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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성도는 '호갱'이 아니다
강만원  |  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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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년 01월 27일 (화) 00:12:34
최종편집 : 2015년 02월 11일 (수) 18:47:56 [조회수 : 9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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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성도는 ‘호갱’이 아니다

‘100만 가나안 성도 시대’가 도래했다. 흔히들 한국교회의 변천사를 말하면서, 70~80년대의 부흥기를 거쳐서 90년대부터 한국 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인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교인들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예수를 믿는 교인들의 수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교인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을 뿐이다. 끝없이 터지는 목사들의 비리와 교인들의 위선적인 삶, 그리고 한국교회의 총체적인 불의에 환멸을 느낀 그리스도인들이 ‘한국교회의 안락한 예배당’을 버리고 기꺼이 거친 광야로 뛰쳐나간 것이다.

물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통칭해서 가나안 성도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실족’한 사람들로, 교회를 떠나는 동시에 믿음을 버리고 예수를 떠난 불신자도 있고, 일부는 개인적인 사정이나 허물로 인해서 부득불 교회를 떠난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을 모두 가나안 성도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성도로서 변함없이 예수를 믿고 있으며, ‘새 둥지’를 틀기 위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교회’를 갈망하고 있다.

아마, 세계를 통틀어서 한국만큼 전도에 열정적인 나라가 없을 것이다. 교회마다 ‘전도폭발훈련’은 기본이고, 전도대는 교회의 핵심 부서다. 노방 전도나 축호 전도는 이미 오랜 전통이며, 진돗개 전도에 고구마 전도, 번개 전도에 관계 전도처럼 새롭고 다양한 방법들을 줄기차게 선 보이며 교회마다 한결같이 전도에 혈안이다. 예외없이 전도왕은 교회에서 최고의 칙사 대접을 받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우수한 교인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전도의 목적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로이 전하면서 불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전도는 엄밀히 말해서 성경적인 의미의 전도가 아니다. 교회마다 새로운 교인을 전도했다면서 ‘새가족’으로 정성스럽게 모시지만,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다른 교회에서 ‘수평 이동’한, 기존 교인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곁에서 지켜본 수치대로 굳이 비율을 말하자면, 기존 교인이 거의 100%다. 예를들어, 한 주에 평균 10명의 새가족을 소개한다고 가정할 때 대략 10 주에, 다시말해 100명의 새가족들 중에서 기껏해야 한두 명 정도가 교회에 처음 발을 딛은 새신자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한국의 개신교인 비율이 전체 국민의 20%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추수할 곡식’이 곳곳에 널렸는데 도무지 추수가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예수께서 “너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기면 답은 금방 떠오른다. 이유인즉, 타락하고 부패한 한국교회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의 철저한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일망정 한국 교회에 대해서 최소한의 호감이 있어야 그나마 전도가 이뤄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종교가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기윤실’에서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한국교회의 앞날이 실로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가톨릭의 신뢰도가 34%, 불교가 27%인데 반해 개신교의 신뢰도는..... 8%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최신 기법(?)을 동원해서 전도에 매달린다고 해도 결과는 뻔하다. 기껏해야 다른 교회의 교인들을 빼내서 제 배 채우기에 급급할 뿐이며, 한국교회 전체로 볼 때 전도의 결실은 결국 제로인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교인들조차 한국교회의 불의와 목사들의 비리에 절망감을 떨치지 못하면서 점점 교회에 등을 돌리고, 서서히 교회에서 이탈해서 ‘가나안 성도’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아예 한국교회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교인들의 수평이동은 암만해도 ‘제 살 깎아 먹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요즘 한국교회는 전도의 새로운 대안으로 가나안 성도를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는 ‘소환 작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가나안 성도의 수가 100만에 이르고, 지금 추세라면 불과 수 년후에 200만을 웃돌 전망이기 때문에 가나안 성도를 향한 한국교회의 구애는 더욱 뜨거워질 수 밖에 없다. 이쯤되면 가나안 성도는 이른바 ‘블루 오션’이 아닌가. 전도는 사람 낚는 사역이라는데, 이보다 좋은 어장이 어디 있는가.

