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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신 학내 사태의 와중에서 박종천총장은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박 총장의 대자보 "감신의 회복적 정의와..."에 대한, 박충구 교수의 비판적 글쓰기 "선과 악의 차이에 대하여" 전문
이필완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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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5월 06일 (수) 11:24:35
최종편집 : 2015년 09월 25일 (금) 06:04:32 [조회수 : 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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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부터 박종천 총장은 학생들의 점거 가능성이 있다하여 총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지금은 웨슬리채플에서 금식기도를 하면서 한편으론 전국교회 목회자들에게 3개의 문건을 돌렸다.
이 3개의 문건은 각각 "감신의 회복적 정의와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드리는 글 " "감리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드립니다 " 사실확인서" ('감신의 회복적 정의...' 운운 뒷면에 인쇄된) 등이다. 이 글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감신의 회복적 정의와..."는 글 서두에 게재하고 나머지 2건 문서 이미지는 이 글 아래에 게재하였다.
과거 여러 교수 임용 탈락이나 총장 선거 등 학내 사태가 있을때마다 사건의 중심에서 이름 석자가 빠지지 않았던 박종천 총장은, 최근 이사회로부터 1개월 감봉처분을 받았고, 이사회의 어느 인사는 전해주기를 그 징계로 말미암아 총장 재임에 자격조차 없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박종천 총장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의구심을 주고 있다.
이에 당당뉴스는 그가 전국 목회자들에게 보낸 문건 복사본과 그 중 대자보로 내걸었던 4월23일자 대자보를 조목조목 비판한 박충구교수의 아래 글(이미 작은 글씨로 대자보로 이미 공개되었던)을 필자의 허락을 얻어 전문게재 한다. 금번에 벌어진 감신 학내 사태의 진상과 뿌리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선과 악의 차이에 대하여

-박종천 총장의 2015년 4월 23일 자 대자보를 비판함-
* 글이 길어 대자보로 교내에 붙이지 못합니다. 하여 나의 주장을 당당뉴스에서 밝힙니다.

   
▲ 감신의 회복적 정의와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드리는 글 4월23일

1.

진실한 사람은 구지 거짓말을 동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악한 이들은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을 유도하면서 상대에게 곤경을 안겨주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석박사 과정에서 전공을 한 이력이 없는 이를 전공자라고 내세우더니, 이제는 그간 "차별과 냉대를 받아온 사람" 이라고 대자보를 붙였다. 총장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 그를 편들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전공자인가 전공자가 아닌가"에 대한 의혹에 대하여 전공자임을 입증하면 될 것을 갑자기 차별과 냉대를 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누군가가 자동차에 뛰어들어 부딪혀 놓고서 피해자인양 협박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이다. 비전공자가 전공자로 위장하고 감신에 뛰어들어 그의 정체를 의혹하는 마당에 갑자가 분야 교수들의 냉대와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시공간을 뛰어 넘는 손오공과 같은 변신의 귀재들이다. 여기서는 이 모양으로, 저기서는 저 모양으로 처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를 일러 영어로 인테그리티(integrity)가 없다고 한다. 인테그리티가 없다는 말은 그의 진실성이 일관되지 않고 통일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들이 지도자가 되면 그 공동체는 사분오열된다. 바로 그 대자보를 쓴 사람이 2014년 교수회의에서 "L박사는 해당분야 전공자가 아니다"라고 모든 교수들 앞에서 선언했던 당사자였다. 사적 삶의 영역이 아니라, 대학의 공적 직무를 수행하면서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황당하다.

 

그간 갈 지(之)자로 이중적인 행위를 해 온 장본인이 "회복적 정의와 새로운 출발"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언어 는 “회복적 정의”를 말하면서 그 내용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있다. 과연 그는 정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부정한 교수인사를 준비한, 정의를 훼손한 당사자가 아닌가? 그리고 그가 임명한 인사위원들의 결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 아닌가? 이사장이 설령 잘못한다면 대학의 법과 규정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일러주어야 할 책임은 총장에게 있었다. 자신의 이중적 행태와 잘못을 고백해도 시원치 않을 자리에서 입에 발린 회복적 정의라니 가당치 않다. 정작 정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이들은 지금 단식하며 농성하고 있는 이들이다.

