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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소통하라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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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2월 02일 (월) 12:20:35
최종편집 : 2015년 02월 11일 (수) 18:46:56 [조회수 : 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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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욕심을 놓는 것

 

어느 소방서에 신고가 들어왔다.

“우리 아기가 숨을 잘못 쉬어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출동해 보니 아기는 보이지 않고 여자가 이미 숨이진 강아지를 안고 울고 있었다.

며칠 후 들어온 또 하나의 신고를 같은 소방관이 받았다.

“우리 강아지가 숨을 잘못 쉬어요. 이러다간 죽을 것 같아요. 빨리 좀 와 주세요.”

겁에 질린 여자의 목소리였다.

“강아지가 아프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셔야지요.”

소방관의 말에 여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손자가 죽어 간단 말예요. 빨리 좀 와 줘요. 빨리!”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며 한 소방관이 한 말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일어난 해프닝이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으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인간관계를 악화시키거나 크고 작은 집단들의 원활한 활동을 저해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나라나 지자체의 일꾼을 뽑을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소통이다.

소통만 잘되어도 원활한 대인관계에 지장이 되는 일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지자체 일도 나랏일도 훨씬 잘될 것이다.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다.

지금 <당당뉴스>를 우려로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국교회의 퇴락도 알고 보면 제대로 된 소통의 부재가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사들의 일탈행위도, 자성 없는 목소리로 저들만을 규탄하는 손가락질도 많은 부분 소통의 부재로 인해 생긴 현상이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와 소통이 잘못되어서일까. 그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소통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탓이다. 목사들이 범죄에 빠지고, 성도들이 그들 탓만 하면서 자기는 돌아보려 하지 않은 것도 하나님과의 소통부재로 생긴 불행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소통은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일까. 방법은 달리 없다.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그분 하나님께 순종하면 된다. 성경이 하라 하는 대로 하면 된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소금이 짜다는 말처럼 너무도 당연하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기 쉬울 수도 있으나,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성경을 되도록 많이 읽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읽으라는 사람은 많으나 읽고 알게 된 대로 실천하라고 하는 사람이 적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부터 우리 한국 교회의 단추는 잘못 끼워진 것이다. 성경은 읽어 지식을 얻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읽고 알아 그대로 실천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책이다.

물론 온전히 성경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렇게 살려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노력의 시도조차 하지 않고 교회 문턱을 드나드는 명목상의 크리스천이 많다는 사실이다. 목사들 가운데도, 교인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아니 기도도 하고 노력도 하지만 성경이 가리키는 대로가 아니라 그것을 오해로 왜곡되게 한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오해로 인한 왜곡은 왜 하게 되는 것일까. 단언컨대 욕심 때문이다. 자기의 육신적 이익 때문이다. 교회에서가 됐건 교회 밖에서가 됐건 문제는 거의가 욕심 때문에 생긴다. 육신적 이익을 챙기려다 보니 그리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구복신앙이라고 하는 이단적 요소도 다르지 않다. 목사들이 먹사라고 욕을 먹는 것도, 교회 세습이라고 하는 기상천외할 망발도, 목사가 교인들 위에 군림하려는 것도, 교인들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헌금을 짜내려는 것도 다 그렇다.

그 같은 욕심을 버릴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마는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교회 안에서조차 욕심 없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려 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한국 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필자부터가 욕심을 놓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빈번히 들으면서도 놓으면 밑으로 떨어져 죽을까 봐 움켜쥐고 놓질 못하고 있다. 놓으면 하나님께서 받쳐 주시고 더 큰 것으로 주시리라는 것을 믿으면서도, 그 믿음이라는 것이 하도 작아 그러는 것이다.

믿음이 다른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욕심을 놓는 것이 아닌가. 육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영혼의 구원을 최상의 가치로 여겨 그 육적인 것들 위에 두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영적 부요인가? 육적 풍요인가?

 

다행히도 필자는 욕심이라는 마물을 놓아 떨쳐 버리려고 노력만은 하고 있다. 그 노력이 너무도 작아 놓지는 못하고 있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비워내고 있다. 목에까지 차오르다 못해 입으로 벌컥벌컥 넘쳐나는 욕심을 목 부분까지만 덜어냈는데도 운신하기가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은혜이다. 그것만도 참으로 큰 은혜이다. 계속적으로 덜어내야 하는데 잘되지 않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디작은 노력만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은혜이다.

욕심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 움켜쥐기만 하는 것이고, 그 욕심을 놓는 것의 진수는 가진 것이 적지만 그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좀 더 가진 사람이 누군가를 위하여 돈을 쓰면 ‘있으니까’라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니다. 있어서가 아니라 욕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이 적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누며 사는 사람들 중에 많이 가진 사람들보다 적게 가진 사람들이 많음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필자는 가진 것이 적었을 땐 마음 넉넉했던 사람이 돈이 불어 가진 것이 많아지자 인색해진 사람을 여럿 보았다.

