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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한국교회를 구할 수 있는 길은?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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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08월 28일 (목) 13:22:28
최종편집 : 2014년 09월 04일 (목) 20:35:11 [조회수 : 9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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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지금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파국을 맞았다고, 추락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을 대형교회에 돌리면서 대형교회의 행태를 비판한다. 물론 한국교회가 타락하게 된 모든 원인을 대형교회에서만 찾는 것은 온당한 접근이 아니겠지만, 그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하고 그 교회들의 타락상으로 인해서 교인들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이 주로 대형교회로 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한때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자랑거리였다. 호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내가 나가던 호주 교회의 한 할머니가 세계에서 가장 큰 한국교회의 목사가 와서 부흥회를 한다니 같이 가자고 말할 때, 나는 한국의 기독교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그 교회를 비롯한 대형교회들에서 자행되는 부정과 비행으로 인해서 개신교회뿐 아니라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어제 한국교회의 자랑거리였던 대형교회들이 오늘에는 한국교회의 문제거리가 되었다. 그 대형교회들의 부패상으로 인해서 개신교회의 신인도가 땅에 떨어지고 교인들의 수는 해마다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개신교회가 위기를 맞았다고, 한국교회가 추락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추락하는 한국의 개신교회를 구할 길이 없을까?


벤치마킹의 필요성

어느 기업체에서 계속 적자가 나서 파산 위기에 이른다면, 적자의 원인을 면밀히 조사해서 회사를 회생시킬 만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망하고 말테니까 말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처럼 개신교회가 추락할 때에는 그 근본 원인을 알아내서 혁신적인 개혁을 추진해야만 교회가 회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한국교회를 추락시키는 부정적인 세력의 중심에 대형교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 대형교회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고 그 교회들의 현안 문제를 해결할 길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번 필자가 가톨릭교회에 가서 벤치마킹을 하자고 제안했더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우리가 가톨릭에서 배워야 할 정도로 그렇게 위기에 처해 있단 말이냐고 반문했고, 일부에서는 가톨릭에서 배우자고 말하는 사람은 개신교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벤치마킹은 무조건 상대를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으려는 일이다.

인간에게 장점과 단점이 있는 것처럼,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에는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 개신교회에는 장점만 있고 가톨릭교회에는 단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며 편향적인 사고이다. 지금의 가톨릭교회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6세기의 가톨릭과는 다르다. 어떻든 요즘 가톨릭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개신교회의 교인들은 계속 줄어든다. 우리의 배가 아플 정도로 그쪽이 잘 나가는 것은 우리에게 없는 어떤 좋은 것이 그쪽에 있기 때문 아닐까?

가톨릭교회에는 대형교회가 별로 없다. 도시가 확장되어 나가서 새로운 주택지역이 형성되면 그곳에 새로운 교회를 세운다. 내가 사는 곳에는 새로운 주택 지역이 생겼는데, 그곳에 가톨릭에서 처음에 조그만 성당 가건물을 짓더니 몇 년 후에 보기 좋은 교회건물을 완성했다. 그 성당 주변에 사는 교인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 성당에 나가지 않고 그 성당에 나간다. 그렇게 해서 각 지역마다 1,000여명이 모이는 중형급 교회들을 세워나간다.

가톨릭에서는 각 교회의 교인들이 건축헌금을 내기도 하고 이웃 교회에 가서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교구의 본부에서 지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원은 가톨릭에 각 본당을 관할하는 교구청 같은 기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교회도 없지만, 아주 큰 교회도 없다. 그들은 교회가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특히 대형교회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것 아닐까?


교회의 타락을 주도하는 대형교회

대형교회에는 수만 명씩 혹은 수십만 명씩 교인들이 몰려든다. 그렇게 큰 교회는 건물부터가 탄성이 나올 만큼 어마어마하게 크고, 성가대만 해도 몇 백 명씩이고, 말씀도 좋아서 그 교회에 가보면 그런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교인들이 늘어날 때 교인들을 나누어 내보내서 작은 교회를 세우는 착한 교회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에서는 교회의 몸통을 더 키우기 위해서 총동원주일을 지키면서 전도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 대형버스들을 시내 곳곳에 돌리면서 교인들을 저인망식으로 긁어모은다.

