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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라고 하는 죄독자 여러분이 판사가 되어 ‘목사’라고 하는 죄를 판결해 주십시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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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12월 04일 (목) 23:46:01
최종편집 : 2014년 12월 12일 (금) 01:08:11 [조회수 : 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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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이 판사가 되어 ‘목사’라고 하는 죄를 판결해 주십시오"

 

헌금은 축복을 받기 위한 투자가 아니다

 

스스로 원해서였는데도 필자는 목사안수를 받고 기쁨보다 우울한 마음이 더 컸다. 세인들의 목사를 향한 눈길이 어떠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눈길이 괜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이유가 있어서라는 것을 알기에 우울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목사들에 의해 저질러진 사기, 절도, 횡령, 간음, 고회세습 같은 온갖 비리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채 지워지기도 전에 꼬리를 물고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으니 그들이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같은 범죄에 실제로 빠지거나 연루된 목사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그와 무관한 목사들로서는 억울할 것이며 할말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도 할말이 없지 않다.

여기에서 필자는 많은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목사’라고 하는 죄를 지은 죄인으로서 독자 여러분을 판사로 모시고 그 할말이라는 것을 자기변명 아닌 자기진술로 하려 하는데, 현명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목사들에 의해 자행된 앞에 든 것 같은 범죄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있어 왔고 지금도 진행형으로 존재한다는 데에 우리 기독교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런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남으로 인해 그에 대한 교인들의 충격이 갈수록 둔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무관심이 되고, 심지어 그 같은 범죄 행위로 교회에 오물을 끼얹은 목사를 두둔하는 교인들까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앞에서 다룬 것 같은 범죄는 일부 목사, 일부 교회에 한한 것이지만 온 교계를 전염병처럼 만연시키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복신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복 아닌 것을 복으로 잘못 알고 그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겨 구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가리켜 기독교라 한다면 그게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복신앙에서 구하는 물질, 건강, 출세 같은 것도 분명히 복일 수 있다. 그러나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내 것으로 하여 나와 남을 위해 쓴다면 확실한 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이 아닌 방법으로 가져 나와 나의 가족만을 위해 쓴다면 그것은 독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얻었을지라도 나와 내 가족 내 피붙이만을 위해 쓴다면 분명한 독이다.

그런데 얻은 것을 나누어 복이 된다 해도 그것은 그리 큰 복이 되지 못한다. 가장 큰 복은 믿는다는 사실이다. 믿는다는 사실! 이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이 얼마나 큰 복인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믿는다는 사실 이 하나로 죄로 인해 지옥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에 가슴이 뛰지 않는대서야 되겠는가. (지금도 필자의 가슴에는 기쁨과 감사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출세하여 건강하게 산다 해도 구원을 얻어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축복의 크기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불어나는 물질에도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갈증에 갈증만 더해 갈 것이다.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심령이 병든 탓임이다.

물질이 됐든, 건강이 됐건, 명예가 됐건, 이 같은 육에 속한 것들이라 해서 마다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게 넉넉하면 이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더욱이 바르게 얻어 바르게 쓰면 복이 되는 것이니 마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비정상적인 사람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들을 하나님보다 위에 둔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께 구하여 받으려 하는데 어떻게 그분보다 위에 두는 것이 되느냐고 하지 말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말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 한다 하지만 실은 그분을 자기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존재쯤으로 여기고 있다. 헌금도 봉사도 받을 축복의 밑거름쯤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할 분이 아니라 거래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모래위에 집을 짓고 좋아하는 사람들

 

인간이란 어차피 자기중심의 존재이다. 이기주의자들이다. 이기주의란 ‘다른 사람이나 사회 일반에 대해서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만을 고집하는 사고방식’을 말함인데, 문자만으로 생각한다면, ‘이기’는 이로울 리(利)에 자기 기(己)로 자기에게 이롭게 한다는 말이 된다.

흔히들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 하지만,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은 이타주의로 사는 것이지만, 그것도 결국은 자기를 위한 것이 된다. 자기가 없으면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까지도 자기가 있어야 나의 하나님이 된다. 자기가 있어야 그 하나님을 영적인 눈으로 보게 된다. 여기에 기독교의 신비롭고 역설적인 진리가 숨겨져 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볼 수 없도록 숨겨져 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예수님의 말씀이다. ‘얻는 자는 잃’고, ‘잃는 자는 얻’는다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이다. 세상 사람들은 육적인 것을 위해 산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다. 반대로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크리스천들은 영원한 삶, 즉 영생을 얻는다.

그런데 흔히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입으로는 이렇게 찬송하면서도 실은 초막 아닌 궁궐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데, 여기에서 기독교인의 불행은 시작된다. 머리로는 초막에도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가슴이 그것을 부정한다. 머리로 아는 것조차도 그 가능성을 아예 외면하고 모든 역량을 궁궐 쪽으로 쏟아 붙는다.