그냥 이웃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가친척이나 제 가족을 제외한 피붙이에게까지도 인색하게 굴어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 교회에서는 무척이나 넉넉한 모습을 보여 신앙이 좋다고 칭찬을 듣는 사람들도 있는데, 하나님과 소통이 잘되지 않아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어떤 기회에 여러 집을 순회하며 청소 등의 일을 하는 어느 가사도우미 한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세상을 뜬 남편이 남긴 재산으로 부유하게 사는 권사님 한 분의 이야기로, 자식들은 결혼하여 나가 살고 혼자서 생활을 하는데, 무엇인가 사는 것을 좋아하여 냉장고는 항상 차고 넘쳐 썩어나고, 옷가지는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나누는 데에는 인색하여 무엇 하나 남에게 주지를 못한다.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움켜쥐기만 하고 놓을 줄을 모르는 여집사님 한 분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분은 결국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른 뒤 망인의 시누이가 가사 도우미에게 아직 입을만한 옷 하나를 주자 그것을 본 망인의 출가한 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도우미는 민망하여 받아든 것을 얼른 놓고는 밖으로 나왔는데, 나중에 태울 것을 태우며 보니 그 속에 그 옷도 있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가정교육, 얼마나 엄격한 유산인가.

이는 물론 특별한 경우이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와 같은 요소가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누며 살려는 노력을 한다고는 하지만 필자에게도 그런 면이 다분히 있음을 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 것일까.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 안 된 까닭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일까. 자신이 갖는 관심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하나님 중심 운운하지만 실은 자기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영적 부요가 아닌 육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절대빈곤은 물론 기를 쓰고 피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도 없어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는다면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이 있어 그것의 소중함을 안다면 물질의 많고 적음은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이 못된다. 적으면 좀 작은 집에 살며 작은 차를 타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무엇이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는가.

열심히 일하여 물질을 모으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중요한 것은 영적 부요요, 마음의 넉넉함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과의 소통은 바른 분별력의 산실

 

필자는 지금 하나님과의 제대로 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없으면,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올바른 소통이 없으면 사람의 심성은 거칠어지고 망가진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의 소통을 불통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들은 자기 말만 앞세우고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 하려 않는다. 듣는다 해도 듣고 싶은 것만 듣거나 제 마음에 맞게 왜곡하여 들으려 한다. 본질 아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의도적으로 본질을 흐리게 하여 자신의 곤란한 입장을 모면하려고도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글에 담긴 글쓴이의 의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런 표현을 왜 한 것인지 같은 것은 애당초 관심밖에 일이고 어느 한 구절만을 붙잡고 늘어지며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정반대로 해석하여 비판의 칼날을 세운다. 심지어는 자신의 견해와 같은 내용의 글도 엉뚱하게 읽어내어 비난의 화살을 날려대는 재주를 발휘하기도 한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단절되면, 단절까지는 아닐지라도 잘못되면, 내 눈 속의 들보는 티끌보다 작게 보이고, 남의 눈 속의 티끌은 들보보다 크게 보인다. 잘못된 결과는 모두가 네 탓이고, 일이 잘되면 내가 잘해서라 한다. 칭찬이나 덕담은 힘 있는 사람에 대한 비위맞추기 도구이거나 자기편에 속한 사람들에게나 하는 교언(巧言)에 불과하다.

지난번에 네가 한 행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네가 하는 일은 어느 것이 됐건 옳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너는 왜 싫어하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보고는 겸손해라 하면서 자신은 절대자적 위치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끝이 날카로운 송곳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남의 가슴을 찌르기도 하는데, 찔리면 내가 아픈 것처럼 다른 사람도 아프다. 모두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흐트러져 소통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온 현상이다.

신앙적인 면이 됐건, 사회적인 면이 됐건, 또는 정치적인 면이 됐건 선의의 비판은 대상의 성장이나 진전을 불러온다. 성경에 판단하지 말라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하지 말 일이다.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지만 판단하라는 말씀 또한 있다.

비판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며 또한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거나 밝히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비판은 물론 후자이다. 그런데도 마음에 들지 않거든 ‘비판’ 또는 ‘판단’을 ‘분별’로 치환(置換)한다면 어떻겠는가. 문제가 되는 것은 비판이나 판단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자성 없이 한다는 점이다. 자신은 보지 않고 대상만을 보며 하는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 너와 나 모두를 망가지게 하나, 자성을 곁들인 비판은 좀 더 나은 내일에 향한 동력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도 믿는 우리를 향해 당신과의 관계를 말씀(성경)과 기도를 통해 바르게 회복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소통의 통로를 열므로 자녀인 우리가 아버지이신 당신의 뜻을 바로 알기를 바라시고, 우리의 기도(소원)가 당신의 뜻에 따른 것이 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과의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사람과의 소통은 너와 나 사이의 벽을 허물어 인정 훈훈한 사회를 만든다. 소통, 그것은 움켜쥐고만 있던 것으로 나누게 하고, 네 탓만이 아니라 내 탓 쪽에도 마음을 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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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58.140.193.110)
2015-02-03 13:09:45
종석이 아저씨 참 인간되는는 글렀네요
목사이라는 양반이

그어머니에 그딸이라는 개소리 헛소리를 씨부리는데 그게 정말 목사가 가져야할 태도입니까

무슨 케이블티브이 남씹는 방송도 아니고

그어미니에 그딸이라

진짜 그목사에 그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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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2
이사야 (121.129.18.3)
2015-02-02 20:12:47
인간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재벌에게 .법조계인간들에게. 언론인들에게.지식인들에게
목사들에게 실망하고 절규하는 사람이 늘어 가고있다.
결국 짐승 들에게 애정을 표현할수밖에 그리고 사랑스런 그 짐승들에게 위로 받을수밖에......
지식인 들이여...입으로만 말하지말라 표현하지말라...십자가의 의미가 뭔지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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