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노인들은 참으로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말로만 들어 알고 있는 보릿고개를 넘으며 사는가 하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봄이면 쑥을 뜯으러 가는 아낙들의 긴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연한 쑥으로 향긋하고 구수한 국을 끓여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많이 자란 쑥에 보리라든가 수수 같은 잡곡을 몇 줌 넣어 끓여서는 온가족의 허기를 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먹지 못해 얼굴이 누렇게 뜻 사람들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그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허리가 휘도록 일을 했고, 자식들을 가르치려 애를 썼다. 그래서 생긴 말이 우골탑(牛骨塔)이다. 농촌의 가난한 부모가 소를 팔아서 마련한 등록금으로 대학의 건물들을 세웠다 해서 대학에 붙여진 별명이다.

농촌에서의 소는 가장 큰 재산이었다. 아니 재산 이상의 가치였다. 소가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외양간의 소를 보면 입가에 빙그레 웃음기가 도는 것이 농심(農心)이었다. 그런 소까지 팔아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다. 그들이 지금의 노인들이다. 직장인들도 지금의 보수와는 비교가 안 되는 박봉으로 땀을 흘려 일했다. 그러며 자식들을 가르쳤다.

그때 땀 흘려 일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들을 가르친 그들의 덕택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이 발전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직 때 필자는 어느 교수의 말에 동석했던 사람들과 같이 박장대소를 한 적이 있다. 용돈의 증액을 요구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너만 한 때는 이러이러했다 했더니, 아버지야 아버지의 아버지가 가난한 농사꾼이었으니 그런 것이 당연했지만, 아버지가 대학교수인 나까지 왜 그래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멀리 출타를 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다. 커피를 좋아하는 필자인지라 한 잔 마시며 좀 쉬어가고 싶어서였다. 점원에게 아메리카노를 달라 하니 원두커피냐 했다. 그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아메리카노를 달라 해도 역시 원두커피냔다. 하는 수 없이 더욱 또렷한 발음으로 아메리카노라 해도 또 원두커피냔다. 그제야 필자는 내가 노인이라서 그가 나를 아메리카노도 모를 거라 생각한 모양이라고 짐작할 수가 있었다.

필자는 비교적 맛에 민감한 편이다. 현직시절에는 가까이 지내는 교수들과 점심을 먹으로 가서 필자가 맛있다고 하면 임 교수가 맛있다고 하니 정말 맛있는 집인가 보다고 할 정도였다. 차나 커피 맛에는 더욱 민감한 편이다. 정말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커피향이 온종일 코끝에 맴돈다. 실제로야 그러겠는가마는 그 감각만은 남아 있어 그렇게 느껴진 것일 게다.

이 같은 필자인데 노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목사이고 그래도 전직이 교수였던 사람인데 차림새가 그렇게 남루했을 리 없고 머리에 새집을 지었을 리도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이 시대를 사는 노인들이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로 이 같은 대접을 받는 게 어디 필자의 이런 경우만이겠는가. 미풍양속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노인공경은 이제 말로나 존재하는 유명무실의 개도 안 물어갈 쓰레기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노인을 대하는 세태는 홀대를 넘어 막말과 학대도 서슴지 않는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현실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인들은 이제 집에서도 집밖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자녀와 떨어져 따로 사는 노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 이동되면서 가정은 핵가족 쪽으로 기울어 갔는데,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대처하기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인들만의 가구가 느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자녀들이 늙은 부모를 돌봐 드리려 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에 있다.

세종시가 들어서기 전의 그 자리에 행정수도가 들어가기로 결정이 나자 그곳에 자리한 마을마다의 집집에서는 자식들의 전화로 전화통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고 한다. 몇 달이 지나도록 안부 한 번 안 물어 오던 자식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와 벨 소리가 요란했다 한다. 일 년 열두 달이 다 가도록 코빼기조차 보기 어렵던 자식들이 드나들어 문턱도 달을 지경이 되었다고도 한다. 효도와는 인연을 끊고 살았던 자식들이 갑자기 효자가 된 것이다. 부모님께 하는 효도가 아니라 토지의 보상금에게 하는 효도였던 셈이다.