 

2.

학자들의 언어는 휘황찬란하다. 이 대자보에서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메타윤리! 이것이 무엇일까? 내가 L 박사의 석박사 과정의 공부와 논문을 살피고 명시적인 “비전공자”라고 의혹하게 되었으니 해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총장이 그가 "메타윤리" 논문을 썼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윤리학 세계와 신학계에 기여를 할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메타윤리,” 선량한 이사들이나 학생들, 모교에서 번번이 일어나는 소동을 멀리서 바라보는 동문들조차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L 박사는 '기독교 윤리학' 전공자가 아니다"라는 선언이다.

 

나는 그가 이 “메타윤리”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의 대자보를 스스로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대자보를 버젓이 교정에 붙여두고 있다. 무엇이 오류일까? 총장도 총장 뒤에 숨어 있는 L박사도 메타윤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스스로 모르는 것을 대학 구성원들 앞에 게시하며 비전공자를 옹호하며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L박사가 기독교윤리학 전공자라면 "메타윤리"가 고전적으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19세기 이후에는 헤겔과 칸트의 관념론적인 철학적 윤리학의 방법론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윤리학적 논쟁사에서 메타윤리의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한 사람은 G. E. Moore다. 메타윤리의 해악은 헤겔-칸트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 속에 담겨진 윤리학적 사유방식으로서 20세기 역사 속에 출현한 전대미문의 거대한 악, 즉 나치의 등장을 예견하거나, 비판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조장 방임했다는 데어서 온 것이었다.

 

이 비판은 1950년대 무어(G. E. Moore)의 그 유명한 비판, 즉 메타윤리가 지니고 있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에 대한 비판”에 의하여 첨예화 되었고, 신학과 철학적 윤리학의 영역에서 그의 비판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감신 한 복판에서 L박사는 총장에 의하여 갑작스럽게 메타윤리학 전공자의 새 명찰을 달고 자랑스럽게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 황당하다.

 

신학자들도 메타윤리 방법론을 거부했다. 그 메타윤리의 방법을 사용한 철학자들은 윤리적 가치의 본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성서와 계시를 떠난 순수 사변, 곧 이성적 전통을 사용하면서 성서와 계시, 예수와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헤겔은 하나님 나라를 최고 정신의 실현 과정으로, 칸트는 하나님 나라를 최고선에 근거한 가치의 실현과정으로 오해하게 만들었고, 여기서 강력한 전체주의적 혹은 개인주의적 의무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지니고 있는 강한 윤리학적 뿌리가 바로 독일 관념론, 그 대가였던 헤겔과 칸트였고, 16세기까지 독단으로 질주하던 가톨릭 신학의 도덕신학의 기초가 바로 고전적 메타윤리 방법을 사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었다. 신학사적으로 본다면 개신교 신학자와 윤리학자들은 가톨릭 신학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받아들인 고전적 메타윤리의 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을 버렸다. 왜냐하면 종교 개혁 전통을 따르고 있는 신학자들은 한결같이 기독교인의 행위론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전통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메타윤리 전공자가 감신대에 필요하다고? 황당한 일이다.

 

메타윤리의 다른 이름은 자연주의 윤리학(naturalistic ethics)이다. 즉 메타윤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이나,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 교회의 존재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윤리학적 전통을 이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세속 사회의 이성적 질서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받아들인 가톨릭 도덕신학의 일부로는 기능하지만 개신교에서는 그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이렇듯 메타윤리는 기독교윤리학이 극복해 온 대상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윤리학자들은 메타윤리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는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가장 정평있는 사전(Westmindter Dictionary of Christian Ethics)에서 설명하고 있는 간단한 메타윤리 항목을 읽어보라.

