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기온차가 클 때면 진한 안개가 자주 발생하곤 한다. 바다나 강, 호수가 인접해 있는 경우는 주변의 많은 수증기와 급작스런 기온의 변화로 안개가 생기고 비나 눈이 오기도 한다. 높은 산의 경우도 움직이는 바람과 기류의 변화로 기상이 잘 바뀌게 된다.

독일어 링반데룽 (Ringwanderung)은 ‘링’(Ring 고리 혹은 둥근 원)과 '반데룽’(Wanderung 걷는 것)이 합해진 등산용어로서, ‘등산 도중에 짙은 안개 또는 폭우나 폭설 등 악천후로 인해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길을 찾아간다는 것이 같은 지역만을 맴돌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신은 앞으로 나아간다고 열심히 걸어가는데 사실은 똑같은 자리를 맴돌게 되는 환상방황(環狀彷徨) 현상이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잔 소우만 박사는 사람들을 숲 가운데 떨어뜨려 놓고 그들이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의 몸엔 GPS가 부착됐는데 그들 중에는 방향을 잃고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는 '똑바로 걷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소우만 박사는 이것을 '링반데룽'이라고 불렀다.

등산이 대중화되면서 오히려 사소한 부주의로 위험에 처하거나 조난을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평소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가까운 산에서 갑작스레 쏟아진 눈보라에 방향감각을 잃고 링반데룽(環狀彷徨,환상방황)으로 사경을 헤맨 사람도 있고, 겨울 한라산에서 만난 윗세오름 휴게소 관리인이 눈보라 치는 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코앞에 있는 숙소를 찾지 못해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히말라야 8천m 고봉을 오르내린 전문 산악인이었는데도 그러했다.

이러한 공간적 의미에서 링반데룽은 현대인의 속도와 경쟁의 시대에는 심리적인 경우에 나타나게 되기도 한다. 소통의 부재와 존재의식과 의미에 대한 무감각 그리고 고독과 소외감 등은 인간을 자기 주변을 맴돌며,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가 심화되고 깊어지면 자신과 타인에 위해적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가 발생해 특히 한국인을 놀라게 했다. 미래가 창창한 한 젊은이가 저지른 광기의 만행이 어떤 동기와 배경에서, 또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다시 제기되는 물음은 그런 극한 상황까지 갈 전조의 상태나 주변사람들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며 '정말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 사건이었나'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하게 된다. 그의 묘지석에는 "네가 필사적으로 필요로 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걸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이 세상 모든 이로부터 떨어져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 네게 손 한번 내밀지 않았던 나를 용서해줘."란 편지글들이 놓여있었다. 물론 개인 성향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방황과 소외 그리고 소통부재의 상황에서 모두를 불행하게 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휴대전화의 다양한 지도와 네비게이션으로 우리는 방향을 잃지 않을 많은 장치가 있다. 첨단위성항법장치가 ‘지도의 공백지대’를 하나둘 지우고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변화무쌍한 산과 들의 날씨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사는 변화속의 도시는 늘 예사로운 장소도 순식간에 미지의 오지나 처녀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심리적, 정신적 방황과 방향상실을 안내하고 가르켜 줄 이정표와 방향타는 적기에 찾기 어렵다. 외로움과 단절의 시대, 군중속의 외로움과 소외의 현대에서 우리는 또 방황하고 특히 젊은이들은 3포, 5포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늘어난 베이비 붐 시대의 노년층도 점차 사회의 부담으로 등장하고 있다.

황순원은 소설 ‘링반데룽’에서 “그때 보통 등산자는 자기가 목표한 곳을 향해 곧장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자신도 모르는 착각에 의해 어떤 지점을 중심한 둘레를 빙빙 둘기가 일쑤인 것이다... 짙은 안개나 세찬 눈보라를 만났을 때 제일 안전한 방법은 이미 자리잡고 있던 데서 그냥 날씨가 호전되는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관계나 식량 사정으로 부득이 다음 목적지까지 가지 않으면 안될 경우가 생기는 수가 있다...“고 쓰고 있다.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 스마트한 세상에서 우리는 아직도 길을 잃고 있지는 않는가? 물론 개인이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변에 서로가 소통하고 한마디 말과 따듯한 눈길로라도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시대의 눈보라와 안개를 이웃과 공동체와 협력으로 그리고 개인의 철저한 준비로 난관을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