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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의 비유풀이 3
이인규  |  dsmed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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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2월 22일 (일) 23:48:56 [조회수 : 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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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이어>

4) 비유의 목적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13:34-35)

마태복음 13장 13-15절 뒤에 있는 34-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언급되는데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한 것”에 대해서 신천지는 시 78:2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신천지는 시 78:2을 반대의 뜻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시 78:2-3)

즉 신천지는 시 78:2을 통하여 성경이 감추어진 비밀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나 신천지의 주장과 달리, 시 78:2의 다른 번역성경을 보면 “숨은 뜻을 밝혀준다”고 번역하고 있다. 즉 성경은 “비밀을 감추어진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밝히고 드러낸다”는 뜻이다.

[공동번역] 내가 역사에서 교훈을 뽑아내어 그 숨은 뜻을 밝혀 주리라.

[표준새번역] 내가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하며, 숨겨진 옛 비밀을 밝혀 주겠다.

[현대인의성경] 내가 비유를 들어 옛날부터 감추어진 것을 말하겠다.

[KJV] I will open my mouth in a parable: I will utter dark sayings of old:

[NIV] I will open my mouth in parables, I will utter hidden things, things from of old

이단들은 ‘비유’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 같다.

‘비유’라는 단어는 ‘파라볼레’라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는데, ‘파라’는 ‘옆에’라는 뜻이며 ‘볼레’는 ‘발로’라는 단어의 파생어로서 ‘던지다, 놓다’라는 뜻으로 ‘옆에 던져놓다’는 의미이다. 즉 ‘파라볼레’라는 단어의 의미는 ‘평행, 병렬’(parable) 이라는 뜻으로, 그 원래의 개념은 “어떤 사물의 옆에 나란히 던져 놓음으로서 두 개를 서로 비교하게 하여 그 의미를 깨닫게 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비유의 목적은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고 알게 하는 것에 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13:10-12)

성경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책인가? 성경은 감추기 위한 비밀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 뜻을 깨닫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책(딤후 3:15)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멧세지를 기록한 책이다.

4가지 밭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좋은 밭’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마 13:23)라고 해석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직접 해석하여 준 것을 기록하지 않았거나, 아무도 그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였다면, 성경은 비유를 감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마13장 뒤에서 비유를 마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말씀을 깨달았다고 답한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마 13:51)

5) 계시

성경은 곧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그런데 계시라는 용어를 이단들은 마치 ‘감추어진 비밀’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계시’(revelation)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포칼뤼프시스’가 사용되었으며, 그 뜻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나님 자신과 그 목적, 행동에 대한 지식을 알리고 드러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감추인 것을 드러내다, 베일을 벗기다’는 의미를 갖는다. 성경이 특별계시라고 하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을 드러내는 내용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시고, 보존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전달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성경이 기록된 이유를 성경에서 살펴보자. 하나님은 왜 성경의 기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요 20:31).

즉 성경을 기록한 이유는 두 가지이며 첫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려고 함이며 둘째, 그 이름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였으며,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야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장차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성경 66권 전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 성경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거한다. 다시 말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닌 어떤 지도자나 어떤 목사, 즉 사람을 증거하는 해석은 무조건 이단이라고 보면 분명하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선지자, 예언자, 사사, 제사장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공동체에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였으며, 때로는 천사를 보내기도 하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직접 인도하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그 말씀을 전하셨으며, 그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곧 신약성경이다. 그래서 정통신학은 성경의 완전성과 성취성을 말하며 성경은 특별계시가 된다고 말함으로서 계시의 종결성을 주장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2)

즉 성경은 그 안에 감추어진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내는 기록이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계시’와는 정반대의 뜻이다. 성경은 ‘계시’(아포칼뤼프시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감추어진 것을 알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롬 16:25-26)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 3:9-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계 1:1)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 3:3-4)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롬 16:25-27)

6) 계시록은 봉하여진 책이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계 5:1-7)

많은 이단들이 계시록 5장 본문을 인용하여 계시록이 봉하여졌다고 주장한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계 5:1)