 

메타윤리는 기독교윤리학 방법론이 아니다. 오히려 계시 없이 추상적 사유를 통해 관념적 가치를 주장하던 인간 이성에 의한 인식론적 산물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다양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윤리학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를 지적하는 까닭은 그들이 칸트의 합리적 경건과 의무를 소중히 여기는 대신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존재 가치를 그의 사유에 복속시켰던 유산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이 문제는 Martin Honecker의 Konzept einer sozialethischen Theorie에서 잘 규명된 바 있다) 그들이 계시를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두고 이성을 과대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 윤리학적 뿌리는 메타윤리학적 방법을 사용한 철학에 있었다. 그런데 감신대 한 복판에서 이런 전통을 공부한 메타윤리의 전공자가 영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총장의 대자보가 붙은 것이다. 이를 어쩌면 좋은가..... 나는 L박사가 정말 기독교윤리학을 전공했다면 이런 사설(邪說)의 진위 정도는 파악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대자보가 말하고 있는 “회복적 정의”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학문의 세계에서 비전공자가 전공자로 행세해온 그의 지난 날을 측은히 여기고 그를 65세가 되기까지 감신대 학생들에게 전공하지도 않은 학문을 강의 하도록 전임 교수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인가? 심지어 반(反)기독교적 전통에 서 있는 메타윤리를 가르치게 하겠다는 것인가? 총장이 그를 기존의 기독교윤리학자들과는 다른 새로운 분야의 학자인 것처럼 기만하며 “메타윤리”학적 논문을 쓴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기독교 윤리학 전공자들은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3.

결국 이번 사태의 총책, 총장은 본색을 바닥까지 드러낸 셈이다. 2014년 교수회의 회의록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바 총장이 “L박사는 기독교윤리학 전공자가 아니다”라고 소신 있게 공표했기에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라는 글을 쓰며 총장이 L박사 기독교윤리학 전임교수 만들기 프로세스를 시작한 당사자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최근 평의회 교수들을 찾아와 속내를 털어 놓으며 이사장 퇴진을 위해 힘을 합하겠다는 소신도 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바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윗선을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2014년 가을 연구학기를 떠나면서 그에게 대학의 일치를 위하여 편 가르기를 하지 말고 “시니어 교수들”에게 중책을 맡기기를 권면했다. 교수단 안의 질서도 그렇고, 대학 행정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곁에서 도와야 대학이 편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2014년 가을 학기에 매우 의도적으로 감신대 교원인사위원들 일부를 교체했다. 그는 과연 교원인사위원을 누구로 교체, 구성했을까?

 

이번 사태의 모태가 된 “문제 많은 교원인사”를 하기 위하여 총장은 2007년 L 박사를 감신데에 들이는 결정을 했던 인사위원들을 2014년 가을 학기 교원인사위원회에 재배치 했다. 2007년 김준우 교수를 영어교수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고, 항의가 빗발치게 되자, (대학 인사규정에 명시한 바 분야교수들과의 협의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협의도 없이), 기독교윤리학 교수로 뽑는다고 항의자들을 회유했었다. 그리고 나서 교원인사위원들의 결정을 통해 그를 내치는 동시에 L 박사의 전공에 대한 공정한 평가과정 없이 윤리학 전공자로 둔갑시켰던 그 장본인들을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인사위 구성은 총장의 권한이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반대할 인물들은 모두 속아내고 그의 뜻을 따를 이들을 취사선택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2007년 바로 그 결정을 했던 이들이, 2014년 가을 학기 교원인사에 앞서서, 총장에 의하여, 교원인사위원으로, “재배치”된 것이다. 이들은 김준우 교수를 내친 이후 한사람은 총장으로, 한사람은 대학원장으로, 한사람은 교무처장 겸 인사위원장으로, 그리고 교원인사위원으로... 완벽하게 대학의 중요 보직을 장악했다. 총장은 이사회의 선택이었고, 중요보직자는 이사장의 승인이 있었고, 인사위원들은 바로 그 총장이 임명했다. 아마 이사들은 이들이 대학을 바르게, 신학적으로도 교회를 배려하는 좋은 선지동산으로 가꾸어 가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특정한 야욕을 가진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동문이며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인 이사들이 교수들을 제치고 앞장서서 혼란을 초래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총장이 구성한 인사위원들, 그들은 금번 학내사태를 불러온 바, 불법적이며 부당한 인사결정을 관철시켰다. 나는 이분들이 과연 L박사의 전공과 학문적 업적을 공정하게 심사할 수 있는 분들인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시기를 권한다. 협성대, 한신대 기준으로 한다면 수년간 단 한 편의 연구업적도 내지 못한 사람이 우리 대학에서는 전임교수로 영입되고, 심지어 부교수로 특진하기도 한다. 이게 정의인가? 원인 제공자는 바로 교수들, 곧 인사위원들이며, 특정 한다면 2007년 인사위원과 겹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정직하고 공정한 인사를 했다고 나는 절대 믿지 않는다. 이들은 바로 2007년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놓은 교수들이다. 총장은 이들을 다시 불러 모아 계속 그 다음 단추를 끼워 맞추려 기형적으로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잘못을 시인하면 될 것을 억지 사변, 심지어 “메타윤리”라는 반(反)신학적인 기괴한 전공자로 L 박사를 둔갑시키기까지 하면서.... 이런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닌 것이다.