교회의 양적 성장에 골몰하는 ‘보수적인 교회’를 빗대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들을 - 정확히 말하면 교회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떠난 성도를 - 다시 교회로 부르기 위해서 이른바 ‘개혁 목사들’도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쓴다. 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교회를 떠난 성도를 유인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가나안 성도에 대한 그들의 접근 방식이나 인식을 보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가나안 성도는 단순히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현상들’ 때문에 순간적으로 실망해서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요인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형식적인 개혁으로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깨달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교회를 떠난 것이다.

새로운 교회상을 제시하며 열심히 개혁을 부르짖는 목사들을 보면서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그들이 제도를 비롯한 지엽적인 문제에는 민감하지만 정작 본질적인 문제에는 매우 둔감하다는 사실이다. 가톨릭을 결정적으로 타락시킨 중대한 요인이 ‘사제 성직주의’였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를 패망의 길로 이끄는 절대 요인은 반성경적인 ‘목사 성직주의’다. 엄밀히 말해서, 소수 특권층이 누리는 ‘성직 주의’는 결국 성직자 독재주의이며, 소수를 위한 성직주의는 거룩한 성도의 보편적 직분인 성직과는 엄연히 다르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유대 종교권력자들의 탐욕과 외식의 도구인 율법주의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성직과 성직주의는 근본부터 다르다. 성직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에서 파생하는 영적 개념인 반면에 성직 주의는 인간의 종교의식에서 비롯되는 육적인 가치관이며 종교 우월주의의 배설물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외치는 목사들이 나름대로 애쓰지만 그들에게 그닥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작 그들은 한국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며, 설령 깨달았다 해도 실천의 의지나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근래에 가나안 성도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은 더 이상 목사를 영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 이른바 특별한 소명을 받은 ‘성직자’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목사는 ‘우월한 영적 존재’가 아니라 같은 성도일 뿐이다. ‘같은 성도일 뿐...’이라는 말은 성도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급적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그들은 이미 깨달았다는 뜻이다.

개혁을 내세우는 목사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목사의 우월한 권위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한국교회에 진정한 개혁은 있을 수 없다. 본질상 교회는 차별적 서열과 계급이 없이, 형제로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개혁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로 교회가 근본부터 다시 세워지지 않는다면 가나안 성도는 결코 지금의 한국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다.

분명한 의식이 있어서 제도권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들에게는 교회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제왕 목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같은 성도로서, 그리고 주 안에서 수평적 관계로서 ‘형제’가 있을 뿐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개혁을 주장하는 목사들 가운데 진정 ‘목사의 특권 의식’을 버린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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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218.38.162.72)
2015-01-27 23:56:57
가나안-안나가 성도?
몰상식한 성직자, 몰상식한 성직주의가
가나안 성도들을 만들었군요.

사실, 현실기독교 신앙 자체가
혹 <몰상식>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요?

가나안 성도(성도가 사실이라면)들은
이제 넌더리가 나도록 현실기독교 신앙의
넉넉한 <몰상식>을 깨친 게 아닐까요?

상식이 통하는, 진실이 담긴
기독교를 그려봄이 어떨른지요?

최소한 <가나안> 성도들이
기꺼이 <나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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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5
무릇돌 (218.38.162.72)
2015-01-29 23:54:57
가나안? 안나가?
예수를 예수되게 한다면...

기독교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 아들이요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구세주이시라면
아, 예수라는 분은 정말 쥐구멍을 찾고 계실 게다!

징그러운 모습을 한 자들이
대단히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하면서
자신을 구세주요, 신의 외아들로,
나아가 신으로 목청돋우어 찬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겠는가?

하여 아마도 한국의 개신교 교회에는
예수는 자리하지 않으실 듯하다.
아무리 저들이 자신을 흠모한다 노래하여도
저들의 자리에 함께 하시기가 어려울 듯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이라 아니하여도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자라 아니하여도 좋으니
제발, 진정으로,
더 이상은 나를 욕보이지 말라고
예수는 손사래를 치실 듯하다.

예수를 스승으로 만이라도 생각하여
그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만이라도
예수는 충분히 흡족해 하실 터인데...

