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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들에게는 책임이 없는가?목사에 대한 맹종은 성경적이지도 교리적이지도 않다.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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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년 07월 15일 (화) 01:24:56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03:18 [조회수 : 6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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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목사들이 여러 가지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장로들이 감리교회의 기획위원회나 장로교회의 당회에서 교회의 제반 문제를 목사와 협의하기 때문에 교회의 재정, 인사문제 등을 장로들의 협조 없이 목사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교회의 목사가 재정을 유용했다든지, 비정상적인 인사를 했다면 장로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논문표절, 가짜박사, 음행 등은 장로들의 동의를 얻을 일이 아니지만, 그러한 비행을 저지른 목사를 무조건 비호하는 장로들과 교인들에게는 교회의 부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교인들의 순종을 강요하는 목사들

그러나 교인들은 성경에는 목사의 언행을 비방하지 말라고, 목사를 도와주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묵인이나 협조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벗어나려 한다. 그들은 다윗이 사울을 해하지 않은 경우,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다가 저주를 받은 사건,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잡아준 것 등을 그들이 목사의 비행을 묵인하고 목사에게 협조하는 데 대한 성경적 근거로 제시한다.

목사들은, 특별히 부흥강사들은 목사를 비난하거나 목사에게 해로운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다. 다윗이 그를 박해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사울을 죽이지 않은 사무엘상 24장과 26장의 기록을 그 근거로 댄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일이고 죄이니 그를 치는 일은 그에게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께 맡기자고 말한다. 부흥강사들은 다윗이 그를 죽이려는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목사를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목사를 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 신실한 교인들은 목사가 비행을 저질러도 하나님이 치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린다. 그런데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그 목사는 무사히 은퇴를 맞이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목사들은 주의 종을 비판하면 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 근거를 모세를 비난한 미리암을 하나님이 저주하신 데서 찾는다. 민수기 12장에서 모세가 유대 여인이 아닌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기 때문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자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나병의 벌을 내렸다. 설교자들은 중직자든 일반 교인이든 목회자를 비난하면 이렇게 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목사의 위임식에서는 빠지지 않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팔을 붙들어 줌으로써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출애굽기 17장의 예를 들면서 목사가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교인들이 목사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래서 교인들은 목사에게 협조하고 순종하는 외에 결코 목사가 부당한 일을 하더라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하면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교인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목사들은 이렇게 세뇌당한 교인들 위에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재정적 비리, 음행, 세습, 가짜 박사 취득 등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만한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세상 법정에서 실형을 받거나 교회 단체에서 징계를 받더라도 교인들이 비행을 저지른 목사를 감싸는 것은 목사에 대한 순종이 몸에 배어 있고 목사를 비방하면 벌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 목사를 벌하는 것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고정관념은 올바른 것인가? 특별히 목사와 더불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들은 목사를 도와야 하지만 목사가 옆길로 가려고 할 때는 그를 바로잡아주어야 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 아닌가?

일전에 유 장로를 만났더니 수요일 저녁에 부인 권사와 심하게 다투었다가 결국 자기가 양보했다고 하소연했다. 담임목사가 설교시간에 문 총리후보의 자진사퇴 사건을 놓고 안티 기독교인들의 악의적인 여론몰이의 결과였다고, 신실한 장로가 총리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사탄의 계책이었다고 말했단다. 목사의 발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유 장로는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인에게 문 후보의 사태를 그렇게 보는 목사의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고, 목사가 문 장로의 강연 동영상을 보고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부인 권사가 목사님의 설교를 비판하다니 당신이 장로 맞느냐고 대들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유 장로는 장로면 목사가 엉뚱한 말을 해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대꾸했더니, 부인은 자기네 교회의 김 장로가 반신불수가 된 것은 목사님에게 맞섰기 때문이라고 응대했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했더니 부인은 그게 자기 말이 아니고 교인들의 말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치민 유 장로는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부인과 한바탕 싸웠단다. 부인 권사는 목사를 비판하다가 당신이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하면서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유 장로는 부인의 말에 분통이 터졌지만, 결국 그날 저녁에도 부부싸움에서 유 장로가 지고 말았단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맨날 져주어야 하니 더욱 서럽다고 농담을 곁들이는 그의 표정이 쓸쓸해 보였다.

