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빈민운동을 할 때 어디든지 재개발이 벌어지면 가옥주와 세입자 간에 갈등이 벌어졌다. 사연은 이렇다. 블럭으로 지은 보잘 것 없는 집 한 채를 가진 가옥주가 있다고 하자. 처음에 가옥주는 건축비 20-30만원을 들여서 남의 땅에 무허가로 허름한 집 한 채를 짓는다. 가옥주가 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쩌다가 이사를 가게 되면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5만 원을 세를 놓고 나간다. 그렇게 해서 월세를 사는 사람은 10년이면 6 백만 원의 월세를 주인에게 내게 된다.

결국 세입자는 무려 집값의 30배의 값을 내는 샘이지만 막상 재개발이 되면 가옥주는 아파트 분양 입주권을 받게 되고 세입자는 그냥 나가야 한다. 세입자는 애초에 가옥주가 투자한 돈의 수 십배를 내고 살았지만 아무 권리를 주장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사유재산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의 땅에 지은 무허가 주택이라도 가진 사람과 가질 기회를 놓친 사람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먼저 들어와 무허가 집을 지은 사람에게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되면 가옥주는 집을 철거해야 하는데 세입자는 집을 비워주지 않고 버티게 되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얼마 전 개각을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총리나 장관 후보였던 사람들이 군대생활을 하면서 학위를 마쳤다는 보도를 보면서 나도 생각해보니 군대시절에 특혜를 누린 기억이 났다. 군대를 늦게 가서 월남까지 다녀 온 다음에 26세의 노병으로 말단 소총 소대에 가서 몇 살이나 어린 병사들과 같이 구르려니 신세가 고달팠다. 마침 아내의 집안 쪽으로 육사 출신 연대장을 하는 이가 있어서 부탁을 했다. 그 분이 우리 사단에 있는 육사 동기인 작전참모에게 부탁하고, 작전참모가 육사 후배인 우리 대대장에게 부탁하고, 대대장이 육사후배인 PX 관리장교에게 부탁을 해서 사단 PX에 파견 근무를 나가서 편하게 생활을 했었다. 이 사건은 내 생애 딱 한 번 기득권의 맛을 본 것이다, 기득권의 그물이란 그렇게 촘촘하고 편리한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기득권이라도 일단 쥐었다 하면 절대로 포기하거나 양보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당신의 제자들은 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대로 손을 깨끗이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느냐?” 혹은 “왜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이삭을 따 먹어서 안식일을 범했느냐?’고 시비를 걸었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들의 교회라고 할 수 있는 회당에서 한 쪽 손이 오그라들어 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었을 때도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면 율법에 어긋나는 게 아니냐?”고 시비를 걸었다. 이 모든 것은 당시의 종교 기득권 세력의 도전이었다.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가 있는가를 물었을 때 예수는 “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고 했다. 즉, 예수는 부자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버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는 예수가 실제로 부자 청년이 자기의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주는 것을 기대해서 했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가 그의 속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들에게 있어서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태어날 때부터 지게 되었다는 원죄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역사에 역사를 빛낸 이들은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과 싸운 사람들이다. 어차피 내가 갖지 못한 기득권과 싸우는 것은 내가 가진 기득권을 버리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다.

기득권으로 기득권을 깰 수는 없다. 오직 자기 희생으로 깰 수 밖에 없을 뿐이다. 지난 재보선에서 기득권을 버리는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던 철수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기득권 지키는 것을 생존전략으로 하는 한길이의 꾐에 빠져서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이제 그는 한 사람의 평범한 국회의원 노릇 밖에 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한 순간이라도 기득권에 집착하면 타락의 길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 구원의 길이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씀이 공연히 나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