종교의 종말을 고하려 했던 예수는
종교의 종말 그 자체이셨던 예수는
추종자들이라 하는 자들이 만든 종교의 포로가 되어
종교의 종말을 선포했던 그때보다도 더 슬픈
예수가 되었다.

이제, 예수에게서
종교의 올가미와 껍질을 벗겨드려야 한다!

당신은 구세주요, 신의 아들이요, 신이라 하는
너무나 진부하며 더 이상은 무의미한
종교적 수식어들은 저 멀리 폐기하고
예수의 민낯을 드러내며
그분의 육성에 귀기울여야 한다!

진정 예수가 구세주이시라면,
예수를 옥죄고 가리는 종교적 장식물을 제거하여
그의 진정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만 한다면,
예수는 예수가 될 터이다!

이제, 예수에게서
종교의 올가미와 껍질을 벗겨드려야 한다!

예수를 예수 되게 하라!
리플달기
15 22
뜨인돌 (146.235.66.59)
2015-01-30 02:54:13
예수는 누구인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의 복을 얻는다.
그 구원이 이땅에서도 이루어지나 궁극적으로 새하늘 새땅인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을 확증하는 사건이 부활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헛된 것이요 예수는 사기꾼이며 전술한 모든 것들은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다.
부르심을 입은 죄인들이 예수를 구세주라 찬양한다.
그 찬양을 하나님은 기뻐받으신다.
왜? 저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저들이 박혀있다.

자신이 얼마나 깨끗하면 징그러운 모습을 한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못마땅해 할까?
문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라 시인하고 믿는가이다.
그 믿음 속에는 비록 우리가 아직도 죄에서 헤매이지만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의 믿음이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단순히 그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구세주 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덕 윤리적인 말씀을 베푼 자로 격하하여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씀을 따르며 산다는 그 이면에 구세주요 주님이시라는 믿음이 없다면 결국 세상의 성인군자를 따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윤리 도덕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의 상식을 강조하게 되면 구세주요 주님이신 예수는 사라지고 헛된 역사적 예수만 따르는 불쌍한 존재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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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깨는돌 (218.38.162.72)
2015-01-30 06:53:27
에이
회섞은 뜨물 같으니...


흡혈귀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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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깨는 돌 (218.38.162.72)
2015-01-30 06:55:17
그래,
예수가 죄인을 불러 모아
이전보다 더 큰 죄인 만들려 오셨단 말이우?

그러니 개독교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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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뜨인돌 (146.235.66.60)
2015-01-30 11:26:06
ㅉㅉㅉ
'더 큰 죄인'이란 아마도 작금의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특히 목사들의 도덕적 타락을 두고 사용한 듯한데 이는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셨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만방에 알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인'보다 '더 큰 죄인'은 없나니 '개념'의 도착증을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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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익명 (146.235.66.60)
2015-01-30 10:22:38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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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깨는돌 (218.38.162.72)
2015-01-30 07:43:04
예수가
죄인을 부르신 것은
그 죄인(암하레츠; 땅의 사람들)들이
도덕적인 죄인이라서보다는
당시의 종교문화권에서 인간 취급 못받던
하층민들을 불러
그들에게 하늘나라를 체험하고
참여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권력(성직계급)은
천국문을 닫고 저도 안들어가며
남도 못들어 가게 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천국은 저 멀리
죽어서나 가는
종교사기꾼들의 미끼로
추종자들에게는 아편으로 전락하였다.

눈에서 얼마 만큼의 비늘이 떨어져야
어떤 안약으로 그대의 눈을 씻어야
진실과 진리가 보이겠는가?

혹 그대도
예수 이름 팔아 밥벌이하는
그런 자인가? ㅉㅉ.
리플달기
2 6
뜨인돌 (146.235.66.60)
2015-01-30 11:11:53
예수가 죄인을 부른 것은 도덕적인 죄인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층민을 불렀다?
그 목적은 당시 종교권력이 천국문을 닫고 남(하층민)을 못들어가게 막으니 예수가 대신 하층민들을 불러 하늘나라(천국)을 체험하게 하려고?

