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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의 은총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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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3월 19일 (목) 22:39:09 [조회수 :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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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 기간, 40일의 마무리는 성(聖) 주간, 곧 주님의 고난주간이다. 긴 사순절이 마침내 절정에 이르는 때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사순절은 금식 절기라지만, 이러한 거룩한 습관은 계속 약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 그리스도인이라도 고난주간만큼은 적어도 한 끼 금식을 실천하려는 미덕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억하고, 자신의 죄를 겸손히 돌아보아 감사드리면서 실행한다. 일찍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 자신이 좋은 모범이 되셨다. 이러한 금식 전통에 따라 사순절 기간 간단히 먹는 저녁식사를 ‘콜레이션’(collation)이라고 부른다. 서양교회는 평소에도 금요일 저녁을 금식일 전통에 따라 소박하게 식사하는 관습이 남아있다. 경건한 사람들은 금요일 저녁에 육식을 피하되, 다만 생선을 먹는다.

  스캇 맥나이트의 <금식>이란 책은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몸의 언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사실 금식이 거룩한 몸짓인 것은 이해하지만, 배고픔이 가장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도로테 죌레는 “단식은 살아서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붙이기도 하였다.

  맥나이트가 <금식>에서 말하려는 요지는 이렇다. 금식을 고행의 방편이나 금욕의 수단으로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금식이 수단적 행위가 아니라, 거룩한 사랑을 발견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목적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금식을 통해 우리의 몸과 영혼이 연결되어있음을 깨닫고, 그 분께 몸과 영을 의탁한다면 우리의 영성 안에서 몸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율법의 금식 전통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은 유대인의 금식 생활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목적에서 바라보도록 일깨우신 것이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마 6:17). 심지어 다이어트도 자신이 소망하는 몸의 미래형을 상상하면서 기쁘게 참고 절제한다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경건한 금식이야 오죽하랴.
 
  잘 알려진 이슬람교의 라마단 전통의 핵심은 금식이다. 라마단 기간 한 달 동안 모슬렘은 코란 전체를 공동으로 낭송한다. 해가 뜬 낮 동안은 절대 음식물을 먹지 않는다. 그러나 해가 진 직후에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일상과 다른 음식 관습 때문에 병원에 복통 환자가 가장 많은 때가 라마단 절기라고 한다. 역설적이다.

  라마단 금식의 마지막 3일 동안은 금식을 마친다는 뜻에서 만찬을 즐긴다. 금식을 제대로 지킨 사람에게는 금식을 마치는 축제의 기쁨도 클 것이다. 그러기에 금식하는 모슬렘에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을 따지는 새벽과 낮의 경계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경계를 넘으면 절대 음식물을 입에 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은 새벽에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아침의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랍비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언제 아침이 오느냐?” 제자들이 저마다 자기 생각으로 대답하였다. “어둠 속에서 분홍색 실과 푸른 색 실을 구별할 수 있는 때입니다”. “멀리 있는 무화과나무와 돌복숭아나무를 구별할 수 있을 때입니다”. 그때 스승이 대답하였다.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네 이웃으로 보일 때, 그 때에 비로소 아침이 온 것이다”. 
  
  여명과 아침의 경계가 사람을 대하는 시선과 시야에 달렸다는 랍비의 교훈은 금식의 미덕에 깊이를 더 해 준다. 그렇다면 고난주간에 금식하여 그 절약한 비용을 모아 구체적인 이웃에게 돌리면 어떨까? 이미 많은 교회가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 교회도 해마다 금식헌금을 모아 북한교회를 위한 모금에 보태고 있다.

  ‘이밥에 고깃국’이 소망인 북한 동포들은 밥 먹기를 금식하듯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육체의 굶주림만큼 영혼의 기갈 역시 클 것이다. 몸과 영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언젠가 우리 동포는 모두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따듯한 밥과 국을 나눌 것이다. 고난주간에 그런 염원을 간구하는 가운데 ‘빈 그릇의 은총’이 임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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