는 잔혹하게 죽였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사십 일 만에 내려왔을 때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우상에게 절했다. 이때 모세는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출 32:27) 칼로 쳐서 죽이게 했는데, 이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화가 난 여호와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그때 죽은 사람이 3천명이었다. 물론 구약에도 선민에 대한 여호와의 자비,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 평화의 중요성 등이 언급되어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여호와의 무자비에 가려서 빛을 잃고 만다.

신약의 하나님은 자비로운 신이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빠져 있는, 당신을 배반한 인간을 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속죄물로 내놓으셨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말하고 있다. 이 자비의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가르치셨다. 모세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그 가르침을 수정해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를 보통 사랑의 종교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은 단지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대적하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랑이다. 자신을 헌신하는 십자가의 사랑이 기독교의 사랑이다. 이 사랑이 신약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아가페적 사랑이다.

우리는 구약의 여호와에게서 자기를 좋아하는 자를 좋아하고 자기를 싫어하는 자를 싫어하는 인간의 일반적인 속성을 발견한다.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는 사랑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시지만, 불순종하는 자는 엄하게 징계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때로 여호와는 인간 이상으로 잔혹한 면을 보였다. 여호와는 당신이 손수 지은 인간에게 실망하실 때 그들을 몰살시키고, 당신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길 때 자신의 선민까지도 잔혹하게 죽였다. 이러한 여호와는 인정사정이 없는 무자비한 신이다. 여호와가 당신의 선민을 사랑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당신이 지으신 혹은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죽인 것을 보면, 구약의 여호와에게는 사랑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신약의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과 상상을 초월하는 분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자기 아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지 못한다. ‘은혜는 물 위에 쓰고 원수는 돌 위에 새긴다’는 것이 우리의 속담이다. 우리를 해하려 드는 사람에게는 온 힘을 다해서 대항한다. 내게 힘이 있는데도 상대의 무리한 공격을 참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종으로 섬기기보다는 상전으로 대접받으려고 한다. 나아가서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왔다는 것 그리고 신이 인간을 섬겼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끝내면서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하나님은 아주 다른 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신을 별로 차이가 없는 분들로, 때로는 동일한 분들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흔히 보수적인 신앙인은 구약을 선호하고 진보적인 사람은 신약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하나님이 이렇게 다르다면 보수적인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구약에 의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구약에는 기독교인들이 배울 것이 많다. 창세기에서 강조되는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전능자라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생활은 우리의 모범이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을 묵상하면서 그 믿음을 본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시편에 묘사된 여호와에 대한 감동적인 찬양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적용하는 수가 많다. 나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옆길로 나갔던 유대인들의 삶을 대하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바로잡아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호와와 하나님을 동일시해서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징계한 여호와를 강조한다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을 외면하게 된다. 구약을 중시할 때 자칫하면 여호와의 조건부 사랑이나 잔혹한 행태를 옹호할 수도 있고 전쟁의 신을 찬양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찬양대에서는 시편 24:7-10에 기록된 “전쟁에 능하신 주”를 노래하는 경우가 있다. 헨델의 메시아 곡에 나오는 ‘문들아 머리 들라,’ E. L. Ashford의 ‘문들아 머리 들라’ 그리고 정유성의 ‘만군의 주님 강하고 능하신 주’에서는 “전쟁에 능하신 주”를 노래한다. 그런데 전쟁에 능하신 주는 구약의 여호와이지 신약의 하나님은 아니다. 따라서 그 찬양곡들은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는 맞지 않다. 이렇게 구약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기 쉽다.

기독교인의 신앙의 기반은 예수님의 복음이 기록된 신약이다.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약을 믿는 유대교인들의 교리를 비판하셨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구약을 신약과 더불어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제사장 제도를 비롯한 구약에 기록된 많은 것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특히 유대교의 지도자였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할례 같은 유대교 전통에 반대하고 유대교인들이 외면했던 이방인 선교에 앞장서면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단절을 선언한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과 맞섰던 것도 바울이 유대교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도 단지 유대교의 율법에 대한 해석이나 신앙생활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단절이 불가피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하나님의 속성이 다르다는 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