 

지인인 한 전직 검사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자꾸 물으면 말을 바꾸며 자기들이 본색을 스스로 드러내게 되어있다.” 나는 이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그 검사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들이(나는 복수로 표현한다) 특정인을 “기독교윤리학“ 전공자로 임용 받도록 시도하다가 그것이 안 되니까, 다시 불법적으로 ”교양윤리“ 교수로 조작하더니, 이번에는 ”기독교윤리학의 한 분야인 ‘메타윤리’(metaethics)“를 전공한 사람이라는 헛소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젊잖게 ”회복적 정의“를 세우자고 대자보를 써 붙인 것이다.

 

나는 총장이 왜 자기도 제대로 그 본질을 모르는 “메타윤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사들을 설득하려 했는지 그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이사들 중에는 이런 학문 분과의 특수한 용어를 들어가며 발언을 해도 그 의미를 파악할 이가 없다는 사실(그가 이사회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해도 그의 주장의 허점을 되짚는 이사가 한 사람도 없었다 한다), 그리고 윤리학의 역사를 모르는 감신 교수들이나 학생들, 목회자들조차도 이 말이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듣는 이들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자신도 몰랐는데 어쩌랴! 그리고 그는 대학 총장이라는 지위와 권위를 부여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전문용어를 섞어서 그럴듯하게 주장하면 대부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L박사를 옹호하는 총장과 그의 수하들은 자충수(自充手)를 두었다. 내게는 낡고 진부한 “하나의 철학적 윤리 방법론”에 지나지 않는 철학적 윤리의 한 사유방식을 “전공분야”라고 주장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신학-기독교윤리학이 비판 거부해 온 자연주의적 메타윤리 방법론을 “기독교윤리학의 한 분야”라고 이사회에서 총장이 주장한 것은 더 기가 막힐 일이다. 감신의 지성적 수준이 이런 사기극에 기만당할 정도라면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자보를 작성한 그들은 다 함께 합창하며 그들 스스로 L박사는 “기독교윤리학 전공자가 아니다.” 라고 고백한 셈이다. 이런 주장을 남이 했다면 그저 무식의 소치라 하겠지만, 이런 헛소리를 보직교수들이 대자보로 써서 감신대 총장 이름으로 교정에 붙여 제자들에게 읽도록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나는 절망에 가까운 한숨을 쉰다.

 

4.

