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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하라김학현 목사 칼럼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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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4월 29일 (수) 08:44:21
최종편집 : 2015년 04월 29일 (수) 15:51:34 [조회수 :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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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메일을 한통 받았다. ‘틀림’과 ‘다름’이 다르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있거든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막걸리 집이 보입니다. 거기서 300미터 직진하면 됩니다!"

그럼 목사님에게 길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저기 빨간 지붕 교회 보이시죠? 그 교회를 지나 100미터 정도 가면 2층에 장로교회가 보입니다. 그 장로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그럼 사람들에게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한다. 목사나 신부는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한다.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한다.

모두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말한다. 우리는 이들의 대답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입장 혹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한다.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이다. 동양인이 용을 보면 기분이 좋다. 서양인이 용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

동양은 불교 문화권에서 살고 서양인은 기독교 문화권에서 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용은 길한 상상의 동물로, ‘개천에서 용 났다’는 격언을 탄생시킬 정도로 좋은 징조의 상상 동물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용은 사탄을 말한다. 당연히 용의 등장은 그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손등을 위로 하고 오라고 손짓하면 결례가 된다고 한다. 결례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고 가라는 신호라고 한다. 우리는 당연히 손등이 위로 가게 하여 오라고 손짓한다. 어린아이나 개 등에게나 손바닥을 위로 하고 오라고 한다.

문화가 다른 것은 틀리는 게 아니고 다른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평화롭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툰다. 실은 그 어떤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다. 모두가 다르다. 생각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다. 태도도 다르다.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면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어울림이란 바로 다름을 인정하는 삶이다. 어울림이 있으면 조화롭다. 평화롭다. 어울림이 없으면 외롭다. 심심하다. 심심한 삶은 행복할 수 없다. 맛이 있어야 행복하다. 살맛이.

특히 기독교가 타종교에 배타적일 때가 많다. 당연히 절대적 진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까지 갈 필요는 없다. 다름은 그들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인정한다고 내가 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정한다고 내 진리를 잃는 게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가갈 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대화가 가능할 때 선교도 가능하다. 절대적 진리(틀림)을 간직한 채 남의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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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72.37.249.108)
2015-05-01 01:22:45
'다름'이 '틀림'일 수도 있다.
구원에 대하여 '오직 예수'와 '잡다한 방법'은 서로 다르다.
기독교 안에서 이 둘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보고 접근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해와 포용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잡다한 방법'이 우리와 다름과 동시에 틀린 것이라고 여겨야 저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
틀리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틀리기 때문에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며 포용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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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72.196.233.169)
2015-04-29 23:57:11
동감합니다.하나님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꼭같은 것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조화를 통한 질서, 그것이 창조의 신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서로다름른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기호와 선책의 문제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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