이렇게 목사에게 맹종하도록 교인들을 교육함으로써 목사들은 그들이 빗나가지 않도록 조언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맹종하는 교인들에 둘러싸여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권위의식과 자만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천사를 타락시킨 것은 이러한 자만심이다. 젊을 때 아주 겸손하고 헌신적이던 목사들도 그들을 떠받들고 신격화하는 교인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점차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결국 안하무인 상태에 이르러서 비행을 저지르고도 교인들 앞에서 사과할 줄 모르게 된다. 더 심각한 일은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할 줄도 모른다.

목사들이 이렇게 되는 데에는 신도들로 하여금 맹종하게 만든 목사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분별력 없이 목사에게 맹종하는 교인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목사를 천국에 보내고 싶으면 그들이 비리를 저지를 때마다 교인들이 그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목사에 대한 맹종은 성경적이지도 교리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선지자들이 죄를 범하는 백성들을 바로잡으려고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구약에서 많이 읽지만, 특히 나단 선지자가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종을 바로 세우려고 다윗의 비행을 책망하는 것을 본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위험한 전장에 내보내서 죽게 한 후 밧세바를 아내로 취한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이 사실의 부당성을 지적하자 다윗은 자기의 죄를 인정한다. 다윗이 성군이 된 것은 그의 곁에 그의 비행을 지적하는 이러한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가 그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겸손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단 선지자가 백성의 생사권을 지닌 왕 다윗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의 죄를 지적한 것처럼, 중직자들은 담임목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직언해야 한다. 특히 중직자가 목사의 부정을 방관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외면하는 일이다. 중직자들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사명을 부여받은 교인들은 먼저 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 해야 한다.

목사의 비행을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모세를 비판한 미리암의 경우와 사울을 죽이지 않은 다윗의 경우를 목사와 교인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모세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을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했을 때 그들의 비방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서 모세를 가장 사랑하는 모세의 누이와 동생이 모세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 정당한 비판으로 인해서 미리암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은 모세가 일반 선지자들과 다른 특별한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이다. 민수기 12장에서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에게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과 달리 모세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며 직접 대화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종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민수기의 문맥에서 우리는 만일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아닌 다른 선지자들의 잘못을 지적했더라면 미리암에게 벌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라는 특별한 사명을 주신 하나님은 미리암을 벌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그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언행을 비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셨다.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그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신 것이다. 따라서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벌을 받은 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고 특별할 경우이다. 이 특별한 경우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모세와 목사의 위치를 일치시켜서 목사의 비행을 지적하면 저주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오히려 목사들이 죄를 범할 때, 나단 선지자처럼,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다. 므리바 물 사건에서 보면, 모세가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모세에게 벌을 내리셨다. 오늘날 목사들의 비행은 교회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일이다.

목사들이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을 예로 들면서 목사들의 비행을 눈감아주라고 가르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은 사울이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 민족의 최초의 왕이었기 때문에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백성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 왕을 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다윗이 성군이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기록자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왕의 권위를 절대화하려는 왕권신수설의 사고에 기반을 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을 신성시하는 그런 태도는 임기제의 국가 지도자를 국민이 선출하는 민주적 정치체제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더구나 전제국가에서 백성이 왕을 대하던 태도를 지금 교인들이 목사를 대하는 태도에 적용하는 것은 너무도 엉뚱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의 원리에 의하면, 신약의 시대는 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하는 시대가 아니고 모든 교인이 제사장인 만인 제사장의 시대이다. 목사들의 영적 권위를 높이려는 시도는 제사장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잘못된 행태이다. 이제 평신도들은 신인도가 땅에 떨어진 한국교회의 혁신을 위해서 나단 선지자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목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유혹에 빠지거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그 사실을 지적해서 그를 올바른 길로 돌이켜 세울 책임이 교인들에게 있다.