죄인인 우리들은 사실 피차 그리 큰 차이는 없다.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선과 악의 비교는 아마도 근소한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선과 악에 관한 논쟁이 일어날 때 선명해지는 방법적 차이는 있다. 선한 이들은 최소한 양심을 버리며 비열한 행위나 거짓을 동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양심을 버리고 자신들의 악을 가리기 위하여 비열한 행위나 거짓까지 동원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악한 자들은 그런 류의 악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L 박사에게 권한다. 총장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제 그것을 입증할 책임은 총장과 더불어 L 박사 그대에게 있다. 메타윤리를 공부했다고 총장이 대자보에 썼으니 부디 메타윤리 방법론으로 기독교윤리학을 전개한 현대 기독교윤리 학자가 있다면 공개적으로 나를 반박하며 소개해 주기 바란다. 학문이 짧아서 내 소견으로는 아마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 없다면 이제 조용히 물러서기 바란다. (이사회는 조사에 앞서 총장과 L 박사에게 이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가 막힌 기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실을 되찾아야 이게 제대로 된 회복적 정의다.) 그리고 총장과 더불어 거짓을 옹호하던 이들에게 권한다. 그대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제자들을 속이고, 목회자들을 속이고 있다. 어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교실로 돌아가 이번 학기를 아름답게 마무리 짓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감신대 기독교 윤리학 교수로서, 그리고 감신인의 하나로서 나는 거짓이 이기도록 무책임하게 방관할 수는 없다. 나는 총장이 대자보에 쓴 것처럼 그를 차별하거나 냉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 뿐이다. 교수로서의 마지막인 소중한 학기를 다른 이의 거짓을 지적하는 이런 글을 쓰며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이 비애스럽다.
 

