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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장준식  |  junsikch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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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11월 15일 (토) 21:54:51
최종편집 : 2014년 11월 18일 (화) 12:53:35 [조회수 : 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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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대등한 위치에 섰을 때만 가능하다. 관계가 대등하지 못하면 대화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과 복종만이 발생한다.

종교가 과학과 대화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종교와 과학이 대등한 위치에 섰다는 뜻이다. 그 동안 종교는 다른 분야의 학문을 그저 '시녀'로만 보아 왔다. 철학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래서 중세신학자들은 이런 말까지 했다. '철학은 종교(신학)의 시녀이다."

물론, 종교가 과학을 자신과 대등한 위치로 인식했다기 보다, 과학이 종교의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옳은 표현 같다. 서로 간의 이해 관계가 어찌되었든, 현재 종교는 과학과 대화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개봉된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는 그 동안의 종교와 과학 간의 대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종교의 독점적 주제인 종말과 구원의 문제가 과학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상황적 배경은 ‘구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지구인들의 생존 위기이다. 환경 파괴로 인해 더 이상 양식이 없어 모든 생존자들이 곧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절망적인 상황을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몸부림이 표현되어 있다.

멸망해 가는 지구인들을 구원할 프로젝트의 이름은 <나자로 프로젝트>이다. 나자로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죽어 장사된 뒤 사흘 만에 예수의 신적 능력을 통해 되살아난 인물이다. 이왕 성서에서 프로젝트의 이름을 따올 거면, 궁극적 부활인 <그리스도 프로젝트>로 할 것이지, <나사로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것이 흥미롭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이 가지고 있는 예수의 신적 능력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시아의 구원 능력을 표현하기에는 오히려 나자로를 끌어 들이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나자로 프로젝트는 두 개의 플랜을 갖고 있다.  플랜 A는 거대한 우주선을 띄워 생존자를 모아 지구를 탈출하는 방안이다. 플랜 B는 1천개의 인공수정란를 외계로 보내 인종을 새롭게 퍼뜨리는 계획이다. 플랜 자체가 과학적이다. 그 어디에서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종말론적 신적 개입이 없다.

영화의 재미는 우리가 평소에 접하기 힘든 천체 물리학 이론이 이야기 전개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중력, 상대성이론, 웜홀, 그리고 블랙홀 등이 그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천체 물리학 이론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눈’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생존에 대한 희망을 품고 우주 여행을 떠난 쿠퍼 일행이 10년 전 정착 가능한 별을 찾아 먼저 떠난 우주비행사의 신호를 좆아 들어간 밀러 행성은 중력으로 인한 시간의 왜곡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쿠퍼 일행은 밀러 행성에 단지 3시간 남짓 머물렀을 뿐인데, 지구 시간으로 23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다. 또한 블랙홀을 통과한 몇 분의 시간이 지구 시간으로 56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시간이 시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 중 가장 압권은 쿠퍼가 블랙홀을 통해 ‘사건의 지평’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시간의 이편과 저편, 또는 시간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빨아들여 새로운 공간인 ‘사건의 지평’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책장을 사이에 두고 ‘사건의 지평’이 구분되고 있는 장면이 참 흥미로운데, 이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반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책장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사건의 지평’의 비밀을 풀어낸 쿠퍼의 딸(머피)은 어릴 적 서재에서 경험했던 신비로운 유령 또는 중력의 작용을 해독함으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 젖힌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유레카!”

인류는 과학의 힘으로 멸망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블랙홀을 빠져 나온 쿠퍼는 딸(머피)이 창조해 낸 새로운 구원의 세상(구퍼 정거장)으로 구출되어 지구 시간으로 거의 80년 만에 딸(머피)을 만난다. 우주에서 겪은 시간의 왜곡 현상으로 실제 나이는 124세이지만, 여전히 지구를 떠날 때의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쿠퍼는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있는 ‘늙은 딸’(머피)을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눈다.

 

“I knew I’d see you again.”

(“나는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어요.”)

아빠가 묻는다.

“How?” (“어떻게?”)

“Cause my daddy promised me.”

(“왜냐하면 아빠가 나랑 약속했기 때문이죠.”)

 

종말과 구원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차라리 ‘종교적’이다. 이 영화가 과학적이든 종교적이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종말과 구원은 우리 인류에게 닥친 현실의 문제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이다. 구원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종교적이냐 과학적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인류에게 ‘구원’을 실제적으로 가져다 주기 위해서 종교와 과학의 끊임 없는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종교와 과학, 대화의 끝에 발견한 구원의 길을 마주하며 함께 이렇게 외치는 날을 기대한다. 과학적으로 “유레카!” 또는 종교적으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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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티끌 (222.107.244.157)
2014-11-16 15:38:36
성경은

인터스텔라 영화를

"할렐루야"로 깔끔하게 해석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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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72.37.249.108)
2014-11-16 03:38:18
구원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종교적이냐 과학적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배고파 죽을 지경인 장발장이 진열장 유리를 깨고 빵을 훔쳐 먹었다. 감옥에 잡혀갈 일인가 아닌가? 사람이 사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이 윤리적이냐 비윤리적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구원이 중요하다. 맞다. 어떤 사람이든 육적이든 영적이든 지금 죽게 된다면 구원이 중요하다고 외칠 것이다. 특히 육적인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영적인 죽음에 대하여는 사실 덜 민감하다.
영화에 나오는 과학을 이용한 구원은 육적인 구원인가 영적인 구원인가? 어떤 구원이냐에 따라 그 방법이 종교적이냐 과학적이냐가 중요하다. 맹장염 수술이 중요하다. 그때 사용하는 칼이 무엇이냐가 매우 중요하다. 예리한 수술용 칼이냐 아니면 소 잡는 둔탁한 칼이냐?
영적 구원을 육적 구원과 같은 것으로 바라볼 때 종교적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 말의 숨은 뜻을 더 살펴보면 결국 영적인 구원을 무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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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골팬 (71.20.173.216)
2014-11-22 19:59:04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구원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종교적이냐 과학적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의 숨은 뜻을 더 살펴보면 결국 영적인 구원을 무시하고 있다"고 글 말미에 적으셨는데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논함에 있어서 영적인 구원과 육적인 구원으로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싶네요.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영적인 구원이라고 한정지어 정의해야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이고 영적이든 육적이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누가 구원해 주느냐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라는 질문, 즉 종교이냐 과학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됩니다. 모든 구원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이겠죠. (설교에 많이 사용되었던 예화중에 홍수를 맞아 위기에 처했지만 구조의 손길을 거부하고 기도만하다가 결국 천국에서 하나님께 타박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돌이켜 보시면 이해가 되실 수도 있겠습니다.)

과학은 반-하나님적인 구원만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아니 영적인 구원과 과학의 관계를 아예 도외시 하시는것 같습니다. 필자의 의도를 다시 한번 꼽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의도를 잘 모른다면 최대한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편이 읽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구원이 중요한 것이지...라는 말이 제게는 울림이 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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