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N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미생’이 많은 시청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드라마에서는 선임자들 밑에서 고생하는 신입사원들의 애환이 중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신입사원들은 차심부름을 하거나 선임자들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이다. 때때로 그들은 참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대우 때문에 애를 삭이지 못해서 신입자들끼리 모여서 애환을 털어놓기도 하고 술로 아픈 마음을 달래보기도 한다. 신입사원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때로는 신입자들이 낸 기획안이 채택되었을 때 그것을 고참자의 것으로 바꾸거나 신참자의 것이라는 것 때문에 포기하도록 압력을 받기도 한다. 고참자들은 흔히 아래 직원들을 인격이 있는 한 인간으로 대하기보다는 마치 노예처럼 취급한다.

이 드라마의 중심에는 ‘영업3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인물은 오차장과 계약직으로 일하는 장그래이다. 장그래는 촉망받는 프로바둑 지망생이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바둑을 포기하고 계약직으로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회사에 크게 기여하지만 그가 정규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위 사람들이 그의 능력과 노력을 보기보다는 계약직이라는 꼬리표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업3팀의 팀장인 오차장은 다른 상사들과는 달리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어서 장그래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하고 그를 도우려고 노력한다. 전무가 그에게 중국 상사와의 업무를 부탁할 때 그 거래에 흑막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그래를 위해서 그 일을 맡는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오차장이다. 아래 직원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 직장의 분위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회사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서 작가는 오차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겪는 것과 비슷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의 내용에 공감하면서 오차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흔히 ‘하루에도 여러 번 사표를 던지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푸념을 듣는데, 이것은 직장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온갖 수모와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수하며 살아간다.

이 드라마의 내용이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이 요즘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대한항공 사건이다. 조현아 전부사장의 폭력적이고 탈법적인 언행은 회사 안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와서도 샌 것이다. 조현아 씨가 국토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그녀를 수행한 여러 명의 회사 임원들과 직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행을 용인한 국토부의 담당자들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대한항공의 힘이 국토부에 크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국토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자기 소신껏 말하지 못한 박 사무장이나 그 조사를 마친 후 대한항공에 돌아와서 자술서를 10여 차례 고쳐쓰게 지시한 항공사의 임원의 입장이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리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한 것이다. 고쳐 쓰도록 요구한 임원이나 고쳐 쓴 기장이나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위에서 시키는 대로 노예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말단에 있는 기장이다.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미생’에서의 오차장의 역할과 작가의 역할을 겸한다. 그들은 직원들을 노예로 취급하는 대한항공의 행태에 분노하면서 시사평론가들의 말에 박수를 보낸다. 회사의 직원은 같이 협력하여 회사의 이익을 창출해 내는 협력자이지 사주가 부리는 노예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직원은 주어진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체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금력과 권력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기 힘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면 비인간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그것이 과거 전제주의 정치에서 흔히 자행되었던 일이다. 국민은 군주를 위한 도구, 다시 말해서 노예적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때때로 국민을 생각하는 군주나 정치인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런 사람들은 전제주의 체제에서 공격을 받거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민주주의 체제가 정착하면서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적인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권력을 쥔 사람들은 국민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자기의 뜻을 고집하려고 한다. 요즘 청와대 사건도 그러한 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치적 권력은 언론을 비롯한 국민의 감시로 인해서 그 때 그 때 비판을 받아 시정되어 갈 수 있지만,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금력으로 인한 폭력은 공개적인 비판을 받지 않고 있다. 단지 대한항공처럼 외적인 사건으로 드러났을 때 한시적으로 비판을 받을 뿐이다.

‘미생’ 같은 드라마가 빛을 발하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일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학의 역할이 있다. 문학은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여건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작가들은 산업사회에서 노동자들을 노예화하는 상황을 고발한다. 역사소설에서는 흔히 전제군주 체제에서 국민을 도구화하려는 세력과 국민의 복지를 생각하는 세력의 갈등을 보여준다. 여성주의 작가들은 여성들이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데에 반대한 분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밝히시면서도 당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오히려 권위를 자랑하는 사람들의 오만을 비판하셨고 돈 많은 부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방인들과 대화하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분이다. 세리 같이, 나환자 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신 분이다. 인간을 사랑하라는, 용서하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복음을 선포하셨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황금률은 ‘네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미생’을 시청하고 대한항공 사건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직원은 결코 노예가 아니라는 것, 인간을 노예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친구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우리는 회사의 직원은 바로 동역자라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민주사회를 이끌어 온 인간 존중의식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을 노예로 취급하는 발상은 어떤 상황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