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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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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5월 18일 (목) 00:00:00 [조회수 :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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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셔 하늘을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화창한 날씨다. 바람도 적당히 분다.
나는 이런 날씨에 풀을 뜯는걸 좋아한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풀은 부드러운 맛과 향을 내며 입에 착착 붙는다. 다른 친구들은 이런 나를 낭만적이라며 칭찬인지 비아냥거림인지 모를 시선을 보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남이 뭐라 하는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다.

   
목자가 문을 연다. 양의 문이라 불리는 조그만 문이 열리면 우리는 서로 먼저 나가려고 바삐 움직인다. 난 이때가 제일 좋다. 특히 이렇게 좋은 날씨에는...
나는 목자가 반반(半半) 좋다. 이렇게 갇혀있는 나를 풀어줄 때나, 먹을 것을 줄때는 참 좋지만, 자기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가차없이 소리를 질러 나의 자유(?)를 빼앗을 땐 도망치고 싶을만큼 싫다.

목자의 낯익은 소리가 우리를 맛난 풀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그 소리를 믿고 우리 모두는 어딘지 모르지만 따라간다. 그 소리는 늘 우리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곳으로 인도하며, 편안히 쉴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인도한다. 한번도 그 소리는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실망시킨 적이 없다. 목자의 소리는 우리의 안전막과 같았으며, 편안한 자장가와 같다.
이렇게 좋은 목자이건만 가끔 반항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고 조금이라도 대열에서 이탈하면 나를 꾸짖는 그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괴성이 된다.

난 안다. 목자가 안내하는 길이 안전하고 편안하다는 것을...
그러나 산다는게 그런가? 가끔은 좀 삐딱해지고 싶고, 정도(正道)가 아닌 길을 가고 싶은 욕구도 있는데 목자는 전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 곁에만 우리를 놔두려고 한다.

"이건 독재야!"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라"
이렇게, 나의 동료들을 선동해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동조를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지 나 혼자 실행하는 수밖에. 가끔은 이렇게 자유를 소유한다는게 얼마나 좋고 편하고, 행복한 건지를 보여주겠어!"

나는 이후, 목자의 눈치만 살폈다. 목자와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그가 한눈을 파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목자의 친구가 놀러 왔다. 둘은 풀피리를 만들어 멋들어지게 피리를 불었다. 목자의 풀피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마음의 안정감을 들게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오늘만은 그렇지 않다. 풀피리는 새로운 기회를 알리는 시작이었다.

나는 힘껏 내달렸다. '나의 자유'를 만끽하려 목자로부터, 무리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났다. 나중에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놀래 자빠질 목자를 떠올리며, 통쾌한 춤을 추듯 네다리를 움직였다.
얼만큼 왔을까? 가쁜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 성공했다!

목자로부터 구속받지 않고 나만의 자유를 얻었다! 만세! 만만세!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천지였다. 목자가 데려간 곳과는 비교도 안되는 다양하고 싱싱한 풀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아니!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는데, 목자는 왜 이런 곳을 외면했지?"
"적당히 우리를 먹이고, 자기는 풀피리나 불고 노느라 그랬구나!"
"이렇게 벗어나니 목자의 진정한 속셈을 알겠군... 늘 우리를 위해 사는 것 같이 보였지만 사실은 우리를 방치시키고 있었어. 역시! 멀리 떨어져서 봐야, 보이는군. 불쌍한 나의 동료들! 열심히 먹고, 열심히 털과 우유를 상납하라.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하하하"
양은 너무도 통쾌했다. 자신의 결정이 결행된 다음, 더욱더 자신을 대견스러워 했다.

특별한 맛이었다. 혼자만의 휴식, 혼자만의 공간 그리고 자유... 바람도 훨씬 시원하게 느껴졌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만을 위해 있는 것 같았다. 행복했다. 목자의 도움없이 혼자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평온함이었다. 평생 가져보고 싶었던 자유로움에 빠져 두려움도 느낄새 없었다.

늘 목자의 간섭과 목자가 끌고가는 곳만 가는 것이 얼마나 지겹고 고루한 것이었는지를 떠나와보니 더 뚜렷이 알게 됐다. 태양 빛은 여전히 따스하고 포근했다.

배불리 혼자만의 식사를 하고 솜이불같이 따뜻한 풀에 누워 잠깐 휴식을 취했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여유를 부리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함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유가 주는 불안함이었다.
나는 나의 약함 또는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의 욕망이 약점을 무시하게 했다.