2015년 4월 25일

박 충구

   
▲ 감리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드립니다 4월27일
   
▲ 사실확인서('감신의 회복적 정의...' 운운 뒷면에 인쇄된) 4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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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 (116.127.47.76)
2015-05-07 00:10:09
총장님은 웃겨
총장님이 회복적 정의를 말씀하나본데, 회복적 정의는 사법적 정의와 비견되고, 프로세스는 비슷한 듯하지만 다릅니다. 간단히 소개합니다. 회복적 정의는 먼저 가해자들이 가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대중 앞에서 고백합니다. 그 다음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를 용서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프로세스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자의 주권입니다. 그러니 회복적 정의를 주장하시는 총장님 먼저 피해자들인 학생과 교수들에게 얼마나 못된 일을 했는지 먼저 고백하시고, 그 다음에 학생들과 교수들의 처분만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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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
민토 (175.209.148.24)
2015-05-09 17:41:37
이것도 학교라고... 볼쌍 사납다.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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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나도 궁민윤리 배웠는디 (175.117.188.129)
2015-05-07 13:18:07
나도 궁민윤리 배웠는디
나도 궁민윤리 배웠는디
나도 윤리교수 시켜줘~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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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동문 (121.165.219.106)
2015-05-07 06:05:36
이러다가 이X림 교수 과거 행적까지 나올 것 같다.
이미 졸업생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괜히 이X림 교수 옹호하다가 다른 이슈까지 붙어 더 커질 것 같다.
그리고 총장과 이사장은 자신의 발언을 하는데
왜 이 교수는 침묵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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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115.89.182.212)
2015-05-09 10:15:53
림에 대해선
미국에서 유명하지 않나여
림에 대해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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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하.... 읍 (223.62.216.49)
2015-05-06 18:19:33
하... 읍
인사비리 문제에 메타고 나발이고
1."기독교윤리학"교수 모집에 "기독교윤리학"과 무관한 전공자를 임용했다는 의혹.
2. 백번 양보하고 "기독교윤리학"이 아닌, 소위 "메타윤리학과"로 임용이 가능한가?
3. 가능하다면 그 절차는 어떠한가?
사례 문제) 이사일 경우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와 인사과장일 경우 그 선택의 경우의 수를 각각 서술하시오.
회사에서 인사과 정규사원 모집하는데 법무팀에서 7년 근무한 비정규직 사원이랑, 인사경영전문가 출신의 지원자랑 둘이 있음....
1.아, 그래 우리 회사에서 7년이나 있었고, 법무팀이었음 법지식이 있으니 인사문제에 분쟁이 생기면 감당할 수 있을꺼야 이제 정규사원으로 인사과에서 일하는게 좋겠어...
2. 아, 그래 인사과에는 인사경영이 아무래도 관련성이 높지 필요한 인재야 이 분으로 채용하는게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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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218.154.10.94)
2015-05-06 18:12:00
죄인인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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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아 머리 아픈 감신 (61.77.60.128)
2015-05-06 18:05:08
또 시작되었군요
1. 지금이 어느때인데 신학교에서 싸움질 합니까?
교인은 줄고, 교회는 쇠퇴해 가는 이마당에
2. 이 싸움은 선과 악의 싸움도 본질과 비본질의 싸움도 아닌 오르지
학내, 교단 정치 싸움의 연장인 파벌싸움
3. 결국 공멸로 가는 군요
4. 지긋 지긋한 감신대 교수들의 파벌 싸움 언제까지 봐야하나?
5. 스승다운 스승이 없습니다.
인물을 세우지 못한 감신의 한계입니다.
6. 감신을 보면 화도 나고, 눈물도 납니다.
리플달기
7 5
졸업생 (182.230.181.218)
2015-05-06 16:45:32
박교수님, 그럼 헤겔은 왜 가르칩니까?
독일 관념론하면 안됩니까? 칸트 전공하고 기독교윤리하면 안됩니까?
리플달기
7 10
하.... (183.109.89.169)
2015-05-06 14:53:05
박충구 교수님.... 미천한 제자가 글 올립니다.(2)
4. 박충구 교수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정말 지성이 빛나고 우리나라에서 자랑하는 기독교 윤리학자님이시라면, 먼저 기독교윤리적 행위를 요구합니다. 남의 학문을 비판을 좋지만, 그것을 깎아 내리는 표현이 아주 저질스럽습니다.
만약 인사비리 의혹을 적으신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처럼 학문성이 아니라 인사비리만 적었어도 어느정도 호응은 있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성림교수님이 제가 알기론 게렛과 노스웨스턴에서 힘들게 수학한 것으로 아는데, 선배로서 후배의 학문성을 인정해주어야지요. 이렇게 '학문의 선'을 긋고 학문을 깎아내리는 것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5. 정의를 외치는 것은 좋습니다. 정의가 아닌 것으 하나님의 이름으로 처단한 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악의 모습으로 선함을 위했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롬 3:5-8) 학내사건을 총학과 교수협의회가 정리한(학교측은 제가 알기론 공식적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A 19 page에서 "공익을 위해서 고발한 것이므로 처벌을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여깁니다." 라고 했습니다. 법을 어긴 사람에 대한 비판이면서 어떻게 자기 맘대로 법을 해석해서 자기에게 면책권을 줍니까?
또한 지난 7년간 그래도 비정년 교수에게 두 번인가 한 번밖에 전공 수업을 주지도 않고, 나머지를 유경동교수님과 박충구 교수님만이 가르치는 모습과 이성림 교수님의 의사와 일체 회의가 없이 일괄적으로 나눠는 것이 정말로 윤리적 행위이며, 기독교 윤리학자의 모습이고 지금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비판자의 모습입니까?

6. 박충구 교수님이 의혹을 제기하니 저도 하나 할까요? 박충구 교수님은 이성림 교수님을 내쫓고 P 교수님(시간강사님)을 데리고 오려는 수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년이 눈 앞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틀린가요? 이성림 교수님과 비교 했던 P학자가 박충구 교수님이 학교에서 엄청나게 수업을 가르치게 만드는 P 교수님인 것 모르는 기독교윤리학도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지금 그 분을 이성림 교수님과 비교해서 두각을 드러내고, 그리고 학교 수업을 열 때도 주요 학문을 'P 교수님'에게 일방적으로 좋게 주어서 정교수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믿기지 않은 분들은 학생들에게 부탁해서 2008년 이후의 커리큘럼을 살펴보세요.) 박충구 교수님 이렇게 눈에 띄게 밀면 역풍을 맞게 되어 있어요.

