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규(전 해군본부, 군종 차감)

한국군 28사단에서 사병 구타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군에서는 사고가 날때마다 여러번 ‘병영문화 혁신책’ 등 병영쇄신 방안을 내놓곤 했었는데 왜 또 이런 참담한 사건이 터졌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당국은 서둘러 대책 혹은 ‘쇄신책’등을 내놓는다. 이번에도, 국방부는, ‘민관군 합동 병영혁신 위원회’를 가동하여, 병영 문화와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쇄신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위에서 ‘쇄신책’을 만들어 하달해도, 말단부대인 소대, 분대 및 생활관 현장에서 그것이 말단 ‘지휘자’들의 의지에 의해 실천이 되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위에서 명령, 지시로만 할것이 아니라, 부대를 담당한 지휘관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어야 한다. 이번과같은 사건이 다시는 발생되지 않도록 군은 무언가 획기적인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은 ‘군 계병제도’여서, 군 문제는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의 관심사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과거 나의 군 생활 경험에 비추어, 군에서의 사건, 사고 방지책 한두가지를 제시해 보려고 한다. 관계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1. 나의 ‘소대장’생활의 경험

우선 나의 ‘소대장’ 근무 때의 경험을 말하고자 싶다. 나는 해병대 ‘소대장’ 생활을 1년 가까이 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가장 기본말단 부대인 ‘소대’의 ‘지휘자’인 소대장이 그의 소대를 잘 지휘하고, 소대원들을 잘 챙기기만 하면 이번과 같은 사건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나는 처음 해병 제1여단, 전방부대 ‘소대장’으로 발령받아 갔을 때, 약 6개월간, 소대 내무반에서 소대원들과 함께 기거하였다.

소대원들과 같이 자고, 같이 뛰고, 같이 뒹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급적 간격도 줄고, 인간적으로도 친밀해졌다. 얼마 안 되는 소대장 봉급 털어, 가끔 ‘막걸리피티’라도 열어주면 모두 신이 나서 어울려 노래 부르고 춤추고 좋아 했다. 그때는 군대가 배고픈 시절이었다. 나는 ‘사격선수’였음으로 실탄이 많았다. 그 지역에는 콩새’라는 새가 많아 사격 연습 겸 쏘아 잡아서 소대원들의 부식으로 사용했다. 소대장이 자기들을 진정으로 돌보고 위한다는 마음이 통하자 대원들은 언제든지 소대장과 허물없이 상담을 하였다. 혹시 누가 구타당한다면, 누가 문제 있다면, 그 다음날이면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소대장을 중심으로 똘똘 전우애로 뭉치니, 사기는 진작되고, 사고나 어떤 나쁜 사건같은 것이 발붙일 소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분대장들의 지휘역할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해병‘소대’는 육군보다 수가 많아서 43명이다. (해병대는 상륙 공격부대임으로 희생이 많을 것을 감안하여, 그 수가 더 많다) 소대장 혼자서는 어렵다. 그래서 분대장들의 역할도 잘 활용하였었다.

윤일병은 한달가량 계속 구타,폭행 당했다고 하는데, 소대장이 같은 내무반에서 같이 지낸다면 그런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2. 지휘관들의 뼈를 깎는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사고 방지책’은 단순하다. 모든 기본 말단 부대의 지휘관(소대장, 중대장 등) 들을 모두 소대원과 함께 영내에서 내무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들이 일일이 병사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돌볼(Caring)수는 없다. 그러나 소대장은 가능하다. 소대장으로 하여금 생활관에서 함께 지내며, 책임지고 그의 부하들을 돌보게 하라. 그리고 중대장도 중대내의 영내에 기거하며 그의 중대의 상황을 항상 살펴보게 하라. 그러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결코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현재 군 제도에서, 대부분 장교들은 일과 근무가 끝나면 모두 퇴근한다. 그러면 오후 5시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의 밤시간에는 일부 부사관이나 선임병들이 내무반에서 활개를 친다. 바로 그시간에 선임병에 의한 구타, 폭행같은 것이 발생할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휘관들이 임기 중에는 사생활을 희생하고(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영내에서 부하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병사들을 돌보면 사고, 사건은 대부분 예방될수 있고, 이번과같은 폭행 치사사건 같은것은 절대로 발생할수 없을 것이다. ‘사고 예방책’이라고 위에서 지시만 할것이 아니라 지휘관들이 뼈를 깎는 희생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그런 희생적인 헌신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수 없다.


3. 군종장교가 국가예산으로 한국군대내에 존재하는 이유?