다행스럽게도 장로들이 교회의 부패에 대한 자기들의 책임을 절감하고 교회의 갱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감리교회의 장로들은 지난 7월 2-4일 3일간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영성수련회에서 ‘공명선거 문화 캠페인 실천 선언’을 채택했다. 그들은 앞으로 있을 감독선거와 감독회장 선거에서 금권선거와 선거부정을 막는 데에 앞장서고 개혁특위의 활동에 협력하기로 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에 장로들이 채택한 ‘공명선거 문화 캠페인 실천 선언’에는 큰 의미가 있다. 장로들의 선언은 평신도들이 노력하면 지금까지 자행되어온 선거부정을 비롯한 교회의 비리가 방지될 수 있다는 것을 장로들이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선언서를 통해서 교회의 부패에 대해서 목사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정치꾼들

그런데 장로들이 공명선거를 위한 선언문을 채택한 것을 놓고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는 일회성의 행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의 장로회 선언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그 수련회를 주관하는 장로들의 대부분이 정치장로들이기 때문에 그 수련회를 마친 후에 그 정치장로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감독 선거에서 부정선거운동에 가담할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말은 풍성하면서도 행동은 엉뚱한 경우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듯한 말로 표현된 장로들의 선언이 실현되리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상 장로들은 오랫동안 목사들의 비리를 눈감아주거나 동조해 왔다. 그동안 목사들과 장로들이 실망스러운 일들을 너무도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장로들은 목사들에게 빌붙어 기생하면서 목사의 비리를 부추기고 교회를 통해서 이권을 챙긴다. 금전적 이권을 챙기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목사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실권 있는 장로로 행세해 왔다. 이러한 장로들은 목사의 도움을 받아 연회나 노회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각종 선거에 관여한다. 특히 감독선거 같은 때에는 선거권자들을 매수하기 위해서 돈을 나르는 등 부정선거를 주도해 왔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연못을 흐려놓는다는 말처럼 교단 안의 단체들이나 주요 행사들을 주관하는 정치장로들이 교회를 부패의 늪에 빠뜨린다.

정치장로에 대해서 말했지만, 실상 정치목사가 있는 곳에 정치장로가 똬리를 튼다. 선거인단을 매수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감독이나 감독회장 혹은 총회장에 당선되는 목사들은 명예를 탐하는 정치목사들이다. 물론 전체 교단을 끌고 나갈 사람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감독회장이나 총회장이 누리는 권위나 이권이 크기 때문에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 파당을 짓고 엄청난 액수의 돈을 써가며 선거운동에 뛰어든다. 그 돈은 대부분에서 목사 자신의 돈이 아니고 교회의 돈이거나 사업을 하는 장로들을 비롯한 권사, 집사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자기 돈 들이지 않고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할 만한 일이다. 당선되면 횡재하는 일이고, 당선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밑져야 본적인 장사이다. 또 은퇴비같은 것을 당겨 받아 선거에 쓰고나서 낙선하고는 은퇴후가 초라해 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문제는 패거리를 짓기 위해 돌아다니고 자금을 마련하고 선거운동을 하느라고 2년이고 3년이고 목사가 자기의 본분인 목회를 소홀히 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대로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신경을 쓰게 되니 말이다. 자기 주변의 정치장로들을 규합하고 각 교회의 목사들과 대의원으로 나갈 장로들을 만나서 지지를 호소하면서 완전히 세속적인 일에 몰두하다 보면 교회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자기의 육신적인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목회자가 정치꾼으로 바뀌고 만다.

정치목사들은 교단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미사여구를 나열하지만, 실상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실시되는 선거에서 그런 예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선거철에는 모두 애국자이지만 국회에 들어가면 당리당략이나 개인적인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된다. 정치목사들도 다른 정치꾼들과 다르지 않다. 까매기 모이는 곳에 백로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신실한 주의 종들은 정치꾼들의 놀음에 휩쓸리지 않는다. 우리 목사님이 감독회장이니 총회장이니 하고 자랑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오히려 명예를 탐하는 정치목사를 부끄럽게 여겨야 영적으로 성숙한 교인이다. 사회단체가 아닌 종교단체에서 명예를 탐한다는 것은 영적 타락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교인들의 묵인이나 협조 없이는 이러한 정치목사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중직자들은 담임목사를 도와서 교회를 치리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관해서 항상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부당한 목사의 제안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부당하거나 비합법적인 목사의 제안을 묵인하거나 목사에게 맹종하는 것은 중직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다.

