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청계산으로 등산을 갔다. 근교의 높지 않은 산에 집사람과 함께 한 길이었다. 산을 오르고 있는데 옆에 가시던 어르신이 국회의원 지나가신다고 길을 비키란다. 그래서 그분 일행 중에 국회의원이 있으신가 하였다. 그런데 좀 있다 또 그러시는 것이다. 이번에는 앞에 가시는 분에게 조심하시라고 국회의원 지나신다고 하신다. 계속 주변에서 그러시길래 무슨 일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데려가는 강아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눈치가 모자라 이제야 깨달으니 어르신들의 일행들이 소리 높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는 일도 없더니 갑자기 비리 저지른 의원 체포동의안은 부결했데, 서로 싸움박질만 하더니 갑자기 같은 동료 잡혀가게 생겼다고 여야가 힘을 합쳐서 체포동의안을 부결해 버렸다잖아, 그리고 염치도 없지 추석이라고 보너스는 300만원도 넘게 받아갔데. 어르신들은 목청껏 국회의원이 도둑놈이라고, 강아지만도 못하다고 희롱하였다. 그러다 우리 강아지를 보더니 ‘네가 그 놈들보다 낫다’라는 소리까지 한다.

2시간 좀 넘는 산행시간 동안 곳곳에서는 정치인들에 대한, 그리고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만과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어느 아저씨는 함께 간 아내의 뒤를 쫓아오면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 크게 분노를 쏟아내는지 그 호통을 견디지 못해 아내가 멈추어서 서서 그 분들 가시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현재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국민의 뜻을 대의한다는 국회는 공전에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그러다 자신들의 이익이 걸릴 때는 특별한 합의도 없는데 여야가 한 뜻이 되기도 한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속은 터질 것 같다. 불신을 넘어 이제는 분노하고 있다. 도대체 정치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다.

요순시대에는 백성들이 왕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왕은 정치를 의미하는데 그 왕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정치가 순조로웠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정치를 몰라도 자신들의 삶은 풍요로웠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정치에 관심이 있을 때는 정치가 불안정할 때이다. 그들이 어지러워서 자신들의 삶에 악한 영향력을 미칠 때이다. 과거로 치면 폭정이 있을 때이겠고, 지금으로 치면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제가 어려울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특이한 것은 정치가 신문지면을 장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이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도 있고, 정기국회도 있고, 한 해를 마감하고 내년의 예산을 짜야하는 등 할 일은 많다. 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뽑힌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고, 교육감들 역시 새로운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때이다. 분명 정치권에 이슈들은 충분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요순시대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불만과 불신, 분노가 극에 달하여 외면하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너희가 무엇을 하던 우리는 돌아보지 않으리라는 무언의 합의가 국민들 가운데 있는 것이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투쟁과 합의의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싸우는 듯 하지만 또 하나가 되어서 합의를 이루기도 하는 것이 정치이다. 어느 나라나 정치에 대한 풍자는 항상 있어왔고, 정치인들이 정직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의 상식처럼 여겨진다. 그래도 그 정치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결국은 나라를 위하고 나라를 지키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요즘 이 믿음이 우리에게 유효한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바로 이것이 마지막을 잃은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정치를 진흙탕으로 만들어 뭉개버리려는 여당이나 그 장을 던져버리고 거리로 뛰쳐나온 야당이나, 우리 모두의 신의를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가운데 버려진 국민만이 불쌍할 뿐이다. 이 가운데 하나님을 보아야할 이 신학자는 질끈 눈을 감지만 기도가 아니라 분노만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