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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으로 살기의 고달픔1995년 1월 발행된, 박흥규목사의 푸른언덕 제62호 <생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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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6월 04일 (일) 00:00:00 [조회수 :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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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으로 살기의 고달픔


                      송병구(재독 NRW 한인교회 연합회 목사)


        천고마비의 가을을 맞았을 한국 땅의 따스함이 부럽습니다. 썸머타임의 해제와 함께 찾아온 독일의 가을은 높은 위도의 북구답게 긴 가을밤을 재촉하고 있으며 된 서리와 함께 영하의 계절로 접어들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벤츠차에도 에어콘 시설을 하지 않는 반면 난방을 위한 시설만큼은 철저하게 갖춰 놓고 삽니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낯선 기후조건에 당황했습니다. 괜스레 머리가 무것운 것이 기압이 낮은 독일 날씨 탓이라는 지적에 서둘러 즐겨하지 않던 커피 마시기에 습관 들였고 이유가 빤한 재채기에도 알레르기의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들이나 오래 산 성인들 중에는 각종의 알레르기 증세로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먹는 것뿐 아니라 몸붙여 사는 일에도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예외없이 적용되는 모양입니다.

독일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발견은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외국인을 원숭이쯤 되는 유별난 인종이나 서양영화에 등장하는 정형화된 인간형으로 보아 온 내가 외국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신의 정체를 새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국사회가 수 십년간 취해 온 외국인들에 대한 이중적 잣대는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겪는 민족적 불이익에 대해




무지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서양인들은 우수하고 동양인 등 유색인종은 열등할 것이라는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인종적, 민족적 편견에 대해 가장 큰 피해자는 남이 아닌 바로 우리 동포들입니다.

쉽게 이곳에 사는 동포들은 ‘마늘 냄새’로 표현되는 차별을 생활의 조건처럼 떠 안고 살아 왔습니다. ‘역시 아시아인은 다르다’는 식의 차이를 구별하는 독선적인 태도는 학교에서, 관공서에서 그리고 아파트 등 공공의 삶의 자리에서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좌·우정치권과 통일독일이 안고 있는 가장 큰 함정인 극우적 민족주의는 피부로 느껴질 만큼 사회문제화 되었습니다. 동시에 독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독일인에 대한 적대감정도 부풀려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호 증오심리는 때때로 특별하지 않은 생활상의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음식물에 대한 이해 부족, 언어의 장애에 따른 의사소통의 어려움, 외국인으로서의 고달픔과 소외감 그리고 민족성에서 비롯된 인간이해의 차이들이 점점 서로의 간격을 넓히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 본 몇몇 유학생은 독일인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은 호기심을 넘어 목회적 관심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월드컵 축구대회 중 독일경기가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여름방학이라 독일학생들이 집에 돌아가고 외국인만 남은 대학 기숙사에서 일어난 진풍경인데, 독일이 골을 넣을 때는 조용하다가도 독일이 잘못하거나 골을 먹게 되면 환호성이 터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적대감은 통일 이후 독일내 일자리가 모자라고 세금부담이 커지면서 기회빈곤과 세금증대의 한 요인이 되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발전, 점점 웃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독일 경찰의 외국인에 대한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가 충돌적으로 드러나 여론의 지탄을 받았을 때에 경찰 당국은 민족적 편견이 아닌 해당 경찰의 비민주성이라고 변명한 바 있습니다만 곧이 곧대로 들을 외국인들은 없습니다.




물론 독일 정부와 사회제도의 공식적인 외국인에 대한 처우는 긍정적입니다. 특히 최근의 불법취업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말로는 국제화를 들먹이면서 외국인들과 더불어 살기를 포기한 한국사회의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천대받는 남한의 동남 아시아인들에 대한 취급과는 정책의 질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아질(Asyl)’이라고 불리는 경제적 망명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주택과 취업을 우선 제공한다든지, 세계의 어느나라 사람에게나 무상의 교육 기회를 부여하는 일은 독일의 민족문제에 대해 쉽게 비판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야간고등학교(Abend Realschule)도 외국인에게 무료 독일어 교육을 실시합니다.