7. 박충구 교수님과 총학 그리고 교수협의회 있는 분들 (특히 신약학자) 제발 성경 좀 읽고 의로운 방향으로 기독교임을 드러내세요!(빌4:2-9)

이 사태를 보면서 답답한 제자이자 후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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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7
이해력이 떨어져 (175.117.188.129)
2015-05-07 13:13:14
이해력이 떨어져
어떤 교수가
학생들이 박충구교수의 글을 읽고 이해나 할까 하는 말을 했는데
설마하니 진짜네.. 댓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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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하... (183.109.89.169)
2015-05-07 18:46:04
대 박충구 교수님의 글을 읽을라면 이해(잘 알아서 받아들임/국어사전)가 필요하군요!
뭐라는건지 이 글 읽는데 어렵습니까? 전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1. 윗글을 위트있게 요약하면!
1) 기독교윤리는 메타윤리랑 같이 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나는 자유주의 기독교윤리는 가르칠거야! 토마스 아퀴나스도 중요하고! (잉! 잉!)
2) 근데 기독교전공하고 메타윤리 전공한 교수가 있어?(버럭)
3) 박종천 총장 너도 각오해라! 넌 내 적이다!(화르륵)
이 글이 어렵습니까? 전 하나도 안 어렵지 않았습니다.

2. 그리고 이 댓글을 적으신 분으 글의 숨은 의도가 뭔지 읽혀집니다.
"너 감히! 우리 대 기독교윤리학자 박충구 교수님의 글을 비판해?
우리 박충구 교수님의 글은 진실이어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
비판은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어!! 우리에게 반대를 해? 넌 무능아야!
우리는 이해하지 않아도 되지요! 왜?
감신대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넘은 세계적인 윤리학자 박충구 교수님의 글이니깐!"
그런데 어떡합니까? 저는 이 글에 대해서 그 분을 이해할 맘이 그럴 맘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이 하도 이상하게 써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나마 논리있는 글에는 이런 댓글 달지 않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가지고 제가 글을 썼나요? 그나마 그것은 의혹이고, 문제제기 할 만한 뉴스니깐요. 그런데 이번 박충구 교수님의 글은 너무 한 분야의 학문을 꺾어버리고 자기만의 상황윤리만이 진정한 기독교 윤리이듯이, 자기전공 기독교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만이 진정한 기독교윤리학자이듯이 이야기 한 것이 너무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정말로 박충구 교수님이 왜 이해 논리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박충구 교수님 너무 글을 받치는데, 1950년대 글은 너무 했습니다. 동성애도 킨제이 보고서(1950년대)에서 나오는 수치로 가르치시고, 이제 업데이트 좀 하세요. 민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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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그런데 (211.36.133.175)
2015-05-06 15:33:51
기독교인의 모습은 있기나한가?
정말로 이사장측이든 교수협의회측이든 화해할 맘은 있기나 하나? 그리고 왜 총학은 화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에서 끼어서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거지? 세 무리 다 기독교인의 모습이 없네!!
그리고 이사장 측에 인터뷰(변명)이 듣고 싶은데.... 당당뉴스 기재 안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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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6
하.... (183.109.89.169)
2015-05-06 14:27:56
박충구 교수님.... 미천한 제자가 글 올립니다.
지금 논리가 비전공자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계속 들어오시는데...
메타윤리는 기독교 윤리가 될 수 없다(?) 이런 것 가지고 들어오시는데, 생각해봅시다.

1. 메타윤리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설마 메타윤리가 뭔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요? 메타라는 말이 어디서 쓰이는지 아십니까? 메타라는 것은 '초월한' 혹은 '~에 대한'이란 뜻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메타윤리라는 것은 '윤리에 대한 철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메타윤리는 윤리에서 발언하는 단어나 생각을 다시 한 번 비평하면서 진정한 윤리인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메타기독교윤리라고 하면, 'A(기독교 윤리행위)가 진정 성경적으로 문화적으로 기독교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윤리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학문인데, 이것이 기독교윤리의 가능성이 없는 메타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저(감신대 석사)같이 미천해 보이지만 조금 공부해본 사람도 기독교 윤리의 가능성을 알 수 있는데 고뫼하신 박충구 교수님이 모르신다니 조금 더 공부 하셔야 할 듯 합니다.

