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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도공동체를 소개합니다 & 함께사는 농촌을 위하여1995년 1월 발행된, 박흥규목사의 푸른언덕 제62호 <특집 희년에 바라본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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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6월 04일 (일) 00:00:00 [조회수 : 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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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도공동체를  소개합니다.


                                               조규백(평창, 산돌교회)


       흔히 공동체라 함은 더불어 함께 같은 뜻을 지니고 살아가는 집단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어느 특정한 지역에 함께 모여 살아가는 집단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불린말은 아니지만 농도공동체와 같은 공동체는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공동의 선한 목적을 두고 이 일을 함게 해 나가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정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인 공동의 선한 목적을 일궈나가는 사람들이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를 안고 만든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공동의 선한 일이란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을 생명의 삶으로 이르도록 돕는 일입니다. 이것은 정의와 평화가 없는 사회에 있어서는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이사야 61:1-2 중에서>


인간의 문제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했고, 바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써 왔습니다. 그 문제는 인간의 실존문제로부터 사회문제, 민족과 민족간의 문제, 혹은 세계적인 문제이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주제로 다양하게 문제해결의 방법을 모색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문제의 중압감을 견뎌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산업사회가 등장하게 되고 그것은 물질적 풍요로움에 의한 인간의 행복을 시도했습니다만, 인간은 더 큰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산업사회, 물질문명의 사회는 인간을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더불어 함께 서로 도우며, 나누며, 사랑하며 살아야 할 인간이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나만’(이것은 한 집단까지도 포괄함)이라도 행복해지는 삶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타인의 희생이 전제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게의치 않습니다.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하는 명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오늘날 인간문제의 세계적 흐름은 ‘녹색-생명-환경, 생태계-건강’ 등인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겠으나 흐름의 대세가 이것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은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함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전제가 정의, 평화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전제는 간 곳이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녹색’을 깃발로 해서 우리들은 정의와 평화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일궈내야 할 것입니다. 다시말해 오늘날 인간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녹색’이라는 것은 중요한 매개고리인 셈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농업, 유기농업입니다.

어느시대, 어느 민족이건 간에 먹거리의 자즉자족 없이 자주적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경제의 가장 바탕이기도 하고, 사람 삶의 근본이라 해서 인간의 고향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 이 일에 종사 하는 사람을 인간중의 인간, 즉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농업, 농민과 마음의 고향인 농촌이 버림받는 시대속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 인간문제인 ‘녹색’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바로 농업인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농업문제의 해결은 정의, 평화를 전제로 한 ‘녹새’문제의 해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도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입니다. 농촌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생산자공동체(유기농업을 하는 생산자공동체)를 건설하고 생명농업을 통하여 바른 먹거리를 생산하여 공급하는 일을 담당하고, 도시에서도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안에 농촌선교회를 조직하여 바른 먹거리의 생산과 공급에 참여 할 뿐만 아니라 농촌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 안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농도공동체는 가능성만을 잉태하고 있는 작은 겨자씨알과도 같습니다. 이제 겨우 땅에 떨어져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는 단계에 있을 뿐입니다. 생산자공동체로는 남양지역의 수화교회내 한생명공동체가 있고, 충북 음성 농민교회를 중심으로한 농민공동체가 있으며, 강원 평창 산돌교회를 중심으로 산돌공동체, 그리고 정농회 등 생산자들이 생산자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비자공동체로는 동대문교회(장기천 감독), 우이교회(신경하 목사), 성천교회(김기택 목사), 장안원교회(민선규 목사), 춘천중앙교회(권오서 목사) 등이 있는데 이들 교회는 교회 내에 농촌선교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아 만들어진 농도공동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 농도공동체는 이런 일을 합니다.

① 창조질서의 보전 및 회복을   위한 생활운동

② 농촌을 돌아가는 엠마오 신앙 운동

③ 유기농업 농가 지원 및 농산 물 가공사업 개발

④ 농산물 직거래를 통한 교육  및 현장선교


▷ 농도공동체 운동이란?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바른 먹거리를 통하여 땅과 자연, 사람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 누가?

