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참으로 수치스러운 젊은 시절을 살았다. 만 18세 때인 1961년 5월 16일 박장희 소장이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의 일부 군인들과 함께 쿠데타(政變)를 일으켜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하는 일이 벌어졌다. 야무진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필자로선 어리둥절 멍한 상태가 되어 그저 ‘이건 아닌데’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포악해지는 쿠데타 세력들의 만행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키자마자 다음 달인 6월 10일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라는 것을 만들어 공포 분위기를 최고도로 고조시켰다.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독재의 길을 다지고 있는 자기네들의 뜻에 거역하는 것으로 비친 사람들은 누구라 가릴 것도 없이 잡아다가 고문으로 빨갱이를 만들어 옥에 가두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 중앙정보부는 소위 4대의혹사건이라 불리는 범죄활동도 사양하지 않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러하다.

① 증권회사들을 설립하고 대한증권거래소를 직접 장악하여 주가조작을 통해 엄청난 부당이득을 챙긴 증권파동사건을 일으킴.

② 주한미군의 휴양지를 마련하고 외화 획득을 빙자하여 정부자금으로 종합위락시설인 워커힐을 마련하면서 그중 상당한 액수를 횡령함.

③ 일본에서 승용차를 불법 반입한 뒤 이를 시가의 2배 이상으로 국내시장에 판매하여 거액의 폭리를 취한 이른바 새나라자동차사건을 일으킴.

④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도박기계인 회전당구기 100대를 재일교포의 재산 반입처럼 세관을 속여 국내에 수입하도록 허용하고, 서울 시내 33곳에 당구장 개설을 승인하려 한 회전당구기사건을 일으킴.

박정희 정권의 정치자금을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저지른 행위였는데, 나중에 국정감사에서 야당에 의해 그 윤곽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이를 두고 어느 누가 일개 국가의 정보기관이 한 일이라고 꿈엔들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대개의 국민들은 드러내놓고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필자도 그랬다. 박정희의 박자 하나라도 자칫 잘못 입 밖으로 냈다가는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지 모르는 시대였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을 사리는 것이 제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라를 사랑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곤욕을 치러야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말이지 별 볼일 없는 필자는 행여 저 하나 다칠까 봐 몸을 사리느라 그 가운데에 발 한 쪽도 넣어 보지 못했다. 참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청년기였다.

그러는 가운데 십여 년이 흘렀다. 권불십년이라 했으나 그것도 헛소리, 박정희 정권은 시월유신이라는 해괴한 것을 가지고 나와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참히 짓밟음으로 악의 꽃을 계속적으로 피우는 데에 성공했다. 유신이란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하는 것이니 말대로라면 정말이지 좋은 것이나 그 실상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이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1972년 10월에 등장한 그 시월유신이라는 것의 특징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렇게 정리한다.

① 조국통일정책의 심의 결정과 대통령선거 및 일부 국회의원선거 등의 기능을 갖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헌법기관으로 설치되고,

② 직선제이던 대통령선거제도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한 간선제로 되었으며,

③ 대통령의 임기가 4년에서 6년으로 연장되었다.

④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대통령의 후보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일괄 선출하고,

⑤ 국회의원의 임기를 6년과 3년의 이원제로 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의원은 3년으로 하였으며,

⑥ 국회의 연간개회일수를 150일 이내로 제한하고,

⑦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없앴으며,

⑧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않을 것을 못 박았다.

⑨ 대통령이 제의한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로 확정되고, 국회의원의 발의로 된 헌법개정안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다시 의결함으로써 확정되도록 하였다.

그 밖에 1972년 10월 17일의 비상조치와 그에 따른 대통령의 특별선언 등은 제소하거나 이의도 제기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못 박았다.

이에 의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그해 12월 23일 대의원 2,578명 전원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제8대 대통령 선거에 단일후보로 나온 박정희를 2,357표의 득표로 당선시켰다. 투표율 100%에 득표율 99.9%로 무효 1표를 뺀 결과였다. 취임은 그로부터 4일 후인 27일에 했다. 이른바 체육관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시월유신은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단행한 헌법유린 사건이었다.

어떤가. 이를 보고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젊은이들의 끓는 피가 어떻게 이를 관용으로 보아 넘길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수많은 국민들이, 젊은이들이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겁한 필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시 이십대 후반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필자는 솟구치는 분노로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술로 마비시키려 했다. 잘 믿어 보려고 애를 쓰면서도 음주가 무슨 큰 죄냐는 식의 자기합리화로 술을 마시던 때였다.

그러나 술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농촌 학교에 근무하던 필자는 취하자 한밤중의 벌판으로 나가 미쳐 날뛰었다. ‘대한민국 만세!’ ‘시월유신 만세!’ ‘박정희 만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쏘다녔다. 이불속에서 주먹을 쥐는 못난이의 못난 아픔의 몸짓이었다.

제9대 대통령선거에서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투표 중 단 2표만 무효로 99.9% 득표율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시월 유신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弑害)될 때까지 7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아버지를 가리켜 ‘나라를 위해서 사심없이 헌신하셨다’고 평가한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를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거절하면서도,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의 여당 몫 추천위원을 야당과 유가족의 동의를 거쳐 추천한다”는 여야의 2차 합의안을 “마지막 결단이었다”고 못 박음으로 앞으로의 타협에 대한 싹을 잘라 버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너무도 아파 울 수조차 없는 부모를 비롯한 유족들에 대한 위로의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런가 하면 “세월호 특별법은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유가족들의 요구에 대해 순수한 것이 아니라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것이라는 인식도 드러냈다. 그러며 ‘진상이 대부분 규명됐다’는 인식도 보였는데, 정말 그러한가. 다대수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 대통령은 그리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참사 당일에 있었던 숨겨진 자신의 행적에 대한 의혹의 말들에 대해선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라 규정하고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라 했는데,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니 백성이 왕을 위해 존재하는 전제왕조 시대의 국왕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그런 의혹들이 왜 그토록 광범위하게 일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3백여 명의 생떼 같은 생명이 수장되어 가고 있는 그 시간, 그도 7시간이나 되는 그 시간에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으니 국민들로서는 궁금해 하는 것이 당연하고,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도는 것 또한 자연스런 현상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는 국무회의에서 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유가족‧국민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이 5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을 면담하며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다 이야기를 못하더라도 어떻게 속 시원하게 여러분들에게 계속 반영되고 투명하게 공개되느냐를 다시 의논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필자는 지난 대선 때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어도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언론은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검경은 정권의 하수인이 된지 오래이다. 이제 법원까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을 내렸다.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 “박근혜 대통령님, 엎드려 부탁드립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희망의 바른길로 가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말을 썼다. 일루의 희망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무회를 통해 타협의 싹마저 문질러 버린 지금은 깊은 절망뿐이다.

그러다 보니 가슴이 터져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선 앞으로 남은 3년여를 눈감고 귀를 막은 채 동면으로 지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4십여 년 전의 유신 때가 떠올라 그때 불렀던 ‘대한민국 만세!’ ‘시월유신 만세!’ ‘박정희 만세!’와 맥이 이어진 상실감에 의한 만세를 다시 부르기라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