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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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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6월 03일 (토) 00:00:00 [조회수 :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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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의 시작은 '나, 씨'다. 씨 없이는 세상도 없다."
이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요. 자랑입니다. 즉 '내가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으니, 내가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최고'를 뽐내기 위한 자랑이 아니라, 세상의 근원에 대한 나의 주장을 얘기하려는 것입니다.

씨는 너무도 다양하고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나의 동족들은 어느 자리, 어느 곳에 있든지 열심히 자신의 본분을 다합니다. 정자와 난자같이 보이지 않는 씨가 자라 위대한 생명을 만들고, 나같이 작지만 눈에 띄는 씨도 자라 세상의 한귀퉁이를 차지하게 됩니다.

씨는 너무도 허약하고, 위태위태할 정도로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세상은 이런 나를 너무도 귀히 대접합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음을 아는거죠. 하지만 나또한 세상없이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위에 나의 지론과 앞뒤가 안맞는 느낌이죠? 나는 '천상천하유아독존'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야 나도 사는 존재입니다.

나는 땅에 심겨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요. 그리고 '땅'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땅이 아니면 나는 세상의 근원이 되지 못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적당한 물과 햇빛이 있어야합니다. '땅과 물과 햇빛', 이 삼위일체가 나를 "참 생명"되게 합니다.

나의 이름은 '겨자씨'입니다. 나는 주로 농부에 의해 옮겨져 땅에 심겨집니다. 많은 동료들이 즐겁게 흩어지며 커서 만나자고 헤어집니다. 이제 얼마동안 나는 고독에 갇혀있게 될 것입니다. '참 생명'을 낳기 위한 산고의 시간입니다. 이때 나는 땅과 특별한 관계를 맺습니다.
땅의 보드라운 속살이 나를 안심시켜 껍질 벗겨내는 걸 도와줍니다. 춥지 않게, 물에 쓸려나가지 않게 안아주는 땅을 믿고 난생 처음 힘껏 뿌리를 내립니다.

땅을 박차고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가장 먼저 반깁니다. 바람도 인사하고 지나갑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출생을 환영합니다.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동료들을 찾았습니다. 아직 아무도 나와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무 일찍 나왔나? 기다려보자'라고 생각하며, 낮과밤의 세상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내가 있어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있어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깨달음이 나를 어른스럽게 만든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음날 멀 찌기에서 친구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달려가서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건 내가 할수도, 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친구 주위에는 돌들이 많았습니다. 딱딱한 돌 틈에서 위태위태하게 올라온 친구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나 같으면 '돌'이 누르는 힘 때문에 포기했을 텐데 저 친구는.... 대단해!' 그래서 더욱 열렬히 환영하고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디 아픈지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겨우 나의 인사를 받고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 그런지 나는 몰랐습니다. 해가 뜨자 친구 안색이 더 안 좋아지더니 서서히 말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돌 때문에 뿌리가 깊지 않았고, 그래서 내게 유익한 햇빛이 친구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친구를 먼저 보낸 후 나는 나의 지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땅에 심겨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씨며, 땅도 돌이 없는 땅이어야 자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는 오만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가시덤불 쪽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머리를 돌려 인사를 나누려고 했지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시덤불이 친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는 건강해 보였습니다. 이미 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위로 몸을 키워 올라갔고 아래로 뿌리를 키워 내려갔습니다. 거칠 것 없는 성장이었습니다. 반면 친구는 갈수록 초라해졌습니다. 가시덤불에 막혀 더 이상 크지 못했고, 햇빛이 잘들지 못했습니다. 햇빛을 못 보는건 생명에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제발 살려주세요. 친구가 저처럼 잘 자라도록 보호해주세요..." 하지만 나의 바램과 달리 친구는 더욱더 창백해져 갔습니다. 나는 커진 몸으로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만 봐야했습니다.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기도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산다는게 비극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보며 사는게 인생이었다면, 나의 성장은 오히려 저주받은 것이 아닐까? 여기서 성장을 멈추고 사라지고 싶다...' 나는 우울해졌습니다.
한번 자라기 시작한 몸은 성숙해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햇빛과 땅과 물의 삼위일체가 나의 기분에 아랑곳 않고 나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키가 너무도 커졌습니다. 잎도 무성해지고, 가지도 많아졌습니다. 처음 씨의 상태와는 비교도 안되는 '무한의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내가 이렇게 클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두 친구의 죽음이 잊혀져 가고, 인생의 의미를 알아갈 때 쯤에 나를 찾아온 새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짹짹짹, 요즘은 그 맛있는 음식이 도대체 안 보인단 말이야"
"그래 맞아, 세상에 겨자씨만큼 맛있는 먹이도 없었는데 말이야"
"우리가 좀더 노련했으면 바위 틈이나 가시덤불 속에 숨어있는 놈들도 심지어 흙에 보호를 받는 놈들도 먹어버릴 수 있었을텐데... 그저 길가에 떨어진 놈들만 먹으니 그 맛이 더 간절하네! 쩝쩝쩝..."

"아! 그랬구나, 그 많던 친구들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저들의 먹이가 되었구나.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더니, 내 친구들이 저 새들을 살렸구나... 가엾은 친구들이 보고 싶구나..."
갈수록 사는게 의미 없어졌습니다. 빨리 일년이 지나 친구들처럼 시들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비관적인 생각만 들었습니다. 바람과 비와 햇볕은 나를 계속 키워갔고, 열매도 맺게 했습니다.

"앗, 열매!"
가지마다 달리는 열매를 보고 삼위일체가 왜 계속 나를 키워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구들, 그리고 나의 분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삼위일체는 나를 계속 이끌어 여기까지 오게 했던 것입니다.
"아! 삼위일체여! 당신이 생명의 시작이며, 근본입니다. 내 남은 인생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과 분신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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