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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보다 더 추할 수는 없다.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 참관기
구교형  |  ku6699@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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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5월 24일 (수) 00:00:00 [조회수 : 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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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 55차 총회를 참관하면서 느낀 내 전체적인 소감은 ‘정말 해도 너무 한다’,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라는 것이다. 목사든 장로든, 임원이든 총대든 그들은 철저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울고 웃었다. 지금까지 내가 참관한 수 십 개의 총회들 가운데 가장 목사, 장로라는 타이틀이 어색한 총회였다.

   
▲ 지난해 광주 총회에 이어 올해도 기하성 총회 장소를 찾은 구교형 목사는 어김없이 멱살을 붙잡혀야 했다. ⓒ뉴스앤조이 이승규
1. ‘어르신의 뜻’을 빙자해 제 소견을 관철하는 총회

이틀 째 총회는 이미 예견된 잡음들을 의식하는 서상식 총회장의 군기잡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총회장은 안그래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의사진행 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한다며 아까운 시간을 두 번이나 정회하며 시간을 허비한 끝에 10시 30분 쯤 비로소 개회했다.

그러나 총회는 처음부터 목사 정년제 폐지와 당회의 무력화 등 소위 ‘목사 영구독재 조항들’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했다. 바로 그 때 기하성이 낳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 박성배 총무가 또 나섰다. 요지는 이렇다. “헌법 개정안 자체는 합법적이니 마땅히 상정해 처리하는 게 옳겠으나 기하성을 사랑하시는 ‘어르신’께서 문제조항을 유보하는 것으로 절충하면 좋겠다고 현명한 충고를 하셨으니 우리 모두 ‘어르신의 뜻’을 이해해 이를 받아들이자.”

참으로 웃음조차 안나오는 말이었다. ‘이게 정말 교단 총회가 맞나?’ ‘어르신의 뜻’이 거명되자 어느 누구 하나 감히 한 마디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다. 그 때 어느 목사님 한 분이 나서서 “그건 올바른 원칙이 아니다. ‘총회 때 다루지 못한 주요안건은 실행위원회에 넘기고, 실행위원회 결의는 총회 결의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문제 조항들이 여전히 살아 남아 있는데(필자 주: 그렇게 되면 총회에서는 중요안건을 처리하지 않고 대충 넘긴 후 실행위원회에서 처리해 버려도 총회와 같은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하려면 모든 개정안을 다 연기하든지, 모든 개정안 전체를 절차에 따라 다 올려야 한다.”고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했다.

그 때 등장하는 직전 총회장 정원희 목사의 명대사다. “조용기 목사님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없이 우리 교단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조용기 목사님이 개인인가? 위에서 보는 것과 아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보는 것은 다르다.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잘나도 우리가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다르고, 성도들이 아무리 잘 본다 해도 그들이 보는 것이 우리 목사님들이 보는 것과 같은 수 없다. 마찬가지로 조용기 목사님이 보시는 것이 어찌 우리가 보는 것과 같겠느냐? 이건 가부를 물을 것도 없다. 만장일치로 받아들이자.”

이 한 마디로 그가 ‘어르신’의 충성스런 제자임을 얼마나 과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대 앞에서 이 발언을 분명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정도쯤의 말을 했는데 감히 누가 다른 토를 달겠는가? 결국 ‘어르신의 뜻’은 받아들여졌고, 개헌안은 일단 장로들의 관심사만 유보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순간 방청석에 있던 장로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로들은 그 이상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작년 조용기 목사 정년연장을 적극 옹호하면서 이미 미국의 모법 운운하며 ‘성직자에게는 정년이 없다.’고 스스로 성명해 놓고서 1년 후 결국 그 말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였음을 뒤늦게 깨닫고 반발했으나 역시 기하성 개혁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지에 대한 관심 이상을 나가지 못했다.
내용의 찬반을 떠나 절차가 중요한 때가 있다. 특히 공적인 회의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단의 특수성을 말하지 말라. 기하성 관계자들은 ‘장로교는 절차와 법을 중요시할지 모르겠지만 기하성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를 뿐이다’라고 자주 항변한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성령의 인도하심인가를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교권주의자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명목상 성령의 인도하심의 자유함’이 이렇게 자주 사람숭배로 나가는 점을 어떻게든 해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성령성령’ 떠들다가 ‘성령훼방죄’에 빠질 위험을 정말 조심하라.

6공화국 시기 ‘노심’(대통령 노태우의 마음), 국민의 정부 시절 ‘김심’(대통령 김대중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노심’과 ‘김심’의 추악함은 이른바 ‘노심’, ‘김심’을 공식적인 대변자로 자임한 자들의 추악한 정치였다. 이승만 시대의 이기붕, 유신 말기의 차지철 또한 ‘어르신의 뜻’을 공식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2인자를 자임하다가 정권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누가 더 ‘조심’(趙心)을 잘 대변하느냐. 그러나 그들은 이른바 정말 ‘조심’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조심’의 유일한 해석자임을 빙자해 자신의 교권을 유지하려는 것뿐이다. 진심으로 조언한다. 기하성은 역사에서의 교훈을 정말 무시하지 말라.