현명한 부모님이라면 아마 보상금을 받아 자식들에게 주더라도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남겨 두었을 것이다. 만약 자식들을 믿고 몽땅 다 주어 버리고 말았다면 그 노인들은 지금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제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란 말은 말 그자체도 사어(死語)가 되어 버린 지 오래가 아닌가.

극빈층 노인들이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여 자식이 없는 노인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오죽하면 부모를 외면하겠느냐고 하는 동정론도 어느 정도는 이해 못할 것도 없긴 하지만, 옛날 같으면 굶어도 같이 굶지 부모를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다. 복지 선진국들처럼 노인복지에 대한 어떠한 제도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자식들까지 나 몰라라 한다면 가진 것이라고는 없고 늙어 쇠약해진 몸뚱이뿐인 노인들이 어쩌라는 말인가. 그러기에 우리 한국이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가.

방법은 달리 없다.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는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인간이 가지는 본질, 즉 인간다움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인간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인간이나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사람이면서도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길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은 신앙을 바로 세우는 것도 된다. 사람이 모두 기독교인일 수는 없지만, 사람 아닌 기독교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몰라선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성경을 통하여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이 신앙을 기르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향기와 빛과 소금이 되어 삶을 통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되고 나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십계명 중 제오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의 부모님부터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할 일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부모님이신 노인들을 공경하는 것이 옳다. 나의 부모님이 소중하면 남의 보모님도 소중한 것이다. 나의 인격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다른 사람의 인격도 그리해야 하고, 나에게 자존심이 있다면 상대방에게도 있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이런 것조차 모른다면 그는 지구가 태양 아닌 자기를 중심으로 돌기를 바라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의 효성(孝誠)부터 돌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떤가. 합격선을 넘어섰는가. 그렇다면 종합적인 점검에 들어가도 좋다. 합격선을 넘지 못한 상태라면 다른 항목을 볼 것까지도 없이 나의 신앙은 엉망임이 분명하다.

유엔에서는 갈수록 심각하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그리고 노인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뜻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10월 1일을 세계 노인의 날로 제정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날이 국군의 날과 겹쳐짐으로 다음날인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정했다.

이 노인의 날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은 하루 전인 1일에 각계각층의 노인 2백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점심을 같이 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어르신들의 노후를 보살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 말했다. 노인들에 대한 말로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다. 필자는 백점만점에 백이십 점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뭐래도 지금이 노인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이었고, 그러므로 그 “어르신들의 노후를 보살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임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또 노인의 날을 맞아 100세가 된 어르신 1359명에게 짚고 다니면 오래 산다는 청려장(靑藜杖) 지팡이를 선물했다. 노인을 대하는 것이 공경에서 천대로 곤두박질하는 세태에 하나의 자극제가 되리라 믿는다.

여기에서 좀 더 욕심을 부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노인 빈곤률 1위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대통령께 노인복지에 대한 대선 때의 공약만이라도 지켜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노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식사를 같이 한다거나, 100세가 된 어르신들에게 청려장을 선물하는 것 같은 일은 매우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만이라면 하나의 이벤트로 끝이 나고 만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라고. 그리고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라고.

옛날의 노인들은 집이 가난하여 보리밥을 먹어도 자식들의 섬김을 받으며 아랫목에서 먹었고, 밖에 나가도 공경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노인들은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밖에 나가면 누구라 가릴 것도 없이 무시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도 한다. 약자 중의 약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니 그러니 오히려 노인을 국가발전의 가장 큰 저해 요소라도 되는 것처럼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이들도 있다. 공경을 받던 노인들이 어느새 처치곤란의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불행을 당해 일찍 죽지 않는 한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노인을 무시하는 나도 그렇다.

경제만을 생각한다면 사람은 일할 때까지만 살고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죽는 것이 제일 좋다. 병들어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인 이상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이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 맞지만, 그것들에게는 인격이라는 것이 없고, 육신의 생명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더 소중한 영생하는 생명도 없다.

죽지 않아 생명이 있는 인간은 누구나 동일하게 귀하다. 어린 아이나 청소년, 장년과 노인이 모두 똑같이 귀하다. 하찮게 여김을 받거나 무시를 당해도 좋은 연령대는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 죽는다고 할 경우 남는 아쉬움의 크기일 뿐이다.

노인공경이라는 동양적 가치는 변할 수 있다 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은 자 중의 작은 자가 되어 버린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되고, 노인을 홀대하면 예수님을 그리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임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