그래서 궁궐을 차지한다 해도 거기엔 행복이 없다.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해도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되지 못한다. 풍요로워 넉넉한 것이 아니라 왜곡으로 찌든 저질의 행복일 뿐이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면 자신의 전존재를 하나님께 맡기는 길밖에 없다. 자기를 부정하여 못된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그러기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게 바른 표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려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만으로도 우리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 ‘일용할 양식의 소중함’ 하나만 알아도 우리는 부요함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곧 참된 행복으로 가는 정도(正道)이다. 사람은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여 가지게 될 때 만족을 느낀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사람은 돈을, 명예가 최고의 가치인 사람 또한 명예를 가지게 되면 만족해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래위에 집을 짓고 느끼는 만족과도 같다.

하나님의 뜻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사람도 그것을 이루어 가면 넉넉한 마음이 되는데, 그때의 그 넉넉함은 육적인 것의 획득에서 얻은 만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퍼내고 또 퍼내도 줄지 않은 샘물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이타주의로 사는 것이 결국 자기에게 가장 이롭게 사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기에게 이롭게 사는 것이다.

 

기복신앙만 버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필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일상생활이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해 왔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뜻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가장 큰 당신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변화이다. 말씀에 따라 이루어 가는 자기변화이다. 그런데 자기변화 없이는 하나님의 가장 큰 일인 그분의 뜻에 따라 하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환언하면 자기변화가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이 된다.

믿음으로 자기변화를 이루어 가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의 소중함을 안다. 그 고마움도 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도 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도 안다. 무엇보다도 믿어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의, 그 은총의 크기를 안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필자는 날마다 감사한다. 날이면 날마다 시간 시간마다 행복하다.

필자는 자기를 품성으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다른 목사님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참이나 뒤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다른 목사님들처럼 자기변화에 게으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우리 기독교의 가장 큰 맹점인 기복신앙으로 오염되지 않으려고 기도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니 나에게, 많은 목사님들에게 돌만을 던지지 말고, 위로와 격려도 해 주시라 부탁드리고 싶다.

우리 기독교가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맹점은 뭐니 뭐니 해도 기복신앙이다.

‘그런데, 목사라는 죄를 지은 죄인인 필자가 이 시간 판사로 모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성도님께서는 어떻습니까? 기복신앙이라는 흙탕물이 단 한 방울도 묻지 않으셨습니까?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느냐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성도님께서는 목사들에게만 돌을 던지시겠습니까? 자신도 한 번 돌아보시겠습니까?’

목사가 됐건 일반성도가 됐건 기복신앙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은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일지 모른다. 목사들에 의해 저질러진 사기, 절도, 횡령, 간음, 교회세습 같은 범죄도 알고 보면 기복신앙이 가져 온 비극이다. 기복신앙은 욕심을 낳고 욕심은 범죄를 부른다. 목사도 누구도 기복신앙으로부터 있는 힘을 다하여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복신앙, 그것은 이단이다.

<당당뉴스>의 목사에 대한 글들도 보면 거의가 그들을 성토하는 것이다. 필자도 여기에 글을 쓰기 시작함으로 그에 가세하여 비난의 화살을 날려댔다. 그러나 목적은 비난에 있지 않다. 비난이 아니라 기복신앙으로부터 벗어나 복음의 바른길로 가자는 데에 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은 교회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것이 된다. 지금 같은 타락한 교회는 완전히 망해 허물어져야 참 교회가 세워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견 옳은 말이다. 그러니 해야 할 말이 있는데도 교회를 위한답시고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비난만의 비난은 교회를 허물기만 할 뿐 세우는 동력을 갖지 못한다.

필자는 여기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크게 소리를 높여 외치고 싶다. “가자, 모든 잡다한 것 다 버리고 생명이 있는 복음의 길, 행복을 만드는 복음의 길로!”라고.

이와 같이 외치고자 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다대수의 목사들이 다 그럴 것이다. 아니 필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절실하게 부르짖고 있는 목사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목사들을 일부 목사와 싸잡아 범죄자 취급을 해도 좋은가.

