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웃음

“마지막 웃는 자가 의생의 참 승리자다.”라는 옛 속담이 있 듯이
웃음은 동서고금를 통해서 행복지수를 판단하는 바로미터였고,
복과 성공을 상징하는 징표이다. 현대 웃음 예찬론자들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복과 행복이 스스로 찾아 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도 가급적
억지로라도 많이 웃고, 웃겨보려고 노력을 한다.
사실이지, 인간관계에서 불편한 분위기를 잡는데 웃음처럼 편리한 도구는 없다.

아들 제임스가 어렸을 때 자주 들렸던 중국식당 벽에 이런 내용의
액자가 걸려있었다. ‘儉副 和福’, ‘검소한 생활 속에 부가 찾아들고,
서로 웃는 평화로운 삶 속에 행복이 깃든다.’는 의미다. 유달리 복과 부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들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숙성된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웃음이 행복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나는 가끔 예수의 산상수훈 설교를 읽으며 팔복 중에 왜(?)
“웃는 자는 복이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라는 말을 넣지않고
대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곤 했었다.
하긴, 나라를 로마제국에  빼앗기고 빈곤과, 압제, 질병의 질곡 속에 신음하던
2천년 전 유태사회에 무슨 웃을만한 일들이 그리 많았겠는가. 거리마다 
애통하는자들로 흘러넘쳤을 것이다.

미국식 적극적인 사고 방식에 물든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그런 절망적인 사회일 수록 오히려 
“ 웃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라는
긍정적인 멧세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미국식 적극적인 사고 방식도 먹혀들어 갈 때와 상황이 따로 있는법,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마리를 쳐다보면 수천명이 군침을 삼키고 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웃는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너희들의 것이다.” 하는
소리가 먹혀들어 갈 리는 만무하다. 군중들이 당장 필요로 했던 것은 
목구멍에 풀칠이었을 것이다. 행여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그렇잖아도 복창이 터지는 판국에 염장지른다”며 돌팔매질은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예수가 그 정도로 상황 판단에 어두웠겠는가?
그런 상황에서는 우선 굶주린 군중들의 배부터 체워주고
“애통하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말아라. 곧 하늘로 부터 위로받을 복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이상의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멧시지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 나름데로의 해석이고 이해였다.

그 동안 그에 관련된 설교를 수차례 들어도 보았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죄를 회개하고 복을 달라고 울부짖으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 빗나간 해석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흡족하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에 며칠 전에 성경뿐 아니라 동양 철학에 조예가 깊으신 T 선배로 부터
나의 건강 상태를 묻는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그 분은 통화 때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예를 들어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나에게 운동을 권유하는 건강제일주의자다.

이런 저런 대화 끝에
“T선배,  성경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은 있어도 ‘웃는 자는
복이 있다’ 는 구절은 없는 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예수는 웃음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없는 걸로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고 반 농담조로 물어 보았다.

 T 선배는 나의 엉뚱한 질문에 잠시 망설이시더니
“ 슬픔이 웃음보다 인간들의 근본적인 행복과 관계있는 순수한 감정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어. 맹자의 惻隱之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고
맹자의 측은지심을 들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측은지심은 남의 고통을 보고
자신의 일처럼 애통해 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슬픔이 웃음보다 순수한 감정이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닭이 먼져냐? 달걀이 먼져냐? 하는 의문처럼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선 인간들은 누구나  첫성으로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난다.

인류 역사상 웃으면서 태어난 인간은 여짓껏 존재 해 본적이 없다.
눈물은 슬픔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꽃같은 것이다. 그러니 슬픔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성이라는 주장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웃음이다.
지구상 모든 동물들은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울기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지구상에 웃는 동물은 인간들이 유일하다. 나는 웃음은 인간들에게만 선사한
창조주의 보신용 특별 보너스라고 믿고 있다.

웃음은 인간들은 태어난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일부 학설에 의하면 신생아들의 순진무구 한  웃음 뒤에는 생존을 위한
치밀한 본능적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신생아들이 누군가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아 버림당하지 않겠다는 수단으로
웃음을 선사한다고 한다. 웃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일종의  보호수단인 셈이다.

또, 어떤 학자들은 웃음은 울음의 진화된 형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그와는 달리, 울음은 웃음의 昇華라고 이해하고 싶다. 
이를 뒷바침 해 주고 있는 사실들은 많다.
인간들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웃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린다. 
극한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입을 벌리고 웃는 대신
두 눈에 눈물 방울들이 글썽거린다. 또, 남녀 간 사랑의 극치인 오르가즘에 달하면 
깊은 슬픔 속으로 빠져든다.
사랑 고백은 웃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로 한다.

그렇다면 참 행복은 웃음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관계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세상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본질에서 그 뿌리를 찾아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면에서 애통하고 슬퍼하는 인간 본성에서
행복의 비결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예수가 말했던 애통하는 마음은 惻隱之心, 남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슬퍼하는 인간 본성을 두고 하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 순수한 본성으로의 회복을 통해서만 인간들이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 측은지심은 인간들만 가지고 있는 본성만은 아니다.
내가 기르고 있는 개들도 내가 아파 누워있을 때면 내 발가락을 핥으며
슬픈 모습으로 곁을 지켜주곤 한다. 그러면에서‘측은지심’은
모든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요, 우주의 본성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너가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있고, 너의 행복이 없이 나만의
행복을 지속시킬 수 있겠는가. 측은지심은 너와 내가 서 있는 땅이고, 대지인 것을.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울린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딘-

옛 시대에는 웃음은 천박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비하하여
웃음을 억제하고 감추는 것이 미덕시 되었다. 웃음이 많은 사람은
실없고, 속이 없는 천박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현대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웃음 예찬 시대요, 웃음 홍수 시대다.
웃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설 학원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코메디, 영화, 노래, 서적들이 점점 현대인들의
인기를 점점 얻어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웃음을 행복을 생산해 내는 도깨비 방망이로 신봉해 가고 있다.
결코 나쁜 현상은 아니다.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웃음의 양과 정비례 해서 현대인들이 근본적으로 더 행복해 지고 있는 것일까? 
습관적으로 입가에 미소를 달고 다니는 미국사회를 지켜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하다. 그 웃음들 뒤에  감추고 있는 위선과, 가식,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행복지수가 낮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내 주위 미국인들 중에  비극을 주제로 한 신파조 소설, 영화를 보고,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옛 시절이 더 행복했었노라고
고백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이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은 웃음이 풍성한
사회가 아니라, 울음이 풍성했던 사회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웃음이 부족해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눈물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나만의 괴변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도 가끔 씩,
눈물이 풍성했던 옛 한국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한다.

박평일
 

▲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