또 중요한 것은 군종장교들의 사명과 역할이다. 한국은 종교국가도 아닌데, 군에 군종장교가 있는 것은 군내에서 종교활동 혹은 전도, 포교활동만을 하라고 국가에서 예산을 사용하며 있게 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한국 군종제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논하지 않겠다. 미국같은 나라는 국민 다수가 기독교인이므로 군대내에 군목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인 분포는 군내에 꼭 종교지도자를 국가예산으로 둘 필요까지는 없다. 한국군 내에 지금 군목, 군종신부, 군승, 세 종단의 군종장교가 있는데, 군대내에는 사실 비종교인들이 더 많다. 그래서 한국군내에 군종장교의 존재 이유를, “군내에서 종교신앙, 정신교육, 상담 및 ’돌봄‘(CARING)의 사역을 통하여 장병들의 정신전력을 증진시키고, 사기를 진작시켜, 각종 사고를 예방하며, 결과적으로 군내 전력의 향상을 위해서” 군종장교가 군대에 있는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본부에 ‘군종감’이 있었고, 각부대에는 ‘군종참모’가 있었다. 참모회의에도 참석하여 업무보고도 하고 참모들과의 토론에도 참여하였다. 각부대를 순회하며 ‘정신교육, 인성교육’도 시켰다. 여러 가지 사고 방지를 위한 활동도 하였다.


4. 군종장교들의 특별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

이제 다시 나의 얘기로 돌아간다. 나는 군목으로 군대에 입대한 것이 아니라 일반 해병장교로 군대에 들어갔다. 내가 해병사단 정훈참모실, 공보과장으로 근무할때다. 당시 해병 2연대에 사고,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었다. 사단장의 연말 순시때, 2연대에서 왜 사고가 많은지 ‘분석’ 보고가 있었는데, 그중 제일 끝 항목에, “본 연대에는 군목이 장기간 부재하여, 장병선도에 문제가 있어 사고가 많다” 는 것이 있었다.

본래 해병대에는 자체 군종제도가 없다. 해군에서 파견 나온다. 그런데 당시 해군 군목의 수가 부족하여, 해병2연대는 장기간 군목이 공석이었다. 사단장이 해군 군종감에게 군목을 당장 파견하라고 요청했으나 군종감은 군목의 수가 모자라 보낼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사단장은 대단히 화가 나서 인사참모를 불러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다. “현지 조달해!” ’현지조달‘이란 보급품이 상부에서 조달이 안될 때, 현지에서 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단장의 명령은 현재 사단 내에 근무하는 신학교출신 장교를 임시 군목으로 발탁하라는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일반 해병장교였지만, 특명으로 2연대 군종장교로 임명 받아, 사단장이 달아준 십자가를 옷깃에 부착하고, 2연대로 부임했다.

나는 연대장과 의론하여, 영내에서 사병들과 함께 기거를 시작하였다. 정말 시끄럽고 힘들었다. 24시간을 근무하는 셈이었다(잠자는 시간 포함하여) 연대내의 각부 대, 각부서장들과 협력하여 (물론 연대장의 특명을 얻었다) ‘문제사병’ (지금의 관심병사) 전원을 한사람 한사람 만나 상담하고 지도하였다. 각부대를 순회하며 계속, 정신교육을 시행하였다. 야간에는 보초병들을 찾아다니며, 먹을것도 주며 격려해주었다.

부대별로 부대장 및 전장병 참석리에 ‘사고방지’를 위한 특별기도회를 개최했는데, 불신자 지휘관들은 ‘고사’지내는 것이라고 ‘돼지대가리’ 제사상같은것을 차려 놓기도 했으나 나는 그것을 허락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므로 그런 것 상관하지 않았다. 시내에서 성가대도 불러왔다. 기도회를 마치고는 부대 파티가 열리니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진작이 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혁신적인 노력으로 약 1년이 지나자, 해병 2연대는 당시, 사고 ‘다발 부대’라는 불명예를 벗고, 사고 최소 부대‘로 변하였다.

나는 그때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해병 2연대를 떠날 때 강기천 사단장으로부터 ’공로 표창장‘과 시계선물을 받았다. ’표창장‘은 군대에서 진급등에 영향을 주므로 서로 받고 싶어 하는데, 아마 ’연대‘ 군종장교로 표창받은 예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당시는 해병대에는 ’해병 사단‘ 1개만 있었으므로, 해병사단장은 해병대 사령관 다음으로 높은 지휘관이다. 그러므로 사단장의 표장장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후 나는 해병 여단에서 군종참모로 근무할 때는, ‘영창’에서 출감한 ‘전과자’들을 일단 군종실에 발령받게 조치하여, 군종실에 1-3개월 정도 같이 있게 하며, 선도하는 일도 하였다.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좋은 성과가 있었다. (나의 이 스토리 일부는, 해군본부에 있던 신종선 목사가 쓴 ‘해군 군종사’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군내에서 군종장교의 임무, 위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과거 내가 근무할 때와 기본 임무는 대동소이할 것이다. 군종장교들이 부대 내에서, 군인교회, 법당에만 머물러 있지말고, 부대원들을 위하여 정말 밤낮 헌신적으로 활동한다면, 군내 사고는 크게 감소되고, 또 예방도 되리라고 확신한다. 교회들은 군목들을 적극 지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