‘판사로서의 성도님들, 현명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입을 다물고 벙어리처럼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잘못에는 확실하게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는 성도님들의 견해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그런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받는 죄인으로서 감히 판사이신 성도님들께 하나의 진언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잘못에 대한 말이 지적만으로 끝난다면 비난을 위한 비난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잘못에 대한 지적이 쓰러져 가는 교회들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기 위해선 자신부터 돌아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판사이신 성도님들이나 죄인인 저희 목사들이나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일갈했던 세례 요한의 마음이 되어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네 탓이요’만 있고 ‘내 탓이요’가 없다면 이 땅에 복음주의 신앙의 회복은, 교회다운 교회의 실현은,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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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71.238.247.114)
2014-12-05 08:45:38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돌이키기에는... 그것이 안타깝지만 사실인걸요. 그들을 보면 좀비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죽지도 않고 다시 날아나 다른 사람까지 감염시켜 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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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
dlRl (211.108.191.227)
2014-12-11 04:23:59
말은 그럴듯한데 박대통령 얘기만하면 핏대를 세우는 편협한 당신 아닙니까? 어디서 교인들에게 설교하시나요?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있으나 다른 일을 한다면 그를 공인중개사라고 부른답디까? 이곳에 글 올리는 거 고만하시고 시위 현장이나 기웃거리시지요. 임종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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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소리샘 (183.102.174.17)
2014-12-09 11:33:29
사람에게 판단 해 보라고요? 아닙니다.
위의 필자는 누구를 누구에게 판단하라는 것인가?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 맡겨진 본질에 충실하면 됩니다. 위의 글 역시 아래의 어느 분 말씀대로 사족에 불과 합니다.

일부분 목사님들에 대한 것을 너무 과대포장 하지도 마십시오. 그것을 사람들에게 판단해 보라는 것도 넌센스입니다.

제사 드리는 가정에서 한 아이가 맘에 안 든다고, 제사 분위기 망쳐가며 그 얘를 탓해 보십시오. 말 그대로 제사분위가 다 망칩니다.

소수의 목사님들을 재료로 삼아 글을 쓰는 것조차, 보이지 않는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짓입니다. 모두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앞에 판단 받자는 주제의 글이 더 좋다고 봅니다.

천주교는 썩어 문들어져도 먼지 휘날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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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일봉성도 (122.101.20.74)
2014-12-08 07:03:54
섬김의 하나님이 아닌 도구의 하나님인가요.
제 입장서는 참으로 헷갈리네요.
그럼 지금 저들이 하는 행동과 설교가 다 성도를 현혹하여 자기 이로움을
취하기 위해 하나남이란 도구를 이용하는것밖에 해석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이용한 목사가 주체가 되는것같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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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사랑 (118.221.128.100)
2014-12-07 17:42:51
판결을 내리실수있는 분은 하나님한분뿐이십니다.
하나님앞에서 회개하고 나와 내가정과 도시와 나라를위해
주님의 심장으로 회개할수 있도록 은혜를 구할뿐입니다.
그러나 또하나 분별해야할것은 한국 교회는 많은 미혹가운데 있다는것입니다. 목사님이 하셔야 할일은 목사님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고,,
아울러 목사님께 붙어있는 양들을 위해 회개하고 기도하는것입니다..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해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럼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것은 가짜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말에 있는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음을 부어주신다면 도시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것입니다,,하나님나라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자를 믿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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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
그이름 (39.119.97.230)
2014-12-06 15:04:08
필자는 여기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크게 소리를 높여 외치고 싶다. “가자, 모든 잡다한 것 다 버리고 생명이 있는 복음의 길, 행복을 만드는 복음의 길로!”라고.

이와 같이 외치고자 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다대수의 목사들이 다 그럴 것이다. 아니 필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절실하게 부르짖고 있는 목사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목사들을 일부 목사와 싸잡아 범죄자 취급을 해도 좋은가.