그리고 일반 교인들에게도 감리교회의 위원회나 당회, 장로교회의 제직회나 공동의회에서 문제점을 지적해서 교회가 빗나가지 않도록 바로잡아 줄 기회가 있다. 그런 기회에 교회가 빗나가는 것을 방관한다면 방관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따라서 교회의 부패에 대한 책임이 교인들에게는 전혀 없고 전적으로 목사에게만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고 나는 빠져나오려는 ‘네 탓이오’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은 평신도들이 깨어나야 할 때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들이 목사들의 비리로 인해서 거의 예외 없이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지금 한국교회의 갱신은 평신도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국민의 여론에 따라 대통령의 국정방향이 바뀌고 역량이 부족하거나 하자가 있는 총리 혹은 장관 후보자들이 낙마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발휘되는 국민의 힘은 교회에서 평신도들의 힘으로 나타나야 한다. 민주국가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국가인 것처럼, 교회는 교인에 의한, 교인을 위한, 교인의 만인 제사장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에서 목회자의 비행은 교인들에 의해 차단될 수 있어야 하고, 역량이 부족하거나 하자가 있는 지도자들은 퇴출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회 혁신을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수동적인 태도가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목회자들의 비행을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교리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도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선지자적 목소리를 발해야 한다. 국가개조를 부르짖는 지금 우리는 교회의 혁신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제사장적인 권위주의로 회귀하려는 목사들의 세뇌작업으로 인해서 교인들은 아직도 맹종의 올무에 사로잡혀 있다. 목사들은 전횡하고 교인들은 그들의 비행을 눈감아준다면,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합작해서 교회를 부패의 늪에 점 점 더 깊이 빠뜨린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영적으로 잠든 유대인들에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깨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사 52;1-2) 이 하나님의 말씀은 부패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그리고 지도자들의 비행을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한국의 교인들을 위한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가 맹종의 목줄을 스스로 풀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한국교회의 부패는 목사들과 평신도들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목사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목사는 교인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영어의 ‘minister’의 명사적 의미는 ‘목사’이지만, 동사적 의미는 ‘봉사하다’이다.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는 그들의 신앙적 성장을 돕는 사람이지 그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거나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교회가 목사들을 위해서 있지 않고 교인들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이야기해주듯이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순종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다. 스승을 존경한 우리 선배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승을 존경하는 것은 좋은 전통이지만, 군주에 대한 맹종이 사라진 오늘날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한 때에 목사들이 평신도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거나 교인들이 그 요구에 따라 맹종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일이다.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신임장로들에게 목사는 교인들의 영적 아버지라고 세뇌시키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목사의 권위적인 태도 그리고 아전인수격인 성경해석이 그 목사 한 사람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종교단체의 특성상 교회에서는 지도자에 대한 존경, 순종, 협조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분별력 없이 목사의 비행까지도 눈감아주고 동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결코 아니다. 존경하는 마음은 강요에 의해 일어나지 않고 상대의 고결한 인품에 의해 저절로 생긴다. 상대의 인격에 감동하여 존경하게 될 때 순종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따라서 목사들은 모름지기 존경받을 만한 신앙적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목사와 교인들이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달리 말해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겠는가?

 

   
▲ 최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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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도동교회 (124.111.253.233)
2014-07-15 11:12:36
좋은 글입니다
읽는내내 제가 섬기는 교회의 모습같아 마음이 아프면서도 슬펐습니다
오늘날 우리교회의 모습과 전혀 다를바 없었고, 저또한 한때 그러한 신앙으로 교회를 섬겼음에 돌이켜보며 회개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하 우리모두는 말하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자행되는 불법과 탈선...목회자의 독선적인 목회, 편향적인 목회, 교인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며..영적아버지라 말하는 목사...교인들이 올른소리 했다고 당회를 통해 짤라버리고, 자신을 영적우물이라말하며 폭력을 부추기는 설교...돈을 이용해서 감리사를 직임정지하는 목사...
이제는 사라져야할 것입니다
좋은 글 감명깊게 읽었으며, 언제어디서건 불의에 목소리를 내는 집사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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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0
김형우 (112.163.165.1)
2014-07-23 13:26:37
목자에 대한 맹종은 함께 망하자는 것,,,
성경 말씀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따.