그런데 이러한 대형교회가 지금 대부분 부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런 대형교회에는 헌금이 많이 들어와서 돈이 남아돌게 되고 돈이 남아돌면 탐욕의 검은 손이 암약한다. 이렇게 대형교회를 유지하는 목회자들의 말은 아름답고 풍성하고 성경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 교회의 몸통을 키우는 데에는 그들의 인간적 욕심이 크게 작용한다. 그들 중에는 권위를 즐기고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우상화하는 데에 만족감을 느끼고, 큰 행사에 설교자나 기도자로 불려 다니면서 행세하는 것을 즐긴다. 이러한 대형교회의 폐해가 수없이 지적되고 있지만, 개교회주의를 내세우는 개신교회에서는 그들을 규제할 방도가 없다.

요즘 한국의 개신교회가 비난을 받는 것은 주로 이러한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저지르는 인사비리, 재정비리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에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면, 그들의 본능적 욕구가 분출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도덕규범이 있고 법이 있다. 그렇게 비리를 저지르는 목회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눈도 사람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도 없다. 그래서 더 많은 명예와 재물을, 더 많은 교인을, 더 큰 교회건물을 원한다. 이러한 목사들의 인간적 탐욕이 한국처럼 심하게 나타난 곳이 세계 어디에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16세기에 가톨릭교회에서 베드로 대성당을 짓기 위해서 면죄부를 대대적으로 팔았다. 당시 가톨릭교회가 순수한 신앙적 열정만으로 성당을 그렇게 크게 지으려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이 판매한 면죄부가 그들의 신앙적 눈이 멀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이 면죄부로 인해서 가톨릭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한 것을 보고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킬 결심을 했다.

많은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명예욕, 재물욕, 음욕에 빠져 있고, 온갖 간교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다. 교회 재정을 유용해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목사, 음행으로 인해서 지탄을 받는 목사, 학위논문 표절로 문제가 된 목사, 가짜 학위를 자랑하는 목사, 돈을 써서 단체장 자리를 얻은 목사, 법을 어긴 목사를 공적인 자리에서 치켜세우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목사, 법이 세습을 차단하자 교단을 탈퇴한 후 세습을 하고 난 후에 다시 그 교단으로 들어온 목사 등은 대부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들이다. 하나님이 소돔 땅에서 열 명의 의인을 찾지 못하신 것처럼, 이 땅에서도 그 열 명을 찾지 못하실까 두렵다.

왜 교인들은 그러한 타락한 목사들을 감싸는가? 왜 그들을 설교단에 계속 세우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타락한 목사와 교인들이 한통속으로 어울려 돌아간다. 한국의 개신교회를 무너지게 만드는 그들의 가증한 행태를 보시고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셨듯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저주하시지 않겠는가!


작은 교회의 이점

대형교회에서는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영적 교감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대형교회에서 목사가 기억할 수 있는 얼굴이나 이름은 몇이나 될까? 기껏해야 장로들, 권사들 같은 중요한 사람들의 얼굴 아닐까? 집사들을 비롯한 평신도들, 다시 말해서 풀뿌리 신자들의 얼굴은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담임목사가 그들의 영적 상태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목사의 설교는 교인들의 영적 상태와 거리가 먼 추상적인 미사여구에 불과할 염려가 있다.

어느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님이 기사에게 일이 생겨서 손수 승용차를 몰고 나갔다. 그런데 옆에 오던 택시가 속도를 내더니 이 목사님의 차 앞으로 갑자기 끼어들었다. 목사님이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면서 브레이크를 세게 밟으니까 뒤에 오던 차들도 끽 소리를 내면서 급제동을 걸었다. 정신을 차린 목사님이 속도를 내서 그 택시를 따라가서는 차에서 내려서 신호를 기다리는 그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당신 그렇게 난폭운전을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목사님의 거친 호통 소리를 들은 택시기사가 풀이 죽은 표정을 짓더니 “목사님, 죄송합니다. 저 00교회의 000 집사입니다”라고 그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이름을 대더라는 것이다.