기하성은 이른바 ‘조심’ 해석권을 무기로 교권세력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맘대로 교단과 교회들을 뒤흔들고 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조용기 목사님(내 진심을 담았기에 여기서는 특별히 ‘목사님’이라는 명칭을 썼다)께 진심으로 진언 드린다. 본인의 뜻이든 아니든 이른바 ‘조심’을 빙자해 교권정치를 자행해 나가는 현 기하성 공작 정치상황의 책임은 최종적으로 조 목사님이 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명백한 죄악이 조 목사님 이름을 빙자해 자행되고 있음을 안다면 책임지고 이제 스스로 인간됨을 선언하고 공작정치의 교권세력들을 몰아내야 한다.

2. 협박과 자화자찬을 앞세우는 총회임원, 설설 기는 총대들

기하성 총회는 이전까지 보아왔던 다른 교단총회들과는 분위기 자체가 정말 다른 총회였다. 한마디로 총회 임원들은 1년 동안의 활동을 보고하는 위치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수고와 업적을 과시하고, 미련한 총대들을 가르쳐 일깨우는 소명으로 착각하는 듯 했다. 앞서 말한대로 총회장은 걸핏하면 질서를 내세우며 아까운 회의시간을 낭비하며 정회를 일삼았고, 연금이사회 보고 때 정원희 목사는 처음에는 “우리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아나? 질문도 하지 마라.”고 했다가 뒤늦게 한 총대의 질의에 대해 “그런 엉터리 같은 질문은 하지도 말라. 또 다른 질문 있나?”라고 했다.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박성배 총무도 순총학원 지원에 대해 답하면서 “나만큼 교단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자화자찬에 열을 올렸다.

그 가운데 압권은 역시 선관위원장 박종선 목사였다.
그는 임원선출에 앞서 인사말을 할 기회가 주어지자마자, “자신은 선관위원장으로서 단 한 푼도 먹지 않았다.”며 묻지도 않은 간증과 함께 자신의 수고를 설명한 후 논란이 여전한 최성규 목사 부총회장 후보등록 문제는 애써 피해가려 했다. 그는 최성규 목사의 후보등록을 막은 근거를 “소속 기하성 총회장에, 한기총 대표회장 등 모든 높은 자리를 다 거친 분이 어떻게 창피하게 부총회장에 입후보할 수 있느냐”며 애써 법과 규칙보다는 관례를 내세웠다. 또 그는 논란을 피해가려는 듯, “장로들도 없이(퇴장했으니) 목사들만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질의도 필요없다.”는 둥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고, 한기총 대표회장까지 지낸 최성규 목사였지만 그도 기하성 임원들의 위세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선거관리위원장 불신임안을 동의했으나 분위기에 눌린 총대들의 허약함 속에 재청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장로는 장로가 아니었다. 오후 속회된 회의에서 한 장로가 박성배 총무 등의 전횡을 지적하고, 황제식 헌법개정안을 발의했던 목사들을 믿을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자 목사들은 동시에 들고 일어났다. 마치 세울 필요도 없는 장로들 세워놨더니 이젠 목사하고 같이 놀려고 기어오른다는 식이다. 아무리 장로의 말이 옳아도 감히 장로가 목사에게 대드는 꼴 앞에서는 모든 목사가 하나 되어 불경한 장로를 꾸짖었고, 불경죄를 저지른 죄가로 그 후 장로들은 한 마디도 못하고 쫓겨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총회 임원들이 총대를 대상으로 훈계하고, 협박하고, 가르치려는 총회. 그러한 서슬 시퍼런 협박과 훈계를 듣고도 눈치만 보며 감히 한 마디 반박도 못하는 총대들. 그들은 자신들이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서는 제법 목소리도 돋우며 소신을 밝혔으나 민감한 안건에서는 이름 올려 재청조차 쉽게 하지 못했다. 같은 기독교인들 앞에서도 감히 자신의 소신을 말하지 못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외부의 핍박에 순교를 각오한다? 처음부터 우리는 기대하지 말자. 아직도 목사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밥도 안 먹고 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믿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너무 불쌍하다.

   
▲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구교형목사
총대원들이 관례를 따라 말하면 “법”을 외치고, 총대원들이 당연한 절차와 법을 말하면 “관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건 총회 교권주의자들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였다. 이번 기하성 성명서를 쓰면서 나는 기하성을 ‘형제/자매 교단’이라는 명칭을 썼는데 그건 진심이었다. 나 자신 장로교 목사이지만 기하성은 ‘형제/자매 교단’이다. 정말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려면 기하성 목회자와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깊이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한다(마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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