지금 펼쳐진 논리의 저변에는 현재 목사를 위시한 종교권력가들은 도덕적인 죄인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예수는 그런 도덕적 죄인을 부르지 않았는데 교회에는 그런 도덕적인 죄인들로 차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불렀던 그 하층민들은 오늘날 소위 종교권력가들이 저지른 도덕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바리새인들이 말한 '죄인'과 더불어 먹고 마신다고 비난할 때 '죄인'은 오늘날의 종교권력가들에 대한 '죄인'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오히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도덕군자였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인이었다. 그러한데도 저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도덕적인 죄를 저지른 자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바리새인이든 세리든 창녀든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이고 예수는 누구도 예외없이 회개하라고 하셨다.
하층민만 회개하였나? 그 하층민은 모두 회개하였나? 종교권력가들 가운데도 회개하였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그러면 하층민만 불러야 하나? 오늘날 교회가 변질되어 하층민이 가기 힘든 곳이 되었으니 예수가 부르는 곳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웃기는 주장아닌가? 교회는 하층민이 아니라 '죄인'이 가는 곳이다.

'죄인'의 개념에 대한 도착증인지 아니면 피해망상증인지 이것부터 해결해야 예수가 불렀다는 '죄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리플달기
6 3
그날에.. (183.106.194.85)
2015-01-29 13:27:01
그래도 교회가 그립습니다.
가나안 성도로서 얼마나 교회공동체가 그리운지요...

성경엔 네 눈이 범죄하거든 찍어버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하셨지요.
흰 예복을 입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좁은길을 가라고 하셨으며
아무리 주여주여 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정욕과 탐심을 죽이지 않는 자는
다시 말해 넓은길을 간 자는 넉넉하게 못 들어간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믿음만으로 구원얻는다면 착한행실을 축복받기 위한 깨끗한 그릇준비라고 가르치니..그런교회에 어찌 몸담고 싶겠습니까?
야고보서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믿음 즉 다시말해
지옥갈 믿음이라고 하셨으며 마귀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떤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하늘나라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몸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것)
내 영혼을 건져내랴!
극심하게 호소하다가 영원불변 한가지를 발견하였습니다.
킹제임스성경 로마서8:1 개혁성경에는 1절 뒷부분이 빠졌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우린 성령을 따라 걸어야 정죄함이 없습니다.
성령의 법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게 하십니다.
그런데 현존하는 교회에는 성령을 따라 걷는 삶을 살도록 재시하는
교회가 많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너무 그리워 집에서 가까운 아무교회나 가서 공동체 일원이 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 권위가 말씀보다 앞서 있어서...

우린 십일조보다 더 많은 용량으로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내리시지요.
십일조는 구약의 개념이며 연보는 십일조의 율법적 개념을 띄워넘은
신앙의 결실이라서 헌금이 아니라 삶의 실천 증거물이지요.
이젠 나 한사람 한사람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가 되어 소금과 빛과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초대교회같은 교회가 그립습니다.
내가 내것이 아닌것처럼 퍼주고 나는 굶어도 사랑만 남는..
아...그날이 사무치게 기다려 집니다.
리플달기
7 0
포이멘 (183.109.99.69)
2015-01-29 12:40:33
가나안 성도는 호갱이 아닙니다. 우리의 희망 입니다.
.
가나안 성도는 우리의 희망 입니다.

소경인 목사가 없는, 건물인 성전이 없는, 제물인 십일조가 없는

초대교회를 세우는 자들 입니다.

우리 모두 가나안 성도가 됩시다.
.
리플달기
7 2
익명 (211.211.101.185)
2015-01-29 05:24:37
.......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5 3
포이멘 (183.109.99.69)
2015-01-29 12:34:49
그렇지요. 가나안 성도가 희망입니다.
.
교회의 불의에 대항한 가나안 성도가 바로 예수살이를 하는 자들이지요.

그리고 소경에게 사로잡힌 불쌍한 성도들을 구할 희망입니다.