그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당신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덧붙인 말은 대형교회에서는 목사가 교인들의 신앙상태는 고사하고 얼굴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수만 명씩 모이는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집사들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어떻든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개인적인 접촉이 없는 교회에는 분명히 큰 문제가 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목사가 문간에 서서 교인들의 손을 잡아주면서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대가 자기의 이름을 기억해 주면 좋아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한다. 특히 영적 지도자인 목사는 교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신앙상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면 언제나 목사와 교인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교회에서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구체적인 영적 돌봄이 그리고 교인들 사이에 따뜻한 형제의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개교회주의의 문제점

오늘날 한국교회를 추락시키는 대형교회들은 개교회주의로 인해서 생겨났다. 개교회주의는 개별 교회의 운영을 중앙의 관리·감독 없이 전적으로 개별 교회에 맡기는 교회 제도이다. 연회나 노회 혹은 총회가 있지만, 실제로 각 교회의 운영은 상부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개별 교회의 당회장의 책임 아래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목사 자격을 갖춘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할 수 있다.

개신교의 개교회주의는 평신도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성경을 읽게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성경을 자유롭게 읽는 것은 아주 좋은 그리고 올바른 일이지만,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하기 시작하자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고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미 종교 개혁기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교파가 만들어지고 각 교파는 경쟁적으로 세 확장에 힘썼다. 이러한 경쟁의식은 한 교파 안에 있는 교회들로 파급되어서 개교회주의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인의 극성스러운 파당정신이 작용해서 한 교파 안에서도 교단이 나뉘고 각 교회의 경쟁도 심해졌다.

그동안 개교회주의로 인해서 각 교회들이 상부의 통제 없이 그리고 옆 교회의 간섭 없이 열심히 전도함으로써 교회를 성장시켜 왔다. 개교회주의가 한국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개교회주의의 자유경쟁이 교회들을 약육강식의 살벌한 싸움판으로 몰고 갔고 결국 자본주의 경제의 폐단인 빈익빈 부익부의 결과를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기업체의 자유경쟁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교회의 자유경쟁에는 기업체의 경우와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같은 자유경쟁의 정신이라도 기업체와 교회에 적용될 때 그 결과가 아주 다르다.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체들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떤 수단방법을 쓰더라도, 법에 저촉되지 않은 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는 이익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성장의 방법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체에서는 벌어들인 돈을 어디에 투자하든 이익만 남기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교회 재정을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쓰는가가 크게 문제된다. 교회는 가진 것을 자신을 위해 쓰는 집단이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교회에서 자행되는 자기 몸통을 키우려는 노력 그리고 자기의 배를 채우려는 재정의 유용이 오늘날 교회의 신인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개교회주의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

실상 개교회주의로 인한 교회의 난립이 사회문제를 일으켰고 대형교회의 부패가 한국의 개신교회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개교회주의를 극복하지 않고는 한국의 개신교회가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개신교회의 회생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개교회주의를 버리고 가톨릭에서처럼 각 교회를 관리·감독하는 기구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총회나 교구 단위의 감독기구를 세워서 그 기구로 하여금 교회 부패의 뿌리인 장기목회를 막기 위한 순환목회를 관리하게 하고, 교인의 수가 어느 정도를 넘으면 교회를 분립하도록 적극 감독해야 한다. 그리고 기금을 마련해서 영세한 교회의 목회자들에게는 기본적인 수준의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 이런 획기적인 방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개신교의 교인수가, 어떤 사람들이 예상하듯이, 100만 명에서 650만으로 감소한 교인수가 멀지 않아 300만 이하로 줄어들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최악의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지혜를 모아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강력한 혁신운동을 벌여야 한 때이다.