이 말씀은 육적 눈이 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겠는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소경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그 뜻을 알지 못하는 목자를 인도하는 소경으로 빗대어 설명한 것이다.

아마 한국 기독교의 거의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에 해당하지 않는가 싶다. 성경 말씀 하나 제대로 몰라 못가르치니 성경이 아닌 주석이나 유명한 박사님들의 눈문을 인용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분들이 과연 올바르게 교인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없다.

그러니 인도하는 소경된 목자나 따라가는 소경된 교인들이나 둘다 함께 지옥 불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는가?

불구덩이에 빠지고 나서는 때 늦은 후회,

이제 우리는 성경 말씀에 깨어 나를 인도하는 목자가 소경인지 아니면 올바르게 인도하는 목자인지를 잘 분별하여 참 된 생명의 길을 찾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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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김상철 (175.214.107.36)
2014-07-16 17:58:05
모든 목사가 다 주의 종이 맞는지가 문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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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8.39)
2014-07-17 21:08:36
목사중 7.80% 는 먹사나 막사 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 님을 지혜롭게 ? 이용하는 구역질 나는 자들 입니다................그럴듯해보이지요.........올바른 분별력으로 잘 살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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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 (1.236.85.173)
2014-07-22 18:19:49
먹사, 막사 로 보이는 자가 많은데 그들을 강단에서 내리기가 매우 어렵군요.
많은 교인들은 목사의 잘못을 말하면 목주머니 차고있는 목사의 저주받아요
목사는 친위부대를 거느림니다, 부정한 목사의 친위부대는 강함니다
목사를 고발하면 장로도 출교 시킴니다.조용히 떠나라고 권면해요,
도박한 목사를 교단에 고발하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남니다, 사회법으로 고발하여 3년후 대법원판결문으로 교단에 고발해야 어쩔수없이 면직해요,
그러면 교회는 목사 옹위자들과 공의로운 교인과 나뉘어 지는군요,
결론은 교단에서 교역자 보호보다는 불량 목사를 과감히 제거하는 강력한 제도가 필수 임니다.
사회법보다 더 엄한 치리가 있어야 불량목사가 줄어 들고 백성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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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Ray (14.40.84.106)
2014-07-16 11:01:30
평신도가 다 장로님 생각이면 세상이 아니죠.

조금 알 것 같으면 가고,

5000년 인간사 돌고 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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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8.39)
2014-07-15 23:05:47
가르치는자나 듣는자가 서로 죄업을 쌓아가고있다.....이땅은
맘몬과 권력의힘이 먹.막사들을 죄인 으로 만들고
맹종의 무뇌아 복을 갈급해 하는 신자들도 죄인 이렸다

