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박흥규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새 2주기가 되었습니다. 평소 가까이 하며 꾸중을 듣고 욕도 먹었던 후배들이 기일을 맞아 그가 품었던 대관령 골짜기 푸른언덕에서 추모의 마음을 나누려고 합니다. “네 놈들이 보고 싶다”는 음성을 듣는다면 꼭 오십시오. 봄기운을 느끼면서 대관령 옛길로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지난해의 1주기 추도예배 배너

때 : 3월 26일(목) 12시.

찾아오는 길 :

1) 12시에 도착하면 먼저 성산면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함께 걷겠습니다.

2) 오후 1시가 넘어 도착하면 대관령 옛길 옛주막 삼거리로 오십시오.

문의 : 송병구 목사 010-7664-2132

정훈영 목사 010-2786-0063

최병천 장로 010-4228-8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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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 박흥규 목사 1주기 추모예식에서 최병천 님(공덕교회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이 한 추모사입니다.

2014년 3월 22일, 김포 푸른언덕교회.

고 박흥규 목사님의 아름다운 실패

박 목사님은 1938년 충청도 홍성 출생입니다. 가난한 전도사 어머니에게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님은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예당저수지 옆 예쁜 동산 아래 죽림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믿음이 두터운 어머니는 박 목사님에게 언제나 ‘큰 바위 얼굴’이었고, 90이 다 되는 생을 박 목사님 곁에서 사시다 소천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하늘을 자주 쳐다보던 가녀린 시골 아이로 꼬박 도시락을 싸가는 점심시간이 부담되는 형편이라 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자주 하늘을 쳐다본 습성이 가슴에 문학적 상상력을 지피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학 소년은 동국대 국문과로 입학하고 문학도의 수업을 하다가 역시 형편이 여의치 않아 군 복무 후 감신으로 옮기게 됩니다. 기숙사 식당 일로 학비를 가름하며 영천시장에서 리어카로 식자재를 실어 나르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이렇듯 가난한 신학생 박흥규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이해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변선환 교수와의 만남이 그의 신학적 배경이 되었고 조화순, 이현주, 최완택과의 만남이 끈끈한 우정의 산맥을 만들며 오랜 벗으로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첫 목회지는 계룡산 근처 미신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으나, 그의 운명적인 강원도행이 박흥규의 인생에 큰 획이 되었습니다. 강릉에서의 목회에서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치르면서 정치와 권력과 탄압의 국면을 몸으로 체험하며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고성으로 목회지를 옮긴 후 강제징집되어 군입대한 김영현, 최원홍 선생 등 4총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친구가 되어준 일로 그들과 생을 마칠 때까지 교분을 쌓으며 목사가 아닌 형으로서, 삶을 나누는 벗으로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암울했던 1980년 초반 잠시 감리교 선교국에서 임시직으로 일했지만, 그의 성격이나 관계의 미숙함 등 교단본부에서의 일이 마땅할 리가 없었고, 곧 김포 월곶으로 옮겨 농촌 목회에 전념하게 됩니다.

농촌 목회를 하며 건강한 먹거리 운동을 펼치며 좋은 먹거리를 도시로 공급하였습니다. 이는 감리교 농목운동의 초석이 되었고 푸른 언덕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잡지를 펴내는 등 후배들과 함께 농촌을 공부하며 독서에 대한 정열을 가지고 꿈이 있는 후배들을 길러내는 지렛대 역할을 하였습니다. 내가 30대 초반 공덕교회 청년 30여 명을 데리고 월곶에서 두 주간 농촌봉사활동을 하였는데 시절이 시절인지라 젊은이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여건임에도 그는 흔쾌히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때 제가 박 목사님을 처음 사귀게 된 것이지요.

