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희망>

독자를 복음의 핵심으로 이끄는

김기석의 사색과 기도

김기석 著

서평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김기석의 글쓰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본다.

첫째는 그가 상투어를 깨뜨린다는 점이다. 그의 화법이나 진술이 상투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는 독자는 긴장한다. 상투어를 버린 그의 언어는 새롭다. 그렇다고 생소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낯선 언어는 아니다. 오히려 경청하게 하기 때문에 소통이 잘 되는 언어다. 그래서 감동이 있다.

둘째는 그가 토박이말을 발굴하여 활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말을 아주 재치 있고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우리말을 자주 새로 배운다. 예를 들면,

사열하듯 살피꽃밭을 돌아보고 있는데....

들릴라의 손짓을 오연하게 뿌리칠 수는 없었을까

도사리까지도 여퉈두던 그 마음

오래 사용해 사그랑이가 되어버린...

삶의 신산스러움을....

자식을 가슴에 묻고 시난고난 사위어가는 부모

잠포록한 날이 계속되면서....

진동한동 지내지만 의식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뼛성을 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싸하게 만드는

이제 나무들은 졸가리로만 남아 겨울을 견딜 것이다.

지싯지싯 우리 기억 속을 파고 들어...

셋째는 독자나 청중에 대한 저자의 예의가 깍듯하다. 그의 말에는 고압적 자세가 없다. 누구를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직접 타이르지도 않는다. 허세가 없고 과장이 없다. 자기자랑이 없다. 독자나 청중을 주눅 들게 하거나 성경이나 교리로 협박하지도 않는다.

넷째는 저자가 독서에서 부지런히 길어 올린 풍성한 결실을 독자나 청중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글쓰기에서 활용하는 독특한 방법이다. 그가 쓴 글의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독자로서는 갑자기 자신도 저자만큼이나 유식해졌다는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마치 박물관 문이 열릴 때 들어가서 한 번 휘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하루 종일 진열품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설명문을 다 읽고 음미하고 그 안에서 왔다갔다 어슬렁거리며 새롭게 배운 것을 반추하다가 문 닫힐 때쯤 아쉽게 나오면서 다시 또 와봐야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은 체험을 그의 글에서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글에는 동서고금의 고전부터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의 문학, 철학, 심리학, 정치학, 경제학, 미술, 영상(映像) 자료들이 인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시인들의 시가 많이 인용된 것에서는 또 다른 소득을 독자들은 얻게 된다.

이상 네 가지 특징은 그의 저서의 겉모습이다. 저자 자신도 글쓰기에 있어서 형식과 글쓰기문법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글에 조심한다. 저자 자신도 지적하고 있다(90쪽).

(1) “비릿한 욕망을 숨기기 위해 선한 말들로 제 행적을 치장하는 이들로 인해 말의 신뢰성이 훼손된다.”(부끄럽게도 필자도 아내로부터 자주 내 설교나 말이나 글이 말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받는다.) (2) “불의한 이들은 기호로 표상되는 말과 그 말이 내포한 뜻을 착종시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3) “가장 거룩해야 할 종교 언어가 때로는 구속복처럼 사람들을 부자유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떨쳐버리기 어려운 그늘을 드리운다.”우리의 글쓰기도 이 셋 중 어느 하나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이제 그의 글의 내용을 보자. 54편 내용 하나하나에서 발원하는 그 흐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슬아슬한 희망󰡕이 예수가 선포한 복음의 핵심으로 독자를 이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54편의 글에 나오는 혹은 전제된 중심인물들은 하나같이 예수께서 복음의 핵심에 세우신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글을 직접 하나 하나 인용하거나 지적하지 않겠다. 저자가 좋아하는 프란치스코 교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겠다. 그의 일행이 서울에 도착한 것은 지난 8월 14일이었다. 그날 저녁 교종은 한국천주교주교들만 모인 비공개 자리에서 연설을 했다. 성경 본문을 기초로 하여 주교들에게 권면의 말을 한 것이기에 나는 그의 연설을 “설교”의 장르로 분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4박5일 행보가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되곤 했다. 다만 한국 방문 첫 날 한국천주교주교들 앞에서 비공개로 한 그 “설교”는 교종이 한국을 떠나고 나서 15일 오후에야 공개되었고, 그것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삭제된 채로 공개되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그 삭제된 부분을 급히 한국어로 번역하여 공개하였지만, 그것은 각각 200년 혹은 100년이 넘은 한국 가톨릭이나 개신교 중에서 부자 교회들이 다 같이 듣기를 꺼리는 예수의 말과 사도들의 말이었다.

“삭제된 설교”는 “희년”(禧年)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당신의 임무가 가난한 이들, 갇힌 이들, 청맹과니 같은 이들, 억눌린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해[희년]를 선언하는 것임을 말한 누가복음 4:18-19을 인용하면서 교회가 이런 이들을 외면할 때 교회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마태복음 25:31-46을 인용하면서 부자가 된 오늘의 교회들이 굶주린 이들과 목마른 이들과 나그네 된 이들과 헐벗은 이들과 병든 이들과 갇힌 이들을 관심의 우선에 두지 않을 때 교회는 예수의 정신과 예언자의 능력을 잃은 한낱 종교단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고린도전서 11:17-22을 인용하면서 고린도교회에서 애찬식 때 부자들이 먼저 먹고 마시고 취하여 늦게 들어온 가난한 이들이 먹고 마실 것이 모자랐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한국 가톨릭도 가난한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교회가 된다면 그것은 교회일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야고보서 2:1-7을 인용하면서 교회가 부자는 환대하고 가난한 자는 무시하는 경향을 상기시키면서 교회가 악마의 유혹에 빠져 그런 전절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는 권면을 하였다.

평자가 위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의 삭제된 설교를 길게 언급한 까닭은, 이 시대에 교회를 걱정하면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점에 있어서 두 사람의 관점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평자는 김기석의 󰡔아슬아슬한 희망󰡕을 정독하면서 그가 선 자리는 물론이려니와 그가 그의 글에 기꺼이 등장시키거나 암시하는 인물들의 삶의 자리가 거의 다 예수가, 바울이, 야고보가 우선적으로 관심하는 이들의 것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교회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은 혹시 동정을 받는 일은 있어도 일반적으로 정중한 대접에서 제외된다. 심지어는 무례한 이들에게 욕을 보기까지 한다. 김기석은 적어도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 우리를 참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그들이 복음의 핵심에 있다고 하는 점에서는 프란치스코 교종과 한 치의 차이도 없다. 끝으로, 세월호 참사를 두고 하는 우리 교회들의 설교를 여러 편 본 적이 있다. 평자 역시 “하나님의 잠적”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회의 병폐와 하나님의 분노만 제시했을 뿐, 정작 우선적으로 필요한 유족에 대한 연대에는 구차했다. 여기에 반해 저자의 책 󰡔아슬아슬한 희망󰡕에 나오는 “팽목항의 피에타”는 제목 자체만으로도 상상과 감동이 우러나는 한 편의 설교다. 유족의 슬픔을 외면하는 것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깨닫게 한다. 이 글에는 그들의 슬픔에 우리 모두가 동참하도록 우리를 그리로 끌어들여 참여하게 하는 견인력이 있다. 이점에 있어서는 이 책에 실린 그의 글 하나 하나가 다 마찬가지라 해도 괴언이 아니다. 일독이 아니라 정독을 하게 되면 큰 유익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