적폐가 그아비와 자신이거늘 그것도 모르는 가식과 위선의 죄인 그녀
안주하며 분별력을 상실한 이땅에 궁민들도 죄인 이렸다

그 궁민들중 개독교인이 최상위 위치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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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8.39)
2014-07-17 21:11:34
22명의 개독교인 이여
참으로 진실로 감사 합니다..그대들 수준이 적날하게 드러나서
요중에 박그네 맹종자들이 절대 다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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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8.39)
2014-07-16 10:43:13
사이비 개독교인이
총 출동하였구나......그러니 회개하라는 의미가 뭔지나 알런지.......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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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10.183.27.65)
2014-07-15 10:14:44
모세와 목사는 역할이 다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에게 제사장의 직임도 행하게 하지 않고 아론에게 그 역할을 맡기셨을까요? 제 생각에 모세는 단순히 종교지도자라기 보다는 민족지도자이거나 정치지도자로 세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목사를 굳이 그 시대로 돌아가 억지로 적용시키려 한다면 모세 보다는 아론에게 비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라고 가정하다면 모세는 대통령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리고 교회 개혁은 지금의 교회제도 하에서는 일부 평신도를의 의식 개혁 만으로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역할을 분담하여 사역을 감당하였고 초대교회에서도 사도와 집사가 역할을 나누어 사역하였듯이 오늘날 교회도 담임목사가 교회의 모든 일을 관할하지 말고 목사는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나머지 일들은 평신도 대표가 맡아 행하는 역할 분담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담임목사와 당회장의 역할을 분리시켜 목사는 목회에 전념하고 평신도 대표가 당회장을 맡아 교회 행정을 이끄는 제도를 신중히 검토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목사의 권위주의도 평신도의 맹목적인 신앙도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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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cho (210.205.176.124)
2014-07-16 08:49:11
음..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릅니다.
배가 산으로 갈 공산이 너무 큽니다.
사람 참 묘하더라구요. 권사에서 장로 되면서 변신(?)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영적 지도자인 담임목사를 흔드는 걸 너무많이 봤습니다.심지어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관해서도 간섭이 도를 넘는 경우도 여럿 봤습니다.
더구나 교인들 자체가 담임목사에게 슈퍼맨(?)이 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자립교회처럼 교회일꾼이 적을 경우에는 담임목사가 사찰목사(?)가 되기도 합니다.
역할분담을 제도적으로 잘 정착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목사건, 장로건,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하고...등등.. 어쨋거나 "사람"이 먼저 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사람이 되면, 어떤 제도이든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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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심 (222.100.222.168)
2014-07-16 15:04:17
요새 목사님들 힘 없습니다.
나그네님 목사님들 싸잡아 비난하지 마세요.
대형교회 아닌 이상 거의 모든 교회
목사님들 종입니다. 힘 없습니다.
평신도의 입장에서 볼 대도
너무 비참하고 불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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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10.183.27.65)
2014-07-18 14:12:08
목사를 싸잡아 비난 했다니요? 어이 없습니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목사를 싸잡아 비난한건지 말해 주세요.
그리고 목회를 힘으로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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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124.63.133.2)
2014-07-16 08:22:48
동의 합니다. 그러면서도 염려 되는 것은 장로가 목사를 흔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장로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목사으 ㅣ목히를 간섭하는 장로가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말도 있지 않습니까? 오전에 장로 안수 받고 행사치르면 오후부터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자기 철학대로 목회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함을 보았습니다. 나그네님의 글에 동의는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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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10.183.27.65)
2014-07-16 10:32:11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계속 이어간다면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유럽교회와 같은 현상을 겪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벌써부터 교회학교는 빈자리가 늘고 있습니다. 미자립교회는 어렵겠죠. 모범적인 교회에서 목사와 당회장의 역할을 정관으로 분명히 정해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가운데 실천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셍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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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름 (211.253.98.34)
2014-07-15 09:52:36
그럴꺼면
평신도가 깨어야 할꺼면
종교가 설자리가 없겠지
때마다 모이는 교회는 더군다나......

날마다 교묘하게 순종을 강요하는 자를
꾸짖거나 제재할 방도가 없어
우매해진 교인들에게 책임있다 하려면

하나님과 같이 출애굽의 사건을
도모해야 할터
모세 같은 지도자를 양성하지 못할꺼면
교회만 몰락할터

감독 통치제도의 감리회에
그릇된 설교자를 치리하는
감독의 임면권은 유명무실

설교자의 임면은 교인들께 맏겨두고
감독들은 희희낙락
좋은게 좋다고 주거니 받거니

장부에 이름이나 올려주고 내리는
행정서사로 전락하신 님네들
잘못된 외양간 고치려 들지않고

자리만 보전하면 만사가 오케이

그래도 귀신에 잡혀도 정신만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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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름 (211.253.98.18)
2014-07-15 13:47:11
모세같은 지도자란
모세는 40세때
종살이 하는 동족을 구하고자
왕궁의 생활을 버렸건만

돌아온 것은 동족의 배신과 비판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생활 40년

애굽의 종들은 알까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렸는지?

