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달인’이라면 생각나는 그 사람

   박근혜 대통령은 왜 세월호 참사 한 달여 후에야,
   그것도 6.4지방선거를 불과 16일 앞둔 시점에야 눈물을 흘린 것일까?

어떤 특정분야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을 일컬어 ‘달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은 그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말을 부정적인 면에선 쓸 수는 없는 것일까. ‘도적의 달인’이라든가 ‘사기의 달인’이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럼 ‘선거의 달인’은 어떨까. 현실적으로 쓰이고 있으니 쓸 수 없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 ‘선거의 달인’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일까. ‘달인’이라는 말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니 당연히 그런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그 말에서는 어딘지 빈정거림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슨 일이 됐건 겨루는 일에서 진다면 ‘달인’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줄곧 이기고 이 말로 불려야 이상하지 않을 터인데,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후보자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보다는 후보자를 과대포장하거나 거짓을 참으로 둔갑시켜 당선케 하는 일이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런 사람에게 그토록 명예로운 ‘달인’이라는 호칭을 부여해 온 것이 사실이니 가슴 아픈 일이다.

세월호 참사는 말뿐인 안전의 허울이 몰고 온 불행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의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챙기겠다며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꾸어 출범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뿐인 말잔치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세월호는 운항을 해서는 안 되는 배였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을 싣고 바다로 나가서는 더더욱 안 되는 그런 배였다. 그러나 선주 측과 당국의 짬짜미는 인천과 제주를 오가게 했다. 참사는 그래서 일어났다. 예견되고도 남는 불행이었다.

더 큰 문제는 사고가 나면서부터 벌어졌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어지는 일이 없었다. 선장과 무책임한 선원들은 저 살자고 숫한 생명들이 수장되어 가도록 하여 인간이기를 포기했고, 정부와 당국은 무능의 극치로 무정부를 연상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 같은 생명들이, 천하보다 귀한 국민들의 목숨이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 잠기어 숨이 끊기었다. 저들이 제대로만 했었다면 희생당한 304명의 모두는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었을 것이다.

이 엄청난 참사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며 유가족들과 슬픔을 같이 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런 가운데도 시간은 흘러 달이 두 번이나 바뀌고 6.4지방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여당이 참패하리라는 것은 너나할 것 없이 하게 된 공통된 예상이었다. 그때, 그러니까 선거일을 불과 16일을 앞둔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그 시점에 박 대통령은 눈물을 흘린 것일까.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준 은총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혈육의 죽음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난다면 그것을 견뎌낼 육체와 정신은 없을 것이다. 망각이 있기에 그 가슴 찢기는 슬픔을 당하고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그 꽃다운 나이의 생명들이, 천하보다 귀한 목숨들이 그렇게도 많이 수장되어 사라졌음을 보면서도 나지 않았던 눈물을 왜 그로부터 한 달이 넘은 시점에, 그것도 선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그 시점에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 앞에서 흘리게 된 것일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이 나면 아닌 척 닦는 것이 보통인데, 왜 그것을 닦지도 않고 그대로 흘리고 있었을까.

박 대통령의 그 눈물을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역시 선거의 달인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당이 선전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선거의 달인이라는 이름은 역시 허명이 아니었다. 여당이 참패하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빚나가 무승부라는 결과를 가져 왔다. 대패를 생각하고 있던 여당으로선 선전 중의 선전이었다.

우리는 이제 또다시 7.30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선거 실시 지역이 사상 최대 규모인 15곳으로 미니 총선이라 불릴 정도의 대규모 선거이다. 그러기에 6.4 지방선거에서 어정쩡한 결과를 낸 여야는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도 여당에 악재가 터졌다. 국무총리 후임으로 지명을 받은 사람이 두 명이나 낙마한 것이다. 그것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홍원 총리의 후임으로 지명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현실이 이러한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을 가져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모습이다. 지난해 9월에는 박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대표와 만났으나 냉랭한 분위기 속에 서로의 의사만 확인했을 뿐 어떠한 성과도 없었다.

왜였을까? 선거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시점에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소통의 화기애애한 자리가 마련된 것을 보고 선거를 떠올린 것은 필자만일까 싶다.

박 대통령은 10일의 그 자리에서 야당과 소통의 약속을 하고 그 다음날인 11에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홍철호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두관 후보가 격돌하는 승부처 김포를 찾았다. 김포 로컬푸드 직판장을 찾아 둘러보며 인근 농가 주민들, 그리고 소비자들과 의견을 나누고는 양파를 직접 구입하기도 했다. 이날은 7.30 재·보궐선거의 등록 마감일로 국민들의 관심이 대통령에게 모아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기도 하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선 일꾼을 잘 뽑아야 한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은 빈말이 아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롬3:10)는데 어떻게 허물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털어서 먼지가 덜 나는 사람은 있다. 선거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아니라 덜 나는 사람에게 표를 주는 국민으로서의 소중한 주권행사이다.

나라의 일꾼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다움이다. 능력 없는 사람이 도둑이 되면 좀도둑밖에 못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은 도둑이 되면 나라에 큰 해를 끼치는 대도가 된다. 그것이 능력 있고 됨됨이가 못된 사람보다 능력은 약간 부족할지라도 올바른 가치관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뽑아야 할 이유이다. 그런 사람들로 나라의 일꾼이 채워질 때 배는 침몰하지 아니하고 거친 파도와 싸우며 항진을 계속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능력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정당보다 인물을 보고 표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어느 후보가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 더 소신 있게 말하고 일할 수 있게 하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정당에서 더 많이 거수기 노릇을 시키고 상부의 눈치를 보게 하는지, 그리고 어느 정당이 자기네가 밀어 된 대통령의 눈치 살피기에 더 많이 급급했는지도 보아야 한다. 그런 정당에 소속된 사람은 자기의 소신을 소신으로 펴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가 코앞이다. 선거의 달인들에게 영향을 받지 말고, 집단이기주의에 빠지지도 말고, 굴절 없는 시각으로 사람을 보아 가려 올바른 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애국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바른 길을 가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 (암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