사실 나는 겁이 많은데다 시력이 좋지 않다.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다. 그래서 앞에 가는 형님들을 좇아가야했고, 목자의 소리로 방향을 찾았다. 그런데 이제는 좇아가야할 형님들도, 방향을 찾을 목자의 소리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방어할 힘이 없다. 늑대나 여우같은 맹수가 달려들면 꼼짝없이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허약한 존재다.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를 누리는 것도 잠깐, 욕망을 죽이고 현실을 바라보니 내가 너무 무모한 짓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돌아가야하는데 돌아갈 수없다. 난 꼼짝없이 외톨이. 맹수의 표적물이 되고 만것이다.

두려워졌다. 공포가 엄습하고 있었다. 변한건 없는데, 마음에서 불안이 커지니 몸도 떨렸다.

그제서야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찾았다. 무리와 목자 곁으로 가야겠다는 다급함에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서 무서움은 더욱더 현실이 되었다.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주위는 사방 낭떠러지뿐... '아 이렇게 위험한 곳이니까 데리고 오지 않았구나...'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걸...

왜 목자가 우리를 우리에 가둬놨는지, 무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를 소리치며 불렀는지, 왜 이렇게 풍성한 풀이 있는 곳을 외면했는지를 알게 됐다.

목자가 그리웠다. 목자야말로 나의 진정한 자유였음을 깨달았다. 그 안에 있어야만 찾게되는 자유를 나는 엉뚱한 곳에서 찾았던 것이다.
무서워 끙끙대며, 숨을 곳을 찾았다. 그렇게 달콤했던 풀도, 나만의 자유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본능만 남았다.

공포에 사로잡혀 떨고 있을 때,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자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 귀에 잡혔다. 구원의 소리였다.
목자는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많은 양들 중에 내가 없어진 것을 안 것이다. '다 똑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나를 알아보겠어?' 했던 지난날의 불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랬다! 목자는 언제나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를 그냥 물건 취급하지 않고 늘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들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저 멀리서 들리는 목자의 음성, 특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목자가 나를 부르고 있구나!' 순간, 오금이 저렸던 발에 힘이 솟았다. 그 소리 쪽으로 내 달려갔다. 그러다가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말라버린 우물이었다.

'저 여기 있어요. 살려주세요. 꺼내주세요' 킹킹대며 소리쳐봤지만 목자의 소리는 멀어져 갔다.
'아... 절망이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맹수의 소리였다. 나의 아우성대는 소리를 듣고 귀밝은 놈들이 달려온 것이다. 늑대였다. 눈이 마주쳤다. 얼마나 무서운지 오줌이 나왔다. 으르릉거리며 달려들려는 순간, 늑대가 음찔거렸다. 다시 나타난 목자의 소리에 놀란 것이다.

목자가 돌아왔다. 여기저기 찾아 헤매다 다시 온 것이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점점더 크게 들렸다. 늑대들이 소리나는 쪽으로 으르렁거렸다. 목자가 돌맹이질을 했다. 목자는 물맷돌 선수였다. 능숙한 목자의 솜씨는 위기에 처한 내게 희망을 갖게했다. '곧 목자가 나를 꺼내줄거야라는....'

용감한 목자는 늑대들을 쫓아내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최대한 불쌍한 눈을 하고 목자를 기다렸다. 목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너무도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금방이라고 춤을 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구덩이에서 나를 건져올리는 두 손의 뜨거움에 기절이라도 할것만 같았다.

목자는 나를 책하지 않았다. 오로지 다행이라며 울먹이기까지 하며 내 얼굴을 비볐다. 얼마나 나를 찾길 소망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목자의 사랑을 횡포로 규정하고 도망갔던 나를 용서하며 끌어안는 목자의 용서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목자는 지팡이로 나를 몰며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나 애틋했는지 무거운 나를 어깨에 매고 험한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용서받은 것만도 어쩔줄 모르겠는데, 이렇게 매고 가다니....

내가 목자의 입장이었다면, '나머지 놈들이 있는데, 한 마리 없어졌다고.... 잠깐 찾아보다 없으면 말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목자는 끝까지 나를 찾아헤맸다. 그리고 발견하고는 너무 좋아했다. 감히 내가 좇을수 없는 마음이었다.

목자는 심지어 '잃은 것을 다시 찾았다'며 친구들을 불러 잔치까지 벌였다. 별것아닌 존재, 잃어버리면 어쩔 수없다고 내팽겨쳐도 될 존재인 나를 목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식처럼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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