그래도 하나님은
네신을 벗으라며
80세의 모세를 부르셨고
하나님을 잊고 산지 430년된
우매한 백성을 위해
출애굽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맏기실 땐 10가지 기적도
통치의 전권도 모두 주셔도
날마다 볼멘 탄식의 소리였는데

애굽 생활보다 더한
작금의 교회풍토속에
무장해제 당해
아무 능력없는 평신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한마디로 교회를 떠나라는 말 말
(장정은 빛좋은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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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이 맑아야 (72.37.249.108)
2014-07-15 09:48:17
아랫물이 맑다.
그리고
지하수 물이 맑아야 샘물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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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님 (112.166.56.107)
2014-07-15 09:07:01
유병언이나 목사들이나
유병언이나 목사들이나 같은점이 있다면, 철없는 교인들의 비호를 받고있다는 것일것과 성도들을 속이는점,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점 일것입니다.한국식 기독교의 가장큰 문제점인 목사의 신격화 또는 우상화가 이런 문제를 만들었고, 그런 문제의 깊은 구석에는 철없는 교인들의 묵인도 함께 했을 것입니다. 장로님이 올린글을 담임목사가 보면 주님의 종이신 목사께서 심히 마음이 아플것 같습니다.
월평교회의 딤임목사의 새로운 기도거리가 생길것 같군요
장로님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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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10.210.217.26)
2014-07-15 08:58:24
일면 일리가 있는 말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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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환 (211.253.248.21)
2014-07-17 12:46:09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고전] 3: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고전]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고전]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전]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고전] 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07.17 12:35) ⓔ



전명환 :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동역자인 바울 자신도 아볼로도 게바도 모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 하고 있읍니다.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복음을 위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종이되었다고 말 합니다.
[고후] 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07.17 1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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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환 (211.253.248.21)
2014-07-17 12:48:07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성도들과는 신분상의 차이와 축복권을 가진 특별한 성직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건 없이 무조건 순종하라고 하는 목회자 참으로 난감하고 거북 합니다.
왜냐면 목사가 성도들에게 무조건 순종하라고 말하고 가르치는 것만큼 교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이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예수님의 어린양들을 잘 먹이고 치며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종으로 하나님의 어린양인 성도들의 부르짖음과 간구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에 공감하고 긍휼의 마음으로 동행하며 치유와 회복를 위하여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종이 주인의 아들 딸들을 충성 되이 섬기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종이 주인의 아들딸에게 순종하라고 하는 것은 주인의 아들딸을 자기 종 삼겠다는 불충하고 악한 종의 교만한 모습일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뜻이고 목적하는 바가 좋아도 그 방법과 과정이 아름답지 못하면 하지 않음만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말석에 않아 예배드리는 부족한 종일지라도 의사를 무시한 채
조건 없이 순종하라고 말하는 것은 결례이고 무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에게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가 본질을 망각하고 기본이 무너진 채 목사들의 교만과 권위와 탐심과 욕망으로 가득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들 말 합니다.
실제 기독교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을 보면 공감이 갑니다.
요즘 기독교가 개독교로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목사들의 회개와 통회하는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세상적인 욕망과 탐욕 그리고 교만으로 자기 배만 불리려하고 있습니다. 먹고살려고 목회하는 목회자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명구원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교회와 목사들에게 실망하고 아파하는 성도들의 신음소리와 부르짖음을 듣기보다는 거짓으로 매도하여 쫒아내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목사에게 충성하는 목사의 종들을 기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그 종들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하여야 할 것입니다. 요즘 회자 되는 말로 목사가 제발 삵꾼 만이라도 되어 삵 만큼이라도 일했으면 좋겠다는 탄식을 합니다.
삵 만큼이 아니라 사기꾼이되어 교회를 통째로 자기 것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잘 섬길려면 성도들의 소리를 잘 들을 줄 아는 경쳥의 은혜를 구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같은 마음을 갖을 수 있도록 공감의 은혜도 구 하여야 할 것 입니다.
거기에 긍휼의 은혜를 구하여 성도들을 자비와 인애로 보듬을 줄 알고 성도들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종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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