① 농촌교회: 교회를 중심을 생산자공동체를 건설하고 생명농        업을 통하여 바른 먹거리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교회

② 도시교회: 교회 안에서 농촌선 교회를 조직하고 바른 먹거리       의 생산과 공급에 참여하는 교       회


▷ 어떻게?

① 소식지 발행은 월 1회 발간

② 먹거리의 공급방법

․ 일반회원: 수시로 신청하고 공급한다(계절 농산물 및 농가공       품 중심)

․ 주간회원: 주 1회 정해진 품목 을 공급한다 - 매월 월례회에       서 품목 및 가격을 결정한다

③ 주문방법

각 회원은 개교회 농촌선교회에 신청한다

④ 실무자 월례모임

매월 첫째주 목요일에 회원교회 및 생산농가를 순회하며 실제적인 제반문제를 검토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 무엇을

일반회원 및 주간회원이 신청하고 공급받을 수 있는 품목은 과채류 곡물 및 농산물 가공품으로 구체적인 품목은 매월 소식지를 통해 알려 드립니다


농도공동체는 대단히 이기적인 사회구조(종교, 각 집단, 개인에 이르기까지) 속에서 서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어려움과 과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명령이라 생각할 때 과정의 어려움은 극복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극복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농도공동체의 과제 또한 이미 농도공동체에 속한 사람들만의 과제가 아닐 것입니다.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의 과제일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는 형제들입니다. 서로 돕고, 나누고 봉사하는 하나의 공동체인 셈입니다.

현재 산돌교회에는 세 가정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한 가정은 지난번 푸른언덕지에 소개되었던 최경철 목사님 내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정은 부랄친구인 명균이네 부부 입니다. 명균이는 태평양생명에서 근무해 오다가 행복한 인생의 길을 전부터 생각해 오다가 이제야 결단을 하고 농사일을 하기 위해 사표를 냈고 부인인 영단이는 중학교 선생을 꾸준히 근무하다가 기도하면서 남편의 삶이 자신의 삶인줄 알고 사표를 내고 함께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11월 중순께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최목사님이 암에 걸리셔서 그런지 나도 암에 걸리는 꿈이었습니다.

‘아랫배가 몹시 아팠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자꾸 진찰을 받아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자칭 생명운동을 한다는 입장에서 병원에 가서 진찰받기가 힘들었으나 남들 눈을 피해 병원에 몰래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그 결과는 암으로 나타났습니다. 남들에게는 창피해서 말도 않고 고민만 했습니다. 고민의 결과는 자살하는 쪽을 결정했습니다. 어떻게 구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디에선가 수류탄을 두개 구했고, 곧 안전핀을 뽑아들고 가슴에 품어 안았습니다. 이윽고 수류탄은 터졌습니다. 그런데 옷만 헤어지고 나는 죽지 않은 것입니다.’

놀라서 깨어보니 꿈입니다. 오줌이 몹시 마려워서 오줌을 누고나니 아랫배가 시원했습니다. 다시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 전편에 이어 후편입니다.

‘이제 아랫배는 아프지 않지만 앞이 캄캄했습니다. 전엔 죽는다는 것이 막연했지만 막상 이제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한계상황이 설정되니까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무얼 어떻게 하나? 하는 결론없는 생각만 끌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헤매다가 꿈을 깨고 냉수를 한 대접 마신 후 밖에 나가보니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그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그간 경철형을 이해한다는 것은 허울뿐이었다는 생각과, 이제 어떻게든 감사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간단한 것 같습니다. 예수의 가르침대로라면 말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가능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 아름다운 일들을 남들이 해 주기를 바랍니다만 내가 먼저, 나로부터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야겠습니다. 푸른언덕


 

함께 사는

농촌을 위하여


                                                                                             전영자(효림교회)


