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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축복, 부는 저주인가!?
강만원  |  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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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2월 08일 (일) 20:39:05
최종편집 : 2015년 02월 22일 (일) 23:38:52 [조회수 : 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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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관점에서 가난은 축복이며 부는 저주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가난한 자라야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서 결국 ‘가난이 축복의 조건’이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부자는 이유불문하고 구원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인가. 다시말해 세상의 가치관과 달리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난이 축복이며 부는 저주라는 말인가.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허튼 주장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신약 시대에 이르기까지 부가 하나님의 은혜일 수는 있어도 결코 저주의 상징이 아니다.

당대의 족장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모두 부자였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기록한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에게 예수는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라며 ‘현재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들이 지금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은가.

신약시대는 다른가? 세리장 삭개오는 당대의 부자다.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로마에 바치는 세리는 자신이 징수한 세금에 비례해서 보수를 받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비난과 욕설을 들을망정 세리장은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런 삭개오가 주께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에서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약속했고, 예수께서는 즉각,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했다”고 선언하셨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이라는데, 절반을 나눠주어도 부자는 여전히 부자이며 삭개오는 여전히 부자로 구원을 받았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세상에서 가난하기 때문에 세상의 탐욕과 쾌락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는 뜻일 뿐, 가난 자체가 축복이라는 말이 아니다. 가난이 축복이라면 일하지 않는 자는 결국 축복받은 자가 아닌가. ‘게으름’은 기독교의 7대 중죄 가운데 하나로서, 돌이켜 회개하지 않는다면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가증한 죄일 뿐이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을 잘못 빗대서 부자를 마치 저주받은 자의 상징처럼 여기는 태도 역시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며, 결코 하나님의 뜻일 수 없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서 나름대로 부를 소유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있어서 재물을 모을 수 있었다면 ‘부의 소유’는 오히려 성실한 삶의 보상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남다른 능력을 부여받은 은혜의 증거일 수 있다.

하지만,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익히 보듯이 성경은 부자에 대해서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무슨 이유일까? 성경속의 ‘부자’는 사실상 저주받을 만한 특별한 죄를 지은 것도 없었으며, 거지 나사로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풀지 않았을망정 거칠게 쫓아내지도 않았지만 비유를 통해서 주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부자는 지옥에 갔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다.

성경에 계시된 ‘부’의 진정한 의미와 부자에게 주어진 준엄한 사명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부자는 단지 부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부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죄로 저주받은 것이다. 이를테면, 부자는 자신의 소유를 일신의 쾌락에 사용하지 않고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이 부에 관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며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이다.

‘저주받은 부자’에 대해서 성경이 다른 죄를 명시하지 않고 다만,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버려진 채...”라고 기록한 사실에 주목하라. ‘부자’의 유일한 죄는 자신의 쾌락에 탐닉하면서 거지 나사로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던 죄로, 이를테면 ‘부의 독식과 그릇된 사용’이다.

요컨대 부자라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저주받은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부자이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난한 형제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받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재물의 본래 주인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재물의 소유자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재물을 맡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재물을 사용하는 자가 돼야 한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서 재물은 악하다고 단정짓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주께서 하신 말씀인데, 이 구절이 “악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뜻이라면 결국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불의를 마다하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주의 뜻일 수 있을까? 불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악하다는 의미의 불의와 의롭지도 않으며 악하지도 않다는 의미에서 가치중립적인 불의가 있다. 재물은 그 자체로 악하거나 선한 것이 아니라 본래 가치중립이며, 선하게 사용할 때 비로소 선한 도구가 되며 악하게 사용할 때 악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면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의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부자가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순간, 그는 당당히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부자라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가난한 자라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뚜렷한 교훈이다. 당신이 부자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함부로 입에 담아서도 안되지만, 헛되이 저주의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다만, 부의 바른 사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라. 가난이 축복이며 부가 저주가 아닌 것처럼, 부가 축복이며 가난이 저주도 아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재물은 선악의 내재적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바른 사용과 그릇된 사용에 따라서 구원과 저주를 가르는 심판의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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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2.72)
2015-02-11 12:06:17
그럼에도
성경의 하느님은
당파적(편파적) 이십니다!
당연히 기독교도 그리하여야
할 것이구요.
그러하지 못하므로
기독교는 예수와 하나님 편이 아니 듯 합니다.
그러나 25년 안에는 종교가 사라질 듯 하다는
예측이 있으니
오염되고 왜곡된 종교로서의 기독교도
사라지겠지요.


“지적인 정직성을 견지하다 보면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없는 밈 같아 보입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밈인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뭐가 더 있는 줄 알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종교전쟁,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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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5-02-11 06:32:06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이어서)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가난함도 부요함도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이 말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족을 달까 하다가 그냥 접습니다.)
부요할 때 그 부요함 자체를 기뻐함이 죄악이요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라는 욥의 고백을 되새기게 하는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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