인생 후반기, 그는 그의 고향 충청도로 내려가 목회하게 됩니다. 예산과 홍성은 동학 이후 민족독립운동의 산실이 된 곳인데 그곳에서 민중과 역사에 대한 공부를 심화시켰습니다. 저를 부르시더니 합덕 벌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며 “병천아,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사라져 갔는 줄 아니? 서러운 역사가 가슴 아프다. 죽어간 영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나!”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던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말년의 목회를 다시 강화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사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거꾸로 가는 교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무기력함을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65세에 공상은퇴를 하였습니다. 그때 교단의 어느 실력자가 “돈을 잘 쳐줄 테니 그 자리는 내게 주시오”라고 했다는데 호되게 질책하며 꾸짖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대관령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박차를 가합니다. 그는 괴로움과 시련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동하였고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며 공부하게 됩니다. 자연을 통한 신의 섭리를 나름 ‘수목(樹木)신앙’으로 규정하며 깊이 있는 연구를 하면서 일하고 땀 흘리는 프락시스를 지속합니다. 그러면서 신비의 세계가 마음속 깊이 다가서고 기독교는 결국 신비함 속에 진수가 있다 생각하여 조셉 캠벨의 신화의 세계와 나카자와 신이치의 문화인류학을 주축으로 깊이 공부하였습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는 늘 외로운 말년의 생을 살았습니다. 외로움 속에서 살면서도 가족 걱정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비뚤어진 교회와 교단정치에 분노하였고, 한국정치 현실의 모순과 굴곡 속에서 희비를 맛보며 냉정한 역사를 공부하였습니다. 그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탄력감있는 이해는 그로 인해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깊은 공부가 현실을 변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병천아, 노무현이 죽은 게 사실이냐?” “병천아, 박근혜가 된 게 사실이냐?” 비통한 그의 전화 목소리는 왜 이렇게 역사가 비정한 것인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말년의 그는 늘 돈 걱정을 하며 산 사람입니다. 의사 앞에서 비싼 치료비 걱정을 하니 의사가 제시해준 실험용 개발 약을 싸게 먹을 수 있다며 씁쓸히 웃던 그의 모습에서 삶의 애착이 남달리 강했던 그 애착이 서럽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걱정거리에 대범하지 못했던 소심한 성격이 병을 잘 다스리지 못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종종 나를 만날 때마다 황혼의 삶을 느꼈던 탓인지, 대관령의 꿈이 이어져 나가는 것이 수월치 않을 것이란 짐작에 씁쓸하게 웃곤 하였습니다. “병천아, 네가 하는 ‘책이좋은사람들’을 통해서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미래 세대들과 대관령 농막에 와서 텐트도 치고, 고기도 구워 먹고, 책도 읽고 토론도 했으면 좋겠다.” 당연히 그러마라고 대답하였지만 그의 이 같은 당부는 연약한 인간 박흥규의 내면을 잘 반영한 것이라서... 마음속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박흥규 목사는 목회도, 대관령의 꿈도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패가 애처롭지만은 않은 이유는 그가 겪었던 고민과 삶의 위협을 여전히 우리들도 겪을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지금도 잔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박흥규의 실패는 아름다운 실패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실패라는 점에서 연약하고 빈구석이 많았던 그가 지금 더욱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정말 죄송한 그와의 마지막 만찬이 두고두고 후회스럽습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점에서 송병구 목사와 나는 서둘러 발길을 김포 그의 집으로 돌렸으나 밤 여덟 시가 다 되었습니다. 그의 제안에 따라 김포의 어느 오리고깃집을 갔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박 목사님은 웃으면서 물만 마시며 열심히 전투적으로 먹고 있는 우리 둘을 응시하였습니다. 아! 며칠 후면 가실 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먹어댔습니다. 배고픔과 먹거리 앞에서 그렇게 속물이었습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일 년이 되었군요. 이런 속물들을 그렇게 고운 눈빛으로 바라보셨습니까? 왜 가실 거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날이 풀리면 대관령에서 만나자고 하시며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왜 그렇게 말만 하시고 가버리셨습니까? 형님은 큰사람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형님은 왜 말이 없으십니까?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