깊이생각좀 해 봅시다. 나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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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
김준수 (183.97.106.217)
2014-12-06 13:13:04
기독교의 본질을 알면 해결됩니다
흔히 목사님들은 식학공부를 했다는 이유를 가지고 가르치려듭니다. 성경내용과 이스라엘역사와 심지어 자신의 지식과 상식과 철학 등을 동원해서 가르치는 것으로 신앙이 성장하고 삶이 변화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결코 아닙니다. 물론 눈물이 나는 설교를 들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착각에 사로잡히게 하는 수단에 불과 할 뿐입니다. 신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가르치려 하지마시고 그냥 예수님, 하나님이 어떤 심정이고 어떤 분인 지를 말씀하시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소개만 해주세요. 그러면 그분의 성령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많은 말과 교리도 필요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면 해결됩니다. 그 누구를 설득할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의 심령으로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깨달음을 주십니다. "사족"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뱀의 다리입니다. 사단이 역사하는 빌미를 주는것이지요. 지금 교회에서 교리라는 지나친 사족을 설교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겹게 강요하고 나팔을 불어대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럴 줄 알고 아모스선지자의 말씀을 예언서로 성경에 올려 놓았을까요? 제발 목사님들. 교리는 그만 외치세요. 우리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알고 싶고 만나고 싶어요...제발...제발...성령님께 맡기세요. 죄송하지만 위의 글도 사족에 불과합니다. 사단의 하는 짓들을 분석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면 또 이것도 사족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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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
회개합시다 (180.228.220.99)
2014-12-05 19:18:59
임종석 목사가 죄라면 내려놓아야지 독자를 판사로 모신다고?
이런글로 성도들 부추겨서 괜한 목사님들 힘들게 하지말고 교회분란일으키는 신천지같은 노릇하지말고 회개합시다..
당신과 나 이렇게 회개하면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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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
글쎄요 (175.212.170.127)
2014-12-05 18:44:12
나는 지금까지 목사를 하고 있지만 단 한번도 이글이 주장하는 그런 생각으로 목회한적이 없는데 이건 뭘가? 무엇을 노리고 하는 소리인지 도대체... 다 들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인가? 이글은 너무 일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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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9
먹사님 먹사님 우리먹사님 (1.249.253.226)
2014-12-06 09:03:57
무엇을 노리겠어요?
현실을 보세요. 당신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객관적으로 좀 보세요. 단한번도라고 안그랬다고 자신한다면 현실감각이란것은 전혀없고 자기미화에 쩔어사는것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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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
엘림 (175.206.38.109)
2014-12-05 12:41:25
감리교단에서 부터 성장제일주의 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고처질수없다고 봅니다,소위 감독을 지내신분들 이나 현직 감독들이 시무하는 교회부터 기복신앙을 떠나서는 그같은 교세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믿음만이 복이라고 가르치면 오직 물질,출세,명예,질병치유만을 위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즉 성도가 되지못하고 교인에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교회를 떠날것이기 때문입니다,지도자들 부터 그리스도의 참제자로 키우고자 하는 의식이 있다면 자기교회의 교인수가 줄어도 좋다는 각오 없이는 바랄수없는 헛된 꿈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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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
신앙에는 내 탓이요 (72.37.249.108)
2014-12-05 04:34:02
정치에는 네 탓이요?
'네 탓'이라는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나의 책임을 떠넘기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혹은 그의 책임을 묻고 정죄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된다면 부정적이다.
그의 책임을 묻되 잘잘못을 따지는데서 멈추지 않고 문제 해결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데까지 나아간다면 긍정적이다.
왜 책임을 묻는가? 상대의 잘못을 부각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상대가 책임을 느낄 때 비로소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인가?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는 주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네 탓'이요 그 여인의 입장에서는 '내 탓'이다. 어떤 이는 이를 확대하여 '사회 탓'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궁극적으로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는 '내 탓'임을 알아야 한다. 성폭행을 당하였다면 '네 탓'이겠지만 또 상황따라 '내 탓'이 될 수도 있다. '쌍방 탓'이라고나 할까?

간음한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고소자들의 의도를 아시고 하신 말씀이다. 이는 '내(고소자) 탓'을 강조하신 것이 아니다. '네(여인) 탓'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어떠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치신 것이다. '내(고소자) 탓(잘못, 죄)'을 돌아보아 '네(여인) 탓'을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표면적으로는 그와 같이 느껴지지만 이는 고소자들의 잘못된 행위를 찔러 물러나게 하신 것일 뿐이다. 고소자들은 그 여인을 용서하여 물러난 것이 아니다. 준엄하신 심판자께서 그들의 드러나지 않은 죄를 물을 때 떨려 돌아갔을 뿐 그 여인을 용서한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또 언제든 예수를 고소할거리를 저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실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탓'은 예를 들어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말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이웃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그 이웃은 '나'를 향하여 '네 탓'이라 해서는 안되고 '내 탓'이라 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내 탓'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그런 예를 들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제나 '네 탓'이라고만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언제나 '내 탓'이라고만 말하는 이웃 때문이기도 하다.

목회자의 잘못을 두고 '네 탓'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나를 돌아보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내 탓'이라 해서는 안된다. 어떤 경우는 '내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탓'이 아닌 경우에도 '내 탓'이라 말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상대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가장 큰 복이 믿음을 갖게 되고 구원을 얻는 것이라면 그래서 지금도 감격의 떨림이 있다면 이제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는데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왜 정치에 나서서 '네 탓'이라고 외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에서도 '내 탓'이라고 말하면 안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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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익명 (58.230.187.50)
2014-12-05 03:56:12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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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
무릇돌 (218.38.162.72)
2014-12-06 00:01:07
그래서
구원의 길은
기독교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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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
먹사님 먹사님 우리먹사님 (1.249.253.226)
2014-12-06 09:08:24
기독교가 아니라 먹사는 버리는것이겠죠.
먹사 = 기독교라는 공식은 아주 잘못된 공식이죠. 굳이 먹사따위가 필요없어요.
사라져야 교회가 바로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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