소경인 목사가 없는, 건물인 성전이 없는, 제물인 십일조가 없는

삼무교회가 바로 초대교회가 아닐까요?
.
리플달기
3 0
삼청교육대 (210.97.69.109)
2015-01-28 15:21:12
이런글을 볼때마다
강만원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이런글을 볼때마다 서울 부산까지
KTX타고 가는 시대에 서울에서 부산갈려면 밥잘먹고 짚신준비해서
호랑이 나올까봐 낮에만 다니라는 식의 사고방식과 다를게 업어서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우선 교인수가 줄어던게 목사비리 같은 단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가나안이건 이런 사람들은 솔직히 무신론자와 다를바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를 안나갈까 제가 이문제에 대해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특히 젊은이들과 이야기해보면서 느낀것은

일단 무엇보다도 나이많은 사람들은 죽고 젊은 사람들은 교회안나는
선진국형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못할까요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에서 메이저교회라는 영락교회같은 경우
5만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만명정도인데
그 교회목사들이 하는 일중에 장례식이 무척 많습니다

이것은 영락교회뿐만 아니라 대다수 마친가지로 나이많은 사람은
곧죽고 젊은 사람들은 유입이 안되서 그런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젊은이들이 교회에 안갈까요
이것은 참 많은 복합적인 주요원인과 부차적인 원인이 많은데

일단 부차적인 기독교에 대한 반감 목사비리 기독교인의 자기독선적인같은
문제는 뒤로하고 주요원인을

살펴보면 어느세대냐 마찬가지지만 지금 젊은 세대들은 돈이 지배하는
이 자본주의 세대에서 교회에 돈을 낸다는 거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 돈 내바에야 내 발전 내행복에 투자하겠다



지금 모여서 식사를 하면 오십대 이후의 세대들은 그냥 한사람이
계산을 하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각자가 먹은것은 각자 계산이 너무나 당연하고
서로 부담안가지고 좋지 않냐 이렇게 합리적인입니다

이런 젊은 세대들이 과연 교회에 돈갖다바치는것을 좋아할까요

왜 돈 교회에 갖다바치냐 내가 교회에 갖가 바치면 좋은게 있냐
기브엔드테이크 아니냐
근데 내가 돈을 주면 좋은것은 목사들이고 이교회가 내교회냐
목사교회지
극히 합리적인고 실리적인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2번째는 교회는 지루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하도 교회의 성도들이 빠져나가자 지루함을 없애고
교회에 음악을 신세대풍으로 바꾸고 목사가 청바지를 입고 재미있게
설교하고 어느정도는 성공을 거뒀지만 역으로 교회예배 자체를
후퇴시켰다 욕을 많이 먹었죠

근데 속된말로 걸레가 아무리 빨아도 걸레인것처럼 교회가 아무리 재미있게 하더라도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지루할수 곳이 될수밖엔 없습니다

기성세대야 지주장 못하고 조용하고 보고 즐기게 없이 또 교회가면 여자라도 볼수 있고 행사도 하니까 좋아하지만

젊은세대들이야 인터넷 스마트폰 그리고 선진국형생활인 개인주의 외로움
보고 즐길게 많은 이 시대에 뭐 케케묵은 헛소리나 하는 교회에 갈 이유가
어디겠습니까

목사비리요 요즘 젊은세대들은 목사비리보다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차라리 인터넷에서 개독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그나마 한국교회에
관심이 있으니까 낮은 편이죠


이밖엔도 여라기지 문제가 있지만 일단 긴글이 되니까 제쳐두고
제가 솔직히 목사들이나 기성세대에 불만이

시대가 바뀌었고 그 시대의 흐름이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것을 볼때마다 참 안타깝습니다


마치 종교적 아집에 사로잡혀서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이 좋은 말씀을
왜 안믿는냐 폭력적으로 강권하기보다는

젊은이여 당신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이 문제인가 한번 알고싶다는
마음을 가진본적이 있나요

