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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예수 믿고 천당 가는 종교다― 도덕과 윤리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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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10월 01일 (수) 01:16:44
최종편집 : 2014년 10월 03일 (금) 04:29:22 [조회수 : 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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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천당 불신지옥

기독교의 경전은 오직 성경 하나뿐이다. 성경만이 기독교를 인간들에게 바르게 드러낸다. 물론 성령님도 그러하지만, 성경이 아니면 그 존재의 진위 확인이 불가능하다. 마귀가 성령으로, 또는 천사로 가장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그러나 누구도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이 없다. 성경을 통해서 볼뿐이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다르다면 그건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이 아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고 복음도 다르지 않다. (갈1:7-8참조)

기독교의 성장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자 교계에서는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분분해 왔다. 따라서 교회 성장의 방법들도 속속 제시되고 있다. 성장하는 교회와 그러지 못한 교회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좀 투박한 말로 표현하면 ‘예수 믿고 천당 가는 종교’ 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하철 같은 데에서 전도를 한답시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 쓴 어깨띠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떠올라 눈살들을 찌푸리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태로 오히려 전도를 막는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실은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에 가는 그것이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기독교는 도덕과 윤리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기독교가 기독교이기 위해서 도덕과 윤리가 소중한 것이지, 그것이 있다고 해서 기독교 아닌 것이 기독교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시되면 기독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도덕과 윤리는 세상의 그것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고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실제적으로 간음을 해야 간음죄가 적용되지만,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육체 건강한 젊은이가 어떻게 매혹적인 이성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느냐고 하는 반문도 하지만, 예수의 이 말씀은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성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윌리엄 버클레이의 말처럼 “간음하고자 하는 고의적인 의도로 음욕을 품”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매우 열심일 때 그것에 미쳤다 하고, 종교에 미쳐서는 안 된다고도 하는데, 필자는 다른 종교는 몰라도 기독교에는 미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아니 반드시 미쳐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 하면 기독교에 미치면, 예수에게 미치면 도덕과 윤리적인 사람이 되고 사랑하며 바르게 살기 때문이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 근면 성실하며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되면 가정은 행복해지고, 직장은 생산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터전이 된다. 사회는 깨끗하고 정의로워지며, 나라는 약자를 보듬어 다 같이 타고 가는 배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렇게 되라고 말씀하신다.

 

무엇을 위해 시대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부흥하려면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져선 안 되고 그와 발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고리타분하게 옛 것 만을 움켜쥐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남녀칠석부동석이라고 하는 유교적 윤리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남자와 여자의 자리 사이에 칸막이가 되어 있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필자의 젊은 시절까지만 해도 남자자리와 여자자리가 나뉘어 있어 혹 남자가 여자자리에서 또는 여자가 남자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면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는 교회가 많았다.

교회 건물도 십자가의 첨탑이 있는 비슷비슷한 것들이었으나 지금은 형식에 그다지 구해 받지 않는다. 예배실의 의자도 나무로 된 딱딱한 장의자가 아니라 폭신한 개인의자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필자도 동감이다. 예배 또한 주보의 고정된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열린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틀리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변화라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냐 하는 데에 있다. 이에 대개는 그야 복음을 위한 것이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다. 정답이다. 그럼에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변화는 크게 보이는데 복음은 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일이 많다. 변화의 물결에 복음까지도 휩싸여 변해 버리고 말기도 한다. 열린 예배도 그 열린 데로 예배 아닌 것이 들어와 예배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이지 그릇이 아니다. 그리고 그릇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렇다면 내용물은 변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대용물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그릇은 변해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복음이 그것이다.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전했던 복음과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복음이 달라서는 안 된다.

물론 교회(당)에서는 복음만을 전해야지 다른 어떠한 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예배시간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지만, 그리고 성경공부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 인간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말씀을 바르게 공부해야 하지만, 예배라든가 성경공부, 기도와 찬양 같은 것과 직접적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화라든지 취미활동 같은 일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렇게 소극적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시설들을 지역사회에 과감하게 개방하여 이바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능력이 미치는 교회라면 일반 교양강좌나 수준 높은 전문분야의 강연회 같은 것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복음이라는 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면 안 될 일이다.

 

교인이 교회의 손님인가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교인은 교회의 손님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크리스천이라면 믿는 사람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모일 경우 그것을 교회라고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인인 내가 교회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교인이 손님일 수 있겠는가.

자칫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고 교인은 손님이라 생각하기 쉽고, 그렇게까지는 아닐지라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목사들에게 그와 같은 의식이 암암리에 배어 있기 때문에 레스토랑이라든가 백화점 같은 데서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과 같이 교인들의 입맛 맞추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교회를 오늘의 이 지경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필자는 어느 교회의 중고등부 예배에서 그 교회의 부목사가 설교하는 것을 듣고 몹시 놀란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교라기보다 음담패설에 가까운 이성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예배가 끝난 뒤에 있었다. 한 교사가 고등학생 딸을 둔 어머니 집사에게 설교 내용을 들어 우려를 표하자 그 어머니는 요즘 학생들은 그런 설교를 좋아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로서는 놀랍다기보다 충격이었다.

