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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사건과 예언자
이광섭  |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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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5월 18일 (월) 01:14:01 [조회수 :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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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근대사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이 있습니다. 1894년 유대계 포병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입니다. 1871년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시련의 시기를 보냅니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이 부과되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프랑스는 결국 1882년 금융공황에 휩싸였습니다.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했습니다. 저축했던 돈을 날려버린 사람들은 금융계를 주름잡던 유대인을 미워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프랑스 군부는 독일에게 프랑스의 비밀을 흘려주는 간첩을 탐지합니다. 간첩에 대한 단서는 오직 하나 ‘D’라는 암호명뿐이었습니다. 드레퓌스는 이름의 첫 글자가 암호와 일치한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체포됩니다.

하지만 드레퓌스를 체포한 군부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습니다. 군부는 드레퓌스 대위의 체포사실조차도 공표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 때 반유대주의 신문인 ‘자유언론’이 군부가 매국노를 비호한다면서 군부의 우유부단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는 반유대주의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반유대주의의 광풍이 프랑스 전역에 불어 닥쳤고, 마침내 드레퓌스는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그 후 프랑스 군부는 진범을 잡아놓고도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진범을 풀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사건은 대문호 에밀 졸라의 폭로로 새 국면을 맞습니다. 에밀 졸라는 군부가 만들어낸 거짓과 불의, 공작을 폭로했습니다. 이에 대해 군부와 가톨릭, 국수주의자들은 거세게 저항을 합니다. 그렇지만 진실에 눈뜨기 시작한 여론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고 마침내 1906년 드레퓌스는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왕당파의 정치적 영향력은 완전히 소멸되고, 프랑스는 공화제를 공고히 세우게 됩니다.

100년이 지난 후 한국에서 일어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 있습니다. 1991년에 일어난 ‘강기훈유서대필사건’입니다. 당시 정부는 계속되는 실정과 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잠재우려고 ‘유서대필정국’을 조성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강기훈씨가 자살을 부추키고 유서까지 대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강기훈씨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지탄을 받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3년6개월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사회운동권은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엉터리 필적감정은 재판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런 대법원이 지난 14일, 재심을 받아들여 강기훈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24년 만에 진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하지만 재심 결과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는데도 누구 하나 강기훈씨 앞에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사법부도, 검찰도, 언론도, 그 어느 누구도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정의는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 정의에 대한 관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하는 회의감마저 듭니다.

오늘 기독교 신앙에서 정의는 갖고 있기에 불편한 계륵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언자들이 선포한 정의가 사실은 왕정시대의 비주류들이 외쳤던 작고 미약한 몸부림에 불과했다는 생각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외침이 기독교 신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 덕분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을 하나님나라의 컨텐츠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이지요.

이제 기독교 신앙에서 정의는 다시 예언자들의 비주류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정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곧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정의를 세울 때 사회가 한 걸음 진보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강기훈사건 역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일에 보탬이 되는 일대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기훈사건의 재심 확정 판결 앞에서 어느 누구 하나 사과를 하지 않아도 회개하라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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