내가 보기엔 그런사람들은 없고 그냥 나이먹고 이대로 갈래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도 그런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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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24)
2015-01-28 14:54:43
자업자득 아닌가
이땅에 대형교회...순복음교회.명성교회.사랑의교회 들의 행태를 보면
당연한것 아닌가...제왕적 목사들의 범죄행위...성추행.. 성희롱..교회제정 지맘대로. .교인의 서열화.불의한 정권과 결탁.,입으로만 말하고 자신들은 맘몬의 수하가 되고..성서를 지맘대로 해석하고..자신의 말도 안지키고,,,교인의 무뇌아 무의식지향.등등 이루 말할수없는 사악한 짖거리들을 하고 있습니다...그런 막사님들의 행태를보며 웬만한 중소형교회도 그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정신차리고 교회를 가려 섬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절규하는 마음으로 권면 합니다...한국교회가 망해야 합니다....에레미아 선지자의 심정으로 돌아가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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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210.97.69.109)
2015-01-28 15:30:08
자업자득아닌가
여기에 이사야가 뿌려놓은 욕설이 과연 사람들에게 특히 개혁적인 교회에 가면 이사야같은 헛소리나 하겠지 싶어서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사야는 망해야 합니다 삼청교육대의 심정으로 돌아가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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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24)
2015-01-30 16:07:37
삼청아
나의 귀여운 조카쯤 되는 녀석아 나는 망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다....이말이 뭘 의미하는지 아는가....근디 너는 부모에게 효도는 하는가 형에게 신뢰를 받는가 동생을 사랑으로 대하는가
주의사람에게 일김일것은 뻔하다....니가 철들기 까지는 절때 결혼하지 말거라.....99% 삼년안에 이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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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198.208.159.17)
2015-01-28 20:36:05
궁금
그런데 삼청교육대님은 이름을 그리 지으셨는지요? 어떤 깊은 의미라도 있는지 늘 궁금했었습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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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210.97.69.109)
2015-01-29 15:57:17
제가 아는 인간사람이 있는데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윤리 도덕을 갖추지 못했는데 이 사람이 자기는 억울하게 삼청교육대를 갔다왔다고 합니다 과연 이 사회에 불필요한 인간이라도 다른 악을 만들어서 처벌하게 옳는지 무엇이 악이고 선인지 헷갈려서 그냥 삼청교육대생이라고 인생은 어차피 교육과정이고 죽으면 졸업이고 뭐 쓸데없이 개똥철학생각하다가 삼청교육대생인것처럼 느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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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124)
2015-01-30 16:11:02
그대가 그리 자신을 생각하면
그리 되는것이다.....차라리 사울이라고 칭하면 바울이 될수있지 아니한가.......조카뻘일까 자식뻘일까 막내 동상뻘일까
제발 잘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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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갑니다 (198.208.159.17)
2015-01-30 01:28:12
아..
그렇군요. 질문에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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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어쩌랴 (112.163.179.132)
2015-01-28 14:43:17
가나안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것은 저자의 지적처럼 목사들의 우월한 권위의식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목사들의 우월한 권위의식을 느끼게 된 것은 목사들이 앞 다투어 도입한 성경공부의 영향이라는 것을 성도들은 알아야 한다. 성도들에 대한 성경공부의 열풍이 어느 교회할 것 없이 불어 닥칠 때 쉽게 예상되어진 현상은 바로 가나안 성도들의 양산이라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성도들 중에 성경공부를 함에 있어서 진정으로 배우려는 의지를 가진 성도들은 그 공부를 통하여 이미 성도들에겐 구원이 임했음과 모든 죄를 사함 받은 면죄부를 손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교회를 떠나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확신을 가진 성도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가나안 성도들의 교회를 떠나도 이미 받은 구원은 결코 변함이 없으리라는 확신은 우월한 권위의식을 가진 목사들의 공이 적지 않음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들에게 묻고자 한다. 그대들은 성경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교회에서 배워 그것으로 인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면죄부를 지님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떠나도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을 받기에 조금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니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이요.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확신하고 있는가? 아니면 유명한 목사님들이 성령에 의지하여 기도함으로 만들었으며 가르쳤으니 확실하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사기꾼보다 사기 당한 피해자를 향하여 동정적인 분위기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기꾼이나 사기 당한 피해자나 다 같은 악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구원에 관한 확신은 누구의 가르침에 내 영원한 생명을 맡길 것이 아니라 내 눈과 심령으로 성경을 묵상함으로 확정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가나안 성도들에게 묻고자 한다. 가나안 성도들 중에 목사들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가르침을 토대로 진짜 그런가 하여 말씀을 상고함으로 구원의 확신에 이른 사람이 있는가? 여러분들이 붙잡고 있는 성경교재에 있는 말씀이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이라 여기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복음서를 펴서 읽어 보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씀과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씀을 비교해 보라. 그리고 서신서들을 살펴보라. 그것을 보는 관점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긍정적인 말씀과 부정적인 말씀으로 살펴보라. 진심을 다하여 말씀을 묵상하면 여러분들이 붙잡고 있는 구원의 확신과 면죄부라 생각하는 것에 대한 말씀보다 이러이러한 사람들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천국에 대한 부정적인 말씀이 압도적으로 많이 기록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아파하는 가나안 성도들아 말씀으로 돌아오라. 그리고 스스로 말씀으로 확신하라. 남의 것은 아무리 많이 배워도 남의 것의 한계를 느낄 뿐이다. 스스로 말씀 묵상하며 그 말씀을 두려워함으로 순종하라. 그리고 흉을 보며 미워하면서 우월한 권위의식을 가진 자들의 삶을 본받지 말고 오늘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닮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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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성도 (183.106.194.85)
2015-01-28 13:13:47
매우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이젠 모두가 광야교회 로서 살아갈 때라고 보아집니다.
성경말씀 보면 죄가 무엇운데........
현실의 교회를 보면 죄가 겁나지 않게 됩니다.
목사의 근원은 칼뱅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뭔가 잘못된 듯 합니다.
한 지체인데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바울까지는 되지 않아도 그 비숫한 목사만 발견한데도..
성품이 좋으면 말씀이 비복음주의요 성품이
말씀은 비단같은데 삶의 열매는 본받게되거나 감화되는 것이 없으니...
이젠 성경 한권만 목사요 목자로 삶고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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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2
무릇돌 (218.38.162.72)
2015-01-27 23:56:57
가나안-안나가 성도?
몰상식한 성직자, 몰상식한 성직주의가
가나안 성도들을 만들었군요.