“지금의 교인들은 축복을 해도 발뒤꿈치로 꼭꼭 눌러 넘치도록 해 주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복 아닌 것을 복으로 알고 그것에 매달려 구하는 소위 기복신앙의 행태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그 목사님이 말인즉슨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교인들을 불러들이고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그들의 바람대로 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땅이 낳은 성자 손양원 목사가 신사참배 반대 등으로 청주형무소에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었던 때의 일화이다. 이제까지 거쳐 왔던 광주형무소에서도, 서대문 형무소에서도 그랬듯이 청주형무소에서도 손 목사의 신앙을 변절시키려 갖은 애를 다 썼다. 그래서 그와, 조선인으로 신학까지 공부한 신자였으나 배교하여 일제(日帝)의 앞잡이가 된 사람과 대면시켰다. “목사님 같은 분께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 난세에 버려진 양떼들을 돌봐야 될 것이 아닙니까?” 자못 예의를 갖추어 하는 것 같은 그의 말에 손 목사는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독초와도 같은 비진리를 먹여 양들을 독살시키는 것보다 저처럼 이렇게 옥중에서 죽은 듯이 있는 것이 양들을 위해서 다행한 일입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만, 저의 이러한 옥중생활은 웅변으로 하는 설교보다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전부터 해 왔던 “우리 기독교인은 신구약 66권으로 성경을 읽지만 불신자들은 신자인 우리의 행실을 보고 성경을 읽는다”는 말과 상통한 것이었다.

 

본질을 잃으면 정체성은 사라진다

기독교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복음의 본질을 잃는다면 그건 이미 기독교가 아니다.

필자는 우리 정부의 파견으로 일본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민족교육을 하고 있던 때 어느 모임에서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울 때 사랑을 받듯이 한국인은 한국인다울 때 가장 빛나 보인다’라고 하는 내용의 말을 하여 찬사를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이론(異論)이 많겠지만 30여년 전의 당시에는 그랬다.

그런데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변해서도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복음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다워야 한다’는 것 또한 변해서는 안 되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이란 어떠한 사람일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행을 보고 성경을 미뤄 짐작하고 기독교를 알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내고 자신을 소금으로 녹여 다른 사람들의 삶이 사는 맛을 내게 하는 사람 말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 쓴 어깨띠를 띠고 외쳐대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전도 방법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도가 아니라 전도를 막는 반기독교적 행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라며 교회의 몸집을 불리는 것을 성장이라고 하는 것도 반기독교적이다.

비대한 사람을 가리켜 건강하다 해서는 안 되듯이 비정상적으로 몸집을 키운 교회를 보고 성장했다 해선 안 된다. 비대증이 병이듯이 잘못된 방법에 의해 몸집이 커진 교회도 병에 걸린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물론 적극적인 방법으로 하는 전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아니함만 못하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실을 보고 기독교를 알게 하는 삶보다 더 좋은 전도 방법은 없다. 그 효과는 더뎌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것이며, 그렇게 하여 이뤄진 성장이 진짜 성장이다. 건강하고 건전한 성장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신령과 진정을 드리는 예배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이다.

안달하지 말 일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기독교의 쇠퇴로 인해 마음이 초조하거든 먼저 자신부터 돌아보고 가슴을 치는 회개부터 하자. 그리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와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전도의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반석 같은 주추(柱礎) 위에 기독교라는 집을 짓는 것이다.

 

   
▲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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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8.161)
2014-10-02 16:17:32
이분이 왜
이러시는지...안타깝습니다.........제1계명 의 의미를 아시는지...제2 계명을지키는것은 쉽다.......십자가와 관계 있음을 명심하소서
리플달기
1 0
무릇돌 (218.38.162.97)
2014-10-01 19:43:10
기독교는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에 가는 종교?
라고 한다면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무슨 차이인가?

기독교는 예수를 추종하는 종교이어야 한다!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표현은
참으로 문제가 많은 표현이다.
하늘나라는 가는 곳인가?
하늘나라는 죽어서나 가는 곳인가?

좀 안다는 분들(그래서 기사를 제작하는 분들)이 이러니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수렁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리플달기
2 8
동감 (72.205.29.103)
2014-10-01 21:47:18
기독교는 예수를 추종하는 종교이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을,
이슬람은 모하멧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종교인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에 상관하지 말고
예수의 가르침만 열심히 따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둠은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빛이 비치면
스스로 사라집니다.

일반인들은 주위 기독교인들의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독교를 이해한다는
필자의 주장에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삶 전체가 신앙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도 사후 하늘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걸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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