제도적 개선이 만능이 아니라고, 먼저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행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부패의 중심에 서 있으니 그들과 그들이 가르치는 교인들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들이 입으로는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하더라도 그들의 뱃속에는 사탄의 구더기들이 들끓고 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듯이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들을 성경말씀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돌이키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들은 누구보다도 성경말씀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 말씀과 가르침을 가르치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에게는 어느 논리적인 설득도, 감동적인 권면도 먹혀들지 않는다. 아무리 매스컴에서 그들을 공격해도 그들은 그들의 추종자들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성 안에 숨어버린다. 이제 제도적 제재를 가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추상적인 개선책만을 내세운다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듯이 한국교회는 나날이 추락할 것이 분명하다.

개교회주의에 제동을 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개교회주의의 역사와 장점을 내세우면서 반발하는 세력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교회주의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추락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제도적 장치가 인간의 사악한 본능적 욕구를 제어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사회에 제도적 장치가 있고 법이 있다. 자유가 좋은 것이지만, 그 자유로 인해서 한국교회가 추락하게 된 지금, 교회의 회생을 위해서 그 자유를 제한하는 수밖에 다른 방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부터 여러 사람들이 제2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는데, 이렇게 개신교회가 추락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 개혁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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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티끌 (220.118.20.224)
2014-08-28 18:47:49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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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
촛대를 옮기시는 분 (72.37.249.108)
2014-09-03 04:49:46
성삼위하나님
우리는 왜 촛대가 옮겨지는지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무슨 제도이든 욕심많은 인간을 당해내지 못한다. 과연 코람데오의 믿음이 있는가? 눈에 보이는 맘몬이 신으로 보일 뿐 영이신 하나님이 신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맘몬 앞에 거룩히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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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포이멘 (183.109.98.143)
2014-08-29 01:32:11
몰라서 묻는 것인가?
.

지난 주 40년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오후 찬양예배가 끝나고 장례식장에 들렸다.

많은 성도들이 함께 참여했다.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 차가 승합차이기에 여러 성도들을 태우고 모셔다 드렸다.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어느 은퇴장로님의 부인이 이야기를 했다.

교회에 대적하다가 대적한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


그때 나의 부인이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부친이 교회 땅을 일부를 측량을 하여서 돌려주었다는 이야기를....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추락하는 한국교회는 성도가 우민화가 되어 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사가 예수님의 삶을 살려고 해도

우민화 된 교인들이 목사를 교활하게 만든다.

쌍으로 같이 노는 것이다.

무조건 목사를 숭배하는 교인들과

모르는 척하면서 받아들이는 교활한 목사들이

쌍으로 멸망의 춤을 추는 것이 바로 한국 교회이다.

이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바로 한국 교회를 살리는 것이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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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
개혁본부 (210.210.216.244)
2014-08-28 22:15:23
누가?
어떻게?

절대 구할길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자꾸 큰교회, 작은교회 나누기식으로 하면 서로 득될일 없다.

큰 교회는 막대한 재정으로 아주 작은교회 한 100교회씩 떠 안아야
한다.
작은교회 또한 그에 상응하는 정성어린 답변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호형호제 해야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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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이사야 (121.129.19.10)
2014-08-31 00:57:57
명성교회나.사랑의교회
처럼 비상식적이고 불의하고 가식과 위선으로 교회를 운영해서는 안된다...김삼환 오정현 목사직을 사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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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깨는돌 (218.38.156.105)
2014-08-28 21:11:08
개교회주의에 제동을?
모 교단 예를 들면
개교회 차원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교회도
총회로 모이면
합하여 덩이 되는 판국에
개교회주의에 제동(?)이라는 표현은
좀 아닌 듯 합니다.

추락하는 한국교회(?)도
걱정없습니다!

예수와 상관있는 교회면
추락하지 않을 것이고
예수 이름만 들먹이는 교회라면
하루빨리 소멸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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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

최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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