2. 박충구 교수님 말대로 '메타윤리'가 기독교윤리가 아니라고 칩시다. 그러면 '종교비교철학'을 가르치시는 '조직신학'교수님은 뭡니까? 또, 우리 자랑스러운 선배목사님이신 '최병헌 목사님'의 공허은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그 분은 기독교를 설명하기 위해서 감히 기독교와 비교할 수 없는 '유학'을 가지고 왔는데요. 또 기독교를 설명하기 위해서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불교'를 해내신 '변선환 학장님'의 공은 어디입니까? 당시 기독교 세계관이 부족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비교하면서 기독교 선교를 위함이었는데, 박충구 교수님처럼 생각한 당시 조직신학 전공이신 분이 보면, 아주 쓰러지겠습니다.
만약 메타윤리가 기독교윤리와의 만남이 허용 안된다고 하면 그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 더 대단한 사고이며, 또한 그것을 격려할 사항이지 않습니까?

3. 대 감신 교수가 언제부터 선을 긋고 다니셨습니까? 감신에서는 목회자를 길러내는 곳이자, 신학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기도와 예배, 성경읽기와 그리고 목회에 전념을 하되, 학문하기를 선을 긋지 말고 하라는 교수님들과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것을 기독교윤리가 아니야!'라는 편견을 듣게 됩니까?
그렇다면 요즘 기독교윤리학자들의 근황을 아십니까? 현 기독교 윤리의 한 축인 '스탠리 하우어와스'는 '찰스 테일러'라는 학자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설마 이것도 아니라고 할 것 아니지요?) 그 찰스 테일러가 '헤겔'의 영향권 아래 있습니다. 박충구 교수님의 논리대로 하면 우리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신학자'라는 타이틀을 뺏어야겠네요. 아! 그게 아니라 '기독교윤리'학자가 아니라고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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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5
ㅋㅋㅋ (125.146.246.53)
2015-05-06 15:53:24
지금 그 말을
지금 그 말을 박충구 교수가 반박하는데 마치 자기 주장이 진리인 것 처럼 얘기하네요. L모 교수이십니까? 아니면 조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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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9
하.... (183.109.89.169)
2015-05-06 16:03:26
당신이야 말로
ㅋㅋㅋ 님이야 말로 교수협의회측이나 총학 본인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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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1
하.... (183.109.89.169)
2015-05-06 15:57:32
편리한대로 생각하네요.
자기 주장이 진리라고 생각한다고요? 하.... 정말 하.... 입니다. 그럼 자기 확신없이 이야기 합니까? 그럼 박충구 교수님의 글은 다 진리처럼 받아들여 합니까?
그리고 프레임이 아주 저질이네요. 꼭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이성림 교수님이나 그 조교라고 생각합니까? 아주 저질적 사고네요. 과연 선동 당하기 딱 좋은 사고네요. 비판 할 것이 있으면 비판할 수 있죠! 비판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다니, 정말 가관이네요.
참고로 저는 둘 다 수업을 들은 감신대 동문입니다. 답답하네요. 자기 라인측 주장이 아니면 다 이성림교수님이나 그 조교라고 생각하다니, 참으로 짜증도 나고 저질 같은 사고네요. 그리고 보니 당당뉴스에서 올라온 글들에 비판을 적으면 다 이렇게 적은 분이 있었는데, 혹시 그 분인가요? 아주 생각하는 폭이 저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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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9
듣고보니 (211.36.133.175)
2015-05-06 15:29:47
그러네
윗글처럼 박충구가 오바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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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9
이 사람들은 (175.117.188.129)
2015-05-07 13:12:53
이해력이 떨어지는듯..
어떤 교수가
학생들이 박충구교수의 글을 읽고 이해나 할까 하는 말을 했는데
설마하니 진짜네.. 댓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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