사실, 현실기독교 신앙 자체가
혹 <몰상식>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요?

가나안 성도(성도가 사실이라면)들은
이제 넌더리가 나도록 현실기독교 신앙의
넉넉한 <몰상식>을 깨친 게 아닐까요?

상식이 통하는, 진실이 담긴
기독교를 그려봄이 어떨른지요?

최소한 <가나안> 성도들이
기꺼이 <나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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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5
무릇돌 (218.38.162.72)
2015-01-29 23:54:57
가나안? 안나가?
예수를 예수되게 한다면...

기독교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 아들이요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구세주이시라면
아, 예수라는 분은 정말 쥐구멍을 찾고 계실 게다!

징그러운 모습을 한 자들이
대단히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하면서
자신을 구세주요, 신의 외아들로,
나아가 신으로 목청돋우어 찬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겠는가?

하여 아마도 한국의 개신교 교회에는
예수는 자리하지 않으실 듯하다.
아무리 저들이 자신을 흠모한다 노래하여도
저들의 자리에 함께 하시기가 어려울 듯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이라 아니하여도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자라 아니하여도 좋으니
제발, 진정으로,
더 이상은 나를 욕보이지 말라고
예수는 손사래를 치실 듯하다.

예수를 스승으로 만이라도 생각하여
그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만이라도
예수는 충분히 흡족해 하실 터인데...

종교의 종말을 고하려 했던 예수는
종교의 종말 그 자체이셨던 예수는
추종자들이라 하는 자들이 만든 종교의 포로가 되어
종교의 종말을 선포했던 그때보다도 더 슬픈
예수가 되었다.

이제, 예수에게서
종교의 올가미와 껍질을 벗겨드려야 한다!

당신은 구세주요, 신의 아들이요, 신이라 하는
너무나 진부하며 더 이상은 무의미한
종교적 수식어들은 저 멀리 폐기하고
예수의 민낯을 드러내며
그분의 육성에 귀기울여야 한다!

진정 예수가 구세주이시라면,
예수를 옥죄고 가리는 종교적 장식물을 제거하여
그의 진정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만 한다면,
예수는 예수가 될 터이다!

이제, 예수에게서
종교의 올가미와 껍질을 벗겨드려야 한다!

예수를 예수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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