그러나 본문의 책은 계시록이 아니다. 상식적으로도 본문의 책은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성령께서 보여주신 천상 보좌에 대한 환상의 장면이다. 아직 계시록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사도요한이 환상을 통하여 본 책이 어떻게 계시록이 될 수 있는가? 계시록 본문의 책은 에스겔서를 인용한 것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퍼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겔 2:9-10)

계시록 5장1절의 책도 안팎으로 썼으며, 에스겔 2장10절에서 책도 안팎으로 썼는데, Johnson 이라는 성경학자는 그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안쪽에만 쓰는 경우와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것을 opisthograph(오시스토그라프)라고 불렀으며, 한쪽만 글을 쓰는 두루마기는 매매가 가능하였으며, 양면에 모두 글을 쓴 두루마리는 비매품이었다..... 두루마리는 촛물로 봉하고, 진본임을 보증하기 위하여 도장을 찍었는데, 그 당사자만이 인봉을 떼거나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원본은 인봉하였고 보관되었으나, 사본은 그렇지 않았으며 공개되었다”

에스겔서와 계시록 5장의 책은 장래의 애가와 애속과 재앙이 기록된 두루마리(비블리온)이다. 공동번역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엮어대는 상여 소리"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새번역은 "온갖 조가와 탄식과 재앙의 글"이라고 번역하였으며, 현대인의 성경은 "탄식과 슬픔과 재앙의 말"이라고 번역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은 "슬픈 재앙"이 기록된 책이다. 실제로 계시록 6장 이하에서는 예수님이 일곱인을 떼면서 인류에 닥치게 되는 재앙들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보자. 사도요한은 계 4:1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듣고 하늘로 올라가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게 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 4:1)

즉 사도요한이 하늘 보좌로 올라가서 본 것이 바로 계시록 5장이다. 만일 그 책이 계시록이고 사도요한이 쓴 것이라면 상식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가? 사도요한이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고 쓴 것이 요한계시록인데, 그 환상에서 아직 열어보지 않은 책이 어떻게 아직 쓰지도 않은 계시록일 수가 있는가? 또 계시록을 쓴 저자가 사도요한이면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을텐데 왜 요한은 그 봉한 책을 펴거나 볼 수가 없어서 울었는가?

성경은 오히려 계시록에 대해서 봉인된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있는 가감에 대한 경고에서 ‘이 책’에 대해서 계시록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사도요한이 책을 다 쓰고 마지막 부분에서 결론을 맺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물론 이단들의 교주나 지도자만이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성경을 짜맞추는 것이 곧 가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 22장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단들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즉 22장의 ‘이 책’은 당연히 계시록이며, 저자인 사도요한에게 천사는 "이 책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봉하여지지 않은 것으로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의 계시록이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 22:10)

7)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 10:8-11)

많은 이단들이 계시록 5장과 함께 10장을 인용한다. 계시록 5장의 책을 계시록이라고 하여 봉해졌다고 주장하며, 계시록 10장을 인용하여 계시록을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성경을 다시 예언하라고 주장한다. 천사는 누구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어떤 교주나 목사가 아니라 사도요한에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본문은 계시록이 아니라 에스겔서를 인용한 것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2:9-3:3)

즉 계시록 5장과 10장의 책은 같은 것으로서 에스겔 2:9-3:3에서 언급되는 작은 책을 인용한 것이 그 본문의 배경으로 보며, 사도요한이 하나님께 선지자적인 사명을 받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다시 예언한다”는 것은 재해석을 하라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비유풀이를 하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시 예언하라는 것은 사도요한을 통하여 선포될 말씀이 장차 되어질 사건들과 종말에 대한 구체적 계시라는 것이며, 그 예언의 대상이 과거와 같이 이스라엘 공동체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제는 그 대상이 전 인류, 전 세계라는 범위를 뜻한다. 이 예언은 11장1절 이하의 말씀으로 보며, "다시 예언하리라"는 것은 계시록을 다시 예언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예언을 하였던 것에 대해서, 지금부터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을 하라는 뜻으로 본다.

더욱이 어느 이단교주들을 통하여 다시 예언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도요한을 통하여 다시 예언하라는 뜻으로서, 사도요한의 사명을 강조하는 것이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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