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기회가 닫는데로 수도원이나 공동체를 관광(?) 다녀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것 같다. 왜냐하면 워낙 콩가루 집안에서 자라나서 어려서 부터 세상을 등지고 수도사가 되기를 원했는데 당시 카톨릭의 옹졸함-전 가족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때문에 수도사가 못되었었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 3 시간 거리에 있는 성공회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갔다 왔다. 이 수도원과의 인연은 20 년전에 한국에 있을 때 막 한국에 수도회 설립을 위해 파견된 이곳 출신의 크리스토퍼 형제를 만났던 것이었다. 그 후 그는 한국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시작했고 반대로 나는 호주로 오게 되었었다.
그 후 크리스가 왔다고 해서 17년 전에 방문을 했을 때는 3 명의 수도사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70 세의 수도사와 한국에서 6 개월간 파송 나온 수사뿐이어서 서구 세계에서 수도원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를 실감하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도원의 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이유는 말 할 것도 없이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신앙 때문에 쌩고생을 자청할 사람이 줄어드는 탓이다.
한 번은 그리스토퍼가 호주에 왔을 때 나는 한국에서처럼 아무 생각 못하고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헤어지고서야 내가 지금은 한국에서와는 달리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돈을 주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꼭 돈을 준다. 신앙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사를 만나면 많든 적든 반드시 돈을 주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만나러 올 차비는 있어도 내가 차비를 주지 않으면 돌아갈 차비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도사는 사적 소유가 없어 가난할 수는 있지만 수도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자체가 풍요로운 매력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시대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한국 천주교 신부의 1/3이 아일랜드 신부였다. 가난한 나라 아일랜드에서는 신부가 되면 교육을 받을 수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집안에 한 사람은 신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아일랜드가 지금은 신부가 부족해서 필리핀 멕시코 등지에서 신부를 데려오는 수입국이 되었단다. 이런 상황이니 신부 보다 더 어려운 수도사의 길을 택하는 이들이 적은 까닭은 당연한 일이다.
수도원에는 우리 일행 외에 35살 먹은 과묵한 벤이라는 청년이 묵고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니 벤은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멜번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방학 때마다 여기서 수련을 한다고 했다. 벤의 이야기는 요즘 세상에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고 내가 겪고 보고 있는 호주의 일반적인 젊은이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어서 그의 이야기에 100% 신뢰를 하기 보다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어째튼 나에게 이 수도원의 미래가 벤에게 달려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벤이 수도자로서 코스를 제대로 밟아서 수도원을 지킬수 있다면 프란치스코 수도원은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수 십년내로 문을 닫게 될 것이다. 하룻밤을 지내며 기도회와 미사에 참여해 보면서 비록 오랜 역사를 지녀온 전통이겠지만 이런 방법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영향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호주 대륙에서 시드니의 정반대편인 동부 해안에 있는 퍼스에 있는 자연주의자들이 사는 공동체를 방문 했을 때 공동체의 리더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놀란 것은 그들의 집 바닥이 카펫이나 마루가 아닌 흙바닥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냥 맨 땅에다 침대와 가구들을 놓고 살고 있었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으로 보존하면서 살자는 그들의 철학을 철저히 실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즉 물질세계에서 그들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20 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적 스승인 토마스 머튼은 젊어서부터 길을 찾다가 수도자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불교적 수행 방법을 배워서 가톨릭과 불교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다. 몸은 까다롭고 독선적이고 답답한 가톨릭 제도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도 가장 폐쇄적인 트라피스트 수도원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생각은 무한히 자유로웠다.
물론 1948년도, 내가 태어나던 해 출판한 자전적 일기인 ‘칠층산’을 보면 토마스 머튼도 시대의 아들이라서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구도의 치열함은 정말로 무서울 정도였다. 하여튼 머튼은 철저히 갇힌 세계에서 갇히지 않은 정신을 보여 준다.
머튼은 껍질을 깨고 본질을 밝혀 '거짓 영성’이라는 어떤 것인가를 깨우치게 만들었던 20 세기 영성의 대가였다. 종교를 통하여 점잖게 내적 평안이나 갈등 해결을 추구하는 것은 사기는 아니지만 머튼에 의하면 초보적 수준이요 고작해야 영적 게으름에 빠지는 것이다. 신앙은 평화의 원리이기 이전에 갈등과 정화의 원리이다. 진정한 기도는 도사가 되어 자기만 알거나 느끼는 환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사물과 세상을 명료하게 보는 것이다. 즉 깨어난 영혼은 사물과 세상이 너무도 명료하게 보여서 안락하게 지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에는 모두 영적인 배경이 있다. 머튼은 ‘내적인 흥미와 자신의 영적 회복에만 집착’ 하는 것을 ‘영적인 정욕’이라고 부른다. 심지어는 ‘자신들이야말로 거룩한 사람’이라고 믿지만 ‘가장 비열하고 사악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거짓된 수도는 수도자를 영적 누에고치 속에 고립 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 공통의 고뇌와 갈등으로부터 물러서게 할 뿐 아니라 의식을 둔화 시켜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진정한 영성은 세상의 고통에 대한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에 앉아 있으면서도 세계를 향하여 월남전의 참상을 고발 했다.
보통 기성교회에서는 ‘사랑, 은혜, 평화’ 등등의 표현이 상투적으로 사용하지만 사실은 현실을 망각하거나 호도하는 ‘개념 없음’의 상징일 뿐이다. 기독교인들은 ‘전능하고 자비롭게 은혜롭고 등등’ 온갖 미사여구로 수식해서 말로 된 우상을 섬기고 있다. 사람들은 약은 것 같아도 어리석다. 형상으로 만든 우상은 거부할 줄 알지만 자기들이 말로 된 우상을 섬기는 줄을 모르고 있다.
존립위기에 처해 있는 수도회를 방문해 보고서 안타까움을 느끼기 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수도원이 더 이상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현대에 필요한 수도원 운동은 은둔해서 하늘만 바라보는 운동 보다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잘못된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인가를 하는 방법을 찾는 방법이라야 할 것이다.
유명한 와튼학파의 경제학 교수 출신의 스콧 리어링은 '경제적 은둔 생활'에 들어가서 거의 100살까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생활’이 아니라 ‘나물과 물’로서 어떻게 자본주의에 대항할 것인가를 몸소 보여 주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의 자유’를 누리는 삶을 실천한 것이다.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토너들의 역주를 보며 감명을 받는 것과 같이 많은 현대인들이 현대문명이 만드는 선택들을 뿌리치고 '전근대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고행을 기꺼이 택한 그들의 삶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숲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기르고 최소한도로 소비 하는 형식, 즉 과거 중세시대 수도원 개념에 가까운 생활을 통해서 자립경제체제라는 대안적 삶을 만들며 살아갔다. 현대 자본주의라는 종교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 공동체 운동은 중세시대에 신앙의 타락을 경계하고 청빈한 삶의 추구를 했던 수도원 운동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