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 불일치의 극치를 보여 준 사람

필자에게는 실로 오랫동안 기도로 준비해 수년에 걸쳐 끝낸 일이 하나 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이라는 믿음으로 완성한 하나님의 일이다. 바느질에 비유하면 한 땀 한 땀에 온 정성을 다 들였고, 그때마다 기도하며 완성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한순간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필자로서는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그럼에도 시련은 그만으로 끝나 주지 않았다. 시련 위로 또 하나의 시련이 덮쳐 온 것이다. 설상가상이라고나 해야 할까. 아니 폭설로 제설을 걱정하고 있는데, 그 위에 더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 될 것 같다.

필자는 하나님의 일이란 그게 어떤 것이 됐건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 같은 생각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필자가 바라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그렇게까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다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일의 결과가 좋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건, 그 결과가 좋지 않아 무위로 돌아가건, 그 같은 것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그렇게도 강조하고 역설해 왔는데, 그런 필자가 말과 행동이 겉도는 언행불일치의 극치를 보여 준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인격으로 자기를 길러 가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일이라고 주장해 온 필자로서는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망가뜨린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같은 자신에 대해 깨달은 필자는 소금물로 절인 배추처럼 완전히 풀이 죽고 말았다. 젊은이들 못지않다고 생각해 왔던 의욕도 자신감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또한 은혜인 줄이야. 이 사건이라면 사건인 이번 일은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였다.

의지박약의 필자, 독종처럼 끈기 있는 사람으로

필자는 20대 중반에 자신의 주인으로 예수를 영접하였는데, 그러기 전까지는 열등감의 덩어리라고나 해야 할 것 같은 존재였다. 그 숫한 열등감 중에서도 의지박약은 특히 심각했다.

필자는 고교 졸업이 나이에 맞게 학교교육을 받은 것의 전부였다. 그것도 모자라 그때까지의 학과 성적은 항상 끝에서부터 세는 것이 빠를 정도로 부진했다. 필자라고 공부를 열심히 해 보려고 시도해 본 적이 없었겠는가마는, 그때마다 작심삼일은커녕 단 하루도 계속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공부 못한 것을 머리 나쁜 탓으로 돌리기 일쑤였고, 아니면 의지 약함을 자조하며 열등감만 키워 갔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군에 입대하여 제대라고 했으나 필자는 여전히 열등감을 무슨 숙명이기라도 한 것처럼 끌어안은 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대 직후 예수를 믿기 시작하고 나서 1년이 채 못 되어 의지박약으로 인한 열등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농업계 고교를 졸업한 필자는 제대하자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고 일을 시작했다. 2월에 제대하고 그 봄부터 시작했는데 여름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니 노력은 다른 농사꾼들의 배나 더한 것 같은데, 성과는 그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 농사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필자는 거기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취직이었다. 예수를 믿기 전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지만, 기독교 신앙은 필자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필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는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믿었다. 필자도 공부하면 취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필자에게 하나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전에는 그렇게도 하기 싫어 작심하루도 되지 못했던 공부를 무섭도록 열심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이 아까워 밥상머리에도 책을 놓고 음식을 씹으면서까지 들여다봤다. 이듬해 2월까지 두 번의 시험을 봐 둘 다 합격하는 기적을 낳았다. 그것이 필자에겐 기적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그에 가까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초등교원양성소라는 것을 거쳐 준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당시의 국민학교 교단에 서게 되었다. 그 뒤에도 필자는 공부를 계속하여 지금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다. 젊은 시절의 공부하는 필자를 보았던 주위 사람들은 독종이라 했다. 기독교 신앙이 의지박약의 필자를 그리 만든 것이다.

믿음으로 하는 일상생활이 가장 큰 하나님의 일

열심인 것은 공부나 연구뿐 아니라 무엇이 됐건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 마는 성격의 필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이에도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나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에게 있어 희망이라든가 꿈, 비전 같은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발전도 행복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기 전의 필자가 그랬다. 열등감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바람도 가질 수 없게 했다. 희망과 같은 미래에 대한 기대는 노력에 의해 내 것이 되는 것인데, 의지가 약한 필자로서는 그것을 바라는 게 무리였다.