전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이 낳은 경제부흥은 모자라는 사회 근간의 노동력을 외국에서 수입함으로 충당했습니다. 이민국가가 아닌 독일에 외국인들이 살게 된 것은 순전히 독일의 필요에 의해서 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원의 독일 진출도 노동력의 부족에서 비롯 되었으며 독일 전역에 걸쳐 백만명이 넘는다는 터어키인들 역시 산업사회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밑바닥 노동력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금을 내는 외국인들은 응당 독일 사람과 차별없이 산업재해와 의료보험은 물론 실업 및 연금보험 그리고 주택문제에 있어서의 영세민의 특혜나 자녀들 양육 보조비 등 사회주의 성격의 보장, 보험의 울타리에 포함 됩니다. 더 나아가 정부와 정당들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외국인을 옹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느끼는 불안은 과거와 질을 달리할 만큼 시간이 갈수록 심각함이 더 합니다. 그것은 독일내 제4세계 시민으로 다량 등장한 구 동독인의 존재와 함께 경기 불황 때마다 천덕꾼 처럼 취급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경제논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다분히 심리적인 요소가 포함된 유·무색 인종간, 동·서유럽 민족사이의 생리적 편견은 독일 사회내 외국인의 존재를 점점 위축 시킵니다.




한편 우리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도 외국인으로 사는 일을 어렵게 합니다. 반도라는 지리적 요인과 분단이라는 정치적 요인은 외국인이 되어 사는 일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야간 고등학교 안의 독일어 교실인 우리 반은 25명의 다국적 국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터어키,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의 인접 국가들 끼리나 스리랑카와 캄보디아 혹은 폴란드나 러시아 등의 학생 간에는 비슷한 생김새나 문화와 말 등으로 쉽게 동질감을 느끼는 반면 유난히 한국인인 내 경우만 이웃나라 친구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역사적으로 경험했듯이 대국주의의 중국인도 적대적인 일본사람도 결코 이웃은 못 되었었습니다. 종속의 관계는 있었을 망정 선린친선의 이웃 사촌 하나 없는 우리 민족이 지구촌에서 겪는 소외감은 매우 큰 약점입니다.

일본 혹은 중국에 비해 왜소하기 짝이 없는 반도라는 입지적 약점 말고도 남의 나라 말과 호환성이 전혀 없는 우리의 언어생활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2세들은 끝없는 정성과 투자에도 불구하고 민족의식의 양에 상관 없이 우리말을 어눌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성인일지라도 한국인과 오래 단절된 생활을 해 온 국제 결혼한 이들은 우리 말 사용에 큰 불편을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말 습관과 어문 구조 탓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들은 본능적이라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터어키인 2·3세가 유창한 독일어와 뛰어난 터어키어를 막힘없이 고루 사용할 줄 아는 것과 종종 비교됩니다. 노력의 부족이겠지만 나 역시 우리 반에서 벙어리 노릇은 혼자 다 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정부의 못 미더운 해외동포 정책도 외국인으로 살기의 고달픔을 더해 줍니다. 한국정부가 발행한 국제 운전면허증조차 신뢰받지 못하는 한·독간의 모순된 외교관계는 물론 외국에 몸 붙여 사는 동포들에 대한 배려 보다는 관리차원의 통제책은 해외동포들에게 크게 반발을 사 왔습니다. 국적을 보증해 주는 ‘여권’을 담보로 동포의 자유로운 삶을 주무르려 들거




나 국내정치에 교민사회를 끌어들여 분열책을 일삼는 일, 또 심심찮게 과장되어 폭로되는 해외연계 간첩조작 등은 하루속히 폐기해야 할 분단체제의 부산물입니다. 심지어 교민사회에서도 ‘찍힌다’는 말이 통용되고 있으니 얼마나 삭막합니까?

2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점점 성장하면서 실감하는 외국인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현실, 부모와도 언어 소통이 어려운 낯선 모국어, 한국인도 독일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 등은 곧 다가올 2세 중심의 독일사회에 성급하게 닥친 무거운 숙제입니다. 당연히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앞으로 2·3세가 중심이 될 이민사회에 모국어 신앙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는 큰 의문입니다.

독일에 외국인으로 20-30년씩 살아온 교포들은 조선식의 김치 담그는 일이나 명절 떡을 해먹는 데는 점점 수월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여전히 이곳은 막힌 담의 세계입니다. 그들은 꿈 속에서도 표현의 부자유함 때문에 가위 눌리고 있고 그물처럼 짜여진 지도에 의해서만 길을 찾을 수 있는 언제나 낯선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반경과 사고의 영역을 중심으로 한 작은 미로에 사는 외국인들은 느낌표를 잃은 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부호에 둘러 싸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푸른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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