      세상 인심이 날로 각박해지면서 사람들은 농촌인심도 예전같지 않다는 말들을 한다. 그저 생각만해도 가슴 한 켠이 훈훈해지던 시골 인심도 농촌사회가 붕괴하면서 이제는 옛말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지난 가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 때도 일부에서 농촌공동체의 붕괴현상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얘기인즉 그 조용한 시골마을에 젊은이들이 살인공장을 차려놓고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그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농촌사회가 그만큼 폐쇄적이 되었다는 증거라는 말이다. 참으로 옆집의 숟가락 숫자까지 알면서 지낼만큼 이웃과 가까이 지냈던 기존의 농촌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열린사회였던 농촌이 이와같이 폐쇄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변한데는 많은 변화의 요인이 있었다고 본다. 그 중에서 크게 두 가지 요인을 든다면 영농의 기계화와 정부의 공업화 위주의 정책으로 인한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영농의 기계화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공동작업을 빼앗아 갔다. 이는 농촌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는 일이었다. 다 알다시피 기계가 없었을 때는 씨앗을 뿌리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낟알을 거두어 들이기까지 농사의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해내야만 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했고 사람들은 일시에 많은 일손이 필요한 모내기 철이나 벼베기 철에는 이웃간의 협력이 불가피했다. 당연히 서로의 일손을 빌리는 품앗이가 많았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내가 어릴적에는 모내기를 할 때에 동네 전체가 한 덩어리로 움직였었다. 70년대만 해도 거의 한달이나 계속되는 모내기 기간동안 사람들은 집집마다 모내기 순서를 정하고 그 순서에 따라 10-20명, 혹은 30명씩 한 논에서 함께 일했다. 특히 동네 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공동 모심기에는 5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일하면서 서로 편을 갈라서 어느 편이 더 잘하나 시합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양기로 모를 심는다. 이양기로 모를 심으면 사람이 두어명만 있으면 되므로 품앗이를 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논에 기계로 모를 심고 기계가 없는 이들은 기계삯만 내고 빌리면 된다. 그리하여 함께 일하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웃간에 정을 나누는 일은 어느결에 사라졌다. 사람이 함께 일하고 먹는 것보다 정이 드는 일도 흔치 않을텐데 공동의 일거리가 없다는 것은 사람들 간의 결속력을 크게 약화시킨 것이다.

다음으로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도 농촌생활을 쓸쓸하고 삭막하게 바꾸어 놓은 요인이 되었다. 나날이 빈집만 늘어가고, 집집마다 자식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노임들만 남아있으니 사는게 활기가 없다. 어찌됐든 농촌에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함께 모여 일을 하든지 놀든지 할 것이 아닌가.

또한 농촌 사람들 이웃간의 정을 멀어지게 한데는 문명의 이기라는 TV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인다든가 이웃에 마실을 가기 보다는 각자 자기집 안방에서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쩔 수 없는 세태의 변화이지만 모두들 함께 모여 웃고 떠들고 어울리는 일에 어색해지고 혼자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다. 요즈음 농촌의 명절 분위기는 진짜 많이 다르다. 젊은이들이 동네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농악을 한다든지 하면서 즐기는 일도 없다.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있는 집에 자식들은 차를 한대씩 몰고와서 자기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휭하니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이제 농촌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영농의 기계화로 공동작업이 없어졌고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는 바람에 인구가 줄어 쓸쓸한 농촌이 되었다. 또 여러가지 문명의 이기로 개인주의가 스며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의 농촌은 쇠퇴해가고 더불어 농촌의 따뜻한 인심마저도 쇠퇴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농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더구나 마을 단위로 단단히 뭉쳐서 함께 일하고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자 했던 공동체 정신은 더욱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듯이 농촌은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는가. 앞으로 농촌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지간에 함께 일하고 서로 도우며 살고자 하는 공동체 정신을 뚜렷이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아야 좋은 것도 있는 법이다. 농촌을 살리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으로 농촌사회에 대대로 내려오는 공동체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도 중요한 것이라 믿는다.

                      푸른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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