그럼에도 다행히 예수를 믿은 덕분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게 무모하리만큼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크게 가지는 희망을 야망이라 하니 야망이 있는 필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야망이 됐건 희망이 됐건, 또는 꿈이 됐건 비전이 됐건,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런 것은 어떤 것이나 나쁘다 할 수 없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같은 것이라도 좋은 것이 될 수도,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야망이나 희망, 꿈, 비전처럼 미래에 대해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을 나쁘다고 한다면 말이 되느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이 같은 것들도 나쁜 것이 될 수 있다. 개인적 출세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게 성직자라도, 자선사업가라도 좋은 것일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출세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상인이라도, 정치가라도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된다.

우선 상인 하나를 예로 들어 보자. 그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한다. 손해를 보기 위해 장사를 하는 상인은 없다. 그렇다고 폭리나 정직하지 못한 방법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돈을 번다면 그는 바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실한 자세로 정직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고객들을 대하여 돈을 번다면 그는 하나님의 무엇보다도 큰일을 하는 것이다. 가장 큰 하나님의 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가는 가운데 하는 일상생활임이다. 비록 목사라 할지라도 교회 재정에 눈독을 들인다면 그는 사단의 하수인일 뿐이다.

필자는 어떤 일이 됐건 그것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으로 한다면 하나님의 일이 되고, 하나님의 방법에 어긋나게 한다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니 계획단계에서부터 결과에 도달해 갈 방법을 하나님께로부터 찾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정말 중요한 것은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각오와 결단이다.

나에게 있어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

미래에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주어진 은사에 따라 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은사라고 하는 표현이 마음에 걸린다면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극히 제한된 수의 사람만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일도 많은데, 그런 일은 택하기 전에 자신에게 과연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따져 봐야 한다. 연예인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낭패를 본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목사가 되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과 교인들까지 고생시키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바라는 일을 이루어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창하게 해 주시라고 기도드리고, 직장인은 승진을 시켜 주시라고 기도드린다. 자식들이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라게 해 주시라고, 그리고 이번 입시에 꼭 합격케 해 주시라고 기도드린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계시는 존재인가. 믿는 사람치고 그렇다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 하면서도 실상은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그렇게 행동하는 일이 많은 것이 우리이다.

주인이 종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이 주인을 위해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종은 주인의 뜻을 알아서 척척해 나감으로 주인의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속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그분의 품은 속박이 아니라 젖먹이의 엄마 품처럼 무한한 평안과 자유로움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으로 이 같은 사안에 대해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필자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어 주시라고 금식을 너무 자주하여 몸이 쇠약해지기까지 했고, 탈진한 일도 많았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존재하시는 것처럼 기도했다. 잘못된 신앙의 행태였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그런 구복신앙적 기도까지도 들어 주셨고, 결국 소몰이가 소를 몰아가듯 필자를 당신 가까이로 몰고 오늘까지 오셨다. 앞으로도 하늘나라까지 몰아가시리라 믿는다.

이번 일은 결과론적으로 보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으나, 과정은 감히 말하건대 아름다운 신앙의 열정에 의한 기도와 땀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실패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성공임이 틀림없다. 이를 체험을 통해 다시 한 번 통렬하게 깨달은 것은 필자에게 있어 정말이지 큰 은총이었다. 실패가 더 큰 성공이라니, 기독교는 역시 역설의 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인 우리에게 당신의 일을 하라 하신 것은 당신의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단 엿새 동안에 천지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온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매달려 해도 못 다할 일을 한 순간에라도 해 치우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 일을 하라 하신 것도 일할 사람이 달리 없어서가 아니다. 나보다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일을 하라 하시고, 나에게 특별히 이 일을 하라 하시는 것일까. 당신과 당신 자녀들의 관계를 더욱 튼튼하고 아름답게 하시려 해서이고, 나를 특별히 사랑하셔서이다. 구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를 모두 알고 계시는데도 기도하라 하시는 이유가 그렇듯이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더욱 바르고 굳게 하시려고 일을 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려고 우리를 당신의 일에 동참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니 천지를 지으시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시는 절대자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하고, 소중한 존재인가.

이 같은 존재이니 우리는 마땅히 구해야 할 것, 곧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중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면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과정에만 마음을 써 말씀에 의한 방법으로 진행해 나가면 된다. 그것으로 내가 할 일은 끝나는 것이다. 그것으로 결과의 성패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일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