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386 세대인 40대 장년은 대학시절 주변으로부터 ‘또라이 취급’을 당했다고 했이다.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에 갈 형편이 못되어서 ROTC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녔단다. 그 장학금은 입학 때부터 4년 장학금을 받고 의무복무 2년 6개월에 4년을 추가 복무하는 조건으로 주는 것이었단다. 그런 조건 아래서는 입학 때부터 실질적 군인인 셈이어서 80년 년대 저항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던 대학사회에서 ‘순응의 질서’에 속해야만 하는 ROTC 장학생으로서는 설 자리가 전혀 없었다.

87년 6월 항쟁 시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수업 보다는 시위가 더 많았던 시절 돌맹이 한 번 던지기는 커녕 시위에 참가 조차 할 수없었던 '신분의 멍에'를 지고 그는 학교를 다녀야 했다. 일상적으로 '의심과 '경계' 속에서 '보안'이 중요했었고 학교 밖에서는 '가명'을 써야 했던 엄혹한 시절에 그는 프락치로 의심받는 시선마저도 감수 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직한 그는 변명도 설명도 하지 않고 그런 시선들을 무시하고 때로는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대학 4년 보냈다. 그러므로 그의 대학생활은 다른 학생들로부터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고 실제로도 대학친구가 없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든 자기가 속한 집단과 '다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기가 속한 집단과 정서를 같이 하지 않는 일을 형벌일 수 있다. 소외의 결과로 자기가 가지고 있던 타인과 다른 내적 동기가 더 강화될 수도 있고 왜곡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에서 가끔 벌어지는 집단으로 부터 소외된 이들이 총기 난사를 저지르는 범행을 본다.

그 다름이 사실은 백조인데 주변의 오리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의 고독이면 괜찮은 일이지만 단순히 다수로 부터 거부 당하는 소수일 경우는 문제가 심각해 질 수있다. 여하튼 그 외로움을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외로움이다.

나 역시 그런 외로움을 절절히 느끼면서 8, 90년대를 보내다 호주로 왔다. 내 경우는 그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순응의 문화’ 속에서 홀로 ‘저항의 질서’로 발걸음으로 옮긴 탓이었다. 맹목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은 나에게는 문둥병처럼 天刑(천형)같은 존재였다.

결코 내세울 일은 못되지만 8,90 년대 엄혹한 세월을 통과하면서 교단에서 유일하게 빈민운동을 하고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목사에게 교단의 시선은 항상 차가웠다. 아무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관심을 표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수상쩍게 생각했다. 교단은 나를 항상 껄끄럽게 대했고 심지어는 신학교 동기생들 중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도 대화가 단절되었었다.

대학가의 분위기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전혀 모르는 신학대학의 학장은 학교와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학생들을 배후조종을 한다고 교단에 나를 징계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하는가 하면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서 목사 재직증명서를 요청했는데 교단의 목사로 인정할 수없다면 증명서도 떼어주지 않았다.

결국 그 때부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는 속담대로 교단과 상관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내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스스로 왕따, 즉 자따가 되면서 악으로, 독으로, 깡으로 버텨냈던 불교에서 말하는 ‘인욕바라밀’의 시기를 보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에 의해서 씹힌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못된다. 인류역사에서 제일 많이 씹히는 사람은 아마도 다른 사람이 아닌 빌라도일 것이다. 2,000 년 동안 주일마다 수 억의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하면서 허구한 날 빌라도를 씹어 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빌라도는 로마의 관리로서 마지못해 공무집행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빌라도가 너무 억울해서 하나님께 제발 자기 이름을 좀 빼달라고 호소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듣기 싫더라도 네가 좀 참으렴. 인간들은 원래 누구를 씹지 않으면 심심해서 지내지를 못하느니라.”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도신경에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는 ”유대인에게 왕따를 당하사.....“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들처럼 이해를 받지 못하고 보수 교단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내 입장을 잘 이해를 해 준 이는 신학을 공부한 이후 항상 내 목회의 사표가 되었던 고 허병섭 목사님이었다. 한 번은 소수의 진보적 목회자들이 비장한 결의를 해서 '군부독제타도를 위한 목회자 삭발 단식 기도회'를 하기 위해서 모였다. 주변에는 교인들이 아니라 전투 경찰 1개 중대가 호위를 해주는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삭발을 했었다. 엄숙을 넘어서 침통하게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삭발을 하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단식은 소문 안 나게 나 혼자 하면 되지만 융통성 있는 감리교 장로교 소속 목회자들과 달리 꽉 막힌 보수교단 출신인 나로서는 밖으로 드러나는 삭발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운 오리 새끼인 내가 삭발까지 하면 더욱 씹을 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갈등을 하면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허 목사 님이 "아무래도 지 목사는 안 깍는 것이 좋겠다. "라고 정리를 해 주었다.

또 한 번은 몇명 목회자들이 모여서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나에게 박종열 목사가 웃으면서 "기독교 운동권의 재야 인사이신 지 목사님 한 마디 하시지요."라고 해서 폭소가 터진 적도 있었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이 무관심할 때 소수의 목회자들이 삭발을 했었고 그런 자리에서 삭발도 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바로 당시의 내 처지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